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여성에 대해선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캐릭터, 즉 가상인물로서의 여성은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지만요.
현재 연재분에 나오는 키아라 토는 그럭저럭 잘 만들...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여캐들 중에선 말이죠. 예전에는 팬픽을 주로 썼다 보니 여캐도 그냥 원작에 있는 걸 가져다 쓰면 됐고, 설령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어도 '이 상황에서 이 정도 설명하고 빠지면 되는 수준'으로만 만들었을 뿐 상황을 주도적으로 휘어잡는 역할은 만든 적이 없었죠.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으니까요. 그나마 의뢰인으로서의 여캐가 있긴 했지만 특이한 성격이나 개성을 가지고 있을 뿐 역시 일거리 주고 퇴장하는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 여러가지 만화와 게임을 접하다 보니 독특한 여캐들이 많더군요. 만화 쪽에서는 "소믈리에르"나 "ARIA"와 "암살교실" 등이 있고 게임 쪽은 "오버워치"의 덕을 많이 봤습니다. 전반적으로 만화는 시각적인 요소에 의존해서인지 아무리 여캐가 많이 나와도 외모와 성격만 다를 뿐 행적이나 목표가 비슷비슷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케이온이니 뭐니 하고 여캐가 득실대는 작품은 분명 다 다른 캐릭터이긴 한데, 집단 활동을 해서 그런지 딱 부러지게 확연하게 튀는 건 없더군요. '다 좋은데 특히 얘가 더 좋아' 정도? (물론 해당 계열에 대한 제 무식의 소치일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남캐 여캐 할 것 없이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서 '대립'하는 게임 쪽을 참고하니 그나마 도움이 더 되더군요. 목적 의식이 확고해지니까 그 개성이 살아나는 게 보였거든요. 물론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아서 의미없다는 말이 많지만.
어쨌든 현재 여캐를 만들 때는 이렇게 기존의 여캐를 참고하거나 몇몇 요소만 바꿔서 넣어버리는(ex. 몸 쓰는 일 없이 재계에서 활약하는 '라라 크로프트') 식으로 하고 있는데, 외국에 찾아보니 '주연급 여캐 쓰는 법'이 있더군요. 사실 성별을 떠나 모든 주연급 캐릭터에 해당되는 내용이니, 나중에 기록을 위해서 남겨두고 다른 분들과도 공유할 겸 짧게 번역해 봅니다.
제1부 : 주연급 여캐 구상하기
(1) 당신이 아는 여성을 롤모델로 삼아라.
?- 어머니나 선생님, 고용주, 여자친구 등 현실의 여성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2) 여성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활용하라.
?- 여성이라면 본인의 경험을, 남성이라면 만났던 여성에 대한 감상을 풀어내면 된다.
(3) 캐릭터의 뒷배경을 설정하라.
?- 캐릭터가 매력적이도록 특이한 성격이나 습관, 취미, 관심사, 소신 등을 제공한다.
(4) 주연급 여캐의 예시를 조사하라.
?-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
?-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
?-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망고 스트리트"
?-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 다이애나 가발돈의 "아웃랜더" 시리즈
제2부 : 주연급 여캐 만들기
(1) 캐릭터의 일대기를 만들어라.
?- 캐릭터가 스토리를 따라 고난을 딛고 깨달음을 얻어 성장하게 하라. (단, 장르(ex. 비극)에 따라선 성장시키지 마라.)
(2) 캐릭터에게 역량을 주어라.
?- 캐릭터가 힘을 얻어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 구체화된다. 한낱 엑스트라나 희생양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스토리 속에 능동적으로 존재하게 만들어라.
(3) 캐릭터에게 결점과 약점을 주어라.
?- 완벽한 여성은 단조롭게 보일 수가 있다. 여캐가 스토리에서 모종의 문제에 시달려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4) 여성에 대한 클리셰는 피해라.
?- "예쁘다", "작다", "가슴이 크다", "쌔끈하다" 등의 물리적 표현은 여캐를 단조롭고 1차원적으로 만든다. 여캐를 독특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라.
(5) 가능하다면 주연급 여캐는 1명 이상 추가하라.
?- 주연급 여캐들이 서로 소통하게 하면 각 여캐의 특징이 두드러지고, 독자들에게도 성차별 없이 여러 여성성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6) 모든 주연급 캐릭터에게 동일한 비중을 부여하라.
?-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독자의 기억에 남도록,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계를 부여하지 말고 독립적이도록 모든 역량을 부여하라.
제3부 : 주연급 여캐 다듬기
(1) 여성들에게 여캐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라.
