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서 이어진다고 보겠습니다.)
이전 글에선 도시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대해서 얘기했다면, 이번에는 도시에서의 생활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기는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생활' 그 자체를 주제로 삼을 만큼 도시의 이곳저곳을 누비거나 활약한 건 아닙니다;;; 이전 글이 '밖에서 본 도시'였다면 이번에는 '안에서 본 도시' 정도로 치면 되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도시에서 살기는 했는데 도시에서 살았다기엔 좀 애매합니다. 도시에는 엄청 잘 사는 동네, 그럭저럭 사는 동네, 사람 많은 동네, 시장 동네, 못 사는 동네 등등 여러가지 구역이 있으니까요. 제가 살았던 동네는 못 사는 동네였던 것 같습니다. 4~5층 짜리 아파트도 살아보고, 남의 집 옆에서도 살아봤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집돌이라 잘 사는 건지 못 사는 건지 잘 체감은 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일을 하러 나가셔서 유일한 친구가 책하고 NES(패미컴)이었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그림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보다가 지금에는 엄청 흥미롭게 봤던 책 중에 하나가 라트(Mohammad Nor Khalid)가 글 및 그림을 담당한 "도시의 개구쟁이(원제 Town Boy)"가 있는데, 유년시절이 저랑 적잖이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작중 배경이 말레이시아라 굉장히 못 사는 동네처럼 그려지긴 했지만 그냥 도시에 있는 게 뭐든지 신기했네요. 초등학교 때 애들이랑 같이 목욕탕도 가 보고(정작 그 이후로는 친구와 함께 뭘 하러 가 본 적이 없단 말이죠), 함께 땡땡이도 쳐보고, 이사할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사람도 새롭게 느껴지고... 아마 #1에서 얘기했던 도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이런 부분도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었던 게 바로 게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동네 TV만큼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다니는 비디오 대여점 앞에 있는 오락기부터 시작해서, 상술했듯이 집에서의 친구였던 패미컴을 거쳐, 초등학교 때 오락실과 PC방의 세대교체(?)를 보기도 했으니까요. 그만큼 게임이 대중화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술의 발전을 통해 도시도 바뀌었다는 뜻이니까요. 뭐 저는 유행을 특별히 타지 않는 사람이라 계속 오락실 위주로 다녔지만요.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동네 오락실을 알아보고 다녀서인지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보다 골목길에 더 애착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 옆에 있는 오락실까지 걸어가다 보면 막 아저씨 이발소나 농약가게&농기계점 등이 보이고 그랬던 것 같네요. 번화가나 큰길 주변이 아닌 건물들 뒤편이라 그런지,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엄청 한적했던 것 같습니다. 저녁 즈음이 되면 어두컴컴하고 삥 뜯는 불량한 사람들이 나오는 거야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래도 추억 때문에 미화가 되어서 그런지 그런 분위기가 더 좋더라고요. 막 홍콩 영화 같은 데에서 본 번잡한 길거리가 생각나기도 하고, 잘은 모르겠지만 환경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많이 흘러 오프라인/온라인을 통해 지식들을 습득하면서 주제넘게 소설(정확히는 팬픽)도 쓰고 그러다 보니, 이 어렸을 때의 추억이 알게 모르게 녹아들어 오더군요. 보통 팬픽을 쓰게 되면 하나부터 열까지 원작에 의존하기 마련인데, 전 특이하게도 배경만큼은 제가 만들어낸 가상도시를 사용했습니다. 구역 이름부터 배치, 기타 기본적인 설정이 전부 말도 되지 않았지만, '나만의 세상'을 만든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둔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그러니까 90년대)의 고전게임을 토대로 해서 그런지 분위기도 90년대 삘이 나고, 지금 쓰는 것보다는 훨씬 소박했네요.
지금 쓰는 소설에서 '주인공 일행을 통해 각 동네를 부흥시킨다'는 설정은 이러한 과거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구상할 무렵엔 그냥 막연하게 몇몇 게임의 요소에 의존하느라 그런 줄 알았는데, 문득 과거를 돌이켜보니 연결되는 부분이 조금 있더라고요. 뭐 우리나라와 미국의 차이가 있으니 일대일 대응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동네에 대한 분위기 묘사 같은 것은 그럭저럭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하느라 얘기를 중언부언 쓰기는 했습니다만, 과거에 제가 마냥 의미없이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남들보다 빼어난 일을 하고 살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과거를 토대로 지금의 제가 있으니 그 시절의 마음과 생각을 잘 풀어내면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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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의 추억과 지금 감상을 합쳐서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게, 새벽에 자가용이든 자전거든 타고 아무도 없는 거리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 겁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새벽이 되면 풍경이 푸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예시), 제가 사는 곳의 분위기를 담아보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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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필력이 굉장히 사그라든 느낌이 드네요. 이런 간단한 글조차 두서가 없으니...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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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댓글
SiteOwner
2019-10-17 20:39:56
도시 관련의 두번째 이야기이군요. 바로 잘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도시 생활을 한 게 대학생 때부터였습니다. 중세 유럽의 격언에서처럼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었는데다 크고 작은 일이 많았습니다만, 일단 별천지였다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대학생이 되기 이전에 살던 때가 그립지도 싫지도 않고, 생활공간은 되도록이면 예측가능하고 교통접근성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터라 Lester님처럼 느끼는 그런 골목길에의 애착은 별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생각을 소설에 반영하고 계시는군요. 그래서 공간배경의 묘사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나 봅니다. 이해했습니다.
