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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요리를 좋아하는 터라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에 이야기하는 주제는 면 요리 자체보다는 이것에 관한 어문관련의 주요 문제.

일단 제목을 보면 가락국수가 뭔지 짐작은 되더라도, 잔폰이나 따오샤오미엔이 대체 뭘 말하는 건지 혼란스러울 거예요. 게다가 국숫집이라는 표현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좀 껄끄럽고. 이렇게 이 제목에 국내 어문관련 문제의 주요 쟁점이 다 녹아 있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 놓자면, 외래어 표기에서의 비일관성, 무리한 순화어 강요, 그리고 남발되는 사이시옷.

외래어 표기에서 현행 어문정책은 대체 일관적인 기준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의문인 경우가 많아요.
사실 외국어가 국어에 편입되어 외래어로서 귀화하는 경로가 시대, 장소, 분야가 다변화되어 있다 보니 일관성을 높게 갖추기에 난점이 있다는 것 자체는 충분히 감안할만하죠. 그런데 그게 대상을 보고 차별하는 것같다는 의심이 들고 있거든요. 현지원음 존중이라는 원칙이 유독 일본어계 외래어에서는 무시되고, 중국어계 외래어에서는 중국어 제일주의같다는 게 보이고 있어요.
제목의 "잔폰" 은 일본의 나가사키 발상의 면 요리 짬뽕(ちゃんぽん)의 일본어 발음이라는데, 실제로 전혀 이렇게 발음되지 않죠. 히라가나 표기를 읽어봐도 일본인 화자의 발음을 들어도 어느 것 하나 "잔폰" 으로는 절대로 발음되지 않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맞추니까 "잔폰" 이라는 가공의 표기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런 원칙이 중국어계 외래어에서는 희한하게 태세전환이라도 해 버리는 걸까요?
그 유명한 사례로 자장면/짜장면 논란 끝에 국립국어원이 두 어휘를 복수표준어로 지정한 것. 국립국어원 공식 트위터에서의 답변내용을 보면, 짬뽕이라는 어휘와 짜장면이라는 어휘를 어떻게 차별적으로 취급하는지가 확연히 보여요. 일본어의 원래 발음에 거의 유사한 "짬뽕" 은, 위 트위터의 주장인 "자장면" 이 중국어의 원래 발음에 거의 유사해서 옳다는 주장을 지지하고, 따라서 잔폰이 관행상 짬뽕으로 굳어져 인정했다는 주장에 배치되는 한편, 면의 중국어 발음도 사실은 "면" 이 아니라 "미엔" 내지는 "몐" 에 가까우니까 "자장면" 이 옳은 근거도 약화되기 마련이죠. 즉 저 트위터 답변은 자기모순 및 대상에 따른 기준의 자의적 변경의 문제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어요. 이래서는 일관성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어요.

가락국수라는 말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
일본의 면 요리인 우동(うどん)의 순화어라고 이 가락국수라는 말을 미는 것 같지만, 일본의 우동과 한국의 가락국수는 이미 다른 음식이니 이것은 순화가 아니라 어휘의 오용이나 대상을 잘못 지칭한 것에 지나지 않아요. 최현배(崔鉉培, 1894-1970) 등의 국문학자들이 주장하는, 일본어계 외래어는 유입경로에서 문제가 있으니까 최대한 배격해야 한다는 지론을 따른 것인지 유독 일본어계 외래어에 대한 저항감이 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중국의 역대 왕조가 한국사에 끼친 악영향을 이후로 중국어계 외래어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를 제기해야 옳은 것 같아요. 그런데 과문의 탓인가 그런 건 본 적 없네요. 간혹 방송에서 따오샤오미엔 운운하는 것을 보면 대체 뭘 하나 싶죠. 해설자가 발음을 못해서 아주 힘들어 하는 게 보이는데, 한자표기의 도삭면(刀削?)을 그대로 한국식으로 읽는 것만은 안 되었던 걸까요? 어차피 일본 현지의 발음이 "짬뽕" 이라는 음식의 이름도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맞춰서 "잔폰" 으로 바뀌어 표기했는데, 따오샤오미엔을 도삭면으로 부르면 안된다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을지는 저로서는 모르겠네요.

끝으로 또 하나. 남발되는 사이시옷.
요즘 사이시옷이 너무 남발되고 있어서, 대체 사이시옷이 없으면 난독증이라도 발생하는 건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어요.
이런 예가 있죠. 식당, 식재료, 식사에 쓰는 도구 등의 어휘만 하더라도 국숫집, 맥줏집, 만둣집, 막걸릿집, 송홧가루, 떡만둣국, 북엇국, 소줏잔 등등의 것들...이렇게 안 쓰면, 국수집은 국[羹]이라는 식품을 수집(蒐集)한다는 의미로 오독할 사람이라도 있을 것이라는 배려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목탄화의 지우개로 쓰기 위해서 식빵을 사가는 화가에 배려를 한답시고 그 식빵 안에 버터를 넣어 주는 배려는 없어도 좋을 정도를 넘어서 아예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겠어요. 백해무익하니까.

대체 이 나라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어문관련의 이상한 현상들을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문관련에 대해서는 오류가 없다고 믿는 모종의 금과옥조가 있거나 모종의 카르텔이라도 조성된 것인지, 여러모로 이상하기 짝이 없어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Lester

2018-10-16 18:24:15

옛날(그래봤자 일제강점기)에는 정보의 유입보다 언어의 규칙을 바로잡는 것이 더 빨랐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정보의 유입부터 갱신까지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외국어만큼은 외래어 표기법이 문제가 아니라 '먼저 발음하는 사람이 임자' 같은 느낌도 듭니다. 몇몇 위키에서만 봐도 외래어 표기법을 따를 것인지, (국내 최초로 발음한 거나 다름없는) 정발명을 우선할 것인지의 논쟁이 가열차죠. 뿐인가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경우는 백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고 교정해도 사람들이나 언론에서 계속 그렇게 불러대니 소용이 없고요.


한편으로는 청소년을 기반으로 퍼져나가는 한글 파괴 현상(필요 이상의 두문자어 생성 등)에 대한 반발이 아닐까 싶지만... 이건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마드리갈

2018-10-16 18:51:45

먼저 발음하는 사람이 임자...확실히 그런 감이 강하죠.

사실, 말씀하신 현상은 오늘날은 물론이고 과거에도 동서를 막론하고 많이 있었어요.

동양에서는 한자를 받아들인 각국이 시기와 경로에 따라 한자발음을 달리했고, 특히 일본어의 경우는 오음, 한음, 당음 등의 한자발음이 혼재되어 있어요.

서양에서는 독일어와 영어가 같은 기원을 지니고 있지만 기술분야의 전문용어는 거의 호환성이 없을만큼 다르죠. 독일어에서는 게르만어의 어근 및 접두/접미어로 용어를 만드는데 영어에서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서 라틴어를 이용한 역어가 대거 유입되어 있다 보니 독일어와 영어는 크게 달라져 있기도 해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이 잘 안 지켜지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보면, 언어사용의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적인 것이라서 자연히 버려질 수밖에 없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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