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제(6월 8일) 전국 노래자랑의 영원한 MC이자 가수, 그리고 1927년생으로 사실상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모든 사건을 보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송해 선생님이 작고하셨다는 뉴스가 우르르 올라오더군요. 이사오기 전에도 집에서 TV를 안 본 지가 꽤 됐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옛날(그러니까 15년 혹은 20년 전, 일요일 점심에 부모님한테 타박받으면서 미역국 먹던 시절)에 봤던 전국 노래자랑에서 늘 즐겁게 사회를 보시거나 궁상맞은 참가자들 때문에 난색을 표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사실 제가 전국 노래자랑을 엄청 챙겨본 것은 아니니 솔직히 앞의 내용은 미사여구라고 해도 될 거에요.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의 산증인이셨다는 점에서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1-2. 살짝 연관이 없으면서 있는 문제입니다만, 본문에 링크를 걸려고 했더니 썩 영양가 있는 기사들이 없네요. 그나마 2006년 무렵부터의 사진들이 담긴 이 기사가 좀 나아서 링크합니다. 지금 찾아본 기사들은 조회수 낚시라도 하려는 건지 유재석이나 전현무 등 몇몇 유명 연예인들이 과거에 같이 찍었던 사진을 가지고 친분을 과시하다가 추모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기분이 좀 그래요(그나마 유재석 기사의 경우엔 향을 올리는 사진을 올려서 덜한데, 전현무 기사는 그 깐족 웃음을 짓는 사진을 올려서 뭐 어쩌자는 건지). 속칭 시체팔이 같기는 하지만서도, 기자 속을 누가 알겠어요. 팔리면 장땡이지.
2. 만화 "검은 사기"를 정주행하다 과거 거품경제 이야기가 잠깐 나와서, 같은 배경을 다룬 게임 "용과 같이 제로: 맹세의 장소"에서의 묘사를 생각하다가 당시 KBS 다큐멘터리까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댓글창은 똑똑한 사람들과 멍청한 사람들이 드글드글했지만요. '일본이랑 우리나라랑 체제가 다른데 뭘 걱정하느냐' 혹은 '(너 친일이냐는 뉘앙스로) 일본을 왜 걱정하냐'는 반문도 있고... 그런데 본인의 경험을 담은 댓글 같은 경우엔 본인이 실제로 봤다니까 정말 그런가보다 하는 면이 있고 또 저는 일본에서 이런 상세한 모습을 들여다본 적이 없기에, 궁금해서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가독성을 위해 불필요하거나 틀린 문장은 쳐냈습니다)
"2017년에 출장 겸해서 일본 도쿄에 처음 가봤는데, 생각보다 일본의 인프라가 우리나라보다 낙후되어 있어서 놀랐다. 대중교통부터 결제 시스템, 사내 업무처리 방식까지 우리나라 2000년대 초반과 흡사해 보여서 당황스러웠다. (중략)
일본인들은 사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정치적 관심 같은 게 아니라. 핸드폰 요금제나 주식 정보 및 은행 상품 등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적극적으로 알아보거나 공유하지 않고 전문가들이나 하는 일처럼 여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효율적인 처리를 중요시해서 항상 좋은 방법을 강구하는데, 일본인들은 정해진 대로만 하는 경향이 있어서 답답했다. 이게 지금(해당 댓글은 2022년 4월에 작성됐습니다)의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만든 것 같다.