?- 적극적인 평가를 받아들이고, 다른 의견들은 어떤지 수용하라.
(2) 비평에 따라 캐릭터를 수정하라.
?- 캐릭터에 대한 평가를 모두 적은 후 캐릭터에게 하나씩 적용해가면서 역량과 성격, 스토리상의 묘사 등을 보완하라.
(3) 캐릭터가 스토리의 세세한 부분에 어떻게 녹아들게 할지 고려하라.
?- 캐릭터를 스토리 밖에 두고 캐릭터가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지 알아보거나, 다른 캐릭터와의 소통을 보고 다른 캐릭터만큼 구체적인지를 확인하라.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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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SiteOwner
2019-06-19 19:24:44
우선, 좋은 자료의 소개에 감사드립니다.
창작을 즐기는 다른 분들에게도 좋은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의외로 성별은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 의외로 우선순위가 낮을 수 있습니다. 주연급 캐릭터가 아닌 경우에는 특히 그러합니다. 동생이 쓴 글인 이름에서 성별이 짐작되기 힘든 캐릭터들 3에 언급되기도 했고, 이전에 Lesters님께서 쓰셨던 글에 제가 코멘트로 언급한 노자키 마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원안에서는 여자였다가 주변 인물과의 상성 문제로 그렇게 조정되었고, 특히 노자키 마유가 남자로 변경되는 데에 원인이 된 미코시바 미코토는 극중극 사랑하자에서 마미코라는 여자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연급 캐릭터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로 성별이 크게 문제없을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암살교실에 그런 점이 있습니다. 주인공 시오타 나기사는 여학생처럼 보이는 남학생으로, 어머니가 자신의 로망을 투영하여 여자아이로 기르려 했기에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만일 시오타 나기사를 남학생처럼 보이는 여학생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사실 주제의식 자체가 달라질 일은 없습니다. 연출에서라면 확실히 남자라는 게 드러난 수영장 이벤트라든지 남쪽 섬 리조트에서의 여장이 그냥 원래대로 여자옷을 입어서 여학생들이 나기사의 미모에 감탄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바뀔 것이고, 아카바네 카르마가 성전환수술 어쩌고 하는 농담은 자연히 없어지겠지요. 학교 축제에서 재회하게 된 그 맛집 블로거 소년과의 에피소드라든지 하는 것도 조정이 필요하겠지만 암살교실의 주제의식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연 캐릭터의 성별이 바뀔 때 작품의 근간이 흔들리는지 그렇지 않고 소소한 규모의 조정으로 끝날지를 관찰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Lester
2019-06-20 10:55:54
해당 글을 떠나서 성별은 말씀하셨듯이 일반적으로 주제의식 표현보다는 상업적 측면, 즉 독자를 포함한 이용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하느냐의 문제가 더욱 강하죠.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양산 중(?)이던 미소녀 아이돌 or 음악부 류의 애니는 겨냥한 고객층이 명확(??)하고, 언급하신 시오타 나기사도 주제의식과는 별개로 캐릭터 구체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요. 다만 소극적이고 여성틱한 캐릭터를 근육이 없다 뿐이지 능동적인 인물로 만드는 묘사를 통해 '주체적으로 자라라'라는 주제를 강조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여성은 약하다는 스테레오타입의 발로인지는 좀 더 토론이 필요하겠지만요. 어쨌든 성별에 따라 주제의식이 '변화'한다기보단 '강화'된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스포츠물을 비롯한 소년만화에서 캐릭터가 극화풍이냐 만화풍이냐에 따라 그 설득력(?)이 달라지듯이, 같은 주제라도 표현하기에 따라 공감과 인기가 달라지니까요.
사실 제가 번역한 글의 원문은 사실 '매력적인 여캐 제작법'이라고는 하지만 '수동적 및 피상적인 여캐에서 탈피하는 법'에 가깝습니다. 일종의 문학적 페미니즘이라고 해야 하나? '여성 캐릭터를 통한 주제의식의 표현 및 실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성별이 주제의식에 영향을 끼친다기보단 반대로 여성이라서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한 제기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그나저나, 위의 이야기는 만화나 애니 및 게임 등 시각적 요소가 명확한 작품에나 해당되지, 소설 같은 활자 매체에선 큰 영향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별도로 삽화를 싣지 않는 이상 모든 정보를 텍스트에서 얻을 수밖에 없는데, 외모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이상 독자마다 연상하는 이미지가 다를 테니까요. 그래서 소설은 직접적인 묘사보다 유추할 수 있는 분위기 연출이나 대사 등에 더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정리하자면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띠고 작품을 만들지 않는 이상, 성별이 작품의 주제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제가 얘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각 캐릭터의 입장이었을 뿐입니다.
