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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옷과 현대의 옷을 비교하면서 느끼는 것들

마드리갈, 2017-09-05 18:55:33

조회 수
279

오페라를 썩 좋아하지만은 않지만, 신화, 영웅담, 고위층의 삶 등에서 벗어나 서민생활을 묘사한 19세기 오페라, 이를테면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카르멘, 아를르의 여인 같은 것들을 시청하다 보면 느껴지는 게 있어요.
이걸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저 무대, 냄새 좀 나겠다."

그나마 남성복의 경우는 이미 18세기에서 19세기로 이행하면서 많이 간소화되었다 보니 좀 낫지만, 여성복의 경우는 부피가 크고 소재도 상당히 많이 쓰여서 오늘날에는 저런 옷을 입고 현대적인 생활을 하려면 여러모로 문제가 될법한 것들 투성이예요. 당장 계단을 오르내린다든지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든지 할 때 걸리거나 밟히거나 할 게 뻔하니까요. 게다가 서민들의 경제력은 아주 낮았고 옷 한 벌을 만드는 데에 드는 소재가 많이 들다 보니 많이 갖추기도 어렵고, 그래서 옷을 자주 갈아입는다는 개념도 정착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각종 체취가 옷에 배어서, 움직일 때마다 그게 주변 환경에 뿌려지는 것이겠죠. 그나마 북유럽, 서유럽, 동유럽 같은 곳은 땀이 덜 나겠지만, 다른 지역은, 당장 남유럽만 하더라도 여름철에 기온이 상당히 높게 올라갈테니 고역이겠죠. 특히, 식민지 개척시대에 열대지역으로 가족 전체가 이주한 유럽인의 경우에는 그 더운 지역에서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겠어요. 그렇다 보니, 옷의 부피가 적고 여러벌을 갖추기도 유지하기도 쉬운 현대가 정말 좋은 시대라는 게 느껴지고 있어요.

반면에, 현대의 옷을 근대의 사람들이 보았다면 어떻게 생각하려나요?
이걸 생각해 보니 또 흥미가 생기고 있어요.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일단 남성복의 경우에는 좀 독특하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세세한 부분에는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남성정장의 기본적인 틀은 미국 남북전쟁 시기나 영국 빅토리아 여왕 재임 당시의 것이나 지금의 것이나 기본적인 틀은 거의 동일하니까요. 다른 스타일의 남성복의 경우는 더 신기하게 볼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여성복의 경우는 아마 충격받지 않을까 싶네요.
일단 근대에는 여성이 다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음란하게 여겨졌고, 그렇다 보니 피아노의 다리에까지 양말을 신겼다는 해프닝이 있었을 정도였어요. 이 의식은 유럽 및 북미에서는 가슴골 노출에는 비교적 관대하지만 다리 노출에 부정적이고 미니스커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경우도 일부 잔존해 있어요. 그렇다 보니 다리 노출이 많은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를 보고 기겁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 의식을 엿보면 비키니가 왜 비키니로 명명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겠어요. 1946년에 미국이 실행한 비키니 환초에서의 핵실험의 충격만큼이나 상하의가 분리된 수영복이 충격적으로 여겨져서 그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여성이 바지를 입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에도 충격받을 듯해요. 19세기만 하더라도 여성의 바지착용이 급진적 취향을 나타내는 것 중의 하나였고, 지금도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바지를 착용한 여성을 드레스코드 위반으로 간주하여 입장시키지 않는 경우가 분명 있으니까요.


작년에 나왔던 애니인 타임트래블 소녀 마리&와카와 8인의 과학자들에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게 같이 생각나고 있어요.

19세기로 가서 마이클 패러데이를 만난 하야세 마리와 미즈키 와카는 여학생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험프리 데이비의 부인은 그런 둘을 보면서 주저없이 독설을 내뱉고 있어요. 특히 무릎 위로 올라온 교복치마를 보고 정숙하지 못하고 저급한 옷차림이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패러데이에 대해서도 한심한 사람들끼리 유유상종이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실제로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면 현대의 옷에 대한 근대 사람들의 평판이 그 애니에서 보이는 시각보다 덜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7 댓글

콘스탄티노스XI

2017-09-05 19:52:17

개인적으로 이시기 유럽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말을 아끼겠지만, 근대 조선인이 현대에 온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더군요.


