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 최근 제 “여성 캐릭터 관(觀)”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 국내 작품들, 그 중에서도 트렌디 드라마들에 나오는 일부 여성 캐릭터들 때문이죠. “귀엽고 발랄하지만 억척스러운 면도 있고 당찬 여성”이라는 컨셉의 캐릭터들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무례하게 행동하고 생각 없이 말하는 민폐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히 시리즈”의 “스즈미야 하루히”나 “제로의 사역마” 초기의 “루이즈 프랑소와즈 르 블랑 드 라 발리에르”를 연상시킬 정도였죠. 그런데 저희 어머니나 해당 작품의 주 소비자층은 그런 캐릭터들을 컨셉 그대로 인식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관점 차이를 보니 어쩌면 제 자신의 생각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 “너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으로 작품을 만들어라”라는 말을 늘 마음 속에 담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소재가 몇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쓰지 않으려고 피해버리더군요. 하지만 이를 고치자니 왜 해당 소재를 피하는지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고민됩니다. 마음 속에 둔 방침에 예외를 두어야 하는 지, 아니면 역시 마음 속에 정한 방침을 따르는 것이 옳을 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3. 예전에 “왜 옛날 애니는 좋았는데 요즘 애니는 별로일까?”라는 2ch 쓰레드의 번역을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공감했던 코멘트(쓰레드에 달린 글도 이렇게 부르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가 둘 있었죠. 하나는 “그야 별로인 옛날 애니는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지니까.” 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런 얘기하는 애들은 정작 요즘 애니가 뭐 나오는 지도 모르더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볼 당시에도 상당히 공감하던 코멘트들이었습니다만, 최근 인터넷에 나도는 어떤 글과 해당 글에 달리는 덧글들을 보면서 저 중 두 번째 코멘트가 계속해서 떠오르더군요.
해당 글은 2015년 10월 신작 애니메이션인 “낙제 기사의 영웅담”과 “학전도시 애스터리스크”의 비교 글입니다. 해당 글은 두 작품의 1화 내용이 굉장히 유사하다며 “양산형”이라고 까는 내용이죠. 실제로 둘의 도입부는 상당히 비슷해요. 저 역시 인정합니다. 다만, 그 둘이 같은 판형의 양산형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힘들어 보이더군요. 초반에 주인공과 히로인의 만남은 비슷한 전개지만 캐릭터 설정, 작품의 주제, 캐릭터들간의 관계도 등 이야기 대부분이 딴판이거든요. 당장 애스터리스크의 주인공인 “아마기리 아야토”는 봉인이 걸려서 약해진 상태에서도 세계관 상위권 강자인 반면, 낙제기사의 주인공인 “쿠로가네 잇키”의 경우, 도핑기 빼면 쓸 수 있는 기술도 없이 노력으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경지에 오른 캐릭터입니다. 이 둘이 비슷하다고 하는 건 소년 만화 “나루토”의 “우치하 마다라”와 “마이트 가이”가 비슷한 캐릭터라고 말하는 꼴이겠죠. 거기에 “학전도시 애스터리스크”는 다수의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반하는 내용이 나오는 “하렘물”인 반면 “낙제기사의 영웅담”의 경우 메인 히로인 일직선이라는 것도 다른 점입니다.
이런 사실과 관계없이 해당 글에 달린 코멘트들은 전부 “양산형 하렘물이 다 그렇지. 아~옛날 애니는 좋았는데 요즘 애니는 다 이래요.”라는 발언투성이더군요. 과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요즘 신작 애니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궁금해지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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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16-03-21 16:29:04
캐릭터를 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따라서 보수적인 선택지도 충분히 존재해요. 그리고 보수적이라고 해서 그게 지양되어야 할 것도 아닌 건 분명하죠. 게다가 중론이 옳다는 보장도 없어요. 예의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우, 저도 무례와 예측불허의 언행으로 점철된 민폐형 캐릭터라고 보고 있어요.
옛날 애니는 좋았는데 요즘 애니는 그렇다는 판단은 상당부분 추억보정 및 현재의 애니에 대한 편견에 찬 부당한 평가절하일 거예요. 사실 어떤 건 다 그렇다라고 싸잡아 말하는 사람 치고 그 분야에 제대로 아는 경우는 없어요.
다른 장르의 컨텐츠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봐 왔는데 놀라울 정도로 유형이 유사하더라구요. 클래식 음악은 재미없다, 일본 여자성우는 목소리가 다 거기서 거기다, 일본 애니나 게임 등의 캐릭터 일러스트는 다 똑같다, 중동 음악은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시키는 그런 음악뿐이다 등의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이 정작 그 분야에 대해서 알고 말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그리고 추궁하면 마지못해 나오는 대답 중에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 많기도 했어요.
Papillon
2016-03-21 19:33:25
사실 무언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면 의외로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히 뻗어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다 비슷비슷하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그것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다 비슷비슷하다"라고 판단하고는 하죠. 씁쓸할 따름입니다.
SiteOwner
2016-03-22 17:25:25
창작물에 다양한 유형의 캐릭터가 있지만, 그것이 두루 인기를 끌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말씀하신 민폐녀 캐릭터는 누군가에게는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어서 보면 속이 시원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전혀 반갑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창작물 제작자들의 캐릭터 설정이 항상 의도대로만 해석되는 것도 아니라서, 최소한 보는 사람의 수만큼의 다른 해석도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Papillon님의 시각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 있으면 저런 관점도 존재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틈나는대로 메모를 해 두고 있습니다만 제대로 이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창작자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인가 봅니다.
오래전에 접했던 컨텐츠를 다시 감상하면, 크게 두 가지로 반응이 나뉘어집니다. 하나는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다, 다른 하나는 정말 이게 예전에 즐겼던 것이었나 하는 반응. 세상의 모든 것은 바뀌기 마련이고, 자신의 정신적인 능력과 범위도 그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옛날 애니는 좋았는데 요즘 것은 다 이렇다는 말은 자신의 정신적인 능력과 범위가 정체되어 있음을 자인한 자충수인 동시에, 컨텐츠에 대한 생각의 편협함을 노정하는 어리석음을 폭로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Papillon
2016-03-23 02:48:38
쓰지 않고 있는 소재는 말씀하신 것처럼 모종의 이유로 이어가지 못하는 것들도 있지만, 저의 경우 대부분 "이런 소재를 쓰면 수위를 넘겨버리지 않을까?" 싶은 소재들이에요. "슬래셔 호러 영화", "가면라이더를 필두로 한 특촬 히어로", "일본산 이능력 배틀물", "다크 판타지 성향이 강한 일본산 19금 게임"…… 이 넷이 제가 창작 쪽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군들입니다. 이 중 호러 영화와 19금 게임에 영향을 받는 내용들을 제법 집어넣으려다가 "어, 그런데 이래도 괜찮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브레이크를 넣어버리더군요. 개인적인 창작관으로는 이런 브레이크를 무시하는 것이 옳지만……어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