현재 일본이 한국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게 아닌 것 같다. 과거 산업화시대에는 공급자(기업)와 수요자(고객)의 역할이 명확히 나뉘어져서, 일본인들 특유의 수동적 문화가 일본의 장인 문화와 만나서 큰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로 오면서 그 역할이 모호해져서 수동적 고객보다는 능동적 고객들의 시너지가 시장의 발전에 더 큰 영향을 끼쳤고, 이것이 사회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한국인들과 더 잘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수용자의 의견과 활동을 토대로 데이터의 구축과 성공적인 서비스 기획이 수월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게 어렵다. 그래서 일본 IT 사업이 몰락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마법의 말 '본인 뇌피셜이니 틀릴 수 있음'으로 마무리)"
그런데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긴 합니다. 수동적 및 경직적인 구조와 그 악영향은 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연공서열제라든지, 정권 변화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든지... 뭐 자세한 배경까지는 모르는지라 저로서는 속단하기 힘듭니다. 뭣보다 일본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라서 판단이 '어렵다'기보다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아무튼 제 현재 궁금증을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네요.
1. 과연 일본은 한국의 미래이며, 그들의 몰락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것인가?
2. 일본의 몰락은 정말로 수동적인 국민성(폄하가 아닙니다. 보편적인 nationality를 말함) 때문인가?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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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댓글
마드리갈
2022-06-09 17:59:33
역사의 산 증인을 이렇게 떠나보낸다는 게 정말 큰 공백일 줄은...
확실히 어제 오후가 즐겁게 느껴지지 않고 어둡게 느껴졌어요.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어요.
일본은 워낙 다면적인 사회라서 보기 나름이죠.
이틀 전에 올라온 일본관련의 기사를 하나 소개해 드릴께요.
일본 어학연수 와서 가장 놀라운 3가지, 2022년 6월 7일 주간조선 기사
이 필자의 글은 적어도 도쿄에서는 정확하지만 오사카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아요. 오사카의 전철 내부는 굉장히 소란한 경우도 드물지 않거든요. 객차내에서 여고생들이 대화하는 게 기차화통 삶아먹은 것같은 경우도 흔하고, 빨간불에 길을 건넌다든지 하는 노매너도 일상적인데다 도심의 곳곳은 더럽다 보니 오사카시에서도 시청 웹사이트에서 인정하면서 환경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예요(マナ?が?く街が汚いことについて/매너가 나쁘고 거리가 더러운 것에 대해, 오사카시 웹사이트, 일본어). 저 또한 오사카의 사정을 접하면서 오사카에 대한 인상이 과히 좋지 않아서 오사카를 "일본어가 통용되는 던전 내지는 마굴" 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일본의 제반사정에 대한 일반화 및 단순화도 상당히 위험하고,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국내의 제반사정에 대한 일반화 및 단순화도 같은 레벨로 위험하다는 것이죠. 예의 인용하신 글에 그 두 측면이 아주 잘 보여요.
이것에 대해서는 내용이 길어질 게 예상되는터라 일단 분할해서 별도로 코멘트할께요.
마드리갈
2022-06-09 20:16:15
우선은 "일본인은 어떻다", "한국인은 어떻다" 라는 성향의 일반화부터 쟁점이 되니까 이걸 볼께요.
예의 인용문의 전제가 성립하려면 간단한 부등식 하나를 만족하면 되어요. 가장 적극적인 일본인이 가장 소극적인 한국인보다 반드시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이미 반례가 적어도 하나는 있으니까 끝났어요. 일본인 중에서도 소셜미디어 활동도 대외활동도 많은 속칭 "파티피플" 이 있고 한국인 중에서도 은둔형 외톨이는 있으니까요.
일본인이 사회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말은 글쎄요. 일본웹의 각종 정보를 정리해 담아놓은 마토메 사이트(まとめサイト)만 보아도 얼마든지 반례는 차고 넘쳤어요.
핸드폰 요금제 같은 거라면 스마트폰 월액플랜(スマホ 月額プラン) 등의 검색어로 찾아보면 통신사 직영사이트이든 각종 가격비교사이트이든 간에 얼마든지 자신이 잘 알아볼 수 있고 은행거래, 주식거래 등도 찾아보면 얼마나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지가 제대로 보여요.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금산분리, 즉 재벌이 금융기관을 가질 수 없다는 오래된 원칙이 있었고 요즘은 완화되어 재벌과 은행의 겸영금지라는 은산분리 원칙이 여전히 통용되기에 카카오뱅크 같은 것도 지극히 최근에 생겼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21세기의 시작부터 전자제품의 대기업 소니가 설립한 소니은행, 일본 유수의 소매업 체인인 이온이 설립한 이온은행 등의 인터넷은행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성업중에 있어요. 그러니 예의 주장의 설득력은 논파되었어요.
