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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서의 고질병: 성격과 역할

Lester, 2018-05-22 17:30:50

조회 수
260

아트홀에 Cosmopolitan이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만, 주조연들이 정리되지 않아서 그런지 좀 지지부진하네요. 일단은 작품의 대주제 없이 옴니버스 체제로 가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주조연이 튼튼해야 합니다. 예전에 라이트 노벨을 연구한 서적(제목은 또 까먹었습니다)을 읽고 감명깊은(?) 문장이 있었는데, "라이트 노벨의 주인공은 어디에 던져 놓더라도 그 개성을 유지한다"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라이트 노벨만이 아니라 옴니버스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옴니버스 특성상 전개 방향이 휙휙 바뀌더라도 주인공 일행은 그걸 무리없이 헤쳐나가기 때문이죠.


다만 문제는 성격과 역할의 선후관계(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네요)를 따지는 것입니다. 예전에 팬픽을 주로 썼을 때는 이미 (성격이) 완성된 원작의 캐릭터를 적재적소(역할)에 배치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오리지널 캐릭터를 넣는다고 해도 원작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적당히 만들었고요. 그런데 저만의 작품을 쓰려고 하다 보니 두 가지 모두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 역할과 캐릭터는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옵니다만 막상 성격을 부여하는 게 너무 힘들단 말이죠. 설령 성격부터 형성하려고 해도 가능성이 너무 많아서 딱 하나를 잡기 힘들고요.


그래서 대안책(?)이라고 생각해 낸 것이, '일단 선악부터 구분하자'입니다. 뭐 행복이 항상 선하진 않고 분노가 항상 악한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동기(혹은 천성)가 애초부터 선하거나 악했다면 무슨 감정을 품더라도 해명이 될 테니까요. 그렇게 선악이 명확하게 표시되면 국어 시간에 배웠던 평면적 인물이 되고, 그때그때 다르면 입체적 인물이 되는 거죠. 지금은 여기저기서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평면적 인물상만 만들고 예외를 추가할 생각입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구상 결과를 나열해 보자면...

?- 레스터 리(선인?) : 남들을 대신해 손을 더럽힌다는 숭고한(?) 목적을 품고 있지만, 결과적으론 악을 저지르기에 선인이라 보기는 힘들다. 그걸 또 당당하게 말하진 못하고 속으로만 감추는 인물.

?- 존 휘태커(악인?) : 역시 남들을 대신해 손을 더럽히지만, 그것을 굳이 포장하지도 비하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인물. 철저히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만 움직이기에 정확한 '동기'는 알 수 없다.

?- 키아라 토(선인) : 삼합회 소속 정보원. 존을 비롯한 사람들의 관심이나 호감을 끌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악행에 대해선 별다른 자각이 없다.

?- 율리시즈 블레싱턴(악인) : TCPD 소속 경찰. 출세지향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존 일행을 비롯한 범죄자들이 서로 싸워 자신이 공을 세울 기회를 '만들어내기'를 원하고 있다.


확실히, 포지션을 미리 정해두고 구상하니까 제법 쉽게 풀리네요. 어쩌다보니 자문자답이 되어버렸습니다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거나 노트에다 적당히 끄적이는 것보다 이렇게 일일이 풀어내니 더 쉽게 해결되어 다행입니다.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12 댓글

마키

2018-05-22 20:43:52

입체적인 캐릭터... 라는게 보기엔 재밌고 매혹적이지만 막상 창작자의 입장에서 다루기엔 상당히 골치아픈 캐릭터죠.


가령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는 독자가 보기엔 1권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부터 그냥 "권위로 짓누르는 선생" 타입의 악역 캐릭터로밖엔 도저히 비춰지지 않는 인물이었다보니, 6권에서의 대반전이 제대로 먹혀들 수 있었죠. 그가 첫 등장하는 1권 마법사의 돌 에서부터 6권 "혼혈 왕자" 까지를 다시 읽어보며 그의 행적과 인간관계를 되짚어보면 그때서야 그 단 한 장면, 단 한 마디(Always...)를 위해 롤링이 얼마나 섬세하고 꼼꼼하게 모든 복선을 배치해놨는지를 이해할 수 있죠.


