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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구스라는 동물은 여러모로 기묘한 면모로 잘 알려져 있어요. 이를테면, 위험하기 짝없는 대형 독사인 코브라를 잡아 먹는다든지, 압도적으로 크고 강한 사자에 대해 온갖 발악으로 대적한다든지 하는 것들.
지난 주말에 TV에서 자연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는데, 그 몽구스가 사자떼들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잘 나왔어요. 진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사자의 코끝에서 캬악대는 것을 보니, 사자라고 해도 겁이 안 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몽구스와 사자가 정면대결을 하면 몽구스가 상대도 안 되는 것은 명약관화. 실제로 그 다큐멘터리서도, 사자가 앞발로 몽구스의 머리를 내려치니까 몽구스는 혼비백산해서 굴 속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어요. 만일 거기서 한방 더 맞으면 다음날은 전혀 오지 않겠지만요.
그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의문이 하나 떠올랐네요.
만일 몽구스가 저렇게까지 아득바득 발악하지 않는다면, 과연 몽구스는 사바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나무늘보같이 행동 자체가 느려서 물에서 가까운 밀림 환경에 의존하거나, 천산갑같이 단단한 비늘로 덮인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외부의 위협에서 몸을 방어하거나, 호저처럼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다수 있어서 적의 접근 자체를 거부하는 등의 유리한 특성을 몽구스는 처음부터 갖고 있지는 못해요. 그렇지만,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맹수라 할지라도 몸에 상처가 나서 곪게 되면 곧 죽을 수밖에 없는데다 몽구스는 그것을 노리고 사자에 대적하니까, 사자가 정말 미쳐서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몽구스를 모두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싸우지 않는 한은 그렇게 위험한데다 이겨봤자 별 이득도 없는 싸움은 하려 들지 않겠죠. 그러니 사자도 몽구스도 사바나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이러한 현상을 보고 쓴 것은 아니겠지만, 스위스의 법학자 드 바텔(Emer de Vattel, 1712-1769)은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체제로 확립된 주권평등원칙을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거인이나 난쟁이나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이듯, 小共和国도 가장 강력한 王国과 마찬가지로 主権国家이다.A dwarf is as much as a man as a giant; a small republic is no less than a sovereign state than the most powerful kingdom.(김대순 著 국제법론 330페이지에서 인용)
대개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기에 이 경구가 마냥 허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반문도 있을만해요. 하지만 과연 그렇게만 할까요?
일단, 힘의 논리에서 말하는 힘의 함의를 좀 더 살펴봐야 하겠죠.
여기서 말하는 힘은 꼭 중후장대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즉 인구, 국토면적, 각종 자원의 축적량, 연간 국내총생산, 군비, 상비군의 인원수나 주요 군장비의 운용규모 등도 힘이지만, 이것만이 전부인 것은 아닌 것이죠. 침략의 대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침략을 단념시키게 하는 것 또한 힘이고, 그것은 군사력, 외교관계 등 여러 변수로 결정되는 억지력(Deterrence)으로도 부를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중요한 것이예요.
다시 앞의 몽구스와 사자의 이야기로.
몽구스는 다른 동물처럼 서식처가 생존에 우호적이지도 않으며 확실한 신체적 이점도 가지지는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사자라도 몸에 자상을 입어서 병에 걸리면 죽으니까 그것을 노리고 달려드는 몽구스를 껄끄러워하고 적극적으로 싸우지는 않고 있고, 이것은 몽구스가 사자를 향해 발악을 하니까 가능해지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몽구스가 가진 억지력.
그리고 이것이 몇몇 사례로도 드러나고 있어요.
일단 20세기 역사에서만 보더라도 사례는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첫째는 스위스. 마침 드 바텔의 조국이기도 한 나라네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독일은 유럽 전토를 집어삼킬듯 그 위세를 뻗어나갔지만, 스위스는 예외였어요. 어차피 스위스는 자원이라고 할 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 자리잡은 나라이다 보니 정벌해 봤자 얻을 것은 없고, 무장중립원칙을 견지하고 있는데다 실제로 보유 군사력 또한 상당히 강해서 나치독일이 큰 희생을 치르고도 점령하려면 할 수는 있었겠지만 얻을 것은 사실상 없는데 잃을 것만 잔뜩 예약된 상황이었어요. 그러니 스위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무사할 수 있었어요.