우선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아무렇지않게 사간다는것에서 충격받을테고, 한글전용 간판을 보고도 충격을 받을거 같습니다. 말씀하신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는 물론일테고 말이죠. 무엇보다 가장 충격을 받을건 빌딩밭인 서울 그자체같지만요.

마드리갈

2017-09-05 20:13:36

그렇겠네요. 의식주는 물론이고 문화적인 것들까지 완전히 달라져 있으니 정말 여기가 조선이 있었던 땅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쓰러져 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요. 사실 개화기의 신문물조차도 엄청난 충격을 일으킨데다, 당대의 신유행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또한 만만치 않았으니까요. 20세기 전반 당대의 최신 스타일의 여성을 "서울의 눈꼴틀리는 것" 등의 수식어로 폄하했다든지, 일단 서구의 문물 하면 저속하다, 미풍양속을 해친다 등의 선입견이 가해졌다든지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예견될 거예요.

마키

2017-09-06 01:43:09

그러고보니 고종 때던가 미국 대통령과 만나기위해 미국에 방문했던 사절단이 (지금과 별 차이 없는 100여년 전) 뉴욕의 모습에 문자 그대로 문화 충격을 받고 남긴 말이 "우린 여태 어둠 속에 있었다" 였다고 하죠.


사실 조선시대까지 갈것도 없이 노원구에서 가장 번화한 노원역 사거리는 70~80년대 까지는 허허벌판 논밭이었고 지금은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한 한강 이남 쪽 시가지도 70년대 즈음까진 허허벌판이었으니 조선시대 사람들이 보면 정말 이세계를 보는 느낌일듯 싶네요.

Papillon

2017-09-05 21:46:50

과거의 인물이 현대로 타임슬립하는 작품의 클리셰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 씬이죠. 수세식 변기를 보고 깨끗한 물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우물이라고 생각해서 물을 퍼먹는다든가 손을 닦는다든가……. 특히 국내 드라마 중 성유리 씨가 백제의 공주로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처음 현대식 화장실을 쓰게 되었을 때 휴지통을 요강이라고 생각해서 그곳에 볼일을 보고 변기물로 뒷처리를 했다고 나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마드리갈

2017-09-05 23:34:53

그러고 보니, 테르마이 로마이에도 화장실 관련 에피소드가 있네요.

로마시대의 건축가 루시우스가 현대의 일본으로 타임슬립해서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문화충격을 느끼죠. 멜로디가 나오거나, 비데가 장착되어 있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로마제국이 왜 이런 것은 못하느냐고 자괴감을 갖기도 하고...역시 기존의 사고범위를 넘는 문물을 접하면 아무래도 원래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크게 당황하거나 할 것 같네요.

Lester

2017-09-06 01:58:36

옛날 사람들은 티셔츠와 청바지만 봐도 기겁을 할 것 같은데요. "대체 얼마나 돈이 없기에 가죽 하나만 걸친 것이냐!" 하고...

마드리갈

2017-09-06 12:39:06

근대만 하더라도 직조기술이 수작업을 기계로 바로 옮긴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니 당시 기술로 제작한 직물은 보온성에서 오늘날의 것만큼 좋지는 않았죠. 그래서 여러 겹으로 겹쳐 입는 게 당연했고, 옷의 부피가 커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 시각에서 본다면 확실히 오늘날의 티셔츠와 청바지를 극빈자의 옷같이 여길 수도 있겠어요. 또한 그러한 의식이 반영된 용어가 프랑스 혁명 관련 용어인 상퀼로트(sans-culotte). 상퀼로트라는 말은 당시 귀족 남성들이 즐겨 입었던 퀼로트라고 불리는 다리에 밀착하는 반바지를 입지 않고 작업복 긴 바지만 입었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하층계급을 뜻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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