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매스미디어에서 쓰는 말 중에 이상한 것을 꼽자면 그 사례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의료, 보건 관련 용어에 한정하자면 제목에서 언급한 두 단어인 필로폰, 그리고 희귀병을 바로 거론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은 필로폰부터 보겠습니다.
필로폰이란, 1941년부터 대일본제약이 제조하여 일본 내에서 판매개시한 메스암페타민 각성제의 상품명입니다. 로마자로는 Philopon, 카타카나로는 ヒロポン이라고 쓰고 있으며, 필로폰은 그 중 로마자 표기를 읽은 것입니다. 과거에는 국내 언론에서 일본어 발음 히로뽕을 사용해 왔지만 20세기말부터인가 필로폰으로 고쳐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다른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해서는 성분명을 말하면서 유독 그것만 일본어 발음의 히로뽕을 다른 표기방식으로 바꿔 부르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과문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히로뽕을 필로폰으로 바꿔 읽어봤자 그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최소한 저는 이해할 수 없군요.
그리고 또 하나.
희귀병이라는 말 또한 괴이하기 짝없습니다.
稀貴라는 말은 드물고 가치가 높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병에 귀하고 천하다는 개념이 어디에 어떻게 적용된다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어표현은 Rare Disease, 일본어표현은 希少疾患으로, 드물게 나타나는다는 개념만 존재하지 귀하다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대체 누가 무슨 의도로 이런 표현을 한국어에 정착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말인데다 사족인 것은 물론이고 기분까지 나빠집니다. 귀한 병에 걸렸으니 그 병을 앓으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귀한 연구성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이런 용어는 안 쓰였으면 하는데,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비판조차 없는지, 잘못된 용어가 계속 범람하고 있습니다.
일단 사회 전체가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드니, 최소한 포럼에서만큼은 이렇게 무의미하거나 잘못된 용어가 안 쓰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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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N
2017-09-20 02:52:18
희귀병이라는 말은 아마 rare를 그대로 '희귀'로 일괄 번역해서 생기는 문제 같아 보이네요. 게다가 보통 '희귀'와 '희소'는 뜻이 대강 통하는 점이 있다 보니 혼동이 생겨서, 이것처럼 '희소'는 괜찮지만 '희귀'로 쓰면 이상한 경우에도 전부 희귀로 쓰다가 굳어져 버린 듯합니다.
SiteOwner
2017-09-20 17:28:58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괄번역한다는 데에서 비판적인 사고력의 부족이 여실히 보여서 한숨을 안 내쉴 수가 없군요. 발생확률이나 사례가 적은 것과, 그것이 높은 가치를 지녀 귀하게 여겨지는지는 분명 다른 문제인데 이것을 섞은 데에서 이미 비판적 사고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례가 생각납니다. 하늘하늘 난다는 표현을 영역했는데 이게 sky sky로 번역된 것.
HNRY
2017-09-20 07:12:40
히로뽕은 아마 그 일본어적인 표기를 고친다는 명분+메스암페타민이라는 긴 표기보다는 간단하기에 고친 게 아닐까 싶네요. 한편으로 원 표기인 히로뽕은 그 어감이 착 감기는 것인지 그 상표의 줄임말인 "뽕", 해당 약을 복용한다는 뜻의 "뽕맞다" 가 각종 수식어가 붙으며 광의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기도 하죠. (ex 국뽕)
희귀는 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원 뜻과 별개로 일괄 번역 과정의 오류가 고착되는 점, 거기에 한글전용표기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자 및 한자표기의 구체적인 뜻에 관한 무관심이 겹쳐지며 이런 표기가 고착된 것이겠죠.
그러고 보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예 한자 표기 자체를 모르는 사례도 있더군요. 언론이나 그런 권위가 있는 곳은 아닌 이런저런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거기서 희귀를 晞龜라고 적어놨던데 글쓴이가 말하길 국어사전에 마른 사막에 거북을 찾는 것처럼 진귀하다라고 나와있었다 주장하나 자주 찾아보는 사전에 그런 표기는 없더군요. 정말로 그런 국어사전이 있다면 그 사전이 얼마나 엉망일진 불보듯 뻔하겠지만.
SiteOwner
2017-09-20 17:38:13
그렇다면 정말 안이한 발상으로 대체표현이 만들어진 것이군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쓰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쓰는 태도가 일상화되어 있는 게 정말 심각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전에 쓴 글인 뜻모르고 쓰인 말에의 떨떠름한 기억, 왕따, 방사포, 그리고 유커 - 중심을 잃은 한국어-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사태가 이어져도 좀처럼 바로잡힐줄 모르는 것 같아 보입니다.
晞龜...솔직히 저거 보고 뒷목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