경로의존성은 딱히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자유로운 문제가 아닐텐데요. 우리나라에도 비효율적인 악관행은 찾아보면 차고 넘쳤어요. 특히 대학의 등록금 납부의 경우 상당부분 납부수단이 대학자율에 맡겨져 있어서 신용카드 납부에 대해서는 대학측이 온갖 핑계를 대고 하면서 거부해 온 역사가 매우 길었어요. 게다가 일본의 경우 저스트 인 타임(Just-in-time)으로 대표되는 무재고 생산라인 유지방침이나 카이젠(改善)이라는 일본어 발음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경영개선 관련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경영학 관련의 대표적인 키워드인데다 산업현장에서의 로봇 도입, 유연한 생산시스템(Flexible Manufacturing System, FMS) 등의 구체적인 방안도 일본에서 잘 나타난 방법이기도 하죠. 실제로 화낙(FANUC), 야스카와(YASKAWA) 등이 이 분야의 세계적인 강자이기도 하죠.
또 하나, 일본인은 이래서, 한국인은 저래서 하는 논리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치명적인 독도 있어요.
그 논리가 성립한다면, 온갖 인종차별도 정당화되거든요. 아주 거칠게 말해서, "조센징이니까 문명개화가 안된다" 라는 이런 담론도 비판없이 수용되어야 한다는, 수용해서는 안될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죠. 게다가 지금까지의 역사의 발전을 설명할 수도 없어요. 일본인이니까 사회에 관심이 없고 소극적이라면 지금의 일본열도는 문명국가가 없어야 하는 게 맞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우리나라가 그렇게 뛰어나면서 일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 건 또 어떻게 설명가능한지의 모순이 있기 마련이죠.
일본의 인프라가 낙후되어 있다는 말에도 어폐가 있어요.
낙후(落朽)라는 말은 뒤떨어지고 낡았다는 말인데, 그러면 그런 일본보다 훨씬 뒤에 도시화되어 대부분이 일본보다 새것인 우리나라에서는 한강의 교량이 저절로 무너지고 서울의 백화점도 광주의 철거도중의 상가건물 건설중인 고층아파트도 그냥 알아서 잘 무너지네요.
일본의 교통인프라, 특히 철도네트워크의 경우는 주요도시내의 지상노선의 경우 1920년대에 완성되었고 지하철의 경우도 대부분의 노선은 1990년대까지 완성되었어요. 교통카드결제시스템의 기본은 소니에서 개발한 비접촉식카드인 펠리카(FeLiCa)로 이것도 사실 20세기 기술이지만 여전히 잘 쓰이고 있어요. 오래된 시스템이라고 해서 낙후되었다고 말하는 자체가 잘못인데다 오히려 장기간에 걸쳐 신뢰성이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좋은 것은 고쳐가며 쓰면 되는 것이죠.
예전에 오빠가 쓴 글인 미국의 역사는 짧기만 할까를 조금 인용할께요.
지금의 미국의 각종 제도는 한국사에서 정조 때에 만들어진 것들이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현대의 도시, 철도망, 표준시 체계, 대학 등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들이 대다수이고, 미 공군이나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같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문물도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도시화 붐보다도 훨씬 전에 등장한 것입니다. 즉 근현대문명의 문물로 따지자면 미국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것보다 압도적으로 길다는 이야기. 이렇게 봤을 때 미국을 역사가 짧고 전통없는 나라, 근본없다 등으로 비하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게 보일 것입니다.
