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김정은의 고모부로 사실상 북한의 2인자였던 장성택이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서 특이한 표현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왼새끼를 꼰다는, 접하기 힘든 표현이 있어서입니다.
북한의 어문정책의 특징 중의 하나로서 거론되는 것이, 김일성 일가에 대한 민망할 정도의 극존칭과 적대세력에 대한 험구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수식어입니다. 그래서 교과서에서조차 시정잡배들이나 입에 담을만한 야비한 욕설이 빈번이 등장하며, 동시에 빈곤한 어휘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역적패당, 반동분자 등의 단골 어휘들만 늘어놓는 이전의 보도를 접하다가, 예의 왼새끼를 꼰다는 표현을 접하니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참신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왼새끼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동물의 새끼가 아니라, 왼쪽으로 꼬는 새끼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포장, 결속 등의 실용적인 목적에 쓰는 것이 아니라, 주술적인 목적에 쓰입니다. 대표적인 용법으로는 출산한 집 대문 앞에 치는 금줄 같은 게 있겠습니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보기 힘들어져서 조선의 귀신 같은 학술서나 각종 민속학 자료에서나 접할 수 있지만요. 그래서 왼새끼를 꼰다는 말은 이 왼새끼의 용도로 미루어 볼때 모종의 주술적인 일을 꾸민다는 의미가 있다고 추정가능하며, 실제로도 용법 자체는 흔하지는 않지만 비아냥거림, 방해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용어는 위에서 보다시피 과거의 주술적인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 보니 미신, 주술 등의 영향력이 미미해질 정도로 약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생명력을 지니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장에 새끼줄을 꼬아서 쓰는 경우도 잘 없을 뿐더러, 왼쪽을 부정하게 보는 사고방식도 이미 구시대의 것이 되어가는 요즘에 이런 용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게 아무래도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저런 표현이 여전히 쓰이는 북한사회가 오랜 기간동안의 폐쇄성으로 인해 어문환경 자체가 크게 달라져 있는 사회라고 추정할 만한 유력한 근거가 될 듯 싶습니다.
오늘 접한 이 어휘는, 탈북자가 벤또라는 용어를 썼던 것만큼의 충격이기도 합니다. 이전까지는 북한에서는 도시락을 가리키는 용어로 곽밥이라는 말을 썼고 북한이 어문정책이 주체적이라는 것에 의심도 없었는데, 실제로는 곽밥과 벤또의 두 어휘가 각각 다른 용법으로 쓰인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북한의 어문정책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이 왼새끼라는 용어를 보면서, 전근대적인 주술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용어를 적대세력에 대한 험구에 동원하는 이러한 언어사용이 북한의 어문정책을 이해하는 데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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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RY
2013-12-13 19:49:11
사실 방송의 느낌만 봐도 느끼고 있던 사항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우리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방송에서 말하는 어투나 어감은 북한과 비슷하다고 느꼈는데(어휘사용이 과격하단 게 아니라 톤이나 어조가 비슷하다고) 현재에 이르어 과거에 비해 달라지고 변화하고 있는 남한에 비해 북한은 그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한 게 없지요.
SiteOwner
2013-12-13 20:35:30
그렇습니다. 북한에 변화가 없음이 여실히 보입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영상물이 HD로 촬영되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고 이전의 인물이 사라지는 것을 제외하면 사회가 아예 정체되어 있음이 한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여기에서는 사어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인데 북한에서는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상당히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마치 실러캔스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노동신문 같은 것을 3일치 읽어보면 이후는 동어반복만 무한히 있다는 게 보입니다. 그 생각도 납니다.
호랑이
2013-12-14 01:25:06
왼새끼를 꼰다는 표현은 커녕 새끼줄 자체도 보기 힘든 게 지금 우리 사회니까요. 전통문화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건 정말 안타까운데, 그건 북한이랑 상관없는 남한의 이야기니 여기서는 언급을 여기서 멈추고요.
북한은 7-80년대의 모습에서 멈춰 있는 모습이라고 판단됩니다. 아무리 북한 군대가 woodland 비슷한 위장무늬를 도입하고 PASGT 헬멧 카피품을 보급한다고 해도, 정작 북한의 삶은 과거의 찬란했던 광을 억지로 지속해내려는 모습. 그 이상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네요.
왼새끼를 꼰다는 표현이 엄정난 저주의 표현이였을 시기가, 남한에도 북한에도 분명 모두 있었을 거에요.
SiteOwner
2013-12-14 18:00:56
북한이 뭔가 하면 어설퍼 보이는 데에는, 사고방식이 이미 수십년 전에 머물러 있다 보니 억지로 과거의 향수에 기대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데에 큰 이유가 있을 듯 합니다. 소련으로부터 여러 문화적 영향을 받았을텐데, 선전물을 보면 대체 무엇을 만들려고 했는지를 알 수 없는 유치하기 짝없는 것들 뿐입니다. 2010년대에 만든 북한 영상물이 1945년에 나온 소련 전승기념회 영상의 발밑에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것도 역시 우연은 아닐 듯합니다.
아무래도 그럴 것입니다. 왼새끼를 꼰다는 말이 저주의 의미였을 때가 있을 듯한데, 일단 저는 전혀 접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사어가 되어버린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