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관한 유머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영국 요리의 악명.
그렇다 보니 영국인의 식사에 대화가 중요시되는 이유가 음식 맛을 잊기 위해서라든가, 영국인은 선천적으로 미각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든가, 영국군은 형편없는 총인 SA80을 쓰고 식사조차 형편없는 영국 전투식량을 먹는 불쌍한 사람들이다든가 하는 등의 블랙유머가 꽤 많이 퍼져 있어요. 물론 영국인 중에 제이미 올리버, 고든 램지같은 유명한 요리사도 있긴 하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영국을 요리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보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도 사실이죠.
최근 영국군에서 급식 관련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고 하네요?
일단 관련기사를 보도록 할께요.
혐오스러운 이미지가 굉장히 많으므로, 각오하고 보시길 부탁드려요.
정말 사람이 먹는 음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참한 것들 투성이.
게다가, 어떤 건 아예 곰팡이까지 자라나서, 퀄리티 이전에 이미 먹어서는 안될 것도 있어요.
과연 영국 요리의 악명은 명불허전이구나 싶죠? 그런데 여기에 엄청난 반전이 있어요.
급식업무를 위탁받은 기업인 소덱소의 정체를 파헤쳐 볼께요.
일단, 소덱소(Sodexo)는 영국 기업이 아니예요. 놀랍게도 프랑스 기업!!
영국군의 급식을 프랑스 기업이 담당한다는 것도 꽤 놀랍기 그지없지만, 영국이 과거에 수도를 민영화할 때 영국기업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독일기업에 일부를 분할한 사례도 있고 철도의 종가이면서도 일본에서 고속철도용 전동차를 수입하는가 하면 전통의 해군국이면서도 우리나라의 조선소에 영국 해군의 지원함정을 조선소에 발주하기도 했으니 이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요.
그 소덱소가 어떤 기업인지를 살펴볼께요.
소덱소(Sodexo)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이시레몰리노에 본부를 둔 종업원수 42만 8천명 규모의 다국적 식품서비스 기업이예요. 초기의 회사명인 호텔서비스회사(Soci?t? d'Exploitation Hoteli?re)를 줄인 Sodexho를 사명으로 채택했다가 발음상의 난점으로 Sodexo라고 줄인 것을 오늘날의 사명으로 채택하고 있어요. 주된 사업영역은 정부, 기업, 초중고 각급학교 및 대학, 병원, 요양시설, 군대 및 교도소의 단체급식 서비스로, 세계 80개국 33,000개소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어요. 매출액은 2013년 8월 31일 기준 184억 유로로, 전 매출의 38%를 북미에서, 37%를 프랑스를 포함한 대륙 유럽에서, 8%를 영국 및 아일랜드에서, 나머지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기타지역에서 기록하고 있어요.
회사의 위상은, 미국의 경제지 포츈에서 선정한 500대 기업(2015년 기준 485위), 뉴욕 증권거래소(NYSE) 상장사, 고용규모 프랑스 2위, 시가총액 116억 유로, S&P 신용등급 BBB+ 등에서 충분히 알 수 있어요. 게다가 창업주 피에르 벨롱은 개인 순자산이 44억 달러에 달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회사가 온갖 이상한 사건의 주범이라는 사실. 그것도 세계적으로.
- 미국 및 영국의 여러 대학에서 소덱소 급식 보이콧
- 핀란드 노르데아은행의 급식사업부를 인수한 후 임금삭감을 시도했다가 보이콧으로 실패
- 미국에서 종업원에 대한 인권문제로 저항운동 촉발
- 미국의 대학간부와의 부정한 커넥션이 발각되어, 항의하는 대학생들이 체포된 사건 발생
- 미국에서 부실급식 및 종업원 인권침해 문제에 항의하던 대학생에 폭력행사
-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된 중국산 냉동딸기 사용으로, 소덱소가 급식중인 독일의 유치원 및 학교에서 식중독 피해자 12,000명 발생
- 급식서비스를 담당한 영국의 교도소 내에서 여성 재소자에게 폭력행사
- 영국에서 사용하던 냉동쇠고기 제품에서 말의 유전자가 발견된 사건 발생
- 영국군 부실급식사건 및 무성의한 대응방식으로 논란 가중
쇠고기 속에서 말의 유전자가 발견된 그 괴사건도 이 회사의 소행...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대학 위탁급식기업과 대학생들 사이의 분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또 어떤 사고가 터질지는 모르겠지만, 문명이 발전하는데 오히려 먹고 살기는 더욱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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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조커
2016-04-05 18:15:48
시대는 나날이 발전하는데 어째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도락의 즐거움은 왜 이리 질이 하락하는지 알수 없습니다.