오래 되었으니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하면, 세계최강국이자 근대화의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압도적으로 긴 미국의 각종 역사나 문물도 아무것도 아니겠네요. 그 미국보다 근대화의 역사가 짧은 일본의 인프라가 낙후했으니.
남은 내용은 다른 코멘트로 분할할께요.
Lester
2022-06-16 06:03:04
확실히 이건 오류이긴 하네요. 다른 나라라고 (핸드폰이건 뭐건 경제적인 정보 위주로 탐독하는) 현실주의적인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인용하신 SiteOwner님의 글에서도 나오듯이 단순히 시간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해냈는지의 문제이니... 당장 태평양 건널 것도 없이 중국은 그 길고 귀중한 문화를 고작 몇년간의 문화대혁명 동안에 다 파괴 및 소멸시켰고 말이죠. 역사나 현재를 막연하게 '옛날', '바로 지금' 이런 식으로 단편화하니 생긴 오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마드리갈
2022-06-09 20:53:43
일본인 특유의 수동적인 문화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대한 반례는 차고 넘쳐요.
근대만 보더라도 명치유신 당시의 각종 기자재의 국산화 노력이 있었고, 태평양전쟁 패전 후에는 미국의 통계학자 윌리엄 에드워즈 데밍(William Edwards Deming, 1900-1993)을 초빙하여 전시의 심각한 문제였던 공업 품질관리를 발본적으로 개혁하죠. 그리고 1950년 12월부터 시작된 데밍 상(Deming Award)는 지금도 세계최고의 품질관리부문의 상으로서의 권위가 높아요. 일본에서의 국민적 인스턴트 메신저는 한국산 메신저인 라인과 카카오톡이지만, 주소추가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QR코드는 일본의 덴소(DENSO)에서 개발한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한때 방역패스를 사용할 때 다중이용시설에 출입하는 전국민에 요구되었던 그 QR코드가 IT산업이 몰락했다는 일본의 것이라는 것에서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그것이 아니면 특정의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안심콜이 사용되었는데, 어차피 전화번호 또한 우리나라의 발명품은 아니니, 결국 한때의 실생활의 여러 부분을 지배했던 것이 IT산업이 몰락했다는 일본의 것이었고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것은 없었다니, 이 사실대로라면 우리나라의 사정은 몰락한 일본보다도 더 비참해지네요.
일본의 소비자들도 결코 바보가 아니고, 지방자치, 소비자운동, 시민운동의 역사와 범위는 역사가 꽤나 깊어요.
특히 미군정에서의 한자사용제한에 대한 시민불복종운동은 패전국 국민들이 추진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담했는데다 미국의 자동차위주 교통체계 보급정책에 맞서 일본 정부 및 일본국유철도의 신칸센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국제기구인 세계은행(당시명 국제개발부흥은행, IBRD)을 끌어들여서 일부러 국가가 국제기구에 빚을 지게 되어 정권이 교체되어도 사업 자체를 뒤엎을 수 없을만큼 창의적으로 역공작을 펼친 것, 그리고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에 맞서서 미국 현지에 공장을 만들어 간장의 키코만부터 자동차의 토요타까지 미국의 무역장벽을 타넘은 일본의 다방면의 응전은 일본인의 적극성을 잘 보여주는 증거로 기능할 것 같은데 말이죠.
일본의 시장은 기본적으로 한 기업이 독주를 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어요. 한 섹터에 기업이 많이 있다 보니 경쟁구도가 자연스럽게 짜여질 수밖에 없고 지역적인 선호가 크게 다르거든요. 그래서 소비자들은 굳이 한 기업에 충성할 이유가 없어요. 바로 이런 것이죠. 그러니 미국의 IT기업인 야후의 일본법인이 일본시장에 안착했다든지, 한국산 메신저인 라인과 카카오가 국민메신저로 등극한 것도 이런 풍토에 기인하는 것이죠.
애초에 수동적 문화라는 것 자체가 정확히 정의된 것도 아닌 의제된 개념인데다 반례가 많이 등장했으니 예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 버렸어요.
