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에쿠스
미쓰비시 프라우디아
미쓰비시 자동차는 지금의 현대자동차를 만드는 데 기반이 된 회사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깊은 사연이 있긴 하지만 현대는 차를 만는데 필요한 기술이 부족했고 미쓰비시는 토요타나 혼다 등의 자국 내 타 회사들에 밀려 자국 내 입지를 다지기에 자금이 부족하여 60년대에 출시하여 근 20년간 변변한 풀모델 체인지도 못할 정도의 상황에서 서로의 협력 하에 다양한 차들이 나오게 됬었지요. 그 예로 현대 스텔라 소나타에서 현대 쏘나타로 오는데 미쓰비시 갤랑의 영향이 있었고 갤로퍼나 싼타모는 각각 파제로와 샤리온을 재조립하여 뱃지 엔지니어링을 한 수준이었단 평도 있었으니까요.
오늘 소개할 에쿠스와 프라우디아 역시 이런 현대와 미쓰비시의 오랜 인연으로 탄생한 차량이면서 두 회사의 운명을 정반대로 갈라놓게 되는 차량이기도 합니다.
에쿠스(프라우디아)는 그랜저(데보네어)의 후속 차량으로서 한일 현대-미쓰비시간의 공동 개발된 고급 대형 세단으로 엔진은 미쓰비시의 시그마 엔진과 오메가 엔진을 얹은 차량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이 차가 개발되고 나서 한국에서는 1999년에 일반 차량과 좀 더 긴 리무진 차량이 에쿠스/에쿠스 리무진(LZ)으로, 일본에선 프라우디아(S32A)/디그니티(S34A)란 이름으로 2000년부터 출시되었지요.
그렇지만 이 차는 그 고급스러운 모습에 걸맞지 않는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FF형태의 구동방식을 들 수 있는데 캐딜락의 사례도 있어서 대형 세단이 FF인게 무슨 문제냐 할 수 있겠습니다만 구동계 자체보단 차량의 무게배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는 문제점이 더 부각되었습니다. 즉, FR이 어울릴 구성의 차를 FF로 굴리는 바람에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연비가 너무나도 안좋았습니다. 차체가 무거운 데다가 이 차체를 끄는 엔진에 드는 기름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항간에는 시동을 켜는 순간 동전을 뿌리고 다니는 차라는 악평까지 들었죠.
이런 문제점에 대한 불만은 한일 양국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사항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현대/미쓰비시간의 종속관계를 순식간에 뒤집어 버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죠.
일본에서는 미쓰비시 중역이나 타는 차라는 평까지 들으며 낮은 판매량을 보여줬고 그 결과 출시 후 단 1년만에 단종되는 처참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 반대로 중산층과 사장님, 교수님, 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2003년에 한 번 페이스리프트를 거치고(뉴 에쿠스) 2009년에는 FR인 제네시스를 바탕으로 새로 개발된 에쿠스가 탄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고 미쓰비시가 프라우디아와 디그니티를 단종시키면서 그에 관한 모든 기술 권한을 현대가 양도받으면서 두 회사의 기술종속관계는 완벽히 역전되고 말았답니다.
물론 프라우디아/디그니티 자체도 2012년부터 다시 부활했습니다. 하지만 이쪽은 닛산의 푸가/시마를 뱃지 엔지니어링 한 거나 다름없는 작품이라 외면받고 있는 현실이지요.
분명히 같은 형제차고 이름과 현대/미쓰비시 엠블럼을 빼면 거의 다를 게 없는 두 차의 운명이 이렇게 갈려버린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이상 HNRY의 카스토리였습니다.
13 댓글
군단을위하여
2013-05-21 17:07:29
저것도 에쿠스밖에 못 봐서 에쿠스가 원조인 줄 알았다는...
HNRY
2013-05-21 17:08:39
애초에 원조를 따지기도 애매한게 현대와 미쓰비시의 공동개발 차량이거든요. 물론 엔진과 디자인은 미쓰비시의 것이긴 한데……
마드리갈
2013-05-21 17:22:17
미츠비시의 고급차관련 전략을 보면 정말 욕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1980년대 차종 중 데보네어라는 것이 있었어요. 그 중 2세대인 1986-1992년 모델은 한국에서는 현대 그랜저로 소개되었기도 했어요. 이게 아주 웃기는 게, 2.0 버전은 5넘버였어요.
일본에서는 일반 승용차를 3넘버로 분류하고, 기관배기량 2,000cc, 길이 4,700mm, 폭 1,700mm, 높이 2,000mm 이내의 규격은 5넘버, 즉 소형승용차로 분류해요. 5넘버차는 고속도로 등 각종 유료도로의 요금이 적게 부과되거든요. 명색이 고급승용차인데 법률상으로는 소형승용차 규격으로 만들어서 소형차의 이득을 챙기겠다는 발상이 굉장히 치졸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일본에서는 고급차 하면 당연히 FR이라야 하고, 위엄과 고성능을 모두 갖추어야 하는데 미츠비시 프라우디아는 FR도 아니고, 게다가 토요타 센츄리나 닛산 프레지덴트같은 위엄도 없고 고성능도 아니고, 스트리트 레이서들이 중고차량을 매입하여 개조하기에도 상당히 불리했어요. 게다가 일본의 도로사정에서는 쓸데없이 크기만 했어요. 팔릴만한, 인기를 끌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어요. 이런 차종의 결말은 보나마나 한 것이었어요.
