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계의 여러가지가 선의로 시작했는데 그 결과가 정반대인 경우가 꽤 있어요.
사실, 이전에 포럼에서도 거론된 게 있어요. 제 글만 하더라도 19세기 코브라 퇴치정책의 실패를 생각하는 밤이라든지 로베스피에르의 우유라든지. 이번에 소개하는 건 그 반대의 사례가 되겠어요.
금주령 시대의 미국의 암흑가를 주름잡은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Al Capone, 1899-1947)는 33세인 1932년에 수감되기 전까지 7년간을 범죄단체의 수괴로서 악명을 떨쳤어요. 그런 그가 남긴 업적 중에 식품의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어요. 교통수단도 지금처럼 좋지 않은데다 위생관리의 수준도 형편없었던 당대에 의회에 로비를 해서 우유의 유통기한을 법제화하기까지 하죠. 그리고 그 이전에 밀조주 사업으로 다져 둔 생산라인의 관리, 유통망, 수송망 등을 금주법 시대가 황혼기를 맞이할 무렵에 낙농사업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한 것이죠. 그런 알 카포네가 선의를 갖고 그렇게 일한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결과적으로 알 카포네가 공급한 우유는 당대의 형편없는 품질로 식중독사고가 빈발했던 우유와는 차원이 달랐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21세기.
현재 러시아의 침략전쟁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에서 주목할만한 인물 중 페트로 포로셴코(Петро Порошенко, 1965년생)가 있어요. 그는 우크라이나의 제5대 대통령이자 우크라이나의 제과회사 로셴그룹(Roshen Group)의 창업주 겸 대표이기도 하죠. 사실 기업가로서의 커리어가 더 앞서고 정계입문은 1998년에 하였지만요.
그의 제과회사 로셴그룹은 그의 성씨 포로셴코의 로마자 표기인 Poroshenko의 가운데 부분을 딴 것. 게다가 그가 대통령직에 있었던 2014년에서 2019년 사이의 기간에도 여전히 그 기업의 수장으로 있었던 것이죠. 공직에 있는, 그것도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사기업체의 대표를 겸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상식적이죠. 게다가 그의 재임기간 중 우크라이나의 부패상은 여전히 심각했고 포로셴코의 사업파트너가 러시아의 군수물자를 상당히 부풀려진 금액으로 밀수입해 왔던 것도 큰 스캔들이 되기도 했어요. 그 사건의 여파 덕분에 그는 재선에 출마했지만 결국 정치풍자극 배우이자 방송기획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Володимир Зеленський, 1978년생)가 당선되면서 실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그의 로셴그룹은 여전히 승승장구했고, 연간 41만톤의 제과제품을 생산해서 연간 8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그리고 2017년에는 캔디 인더스트리(Candy Industry) 선정 2017년의 상위 100대 제과기업 중 24위를 기록하는 한편 포로셴코는 비록 재선 때 재산을 많이 쓰기는 했어도 우크라이나의 10대 부호 안에는 들어가는 듯해요.
그렇게 온갖 부정부패 스캔들로 축재했는데다 상당수 자산이 해외의 조세피난처에 있는 그이지만 그는 비난받고 있지 않아요. 그 또한 직접 총을 들고 침략군에 맞서 싸우는데다 막대히 쌓아둔 부가 우크라이나군의 전력강화에 쓰이고 있으니까요.
물론 좋은 결과를 낳기 위해서 꼭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부패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아야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겠죠.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의 우유같은 사례와 정반대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실재할 때 이것을 어떻게 보고 해석할 수 있는가는 충분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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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키
2022-10-26 23:48:49
마드리갈
2022-10-27 13:17:54
애국노라는 기묘한 표현이 생길 정도로 포로셴코의 행각이 참 놀랍기 그지없어요.
그리고, 마키님께서 인용하신 그 발언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핵심을 꿰고 있어요. 부정부패도 우크라이나가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그리고 뒤늦게 알려진 것이지만, 포로셴코가 대통령직에 있었을 때에 우크라이나군의 전투원 전술교리가 소련식에서 서방식으로 대거 전환되었다고 하죠. 그리고 전쟁 개전후 여러 나라에서 지원해 준 각종 무기 이외에도 포로셴코 본인이 자신의 사재로 사들인 개인화기가 우크라이나군의 기본무장으로 쓰이고 있고, 정말 대단하죠.
얼마 전에 재미있게 본 애니 중에서 천재왕자의 적자국가 재생술이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선 나트라 왕국의 웨인 왕자가 부왕의 타계로 16세에 나라를 물려받으면서 어떻게 하면 타국에 자국을 팔아먹고 그 돈으로 유유자적하게 잘 살까에 골몰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가 나라의 가치를 높여서 강대국에 잘 팔려고 획책한 것들이 뜻하지 않게 나라를 크게 잘 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그 웨인 왕자는 명실상부한 명군으로 성장하게 되기도 하죠. 이런 이야기가 창작물에만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현실의 우크라이나에 이런 일이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게 정말 놀라울 따름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