다음에 할 코멘트 또한 분할해야겠어요.
마드리갈
2022-06-09 21:35:57
사실 일본사회의 경직성 자체는 부정할 없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것 자체가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는데다 반례도 있어요. 게다가 요즘은 경직성도 여기저기서 와해되고 있는 실정이라서 일본인 특유 등등의 담론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보장할 수 없어요.
대표적인 경직성 중의 하나가 연령대에 따른 인생설계의 모범답안 설정. 즉 20대/30대/40대/50대로 세대를 나누고 각 세대별로는 연수입과 순자산총액 등이 얼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상당히 큰 편이죠. 게다가 국가시스템에서는 연령차별은 금지하지만 실제로는 금지가 아닌 기묘한 채용체계를 채택하고 있어요. 이게 꽤나 기묘한데, 가령 2020년도의 공채출원자격이 1990년 4월 1일생부터 2020년 3월 31일생으로 한정되는 것은 연령차별이지만 동시에 연령차별은 아닌 것이죠. 왜 그런가 하면, 이전연도인 2019년도에서는 1989년 4월 1일생부터 2019년 3월 31일생까지가 출원자격자였고 차년도인 2021년도에서는 1991년 4월 1일생부터 2001년 3월 31일까지가 출원자격자가 된다는 것은, 매 실시연도에 대해서 똑같은 시간간격으로 출원기회를 공평하게 줬으니까 결국 국민 모두에게 공정하게 똑같은 기회를 주었고 특정 연도의 출생자라고 해서 혜택을 줄이거나 늘릴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연령차별이지만 취지상으로는 연령차별이 아닌 기묘한 장벽이 있어요. 지자체에 따라서는 연령차별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감지했고 인재모집에 어려움이 있어서 연령차별의 상한을 크게 상향했거나 아예 하한만 두었을 뿐 상한을 없앤 경우도 지방직 분야에서는 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국가직의 경우는 여전히 있어요. 하지만 2001년의 중앙성청재편(中央省?再編)으로 1부 22성 체제를 1부 12성 체제로 대폭 간소화했음은 물론 코로나19 판데믹 이후로는 전자정부로의 적극이행을 위한 전담관청인 디지탈청(デジタル?)을 2021년에 신설하고 인재채용도 민간출신을 대거 기용하는 등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어요.
또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의 변화도 상당히 발빠르고 과감한 게 특징이죠.
보통 일본의 최고대학 하면 도쿄대학이고, 도쿄대학에서도 법학부가 정점이라고 하죠. 하지만 이것도 더 이상 유효하지는 않아요. 과거의 도쿄대 지망생들은 법학부에 들어가서 국가직 1종시험(현재의 국가종합직)에 합격하여 정통관료의 길을 걷거나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경제학부가 법학부의 컷을 넘어선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다 정통관료나 법조인으로의 길을 걷기보다는 골드만삭스같이 백그라운드에 상관없이 능력주의로 보수를 책정하는 외자계기업에서의 대성공을 바라는 쪽으로 인재의 이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일본의 산업제품이 주로 법인용제품에 치중해 있는데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친 일본의 부진 등으로 일반소비자용제품 중에서 Made in Japan의 위상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일본이 몰락했다고 보기에는 매우 성급하고 또한 잘못된 결론을 낼 확률이 매우 높아요.
그럼 다음 코멘트에서는 마지막에 하셨던 질문에 대한 답을 다루도록 할께요. 이건 아마 내일은 되어야겠죠.
마드리갈
2022-06-18 18:20:39
마지막의 두 질문에 대한 답이 9일이나 늦어졌네요.
이 점에 대해 먼저 너그러운 이해를 구할께요.
첫째 질문에 대한 답.
1. 과연 일본은 한국의 미래이며, 그들의 몰락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것인가?
일본은 일본이고, 한국의 미래는 한국이죠. 그러니 이런 질문은 사실 대답할 가치도 없어요.