Lester
2019-10-18 14:24:40
뭐 도시에 사는 것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골목길에 대해선 그저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지 접근성 등의 조건이 좋다고 한 적도 없고요.
그런데 제가 뭐 특별히 공간배경에 대해선 공을 들이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인상적으로 느끼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 부분을 더 생각해보고 개선해보고 싶네요.
SiteOwner
2019-10-24 19:19:14
그러면 구체적인 사례가 어떤지 좀 정리해서 별도의 코멘트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내로 완성은 힘들 것 같고, 내일과 주말을 이용해서 감상평을 보다 자세하게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소 번거로우시더라도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마드리갈
2019-10-18 23:31:13
창작물에는 아무래도 자신의 경험이 알게 모르게 녹아들기 마련이죠. 경험과의 정반대의 것을 쓴다는 것도, 결국은 그렇게 표현된 것은 경험의 안티테제이기에 경험과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무래도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적어도 제 관점에서는 그러해요.
레스터님께서 소설의 작중 배경이 되는 도시의 골목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셨다든지, 공작창에 쓴 제 글인 폴리포닉 월드의 빈민 및 슬럼가 문제에 보충의견을 제시하신 것도 이렇게 이해가 되고 있어요.
소개해 주신 미명의 시가지 사진, 정말 신비롭게 보여요.
Lester
2019-10-20 05:29:04
그래도 솔직히 가난한 게 좋으냐고 물으면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거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곧 자유를 뜻하니... 그래서 돈과 상관없이 사람의 중요성을 중시하는 작품에 끌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가 막연하게 사람만 중시하면 너무 이상적이거나 순진해 보여서 자금을 모아 직접적으로 투자하는 장면을 넣었는데, 오히려 모종의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해서 투자하는 게 더 비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무슨 과거 전쟁에서 초콜릿 뿌리고 다니는 미군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제 작품에서는 그렇게 성의없이 돈을 뿌리고 다니는 건 절대 없을 겁니다.
한편 너무 골목에만 연연하다 보면 대도시를 만든 의미가 없으니 조절을 잘 해야겠네요. 예전엔 게임을 따라가다 보니 에피소드의 배경이 될 만한 건물, 즉 규모가 어느 정도 있거나 유명한 건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서 골목으로 방향을 돌린 건데 이것도 집착하는 건 아닌가 싶고... 뭐가 됐든, 에피소드의 가장 중심이 되는 캐릭터부터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아마 다음엔 에피소드 관련 캐릭터가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새벽에 카메라 들고 나가서 찍어보고 싶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이 근처엔 저런 장면이 나올 만한 공간이 없네요. 푸르스름한 분위기도 잘 안 나고...
SiteOwner
2019-10-29 21:00:20
죄송합니다. 지난 주말에 정리결과를 올려드린다는 것을 일신상의 사정으로 아직 완료하지 못했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좀 더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달 내로 완료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빠르면 대략 11월 4일 정도까지는 추가로 시간이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양해의 말씀을 구하겠습니다.
Lester
2019-10-30 13:37:27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심적으로 안 좋은 일이 많다 보니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다만 댓글은 알림이 오지 않다 보니 놓칠 뻔했네요.
SiteOwner
2019-10-30 19:45:28
양해해 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되도록 신속하게 분석해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SiteOwner
2019-11-04 23:45:15
우선, Another Day at the Office의 세 회차를 읽으면 이런 게 느껴집니다.
망중한 속에서 문득 시선을 주변의 작은 것으로 돌렸을 때에 느끼는 미묘한 감정과, 그 미묘한 감정이 여러 형태로 다른 사람들에게 발산되는 패턴이, 사건이 진행되는 공간이 일단 크게는 정리되었지만 나머지는 현지 주민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칠고 방임적인 분위기 연출에 상당히 강하게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일단 이 정도로 답변을 드려 봤습니다.
좀 더 필요하신 게 있다면 다음의 답변은 또 방향을 조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Lester
2019-11-06 16:56:49
그렇군요. 제가 기분파라서 소설을 쓸 때마다 주제의식이 적잖이 바뀌는 기색이 있습니다만, 적어도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우리네 세상]이나 [그렇기에 필요악적인 불법적 존재] 등의 소재는 반드시 넣고 있습니다. 각각 일상물과 범죄물의 핵심인데 이 두 가지 사이를 때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형국이네요.
분명 주인공 일행이 없을 경우 곤란한 사건사고가 발생하거나, 주인공 일행과 상관없이 (약간 현실을 모방하다 보니) 근본적으로 빈부격차나 차별 같은 게 적잖이 존재하거나... 이처럼 다소 막장스런 세계관인 것은 인정합니다. 다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사소하거나 기묘한 일들을 부풀려 에피소드로 삼거나, 주인공 일행을 통해 (현실을 모방한) 힘들고 팍팍한 일상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포인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저는 세계관의 위험 수준보다는 생활양식이나 문화 등에 초점을 맞춰서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소설이나 설정집에서 표현하진 않았지만 작중에선 미국 내에서 다문화가 매우 뿌리깊고 활발한 도시들 중 하나인 만큼, 미국에서는 타국 문화(아무래도 한중일 중심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가 어떻게 펼쳐지고 흘러갈지를 표현해보고 싶네요. 중간중간에 다른 작품의 패러디도 들어갈텐데, 그것도 원작의 스토리나 캐릭터성보다는 세계관의 적용에 초점을 맞춰볼 생각입니다. (가령 스타크래프트를 패러디한다면 프로토스와 저그라는 외계종족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