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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묘한 은행사정

마드리갈, 2018-12-05 15:00:42

조회 수
206

일본의 은행 관련을 둘러보면 뭔가 기묘한 것들이 보이기 마련인데, 어떻게 얼마나 무엇이 기묘한지 간단히 정리해 봤어요.

주요 키워드는 국립은행, 중국은행, 도시은행, 인터넷은행 등.


우선 국립은행부터.

한자표기는 国立銀行. 그러니 국가가 설립한 국영은행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인데, 이게 일본 근대사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여요. 일본 근대사의 국립은행은 1872년에 제정된 국립은행조례(国立銀行条例)에 근거하여 설립된 은행이라는 의미. 그래서 주의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

이렇게 국립은행조례에 근거해서 1873년부터 은행이 설립되었는데 이름이 수로 되어 있어요. 제1은행, 제2은행, 제3은행 등등...

그리고, 이렇게 당시의 국립은행 명명방식을 계속 쓰는 은행도 있어요. 제4은행, 16은행, 18은행, 77은행, 105은행, 114은행이 그 예로, 이런 은행들은 19세기에 지어진 이름을 계속 유지하는 유서깊은 은행이라는 것이 보이죠.

대마도, 나가사키시, 사세보시 등 나가사키현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18은행 간판이 잘 보이는데 이것은 1877년에 개업하고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 본점이 소재한 지방은행. 한국인 한정으로 이 은행의 간판을 보면 은행 이름이 18이라고 웃기도 하고 그러해요.

여기에는 예외가 하나 있어요. 현존하는 82은행은 82번째로 설립된 국립은행(1897년에 제3은행으로 통합)이 아니라 19은행과 63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신설은행. 19+63=82 등식에서 존속법인의 이름이 유래하고 있어요.


그 다음은 중국은행.

한자표기가 中国銀行이지만 이 은행은 중국의 은행이 아니라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에 본점이 소재한 일본의 지방은행으로 영어명칭 또한 The Chugoku Bank, Ltd.로 되어 있어요. 이름의 유래는 오카야마, 히로시마, 톳토리, 시마네, 야마구치의 5개현을 부르는 광역권의 명칭인 츄고쿠지방(中国地方). 이 은행의 이름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혼란스럽다 보니 도쿄, 오사카 및 고베에 소재한 지점에서는 이것을 중국의 은행인 중국은행(영어명 Bank of China)과 혼동을 막기 위해서 "본점 오카야마시(本店岡山市)" 라는 표기를 덧붙이고 있어요.

한자표기가 中国銀行인 은행은 전세계에 3개 회사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중국의 중국은행이고, 이것의 계열사이긴 한데 법인은 별도로 존재하는 홍콩의 중국은행, 그리고 중국과도 홍콩과도 전혀 관계없는 오카야마의 중국은행이 있어요.


일본의 광역권명 중에 왜 하필이면 중국과 혼동되는 츄고쿠가 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붙일께요.

일본사에서는 율령국의 지역구분을 킨고쿠(近国)/츄고쿠(中国)/엔고쿠(遠国)의 3단계로 나누는 방식이 있었어요. 도읍에서 가장 가까우면 킨고쿠, 가장 멀면 엔고쿠, 킨고쿠와 엔고쿠 사이에 있으면 츄고쿠. 이것이 오늘날까지 남은 것이죠. 단 이 관행은 혼선을 야기할 수도 있다 보니 여행업계에서는 산인산요지방(山陰山陽地方)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어요.


도시은행이라는 기묘한 어휘도 있어요.

얼핏 들으면 이것은 각 도시에 존재하는 소규모 은행인가 싶은데 사실은 전국단위로 영업하는 메이저 은행을 뜻해요. 한국으로 치면 농협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정도.

일본의 도시은행은 모두 5개로, 미즈호은행, 미츠비시UFJ은행, 미츠이스미토모은행, 리소나은행 및 사이타마 리소나은행. 여기에서 사이타마 리소나은행은 원래 아사히은행이었다가 리소나홀딩스의 자회사로 귀속되었다 보니, 일본의 메이저 은행은 4계통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또한,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엄격한 은산분리원칙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이런 회사들이 은행도 소유하는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것들도 꽤 있어요. 사실 전후 구 재벌이 해체되고 나서 새롭게 생겨난 일본의 기업집단형태인 케이레츠(系列, 계열)가 은행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대기업이 은행을 구심점으로 삼는 건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이제부터 열거하는 은행은 그 형태가 아닌, 원래 다른 업종에서 활동하던 기업이 은행업으로 사업을 확장한 새로운 형태의 은행인 인터넷은행.

인터넷 관련업체가 세운 것으로는 야후재팬과 미츠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이 세운 재팬넷은행, 라쿠텐이 세운 라쿠텐은행이 있어요. 또한 상당히 신기한 것이 소니은행. 전자제품 메이커인 그 소니(SONY)가 세운 은행이예요.

유통업체가 세운 것으로는 세븐은행, 이온은행, 로손은행이 있어요. 이름에서 보듯이 세븐은행은 세븐일레븐 편의점체인을 운영하는 세븐아이홀딩스의, 이온은행은 종합쇼핑몰체인 이온(AEON),  로손은행은 로손 편의점체인의 은행.

이러한 신형태의 은행들은 원칙적으로는 본사 이외에는 물리적인 지점이 없고 전화, 인터넷 및 ATM에 기반하고 있어요. 단 이온은행의 경우 이온 계열의 주요 점포 내에 유인창구를 개설해 둔 경우가 있어요.



이렇게 일본의 기묘한 은행사정 몇 가지를 알아봤어요.

인접해 있는 나라도 이렇게 사정이 다른데, 세계 전체로 시각을 넓히면 또 얼마나 다른 문물이 있을지 여러모로 궁금해지고 있어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대왕고래

2018-12-08 22:44:32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중국은행은 중국의 은행이 아니라 일본의 은행이고... 보통 이렇게 겹치는 이름은 가급적 피하거나 대체 어휘를 쓰지 않나 싶은데, 그대로 쓰는 게 꽤 대범한 거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인터넷 업체가 은행을 세우기도 하고, 꽤 신기해요.

마드리갈

2018-12-09 16:35:24

일본의 기업 중에 예의 "중국" 이 들어가는 경우는 그 오카야마의 중국은행에만 있지 않아요. 중국신문이라는 지방신문사도 있어요. 그래서 시모노세키 시내를 다니다 보면 처음에는 "여기에 중국의 은행과 신문사가 진출해 있나?" 하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이기도 하죠. 게다가 시모노세키 시내에는 자매결연을 맺은 부산의 이름을 따서 지은 부산거리도 있다 보니 시모노세키에는 한국도 중국도 있구나 하는 착각이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죠. 아무래도 츄고쿠 지방이 일본 내에서 발전이 더디다 보니 과거의 관행을 잘 바꾸지 않는 것에 원인이 있지 않나 싶어요.


우리나라는 과거 금산분리 원칙이 있었죠. 즉 재벌은 금융기관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이건 대기업이 증권사를 소유하면서부터 완화되어 오늘날은 은산분리라고 하죠. 게다가 은산분리 완화정책은 여당이 아주 거세게 반발하는데에 반해 일본의 경우는 이미 2000년대의 시작부터 일찍부터 인터넷은행이 시작했어요. 배경 등의 제반조건이 다르니 그 결과도 이렇게 판이하게 달라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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