1. 지난 주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딱히 '슬프다'라는 감정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막내 작은 아버지 병원에 입원해 계신지 50개월, 만 4년 이상 계셨다 보니 '이제야 올 게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이달 초에 할머니 문병 갔을 때에 아버지랑 작은 아버지들이 할머니 돌아가실 이후에 할 일들을 논의하시는 걸 보고 정말로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저도 나름 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
2. 이전까지 할머니를 보며 들었던 생각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셨고, 혼자 거동도 제대로 못하시고 올해 들어서는 사람도 제대로 못 알아보시는 할머니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제대로 거동도 못하시는 본인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또 영혼이란 게 있다면 꺼지기 직전의 촛불 같은 저 육신 안에서 영혼은 과연 어떤 형태로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3. 작은 아버지들
막내 작은 아버지는 서울에서 입원 가능한 병실을 가진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할머니는 지난 4년간 거기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그리고 첫째 작은 아버지는 예전에 큰 병으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할머니께서 간병해 주신 적이 있어서인지, 입원해 계신 할머니를 첫째 작은 아버지가 옆에 24시간 지내면서 할머니를 간병했습니다.
전 할머니와 어떤 추억이 남은 것도 아니었고, 또 장기간 누워계신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씩 멀어져 간 것도 있겠습니다만, 이 두 작은 아버지들은 할머니의 임종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습니다. 4년 넘는 시간 동안 자기 손으로 어머니의 생명의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져 가는 모습을 봤을 첫째 작은 아버지라든가, 결국 어머니의 사망 진단을 자기 손으로 내리고 사망 진단서에 서명했을 의사 막내 작은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지(사망진단서를 여러 부 뽑아둔 것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 서류를 살짝 살펴보니 발행인이 작은 아버지였습니다), 전 그게 더 궁금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년 지난 뒤에 넌지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4. 죽은 자와 산 자들
장례식작은 서울의 대학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뤘습니다. 병원이 어디 따로 떨어진 건물이 아니라 도시 속에 그냥 들어가 있는 형태라, 분향소 옆 가족들 방에서 창밖을 보니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로 장례식장 내외부를 오가면서 직원들이 바삐 오가는 것을 보며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우리 가족들, 다른 분향소에 있을 유가족들은 지금 죽은 자를 보내려고 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으로 돈을 받고, 그 대가로 받은 월급으로 먹고 살고 있겠구나. 즉, 저 사람들은 살기 위해 여기서 일하는구나' 한 편으로 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병원에는 지금도 어떤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거치면서, 삶과 죽음이 생각보다 매우 가깝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죽겠지만, 그러면서도 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게 세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5. 산 자는 오늘도 바쁘고
뭐 마지막으로 할머니 매장 때 아버지께서 자식들 대표로 전상서 비슷한 내용으로 한 말씀 하실 때는 좀 뭉클했습니다. 장례식 내내 별 말씀을 안 하셨던 아버지였지만, 마지막으로 묻는 순간에는 역시 감정이 드러나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상 자체도 소위 말 하는 '호상'에, 매장지나 장례식 등의 문제도 큰 지장 없이 해결된지라 매장까지 끝난 이후에는 잘 털고 일어나신 듯 합니다. 그리고 쌓인 피로를 정리할 새도 없이 부의금 정리 문제나 삼오제나 할머니 유산 문제 등으로 아버지나 저나 바빴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주말도 지나고 일상으로 다시 끌려온 느낌입니다.
6.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한 첫 장례식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맞이한,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장례식이었습니다. 작년에도 친척들 중에 돌아가신 분이 있어서 장례식에는 갔지만 방문만 하고 제대로 과정을 지켜보거나 업무를 한 건 아니었는데, 이번은 접수로 일하면서 장례식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본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관혼상제에 대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챙겨야 할 게 뭔지 큰 그림도 잡힌 기분이었습니다.
7. 마치며
결국 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감정적으로든 업무적으로든 이전과 달라진 건 없네요.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어 이 글을 남깁니다.
대강당과 티타임, 아트홀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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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15-11-26 21:20:08
그러셨군요. 유명을 달리하신 할머님을 위하여 기도드릴께요.
그리고, 고생하신 하네카와츠바사님 및 가족 분들에게도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요.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것이 죽음이고, 그래서 그것을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예요.
죽은 자와 산 자들...그렇죠. 아직도 생각나는데, 이른 아침, 장지로 향하는 영구차 안에서 바라본 밖에는 이전과 똑같이 학생들은 학교로, 직장인들은 직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 당연하면서도 또한 새롭게 느껴졌어요. 삶과 죽음이란 공존하는 것이되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은 각자의 소명이 있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어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글을 써 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려요.
SiteOwner
2015-12-08 20:47:28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타계하신 할머님의 명복을 빌며, 또한 하네카와츠바사님과 가족 분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꽤 많이 늦게 코멘트하게 된 점에 양해를 구합니다.
뭐라고 제가 첨언할 게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그렇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현재와 같지만도 않고, 앞날은 모르고, 겪어야 할 일은 빨리 찾아오든 늦게 찾아오든 언젠가는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순환합니다. 어떤 형태로 순환하는지는 저도 아직 오래 살아본 게 아니라서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2015년이 저물어갑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신 하네카와츠바사님께 힘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