마드리갈
2019-06-20 12:29:16
여러모로 참고하기 좋은 자료를 소개해 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려요.
캐릭터설정에 대해서는 경험이 일천한데다 현재 추진중인 캐릭터설정 프로젝트 또한 폴리포닉 월드의 하위프로젝트로서 진행되는 것이니까 깊이는 말할 수 없겠지만,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건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역시 목적에 맞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전제이고, 이것을 무시하고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죠. 로마시대의 검투사들의 삶과 반란을 묘사한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 원더우먼이 등장할 수 없고, 영국의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여성캐릭터들이 현대적인 커리어우먼이 아니라고 이 점을 비난할 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일단은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겠어요.
Lester
2019-06-20 17:20:29
그렇죠. 결국엔 극중에서의 목적이 중요할 뿐 사실 이름부터 외모에 이르기까진 전부 껍데기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막상 이것저것 의견을 구해두고 급작스럽게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지금까지 SiteOwner님과 마드리갈님에게서 접수한 의견은 모두 일단 정리해 두고 극중 전개에 맞는 것들만 가져다 사용할 생각입니다. 제가 캐릭터 형성법이나 여성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제공해주신 정보들을 취합해 보니 '제 기준으로서는' 굉장히 난해하고 복잡한 부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다만 딱 하나, '이상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만들지 않겠다'는 것만큼은 약속드리겠습니다.
Papillon
2019-06-24 13:10:11
음, 재미있는 글이로군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참고하기 좋은 자료라고 보기에는 힘든 것 같습니다. 몇몇 조언은 사실 페미니즘을 베이스로 한 비평론적 관점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법에 가깝고, 다른 것들은 여성 캐릭터의 문제가 아니라 주역급 캐릭터를 만들 때 기본으로 해야하는 일들입니다.
첫번째 구상 부분의 경우, 사실 여성을 빼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1. 당신이 아는 인물을 롤모델로 삼아라: 이건 기초적인 캐릭터 구상법입니다.
2. 사람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활용하라: 좀 더 그럴듯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기초 방법론입니다.
3. 캐릭터의 뒷배경을 설정하라: 캐릭터의 과거는 캐릭터의 현재를 설명하기 위한 필수 준비물입니다.
4.주연 캐릭터의 예시를 조사하라: 타 작품을 통한 공부는 작품 설정의 기초입니다.
여성이 빠진 상태에서도 틀린 말이 아닌거죠. 그렇기에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상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이긴 하지만, 딱히 여성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특화된 방법은 아닙니다.
두번째 만들기 부분 역시 마찬가지.
1. 캐릭터의 일대기를 만들어라: 이전 파트의 3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이기도 하고요.
2. 캐릭터에게 역량을 주어라: 애초에 캐릭터에게 사건을 해결할 역량이 없다면 이야기는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3. 캐릭터에게 결점과 약점을 주어라: 소위 먼치킨 캐릭터가 인기 없는 이유와 같습니다.
4. 인물 묘사에 클리셰적 표현은 피하라: 인물 묘사에 클리셰적 표현을 쓰는 건 애초에 글 자체를 단조롭게 합니다.
5. 가능하면 주연은 1명 이상 설정하라: 라이벌이나 아치 네미시스를 설정하는 이유입니다.
6. 모든 주연에게 동일한 비중을 부여하라: 이걸 못하면 말이 다중 주연이지 원맨쇼가 됩니다.
세번째 다듬기 부분은
3. 캐릭터가 스토리의 세세한 부분에 어떻게 녹아들게 할지 고려하라: 애초에 스토리 자체가 캐릭터의 삶인만큼 캐릭터가 스토리에 녹아들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습니다.
다듬기의 1번의 경우, 사실 미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해당 작품이 누가 읽을 작품일지가 빠져있거든요. 예상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 여성들에게 여성 캐릭터의 평가를 맡기는 건 일종의 삽질일 수 있습니다. 차라리 그 장르의 팬들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2번의 경우에는 남녀 문제 이전에 조금 위험한 방법입니다. 비평을 수용하는 것은 좋지만 저기에 쓰여있는 것처럼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간 오히려 캐릭터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수용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용할 건 수용하고 버릴 건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Lester
2019-06-24 16:29:21
그래서 저도 댓글에 '이제와서 보니 여성 인권 신장 쪽에 치중된 것 같다'고 썼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에 말씀하신 대로 여성 캐릭터를 독자가 아닌 (아마도) 여성 인권 옹호론자에게 맡기라는 대책없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겠죠. 창작물이 허구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왜곡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