둘째는 대만의 금문도(金門島).
금문도는 중국 대륙연안에 인접한 면적 152제곱km 미만의 작은 섬이고, 중국이 1954년에서 1955년에 걸쳐 제1차, 1958년에 제2차 대만해협사태를 촉발하였어요. 이 과정에서 금문도에 대량의 포격이 가해지기도 했지만, 결국 금문도를 손에 넣지는 못했어요. 미국이 중국에 대해 금문도에 계속 손을 뻗치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개경고하기도 하였고, 대만이 갖은 협박에도 중국의 끈질긴 공격을 버티면서 방어에 성공했으니까요. 물론 대국굴기를 표방하며 노골적인 세력팽창을 시사하는 현재에도 여전히 금문도는 대만의 땅으로 존속해 있어요.
셋째는 중월전쟁 직후의 베트남.
1979년에 일어난 중월전쟁은 중국이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을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베트남을 침공한 것으로, 당시 소련은 중국과의 국경분쟁 및 아프가니스탄 정국불안 문제 등으로 베트남을 지원한 처지가 못 되었다 보니 중국이 이것을 노리기도 한 것이었어요. 중국은 베트남과의 국경지대 일부분을 손에 넣었을 뿐 의외로 큰 피해를 입고 조기철군해야 했어요. 일단 추산되는 중국측 피해는 전사자 3만명 내외. 게다가 상대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및 프랑스군을 상대로 실전경험이 많았는데다 최신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였고 수도 함락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임했던 베트남군.
이 사례는 외교관계의 중요성과, 국가의 외형적인 크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어요.
요즘 한중관계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전 이렇게 보고 있어요.
사실, 전 한국과 중국이 외교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든지 양국민이 서로를 보고 테러를 해야 할만큼 극단주의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실제로 그런 상황은 끔찍하기만 할 뿐이니까요.
하지만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겠어요.
지금같이 중국이 공공연한 침략노선을 노정하고 우리나라가 그 중국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되어도 안된다고 보고 있어요.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중국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억지력을 갖추는 것. 이것은 결코 거창한 데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외교원칙 및 원칙에 맞는 공정한 법집행에 달려 있어요. 이것을 정치권이 알고 실천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몽구스의 생존전략 및 이미 18세기 법학자가 말한 작은 공화국이든 큰 왕국이든간에 모두가 주권국가라는 경구에 대해서 그렇게 귀기울이기가 싫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 평범한 소시민인 저조차도 우려가 안 들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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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17-12-30 00:58:38
나라와 나라간의 관계는 대등한 것이 이상적이지, 한쪽이 질질 끌려다니는 형태는 되어서는 안 되겠죠.
한중관계에 대해서 상세히는 모르지만, 어느 외교든 우리나라가 을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거에요.
마드리갈
2017-12-30 01:53:19
그럼요. 국가간의 관계가 국력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대등하지 않으면 곤란해요. 이 원칙을 버리게 되면, 계속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고,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을 때에는 목숨까지 내어줘야 하는 것이니까요. 이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요. 당장 한국사에서 병자호란 이전에 중국의 역대 왕조에 대해 조공관계하에서 자주국임을 유지한 것과 병자호란 때 청에 항복한 것이 어떤 차이를 만들었는지를 비교해 보면 이것은 금방 보여요. 그 병자호란 때의 항복이 19세기 후반 한반도의 열강 각축전화, 그리고 20세기 전반 일본의 식민지로의 전락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우리나라는 한중관계에 대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그 흔한 역사문제조차도 중국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제기하지 못하니까요. 을 정도도 아니고, 병, 정, 무 등이 되려고 작정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