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도 저도 포럼에서 여러번 지적한 적이 있는 번역 문제.
제목에서 밝힌 것처럼 오역이나 부정확한 번역은 의역의 동의어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예를 좀 들자면 꽤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할 수도 없습니다만, 바로 떠오르는 것은 요즘 방송중인 애니에 나오는 표현 3가지에 대한 것이되겠습니다.
첫번째는 각하(却下). 이것은 자꾸 기각(棄却)으로 번역되는데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과를 제외하면 전혀 다른 어휘입니다.
이것은 동생이 이전에 각하와 기각 개념의 차이에 대해 간단히!! 제하로 쓴 글이 있으니 이것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애초에 판단할 가치조차 없는 엉터리면 각하, 최소한의 형식은 맞췄지만 내용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어 안 받아들이기로 결정되면 기각입니다. 여러 애니에서 각하가 자꾸 기각으로 나오는데 상호호환되는 어휘가 아닙니다.
둘째는 친족(親族). 이것을 친척(親戚)으로 번역하는 사례가 진행중인 애니 스파이패밀리(SPY FAMILY)의 공식방영판 자막에 나오는데 친족을 친척으로 말하면 그게 의역인줄 아는가 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틀렸음은 물론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일본어발음이 친족의 경우는 신조쿠(しんぞく), 친척의 경우는 신세키(しんせき)로 발음도 완전히 다르니 혼동하려 해도 혼동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부모에서 태어난 누나와 남동생 사이를 누가 친척이라고 합니까. 사촌관계라면 모를까.
셋째는 철회(撤回). 이것이 스파이패밀리에서는 취소(取消)라는 자막으로 등장합니다.
철회와 취소 또한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일본어발음부터가 철회는 텟카이(てっかい), 취소는 토리케시(とりけし)로 다른데다 조어방식마저 철회는 한어(漢語)의 방식이고 취소는 일본의 고유어인 야마토코토바(大和言葉). 게다가 결과는 같더라도 법률적인 의미는 완전히 같지만은 않습니다.
민법에서 철회(Withdrawal)은 장래효(将来効)이고 취소(Cancellation)는 소급효(遡及効)를 가집니다. 즉 철회는 과거에 있었던 것이 철회의 시점부터 효과가 없고, 취소는 완전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void ab initio)입니다. 작중에서 요르 포저의 남동생인 유리 브라이어가 요르와 로이드의 결혼을 철회시키겠다고 했지 취소시키겠다고 한 게 아니라서 문리적으로도 잘못된 것이지만, 좀 깊게 따져 들어가 보면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로이드와 요르가 4월 1일에 결혼했고, 그것에 대해 유리가 둘의 결혼을 7월 1일에 철회 또는 취소시켰다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그러면 6월 30일의 상황이 아주 끝내주게 됩니다.
철회라면 일단 6월 30일에는 로이드와 요르는 부부. 그러나 취소라면 부부관계가 아닙니다. 이것이 재판 등의 각종 분쟁해결절차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천차만별입니다. 철회의 경우 로이드와 요르는 일단 부부니까 재산분할이나 딸 아냐의 양육권 귀속에 대해 논할 여지가 있지만 취소의 경우 로이드와 요르는 무연의 타인인 터라 서로에 대해서 어떠한 권리도 없습니다. 그러니 철회와 취소는 절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애니 한 편 보는데 뭐 이렇게 따져야 하나 싶겠지만, 언어를 바르고 정확하게 쓰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그게 쌓이고 쌓여 완전히 잘못되게 고착되고 말아 버립니다. 왜 달리 언어를 습관이자 문화라 하겠습니까.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목록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단시간의 게시물 연속등록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
2024-09-06 | 165 | |
공지 |
[사정변경] 보안서버 도입은 일단 보류합니다 |
2024-03-28 | 170 | |
공지 |
타 커뮤니티 언급에 대한 규제안내 |
2024-03-05 | 185 | |
공지 |
2023년 국내외 주요 사건을 돌아볼까요? 작성중10 |
2023-12-30 | 356 | |
공지 |
코로나19 관련사항 요약안내612 |