디스토피아 영화인 찰스 헤스턴 주연의 소일렌트 그린이란 작품을 보면 멸망의 위기에 몰린 세계에 살면서 식도락의 권리마저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널판지 같은 형편없는 보급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꼴이 나는건 아닌가 저으기 염려되는 부분입니다 ㅠㅠ
마드리갈
2016-04-05 19:42:24
내구소비재는 수리해서 수명을 연장하는 식으로 구입시기를 늦출 수 있지만 식료품은 매일 먹어야 하는 것이니 그럴 수 없죠. 그러다 보니 가격을 올리거나, 가격을 동결하는 대신 양과 질 중 하나 이상을 희생하는 식으로 이득을 챙기려는 유혹이 특히 큰데다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그런 선택지를 주저없이 고르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요. 과대포장과 눈속임으로 점철된 우리나라의 부정불량 과자류는 그 악랄함이 잘 보이는 것이기도 해요.
말씀하신 영화에서 묘사되는 상황이 정말 현실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걱정되어요.
파스큘라
2016-04-05 20:52:44
어감 때문인지 소덱소 하니 고전 SF 영화 및 거기에 나오는 가공의 식품 소일렌트 그린(Soylent Green/리처드 플라이셔, 1973)이 생각나네요.
아무리 영국 요리가 맛이 없다곤 하나, 인터넷 상의 과장이 곁들여짐을 감안하면 사람이 못먹을 음식까지는 아닌데 저건 정말 영국이 어쩌고 전투 식량이 어쩌고 하기 이전에 저딴걸 사람에게 먹이려 드는 말도 안되는 행태에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
마드리갈
2016-04-05 21:45:43
파스큘라님도 조커님과 같이 그 소일렌트 그린을 언급하셨군요.
뭔가 싶어서 찾아보고 있는데, 일단 설정 자체가 극도로 암울하기 짝이 없어요. 뉴욕 인구가 4천만명이 될 정도로 인구는 폭증하고, 자원이나 일자리는 지극히 드물고, 영화 포스터 및 스틸컷을 보니 있어서 안될 미래상이라는 게 잘 보여요.
저 소덱소의 행태는 아무리 봐도 이해의 여지가 없어요. 식품기업으로서의 기본이 안 되었으니.
마시멜로군
2016-04-06 08:12:13
허허.. 저게 식품회사라니요...
저런 수많은 사고가 있는데 계약하는 단체가 있다는게 신기하네요. 싸면 끝이라는걸까요?
마드리갈
2016-04-06 14:08:06
추측하신 것처럼, 값싸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의외로 되는가 봐요.
Sodexo controversies라고 검색해 보면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사례가 많이 보여요.
2011-2012 회계연도 및 그 다음해인 2012-2013 회계연도 기준 계약현황을 찾아봤어요.
계약실적은 교도소를 제외한 다른 유형의 시설에서는 모두 감소하고 있고, 고용인원과 매출액은 늘고 있어요. 어떻게 돈벌이를 하는 건지 정말 훤히 보이죠?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소덱소가 미국의 호텔체인 메리어트와 식품서비스 사업부를 통합해 있는데, 그 메리어트호텔의 음식들은 멀쩡하다는 거예요. 시장의 성격에 따라 간교하게 대응한다는 게 바로 보여요.
안샤르베인
2016-04-06 23:04:29
요리로 유명한 나라의 기업이 저 따위 꼴이라...어떤 점에서는 중국과도 일맥상통하는 게 있군요.
그저 기가 막힐 뿐입니다.
마드리갈
2016-04-06 23:14:08
정말 충격적이죠?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면서 느꼈지만, 역시 어떤 국가의 특정한 이미지만을 믿으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요리로 유명한 프랑스에서는 식품서비스기업이 저런 양심없는 사업양상으로 논란을 낳는다든지, 높은 기술력과 장인정신으로 유명한 독일에서는 자동차기업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세계를 속인 대규모 사기극을 벌였다가 덜미를 잡혔다든지...
기업명의 프랑스어 표현에 들어가는 Exploitation은 정말 착취라는 의미로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