HNRY
2013-05-21 17:31:37
그랬었군요. 이 이야기도 그렇지만 일제차들 중에선 제일 말이 많고 탈도 많았던 게 미쓰비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요즘엔 더 그렇게 느껴지네요.;;
마드리갈
2013-05-21 17:33:54
현대의 경우 에쿠스는 회계학적으로는 대성공을 거두어 들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실상을 파헤쳐 보면 전혀 성공적이지 못해요. 왜 그럴까요?
전세대의 FF 에쿠스에는 현대자동차의 CI는 전혀 없어요.
엠블렘도 전용의 것을 쓰고, 게다가 트렁크 부분에는 EQUUS 그리고 로마자 2개와 3자리 숫자로 표현된 그레이드만 있어요. 렉서스에 토요타 마크가 전혀 붙어있지 않듯, 원래 상품 포지셔닝은 현대 브랜드 위의 별도의 에쿠스 브랜드였던 것이었어요. 의도를 추정해 본다면 에쿠스 VL 등으로 불리기를 의도했던가봐요. 마치 렉서스 LS, 렉서스 IS 같이. 게다가 강남 등지에는 전용의 매장도 설립되었어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전혀 그렇게 부르지 않았어요. 누구나 현대 에쿠스라고 불렀어요. 즉 렉서스의 사례처럼 의도한 마켓 포지셔닝은 완전히 실패했어요. 에쿠스를 독립브랜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냥 현대자동차의 최고급 승용차.
그리고, 브랜드 포지셔닝도 실패했을 뿐더러, 고급차 이미지의 조성에도 전혀 성공적이지 못해요.
그냥 크고 출렁출렁한 승차감을 좋아하고 자동차에 대해서는 조금도 지식이 없는, 돈밖에 없는 사람들은 좋아하겠죠. 그런데, 그 소비자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폭력단원들도 많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에쿠스는 조폭차 이미지도 덧씌워지게 되었어요. 게다가 속칭 신나빨이 잘 받는다고 해서, 구형 에쿠스는 유사연료 애용자들이 선호하는 차량이 되었어요.
그냥 돈은 잘 벌었지만, 에쿠스는 회사의 마케팅 전략도, 사후관리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어요.
HNRY
2013-05-21 18:14:53
지금도 이런데 나중에 토요타 리콜 사태급의 사건이라도 벌어지면 어쩌려는 걸까요? 토요타와 달리 현대는 되살아날만한 기량이 없을텐데요? 암담하군요......
그러고 보니 현대가 이러는 이유가 시장에는 성공적으로 진입했지만 일본차 점유율이 너무 높아서 반쯤 포기한 상태라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오히려 품질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으로 생존전략을 짜는 건 안되는 것이었을까요?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마드리갈
2013-05-21 18:03:17
렉서스나 인피니티 등의 차종은, 선택지가 넓었어요.
대형세단, 중형 퍼포먼스 세단, 컴팩트 세단, 대형 SUV, 중형 SUV, 컨버터블 등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니 그만큼 다양한 고객을 끌어 모아서 독립된 브랜드로서 기능하기 좋았지만, 에쿠스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어요.
게다가 현대자동차는 과거의 교훈으로부터 배울 생각이 없어 보여요.
요즘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갑의 횡포" 이슈를 정말 모르는 건지...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19/2013051900444.html
HNRY
2013-05-21 17:39:00
음, 결국 이 성공도 실속이 없는 성공이었단 말이군요. 아쉽네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과감하게 에쿠스 한 대 뿐만이 아니라 일부 라인업의 차량까지 과감하게 함께 에쿠스로 칭하는, 렉서스와 비슷한 방향을 밀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도 떠오르네요.
Diapsalmata
2013-05-22 11:57:38
에쿠스의 연비는 정말 최악이라고 해도 손색없습니다. 시내주행시 연료 게이지를 잠깐잠깐 보고 있노라면 혹사 람보르기니 엔진을 얹었나 라고 착각할 정도라니까요. 다만 에쿠스 정도의 기함급은 연비같은 걸 따지지 않는 고객들이 대부분이니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어요.
에쿠스가 분명 실속없는 성공이긴 했지만 국내 소비자층의 수준을 정확하게 집어낸 사례이기도 하죠.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품위를 넣어 만든 빛 좋은 개살구로요.
HNRY
2013-05-22 12:59:37
빛 좋은 개살구라......확실히 빛깔은 좋았지요. 연비건 뭐건 다른 건 다 제쳐둬도 말이죠.
마드리갈
2013-05-22 13:06:59
이런 말을 하면 뭐랄까 누워서 침뱉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기업이 성공을 거두게 한 데에는 역시 소비자의 수준 또한 아주 크게 기여하니까요. 그래서 이 사례는 볼수록 국내의 자동차문화의 문제점이 드러나서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미국의 대형 SUV 선호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래에 따른 파국과 자동차기업들이 맞은 대위기가 자꾸 현대자동차에 겹쳐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겠죠?
SiteOwner
2014-02-02 13:19:07
한국의 기형적인 자동차문화가 아니었으면 에쿠스는 어디에서도 성공할 수 없는 자동차였다고 봅니다.
적당히 크고, 적당히 무게잡을 수 있고, 외제차를 탈 수 없는 정치적 사정이 있는 한 이런 자동차만큼 좋은 선택도 없습니다.
그리고 연비가 좀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아주 훌륭한(?) 대응책도 있는 만큼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이전에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을 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 구형 에쿠스 보유자들이 신나를 연료로 써서 차값을 벌었느니 등등 하는데 그냥 생각을 포기했습니다.
HNRY
2014-02-02 13:47:44
하긴, 요즘도 그런 경향이 약간 남아있는데 하물며 그 때에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