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to content
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갑자기 생각난 기묘한 학부모 이야기

SiteOwner, 2015-11-10 22:40:26

조회 수
133

예전에 학원강사로 일할 때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때는 겨울방학 때라서 시간에 여유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학원 일 이외에도 개인교습을 다닐 기회도 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학부모가 제 연락처를 알고는 연락해 와서는 자신의 아들을 지도해 달라고 의뢰해 왔는데, 그게 한달동안의 소동의 시작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일단, 전화를 걸어온 중년부인을 만났습니다.

그 부인은 저에게는 인사 한 마디도 없이, 학생의 스케줄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 이걸 절대로 바꿀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상황에서 자기 아들의 성적을 올려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대화를 떠올려 보면, 학교의 교과과정 및 학사일정, 개인의 공부방식, 습관, 취미 등은 절대로 바꿔서는 안되는데 성적은 올려야겠다는 것으로 요약가능하겠군요. 비유하자면 마모된 타이어나 오염된 필터 등의 손상된 부품 등도 갈지 말고, 판금이나 도색, 청소 등도 없이 자동차를 말끔하게 수리해 달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상담이라고 할 여지는 전혀 없는 일방적인 장광설에 질려 있던 저는, 그런 경우의 해법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러면서도 돈 받고 학생을 가르치냐고 비난하다가 나중에 넋두리를 하는데,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셈 치고 좀 도와달라는 읍소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장이 난처하게 되어서, 결국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서 학생을 만났는데, 의외로 그 학생은 공부할 의욕이 꽤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등쌀에 밀려서 오히려 되는 공부가 망쳐지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를테면 시험 직전에 날이 새도록 깨어 있도록 어머니에게 강요당해서, 정작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쳐야 할 시험당일에 기진맥진해서 시험을 망친다든지 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든지 하는 식이었지요. 그래서 학생을 봐서 이 일을 해야겠다는 결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터졌습니다.

저의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든지, 아들의 성적표와 과거 시험지는 왜 들춰봐서 상처를 주려 하는 거냐고 따지는 등등...

관련서류를 보여줘도 못 믿으니 대학의 행정실에 문의를 해야겠다고 하길래, 어차피 행정실이 그런 요구에 응하지 않으니 전화해 보라고 응대했습니다. 그러더니 학생의 자존심 어쩌고 하였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어떻게 학생에 맞는 교수법을 구사하느냐고 응대하니 이제 알았으니 그만하자고 합니다.


결국 그렇게 시작한 개인지도는 1달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유인즉, 아들이 공부에 흥미를 갖고 열심히 공부하게는 되었는데, 좀 반항적으로 된 것 같아서 건방져서 저에게 지도를 맡길 수 없다고 합니다. 저는 신세를 많이 졌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 중년부인은 무슨 생각으로 저에게 개인지도를 의뢰했던 걸까요?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따라 그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하필이면 만난 사람이 그때의 그 학부모같아서였는지.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대왕고래

2015-11-11 00:41:06

나무는 클 준비가 되어있는데, 정원사가 너무 손을 대는 느낌이네요.

전 정원일은 해본적도 없지만 딱 봐도 이건 아닌데...싶은 기분이 들어요.

부모가 너무 자식에게 손을 대도 문제에요. 확실히. 

지금은 저 학생이 잘 하고 있으련지 모르겠네요.

SiteOwner

2015-11-11 20:46:41

그 비유가 딱 맞습니다.

이 사례 정도 되면,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안 되는 방향으로 가도 좋으니까 자기 의지대로만 움직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결과적으로는 부모가 자녀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니까 좋을 리가 없지요.


이게 10년 정도 된 일이니 지금은 그 학생이, 살아 있다면,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겠지요. 그 뒤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그 학생이 성장해서 자주적인 삶을 살고 있기만을 기원할 뿐입니다.

Board Menu

목록

Page 185 / 295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단시간의 게시물 연속등록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SiteOwner 2024-09-06 167
공지

[사정변경] 보안서버 도입은 일단 보류합니다

SiteOwner 2024-03-28 172
공지

타 커뮤니티 언급에 대한 규제안내

SiteOwner 2024-03-05 189
공지

2023년 국내외 주요 사건을 돌아볼까요? 작성중

10
마드리갈 2023-12-30 360
공지

코로나19 관련사항 요약안내

612
마드리갈 2020-02-20 3863
공지

설문조사를 추가하는 방법 해설

2
  • file
마드리갈 2018-07-02 1001
공지

각종 공지 및 가입안내사항 (2016년 10월 갱신)

2
SiteOwner 2013-08-14 5972
공지

문체, 어휘 등에 관한 권장사항

하네카와츠바사 2013-07-08 6594
공지

오류보고 접수창구

107
마드리갈 2013-02-25 12086
2214

오늘 첫눈이 왔지요.

3
탈다림알라라크 2015-11-26 128
2213

오늘 논문을 제출하고 왔습니다+α

2
탈다림알라라크 2015-11-25 118
2212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든 생각

2
하네카와츠바사 2015-11-24 186
2211

요즘 잠이 좀 많아진 느낌입니다.

3
탈다림알라라크 2015-11-23 125
2210

어째 일이 묘하게 꼬이는 기분입니다.

9
  • file
조커 2015-11-22 247
2209

오랜만이에요.

4
YANA 2015-11-21 144
2208

논문 발표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5
탈다림알라라크 2015-11-20 136
2207

전일본공수의 1976, 1979, 1988, 2011.,2015년 광고

2
B777-300ER 2015-11-19 171
2206

[상황종료] 정신없던 주간 그리고 휴식

8
마드리갈 2015-11-18 164
2205

몇가지 이야기

8
마시멜로군 2015-11-18 169
2204

논문 요약본 작성은 생각보다 시간이 잘 안 갑니다.

3
탈다림알라라크 2015-11-17 143
2203

생일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4
Lester 2015-11-16 143
2202

새벽 그리고 일본드라마 관련의 짧은 이야기

8
마드리갈 2015-11-15 431
2201

오늘 날씨는 참 묘하군요...

3
탈다림알라라크 2015-11-14 139
2200

어제 대학원에 합격을 했습니다.

8
대왕고래 2015-11-13 160
2199

이게 무슨 기묘한 꿈일까요:(

8
조커 2015-11-13 219
2198

닉네임 변경 신고+근황

3
탈다림알라라크 2015-11-12 129
2197

남고생의 일상

4
마시멜로군 2015-11-11 237
2196

오늘 갑자기 생각난 기묘한 학부모 이야기

2
SiteOwner 2015-11-10 133
2195

2차대전을 모티브로 한 작품중 특이한 것..

5
  • file
조커 2015-11-09 236

Polyphonic World Forum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