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만 쓰면 거시기하니 예전에 그린거 한장 붙여서....)
그러니까, 벌써 그림에 혹해서 산 것이-
그림이 단순히 나의 잡다하기 짝이 없었던 수많은 취미들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다른 취미와 특기를 압도하고 있으며, 이미 그림이 저라는 존재가 가지는 아이덴티티의 일부가 되어있다는 것 그것을 마악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림을 시작한 지 3년을 넘기고 있었지요....
약 1년 전 쯤에 "팔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이미지들을 쭉 들어보면서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저는 이전에 어떠한 그림을 만들어왔을까-라는 의문이었죠.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아날로그 손그림으로 참 조잡한 그림을 그어내고 있던 시절, 그러니까 2002 년에 제대부터 만들어온...그러니까 지금 제 눈으로 보면 무지 허접해야 할 과거의 그림들에는 그 나름대로 지금보다 나은 점이 있었다는게 되게 놀라웠습니다.
뭐랄까...감성이라는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지금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었지만 어찌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던 점도 되게 많았던거 같네요.
손그림과 완성된 그림들의 수도, 지금까지 컴퓨터작업으로 만들어둔 것들보다 훨씬 더 많았었으니까요.
(이전 컴퓨터에서 떼어둔 구형 하드에 담겨있던 손그림 스캔본들의 숫자를 확인해 보고서 스스로 놀라버렸습니다. 약 2년간 아날로그 손그림으로 거의 500 여장을 작업했고, 그 중 절반이 자작그림이었으며, 300장 가까이 완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위에 이야기한 "팔기 위해" 만들었던, 제 설정그림 초기의 이미지들을 확인해보았습니다.
동인게임용의 이미지를 제작해야 했기에 고퀄리티의 사양을 염두해둔 고 해상도 작업의 그림은 제대로 쓸 수 없었고 용량도 한장당 75 Kb ( ! ) 그리고 600X480 사이즈를 넘지 않도록 대폭 줄여야 했었는데, 그런 혹독한 제약 하에서도 제법 창의력있는 그림들이 단시간에 쏟아져나왔던 것 같네요.
예전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야심찬 꿈을 함꼐하던 친구들의 의견이 반영되었고 의욕적이었던 만큼 군소리없이 그 의견을 수용했었구요.
결과적으로 우리들이 모여 시작했고 공유했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을 맺었지만, 시기를 거치는 중간에 저는 "외주"라는 형태로 애니메이션쪽에서 프로(....)로서 일을 가질 수가 있었구요.
["무츠원명류 외전 수라의 각" "이니셜D 퍼스트 스테이지"....이 애니 보신 분, 계세요? 계시다면 사랑합니다]
당시 작업해 둔 설정그림들을 이제 와서 훑어보았는데, 동인게임 포맷으로 잘도 이런 워크래프트급 대설정을 썼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요 뭐....모두의 꿈이었고 이루어졌더라면 좋았을텐데- 라고 쓴 웃음을 지어 보아도 지금은 별 수가 없지만.
시나리오는 지금 게임화해도 좋을[...]
아니, 관두죠.
뭐,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지금보다 나쁜 환경의 그림도구를 쓰고 있었을 때 지금보다 나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차라리 그 떄의 정신과 감성으로 그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림 하나에 최대한 많은 나의 사상을 넣으려고 기를 썼는데....
예전엔 너무나 모자란 저의 실력을 감추기 위해서였고, 지금은 고갈된 제 상상력의 샘을 가리기 위해서인 듯 하네요.
지금이라도 깨달았다면 뭔가 나아질 수 있을까요...?
TO PROVE A POINT. Here's to C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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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13-03-14 08:24:04
역시 중요한 것은 도구보다도 결과물 그 자체인가 봐요.
그림을 못 그리는 저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지만요...
언제나 멋진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응원할께요. 여기 포럼이 그 꿈을 펼치는 장소가 되었음 좋겠어요.
대왕고래
2013-03-14 09:58:30
예전이 지금보다 나아보이기도 하고, 예전 자세가 지금보다 나아보이기도 해요.
생각해보면 저도 그렇네요...
흐음, 제가 할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걸 깨닿고, 어떻게 하자고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거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벗헤드님의 그림은 언제나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늘상 응원한답니다.
캬슈톨
2013-03-14 23:49:23
저도 그림그리는 거 좋습니다. 얼마 전, 감성과 식탐이 폭발하는 자정에 한창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을 그릴 손이 달려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운 적도 있었죠(....)
저도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은 확실히 못 그렸긴 하지만(...), 그리면서 즐거웠다는 게 정말 팍팍 느껴져요. 지금도 그런 느낌이 남아있다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