또 ONE 원작, 무라타 료스케 리메이크의 "원펀맨"의 주인공 "사이타마"만 봐도 보통 이런 세계관 최강자 타입의 캐릭터는 힘에 도취한 괴팍한 성격이거나, 혹은 그런게 있다 정도로 은연중에 언급만 되는 캐릭터(슬레이어즈 라든지)로 다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막상 사이타마는 세계관 최강자이면서도 역으로 그것때문에 너무나도 강한 나머지 전투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너무나도 강해진 자신을 비관하는 (당장 1권 프롤로그에서부터 나오는 대사가 "제기라아아아아알!! 한 방에 끝장내버렸다!!")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로 다루어지죠.


그리고 이런 사이타마를 기둥삼아 그의 강함을 보고 제자를 자처했지만 점차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고 섬기게 되는 제자이자 후베 "제노스"를 필두로 다양한 인간관계가 맺어지고, 또 그렇게 맺어진 캐릭터들이 각자의 캐릭터성을 어필하는 만화로 그려지죠.

Lester

2018-05-22 23:11:30

한편 실패한 걸로 악명높은 사례로는, 멀리 갈 것 없이"명탐정 코난"의 '하이바라 아이'가 있네요. 처음엔 냉소적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비관하는 캐릭터였는데, 점점 마음을 여는 묘사가 나와서 정말 매력적이다 싶었고 독자들마다 칭송(?)이 가득했죠. 하지만 그 모든 칭송이 영원하진 못했습니다. 급작스러운 변화로 인해서...

마드리갈

2018-05-23 13:48:47

창작과정에서 캐릭터의 노선 및 위상을 정해두는 것, 중요하죠.

게다가 그 캐릭터는 꼭 개별 인물이 아니더라도 좋아요. 이를테면, 국가가 능동적인 행위자이고 개인,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기구), 다국적기업 등의 다른 행위자의 역할이 제한적인 현실세계의 경우 국가를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들의 세계인 제1세계, 사회주의 영향하에 놓여 있는 제2세계, 그 밖의 세계인 제3세계로 분류해 둘 수 있어요. 말씀하신 선역/악역에의 배치도 규모와 범주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다르지 않아요.


어차피 선악이 명백히 나누어지는 것도 아니고 중첩된 부분이 전혀 없다고도 단언할 수도 없죠. 그러니 행위자의 속성이 입체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상당부분은 필연적일 거예요.

Lester

2018-05-24 16:45:17

인물이야 입체적일 수 있지만 집단이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경찰을 비롯한 정의가 '눈이 멀어서' 맹목적으로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범죄자를 비롯한 악의 순기능이라...?

마드리갈

2018-05-24 18:07:58

집단이라도 충분히 입체적일 수가 있어요. 주변 환경이 바뀌거나 목표가 바뀌면 이전과는 상반되거나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대표적인 경우가 19세기에서 20세기의 영국. 청에 대해서는 19세기 전반에는 아편전쟁을 일으켰지만 후반에는 청의 전쟁수행에 자금을 대부하는가 하면, 프랑스와의 적대적이었지만 1904년에 앙탕트 코디알(Entente Cordiale)을 체결하여 프랑스와의 동맹관계를 수립하여 양차대전에서 계속 같은 진영에 속하고 있고, 독일과는 인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수립하고 있었지만 여성이 하노버 대공의 지위를 계승할 수 없었기에 빅토리아 여왕은 하노버 왕조의 군주였지만 하노버 대공의 지위는 계승하지 못했는데다 국익의 첨예한 대립 끝에 끝내 적으로 돌아섰고, 반역자인 미국과는 1895년부터 추진된 대화해(The Great Rapprochement) 기조로 동맹관계를 수립하는 등 변화무쌍한 행보를 보였어요. 러시아와는 첨예하게 대립한 영국이지만 의외로 냉전기에는 소련에 비교적 우호적이기도 해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자유진영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영국이 참여하기도 했어요. 국가 단위로도 충분히 이렇게 입체적일 수 있는데 그 하위 단체가 입체적이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근거는 과연 있을까요?