그리고 일본의 몰락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몰락했다면 독일이나 영국이나 프랑스는 알거지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에 소멸했거나 국가성립도 불가능했겠죠. 그러니 이 질문도 의미없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근년도의 우리나라의 성장이 빨랐고 일본의 성장이 느린 것이었을 뿐이예요.
둘째 질문에 대한 답.
2. 일본의 몰락은 정말로 수동적인 국민성(폄하가 아닙니다. 보편적인 nationality를 말함) 때문인가?
사실 이것도 몰락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의되어 있거나 잘못되어 있으니 대답할 가치는 없어요.
게다가 이미 수동적인 국민성이라는 개념도 위에서 논파된 허구의 개념이니까 이것 또한 의미없는 질문이기는 마찬가지예요. 사실 정확하게는 왜 일본의 성장속도는 느려졌는가 정도로 질문해야 하는데, 사실 이것은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질서 및 유로존 출범이라는 양대사건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되다 보니 설명이 길어져요. 이것 또한 분할해야 할 것 같네요.마드리갈
2022-06-29 23:59:06
그러면, 둘째 질문에 대한 답의 보충설명을 드려야겠어요.
고도성장으로 연간 국내총생산 규모에서 미국의 70%대를 처음으로 넘어선 국가는 일본이 유일해요. 그 정도로 전후 일본의 경제성장은 괄목할만한 것이었고, 미국에서는 일본을 칭송하는 목소리와 함께 강력한 견제구를 던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같이 일어났어요. 게다가 태평양전쟁 이후의 일본에게는 구적국이라는 원죄가 있었어요.
사실 미국 주도의 제1세계에 편입된 국가에 대해 미국의 감시와 견제는 늘 있었어요. 구적국이라는 원죄가 있는 국가로서는 과거의 추축국 결성국인 일본, 서독, 이탈리아가 있었고, 영국은 식민지 경영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보니 제2차 세계대전 당시는 연합국의 일원이면서도 미국이 소련과 합동하여 영국을 고립시키려 시도하기도 했다 보니 구적국이 아니더라도 영국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어요. 프랑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일시적으로 탈퇴하기도 했고, 전시에 미국에 보관중이었던 금에 대해 당시의 금본위제에 근거하여 보유한 달러와 보관중인 금의 교환을 요구하여 미국이 이 사태를 계기로 금본위제를 폐기하는 식으로 프랑스를 견제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는 1956년에는 신생독립국인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위기라고도 불리는 제2차 중동전쟁을 일으키는 등의 독자노선으로 미국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보니 제1세계의 주요국가 중 어느 누구도 신뢰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그것을 노골적으로 노정한 게 바로 1985년의 플라자 합의. 간단히 말해서 미국이 일본, 영국, 서독 및 프랑스에게 "너희들, 앞으로 돈 벌지 마라" 라고 미국이 엄포를 놓은 것이었어요. 미국의 자본으로 이루어낸 전후부흥이 도로 미국의 산업경쟁력을 갉아먹고 미국의 무역 및 재정에서의 적자를 급증시키는 역설을 야기하자 미국이 단행한 조치였어요. 이것으로 4개국은 타격을 입고, 흔히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리는 신흥공업국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및 홍콩이 그 시기에 크게 약진할 수 있었어요. 특히 당시 전두환 정권하의 우리나라는 3저호황이라고 불리는 낮은 환율, 유가 및 금리 덕에 제1세계의 주요국가들이 주춤할 때 상당히 약진할 수 있었던 것이죠.
