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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여름, 그러니까 코로나19 판데믹 이전의 마지막 여름 때 썼던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제하의 글을 다시 읽어보고 요즘의 시대정신(Zeitgeist)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했다는 감을 떨칠 수는 없습니다.
생활 속에서의 각종 행위는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깊이 따지면 위법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형법상의 혼인빙자간음죄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의 남성은 결혼하기 전에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면 혼인빙자간음죄에 저촉될 수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경우. 집 안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문을 잠그고 외출했는데 실제로는 친구가 와 있었고 한참 잠들어서 상황을 모르는 경우에는 그렇게 외출한 사람이 감금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그 외출한 사람이 돌아온 지 한참 뒤에야 친구가 자신의 집에 왔다가 잠들어 있는 것을 알았고 그 친구는 상황을 전혀 모른다면 과연 이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감금죄의 성립도 불성립도 단언하기 매우 힘들거나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익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법의 영역이란 판단이 매우 어렵다 보니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명백하게 실정법을 어겨서 사법판단의 대상이 된 것이 자랑할 만한 것이거나 공공연하게 정당화해도 좋을만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위법사실이 사회기강의 근간을 흔들거나 파렴치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공익을 위해 법을 어겼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합니다. 악법을 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강렬한 저항권의 행사같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글쎄요. 대중의 교통안전을 광범위하게 위협하는 음주운전이나 사법기관에의 불신 조장에 직결되는 검사사칭같은 것이 그렇게도 공익을 위해서 범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법의 영역이란 판단이 매우 어렵지만, 최소한 그런 행위가 없는 편이 있는 편보다 낫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사람은 과오를 저지를 수 있고 그에 대해 반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반성한 사람을 포용해 주는 것도 미덕입니다.
그러나, 공익을 위해서 법을 어겼다는 변호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도 내용으로도 못하겠습니다. 제 도량이 좁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공익을 위해 법을 어겼다는 말에 대한 제 판단을 짧은 독일어 문장 둘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Der Zeitgeist ist tot. Also will Ich keine Frage stellen.
"시대정신은 죽었다. 그러므로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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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대왕고래
2022-02-12 21:40:29
공익을 위해 법을 어기면 그냥 공익을 해친 사람밖에는 안 되잖아요.
무슨 만화에서나 배트맨이나 퍼니셔같이 법 어기는 히어로가 있는거지, 실제로는 그냥 법 어기면서 날뛰는 민간인에 불과하죠.
SiteOwner
2022-02-14 21:59:22
제도 자체가 불합리하기에 저항권의 행사를 한 것도 아닌 것을 그렇게 변명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정말 그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우면 본인이 경력으로서 내세우지, 본인도 아니고 타인이 궤변으로 옹호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사실, 음주운전 경력 따위를 자랑이라고 내세우는 게 당연시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겠습니다만...
Lester
2022-02-13 23:39:15
애초에 음주운전이나 검사사칭 같은 것은 공익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하나도 없고 공해(公害)뿐이기에, 사례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내부고발자(이것도 어감상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공익제보자'로 불려야 한다고 하죠)처럼 정말 일말의 공익을 챙기는 여지가 있다면, 사안에 따라서 유동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정신이라기보다는... 그저 한낱 사리사욕을 무슨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평범한 실수(군중에 호소하는 오류), 시대의 위인에게 주어진 가혹한 시련?(이 정도면 오류도 아니고 오만함이죠)"처럼 확대해석하는 정신나간 마음가짐 자체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것들이 횡행하고 있으니 시대정신이라고 봐도 되겠지만요.
SiteOwner
2022-02-14 22:03:15
그렇습니다. 예의 행위는 공해뿐입니다.
사실 그것들이 정말 공익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무슨 공익이 지켜졌는지는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득실을 주장하는 자에게 증명의무가 있다는 민법상의 제원칙을 모를 리가 없는데 본인은 침묵하고 다른 사람이 변호하고...참 좋은 시대정신입니다. 사실 그렇게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 뭐하긴 하지만 오늘날에 어느 정도 경향화가 되어 있다 보니 그렇게 안 부르기도 뭣하고, 이래서 시대란 변하는 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