슬럼가의 자경단 같은 것은 충분히 악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자경단이 필요한 상황 자체가 위법의 횡행 그 자체를 보여줌은 물론 그 사회 자체의 문제점을 노정하는 것이지만 그 슬럼가 내부의 거주자들은 그 자경단의 존재 덕분에 안전한 생활이라는 편익을 누리게 되거든요. 그러니,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악의 순기능이라는 개념은 충분히 실현될 수 있어요.

마키

2018-05-24 20:03:57

흔히 범죄의 온상으로 떠올리곤 했던 라스베이거스도 의외로 치안 자체는 제법 안정된 편이었다고 하죠.


도시의 일정 구역을 본거지(속된 말로 나와바리)로 삼는 마피아들 입장에서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단 돈 벌기 위한?사업장이고, 또 마피아라는 직업 자체가 근본적으로 떳떳한 직업은 아니다보니 적대 조직이 있다 한들 피차 서로 경찰과 대면하기 껄끄러운건 마찬가지죠. 이때문에?가능하다면 서로 싸움을 회피하고 어지간한?소란은?묵인하고 하면서 마피아 쪽에서 먼저 군소리 안 나오게 치안 단속을 했다보니 의외로 거주민들 입장에선 그럭저럭 살만한 환경이 조성됐었다고 그러죠.


마피아 라는 직업 자체는 부정적이지만, 도리어 그런 마피아의 존재 덕분에 치안이 유지되었던 라스베이거스의 사례 또한 악의 순기능이겠죠.

Lester

2018-05-27 00:49:48

CSI 소설 시리즈 중에 라스베이거스에 관해서 그런 말이 나오죠. "밥 먹는 데에서는 똥 안 싸는 법이다"라고(…). 너무 게임을 참고로 삼아서 그런지, 범죄집단도 외적인 이미지를 생각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네요.

Lester

2018-05-27 00:48:32

물론 말씀하셨듯이 집단이 하나의 개체처럼 입체적으로 행동할 수는 있지만, 제가 의미했던 부분은 '크기가 거대한 집단일수록 결정을 내리고 입장을 정하는 것이 빠를까?'였습니다. 개인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만큼 집단도 그럴 것이고, 더구나 집단이니만큼 결정을 내리려면 엄청난 충돌을 겪어야겠죠. 결국 모두가 동의하는 결정을 내리느냐, 반발자들이 이탈하느냐 둘 중 하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긴, 남미 카르텔 같은 경우도 이미지를 세탁하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정부가 못하는 복지사업(?)을 하고 있죠. 다만 이 경우는 선보다 악이 너무 커서 옹호할 수 없지만요. 이 선악의 균형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과연 이들을 무조건 욕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SiteOwner

2018-05-23 18:01:06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도출해 내는 것 또한 좋은 창작과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는 과정은 Lester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에게도 유용할 것입니다. 사실 자문자답이라는 게 누구나 다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렇게 자문자답이 전개되는 방식 또한 좋은 참고자료가 되기 마련입니다.


팬픽과 오리지널은 그래서 난이도 차이가 엄청나게 납니다. 외생변수에 맞춰서 만드는 것 그 자체도 어렵지만 그 변수들을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Lester

2018-05-24 16:46:40

제 글이 다른 분들에게 유용할 수도 있다니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어쨌든 변수를 떠나서 세계관을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 큰 부담거리네요. 팬픽이면 원작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되겠지만...

대왕고래

2018-05-25 23:40:08

선악부터 구분하면 행동이 구분지어지고, 행동이 곧 스토리를 이끄는 길이 되겠죠.?

실제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건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의한 것일테고 행동을 구분짓는 것은 성격이며, 성격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의 시초니까요. 뿌리를 파악하고 뿌리부터 공략한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Lester

2018-05-27 00:51:42

처음에는 '동기'를 먼저 생각하려고 했는데, 이 동기란 것도 크게 보면 하나의 결과에 불과하더군요. 환경에 의한 동기라면, 그 환경이 어떠한지가 궁극적인 원인이 되겠죠. 그 개개인의 환경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으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얘는 착한/나쁜 캐릭터임"이라고 명시할 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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