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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두 나라에서 발생한 강력범죄 2건을 보니까 뭔가 부조리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네요.
하나는 일본에서 발생한 살인미수사건.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둘 다 미성년자가 벌인 사건인데, 결과도 그리고 법적 판단의 여지도 다르게 되었어요. 그런데 미수사건의 경우는 재판을 거쳐 처벌이 내려질 것 같고, 기수사건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
우선, 일본에서 발생한 살인미수사건을 볼께요.
12월 26일 미명 코치현(高知県)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여고생이 아버지를 식칼로 찌른 사건이예요. 술을 마신 아버지가 언니와 말다툼을 하던 도중, 그 언니의 여동생인 그 여고생이 아버지의 등을 식칼로 찔러 상해를 입혔다네요. 단, 피해자인 아버지는 생명에 지장이 없어서 살인미수에 그쳤어요. 게다가 그 여고생이 체포되어 범행을 인정하였고 최소한 미필적인 고의는 성립하였으니까 없던 일이 되지는 못해요. 즉 어떻게든 사법판단의 대상이 될 일.
이번에는, 한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같은 날 경기도내에서 어느 여자초등학생이 친구인 여자초등학생을 흉기로 찔렀어요. 그렇게 흉기에 피습당한 피해자는 병원으로 후송중에 사망. 그러나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연령인데다 현행 형법에서는 14세 미만의 자의 행위를 벌하지 않는다고 제9조에서 규정되어 있다 보니 처벌은 불가능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보호처분이 전부.
제 생각이 시대착오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사건을 대조해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나 결과의 경중이 아니라 누구의 행위인가일 따름.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나든간에 이제는 행위자가 누구인지부터 봐야 하는 건가 싶네요. 가벼운 행위라도 그 행위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무거운 책임을 지고, 무거운 행위라도 가벼운 책임으로 끝나거나 아예 무책임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이 범죄정상론을 말했죠. 범죄는 사회에 늘 있는 거라고.
그렇다면 언제든지 악의적인 누군가의 행위로 이 삶이 갑자기 끝장나 버리는 것도 자신에게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고 자신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반면에 누군가는 특정 속성을 가진 그 자체만으로 그 행위에 대한 책임 자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결론도 같이 나네요. 그래서 더욱 두려워지고 있어요. 이렇게, 문명이 발전한다지만 범죄피해가 신 등의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한 징벌이나 운명의 소산이라고 여겨지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인류의 사고방식이 퇴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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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20-01-07 21:38:11
애가 사람을 찌르든 어른이 사람을 찌르든, 사람을 찌른 건 사람을 찌른 건데 말이죠.
이런 거에 대해서는 좀, 현재의 판결방식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마드리갈
2020-01-07 21:56:49
저 두 사건을 보면서, 근현대의 형사정책의 근간에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종교가 사회전반을 지배하던 중세시대가 끝난 이후, 형사정책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 행위자 등 여러 영역을 탐구하기에 이르렀는데, 결국 쟁점은 "인간" 으로 귀결되는 거였죠. 즉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서 범죄가 나오고, 범죄가 실행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이미 이루어진 범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건지에 대한, 그리고 그 범죄가 펼쳐지는 무대가 인간의 활동으로 구성된 사회인 만큼 인간에 대한 다방면의 탐구가 필요한 것이 바로 형사정책.
그렇다면, 근현대의 형사정책에서 의제해 온 행위자 중심주의에 대해서도 이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어요. 더욱 중한 결과에 경미한 책임이 부과되거나 면책되어 부조리한 상황이 법령으로 정당화되는 역설을 막기 위해서라도. 판결뿐만 아니라 형사정책 전반에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게오르크 옐리네크(Georg Jellinek, 1851-1911)로 대표되는 법실증주의가 그 자체로는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었지만 불순한 입법목적의 정당화에 무력했다든지,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의 결단주의적 헌법관이 합법적으로 야만독재를 탄생시키고 정당화하는 부작용으로 사장된 것이라든지 한 전례도 있다 보니, 행위자 중심주의적 형사정책관도 언제까지나 금과옥조일 수만은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