2020-02-20 | 3858 | |
공지 |
설문조사를 추가하는 방법 해설2
|
2018-07-02 | 997 | |
공지 |
각종 공지 및 가입안내사항 (2016년 10월 갱신)2 |
2013-08-14 | 5967 | |
공지 |
문체, 어휘 등에 관한 권장사항 |
2013-07-08 | 6592 | |
공지 |
오류보고 접수창구107 |
2013-02-25 | 12081 | |
4974 |
담수어에 대한 상식을 깬 캄보디아의 거대 가오리2
|
2022-06-22 | 130 | |
4973 |
누리호, 이제는 우주로 날았다14
|
2022-06-21 | 173 | |
4972 |
술파티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네요3 |
2022-06-20 | 120 | |
4971 |
녹색당 정치인이 독일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연명시키다7 |
2022-06-20 | 155 | |
4970 |
[작가수업] 설정놀음 중독자의 재활기4 |
2022-06-19 | 136 | |
4969 |
좋아하는 창작물 속에 나오는 싫은 요소 속편4 |
2022-06-18 | 177 | |
4968 |
"당신은 어떤 감정을 기반으로 창작을 하나요?"7
|
2022-06-17 | 243 | |
4967 |
새로운 취미가 개화했습니다3
|
2022-06-16 | 124 | |
4966 |
해부실습용 시신에서 프리온이 발견되다2 |
2022-06-15 | 127 | |
4965 |
여러 가지 이야기3 |
2022-06-14 | 122 | |
4964 |
오역이나 부정확한 번역은 의역의 동의어가 아닙니다2 |
2022-06-14 | 123 | |
4963 |
오래전에 유행했던 "개당나발시발조통" 이라는 건배사2 |
2022-06-13 | 128 | |
4962 |
NFT 이야기 하나 더5 |
2022-06-12 | 170 | |
4961 |
마약문제가 먼 세상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2 |
2022-06-11 | 123 | |
4960 |
한 세기만에 돌아온 갈라파고스 땅거북4 |
2022-06-10 | 172 | |
4959 |
송해 별세 + 기타 사건들9 |
2022-06-09 | 219 | |
4958 |
비즈니스제트가 음속의 벽을 넘었다2
|
2022-06-09 | 117 | |
4957 |
일본, 6월 10일부터 다시 관광객에 문호개방10 |
2022-06-08 | 164 | |
4956 |
궁예의 관심법 그리고 여자의 촉2 |
2022-06-07 | 123 | |
4955 |
자율주행선박, 태평양을 건너다2
|
2022-06-06 | 120 |
2 댓글
Lester
2022-06-14 12:24:43
번역을 업으로 삼는 저에게는 정말 신경을 갉아먹을 정도로 눈에 띄는 실수들이네요. 사실 아직도 '도저히 일대일 대응하는 표현이 없는지라 독자의 이해를 위해 부득이하게 현지화 혹은 변형을 거치는' 올바른 의역과 '원문을 이해하지도 못하니까 대충 때려맞추거나 없는 내용을 지어넣어서 원작의 의도를 왜곡하는 작태'인 오역을 분간하지도 못하고, 번역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직역이 무조건 옳다' 같은 얕은 소리를 일삼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스캔본이든 한글패치든) 불법 번역을 대충 해보고 나서 '나 번역 할 줄 안다' 하고 자랑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거기다가 악마의 재능마냥 자기포장 능력은 엄청 뛰어나서 좋은 일감을 다 도둑질해가죠. 그리고 그 피해는 소비자들이 보고, 소위 '발번역(오역의 멸칭)'에 대한 덤터기는 저처럼 무고한 번역자들이 뒤집어씁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최대한 읽는 데에 무리가 없으면서 정확한 표현으로 원작의 의도를 전달하려고 합니다만, 상술한 '자칭 번역가'들하고 경쟁을 해야 한다니 문자 그대로 눈물이 나고 뒷목이 땡깁니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데 좀 누워서 자야겠네요.
SiteOwner
2022-06-16 00:10:34
현업에 종사하시는 분의 시각에서는 난무하는 오역과 그것에 대한 반성도 시정도 없는 상황이 더욱 개탄스럽게 보이실 것입니다. 그 심정, 이해합니다. 번역은 인맥이다 운운하는 함량미달의 자칭 프로페셔널도 있고...고생하셨습니다.
요즘 이런 생각이 짙어집니다. 혹시 이 사회에 계층과 세대를 막론하고 언어생활에 무심한 그런 기조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부정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부정을 뒤엎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니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