반면, 플라자 합의에서 일본은 큰 타격을 입었어요. 그나마 서독과 프랑스의 경우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산하에 있어서 사실상 단일시장이었는데다 유럽연합(EU)의 결성 및 유로화 단일통화권 형성으로 매우 큰 이점을 얻었고, 독일은 통일되면서 일시적으로 충격은 있었지만 비약적으로 넓어진 국내시장과 동독지역의 저임금 등으로 호조건으로 도약할 수 있었어요. 영국은 비록 유로존이 아니긴 했지만 EU에 소속되면서 유럽 경제권에서의 통합의 이익을 크게 누릴 수 있었기도 했죠. 일본에게는 그런 유리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렇다 보니 일본의 경제발전은 둔화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펀더멘탈은 매우 튼튼하고, 어떠한 유리한 조건도 없이 장기불황을 버텨내야 했지만 상대적으로 선방할 수 있었는데다 고도성장기에 이루어 놓은 해외투자가 워낙 많다 보니 무역수지에서는 적자라도 경상수지에서는 최근 엔저로 위협받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기도 해요. 이것을 몰락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봐서 무슨 메리트가 있고 또 그게 올바른 해석인지는 기대가능성이 매우 낮아요.
좀 더 자세한 것을 원하신다면 별도의 글로 답변을 작성할 수도 있어요.
이건 이번주말에 해야 할 다른 일이 좀 있다 보니 다음주부터 가능할 거예요.
SiteOwner
2022-07-23 15:53:08
한국현대사의 산 증인이었던 송해의 발자취, 정말 장대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혀질 리가 없겠지요.
그런 위대한 인물과 동시대를 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행운아일지도 모릅니다.
송해가 자신의 뒤를 이을 진행자로 허참을 지목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허참은 그 이전에 타계하고...이래서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있는 것인가 봅니다.
위에서 동생이 상당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놓았으니 저는 간략히 언급할까 싶군요.
어떠한 사회의 현상을 볼 때 주의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구성주의와 환원주의의 환상이 바로 그것이지요.
물론 어느 사회마다 각자의 시스템과 풍조가 있어서 싫든 좋든간에 그것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인 것도 아니고 영원불멸의 것도 아니라서 시계열적인 자료를 보면 변천 등이 바로 포착가능하다 보니 특정시점에서는 맞더라도 통시적 관점에서 보거나 다른 시점에서 보면 틀린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국내의 일본에 대한 시각이 구성주의 및 환원주의의 환상에서 크게 못 벗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이 그러니까 그럴 것이다, 결국 일본이니까 그렇다 식의 논의가 진영과 세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금과옥조인 양 수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논리는 자승자박의 논리로 다가올 게 유력합니다. 그리고 구성주의의 고질적인 약점인 사회구조에 대한 설명은 어느 정도 가능해도 행위자가 철저히 사회구조에 종속적인 존재로 의제되면서 변혁이 필요하다는 모순적인 결론에 호소한다든지, 사회상의 여러 가지를 결국 그 사회니까 그렇다는 식으로 환원시켜 불필요한 순환논리 이외에는 어떠한 건설적인 담론도 제공하지 못하는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도 요구됩니다. 사실 이게 싫어도 세계의 상황은 꽤 급변하고 있습니다.
일단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른 추가논의도 환영합니다.
Lester
2022-07-31 04:24:23
요즘 유튜브에서 (사피엔스 스튜디오 같은 채널을 통해) 종종 언급되는 '메타인지'도 그렇고, 자기객관화(즉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는 주제에 상관없이 주장을 할 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는 당연하니까' 하고 넘어가는 측면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 대상이 자신이기에 더더욱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고... 당장 삼단논법 같은 기초적인 논리도 '자기 기준에서 본 것'을 근거로 사용하는 순간 망가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비슷한 인문학 방송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도 메타인지 테스트(유튜브)라고 해서, 단어 암기 테스트인 척하면서 '실제로 몇 개나 외웠는지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가'를 살피는 게 나왔더군요. 실제보다 많거나 적게 대답하는 것보다 몇 개 정도 외웠다고 스스럼없이 인정할수록 메타인지가 높다고 말이죠. 메타인지의 장점에 대해선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생략하고(...), 아무튼 간단한 논증에서라도 말이 잘 통하는 문화가 정립되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