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제가 아는 유명한 만화가 중에서 여러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 미우라 켄타로(베르세르크) - 2021년 5월 6일
* 사이토 타카오(고르고13) - 2021년 9월 24일
* 타카하시 카즈키(유희왕) - 2022년 7월 4일 (사고사이므로 추정)
* 마츠모토 레이지(은하철도 999) - 2023년 2월 13일
* 이우영(검정 고무신) - 2023년 3월 11일
이제 또 한 명, 그것도 만국공통어 수준에 달하는 인기로 작가 이름까지 각인시킨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1955년 4월 5일 ~ 2024년 3월 1일)가 3월 1일에 사망했습니다. 가까운 친족들만 참석하여 장례를 치른 뒤에 어제(3월 8일) 발표됐기에 그만큼 사람들의 충격도 컸습니다.
솔직히 저는 드래곤볼이라는 작품은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지만 배틀물을 (다소 개연성 없는 밸런스 붕괴 때문에)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파생작들을 차치하고 원작만 읽는다 해도 그 방대한 세계관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래서 드래곤볼 팬들만큼 상심하거나 슬퍼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토리야마 아키라"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그 무게는 잘 알고 있습니다. 테즈카 오사무를 필두로 시작되어 '망가'나 '아니메'로 세상에 알려진 일본만화를 유지하는 데에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후 여러 명작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내실을 다져준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일본 만화가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뻔한 평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아는 선에서) 만화의 "상업성"을 가장 증명해보인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으론 위의 목록에서 적었듯이, 뭔가 한 시대가 확실히 저물어 간다는 느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위의 목록에서 실제로 읽고 내용을 아는 건 베르세르크와 고르고13밖에 없습니다만, 그래도 제 과거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건 슬픈 일입니다. 특히나 이들은 (아마 직업병이겠지만) 노환으로 죽은 게 아니라 돌연사나 병사한 경우가 많고, 그 병사도 사고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토리야마도 급성 경막하 혈종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졌고요. 그래서 더욱 충격이 큰 점도 있습니다. 물론 미우라 켄타로의 절친이자 역시 만화가였던 모리 코우지(홀리랜드, 자살도[정발명: 아일랜드] 등)의 감수하에 미우라의 어시스턴트들이 마저 완결내기로 한 베르세르크 같은 작품도 있습니다만, 원작자만큼의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아쉬운 거죠.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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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마키
2024-03-09 10:08:43
「"만화를 읽으면 바보 취급이나 당하던 시대"를 "남녀노소 누구나 만화를 읽는 시대"로 바꾼 존재」
오다 에이이치로, 추도문 중에서
원피스의 오다 에이이치로, 나루토의 키시모토 마사시, 투 러브 트러블의 야부키 켄타로 등 지금의 점프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하나같이 추도문에서 "선생님의 만화를 보며 '나도 해볼까?' 라는 용기를 얻어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회고하는 모습이 참 씁쓸했죠...
그만큼 토리야마 아키라 라는 이름이 만화 업계에서 얼마나 거대하고 위대한 존재였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되네요.
Lester
2024-03-10 10:09:38
무슨 분야든지 길을 닦아놓은 사람이 있어야 거기서 활약할 수 있는 법이죠. 그러기에 토리야마 아키라의 때이른 죽음은 수고 많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직 이르다는 생각도 들고... 복잡합니다.
SiteOwner
2024-03-09 17:32:07
이 보도,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드래곤볼과 닥터슬럼프를 기억하는 저로서는 특히, 토리야마 아키라가 벌써 이렇게 지병으로 고인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사이토 타카오나 마츠모토 레이지의 경우는 그나마 천수를 다했다고 할만한 레벨이지만 그래도 오늘날의 장수패턴으로 봤을 때는 아쉬움이 컸는데 말이지요...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Lester
2024-03-10 10:13:29
닥터슬럼프는 당시 더빙된 애니로 잠깐 보긴 했지만 더빙도 찰떡이고 꽤나 명작이었죠. 찾아보니 급성 결막하 혈종은 이름에서 보듯이 지병이라기보단 사고사 등의 원인으로 갑자기 생기는 병이라 더욱 아쉽기도 합니다. 이렇다보니 원피스의 오다 에이이치로나 헌터X헌터의 토가시 요시히로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마드리갈
2024-03-09 20:53:41
토리야마 아키라, 정말 만화계의 거성이었죠.
이런 거성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진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요. 게다가 아직 충분히 활동할 연령대인데, 지병이 있었고 그 지병으로 타계했다는 게 섬찟하게 느껴지고 있어요. 당장 지난달 말에 갑자기 전신마취 수술을 받고 한달 넘게 입원했다 보니 남의 일로 보이지 않고 있어요. 게다가 좋아하는 만화가 중에서 이누x보쿠 SS의 후지와라 코코아(藤原ここあ, 1983-2015)가 2015년에, 이국미로의 크로와제의 타케다 히나타(武田日向, 1978-2017)가 2017년에, 도쿄 뮤우뮤우의 이쿠미 미아(征海美亜, 1979-2022)가 2022년에 타계한 등 요절한 사례도 있고 하니...
게다가 오늘은 치비마루코쨩(ちびまる子ちゃん)의 주연캐릭터 성우 마루코의 성우 TARAKO(1960-2024)가 3월 4일에 타계했다는 뉴스도 보도되었어요. 연일 이렇게 비보가 쏟아지고 있어요.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어요.
Lester
2024-03-10 10:17:08
TARAKO라는 이름이 검색어 목록에 갑자기 뜨길래 누군가 했는데 치비마루코쨩(정발명 마루코는 아홉살)의 성우였군요. 생각해보니 만화는 물론이고 다른 분야에서도 돌아가신 분들이 적지 않겠네요.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한편으론 후발주자들이 고인에 버금가는 실력을 발휘해 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 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4-03-10 23:42:04
너무 갑자기 비보를 들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토리야마라면 좀더 오래 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쉽고,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힘듭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Lester
2024-03-11 03:19:31
만화가들이 대체로 같은 자리에 앉아 장시간 작업하다보니 특유의 직업병 같은 게 있더군요. 개발자나 번역가 같은 비슷한 직종에도 해당된다고 하고... 특히 열거한 셋 중에서 가장 마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행동의 자유도 별로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까 합니다. 그래서 저도 토리야마 정도라면 구름 위의 존재니까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유명한 사람은 그것대로 고생이 심하구나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