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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지않은 전쟁,미어샤이머,월츠 2003

히타기, 2013-03-20 23:39:42

조회 수
489

미국이 꼭 이라크를 침공하고 사담후세인을 제거해야 할까? 만약에 지금 이 글이 나간 시점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였다면, 아마 그 이유는 사담이 UN조사관의 결과로 부시 행정부를 충분히 만족시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가 이전부터 지속된 미국과 사담의 충돌의 진짜 이유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미정부가 사담이 제거되지 않는 이상 WMD를 사용하는것을 억지하는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에서 비롯한다. 예방전쟁 옹호론자들은 수많은 주장을 이용하여 그들의 근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트럼프 카드들은 전부 사담의 무모하고,가차없이 또한 공격적으로 핵무기를 비롯한 WMD를 얻기 위한 과거의 행동으로 채워져있다. 옹호론자들은 간혹 이라크전쟁이 미국의 점령기간이 길어지고 주변국과 마찰이 빚어질수있다고 보지만 이러한 우려는 사담과 핵무기에 대한 결합이 결코 용납할수 없다는 믿음에 가려질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무기와 사담의 결합 그 이유 하나로만으로도 사담은 제거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수많은 예방전쟁 반대론자들도 이라크에게는 억지가 통하지 않을것 이라는데 동의한다. 반대론자들은 이라크를 침공하거나 정권을 붕괴하는 대신에 이러한 전쟁위협과 관대한 호의로 새로운무기 조사를 사담이 받아들이게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희망은 조사를 통해 숨겨져있는 모든 WMD 재고와 생산시설를 제거하여 사담이 이러한 치명적인 무기중 하나라도 손대지 못하게 하는것이다. 결국 예방전쟁론자든 반대론자든간에 둘다 사담이 억지될수 없고 그가 핵무기를 가지는것을 용납할수 공통의 명제를 가지고있다.


이 주장(완전히 빗나간)의 한가지 문제점은,사담이 과거 행동이 사실 왜곡된 역사와 잘못된 논리들 속에 놓여있지 않을것이란 믿음이다. 사실, 역사적인 기록들은 미국이 냉전기간동안 소련을 억지했던것처럼 마찬가지로 이라크또한 효율적으로 억지했음을 보여준다.-사담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라크가 무기조사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던 그리고 무기조사관들이 무엇을 찾아내든간에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벌이는 논리는 매우 빈약하기 짝이없는 기반위에 놓여있다.



사담은 심각한 침략자인가?

 

예방전쟁론자들은 사담을 필사적으로 페르시안 해협을 지배하려는 침략자로 묘사하는데서 그들의 주장을 시작한다. 또한 사담은 잘못된 계산을 하기 쉬운 경향과 공격적인 경향 양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사담 후세인에게는 보복에 대한 위협으로 억지하는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안보회의의 전 걸프해협부분 전감독자이자 이라크전쟁의 지지자인 케네스 폴락은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자살"을 시도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말해주고있다. 사담은 이라크의 정치를 30년간 지배했다. 그 기간동안 그들에 이웃을 대상으로 두번 전쟁을 일으켰다-이란과 1980년에 그리고 쿠웨이트와 1991년에. 그러나 이런 기록은 이스라엘이나 이집트같이 1948년부터 지속적으로 전쟁을 벌여온 여러 이웃 아랍국가에 비해서 매우 초라한 기록이다. 더욱이 사담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전쟁에서 사담의 행동이 무모함과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두 전쟁에서 모두 사담은 이라크는 상대가 고립되고 취약하다는점을 이용했다. 두전쟁에서 모두 이라크의 목표는 제한된 군사적 성과를 이용해서 이라크의 전략적인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논리들은 사담의 공격성에 변명거리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가 힘을 쓰고자하는것을 억지할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 힘들게 한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88


이란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페르시안 해협에서 가장 강력한국가였다. 이러한 힘은 이라크에 거의 세배에 비롯한 그들의 인구와 석유에서 나왔다. 하지만 샤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지지에서도 비롯되었다. 이시기 동안 이란과 이라크사이의 관계는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란의 지역적인 패권에 도전할수 없었고 이란은 지속적으로 70년대 초까지 사담에게 압력을 행사하였다.  대다수 이런 압력은 이라크내의 쿠르드족에 동요를 조장함으로써 행사했다. 결국 1975년 이라크는 절반에 가까운 샤트-아랍 수로를 이란에게 때어내주면서 이란이 더이상 쿠르드족들을 자극하는것을 중단하도록 설득하였다. 이런 양보는 이라크의 취약성을 강조하고있다.

 1979년 샤가 쫓겨났을때 사담이 이를 환영한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라크는 상당한 기간동안 이란의 혁명세력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갔다. 아직 이란인 완전히 75년의 조약을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후세인은 이웃의 소란을 활용하여서 수로를 양보하기 이전의 전략적 균형으로 복귀하려고하지 않았다. 이와달리 호메이니는 그의 혁명을 아랍세계 전반에 걸쳐 확장시키고자 하였다. 이라크를 시작으로. 1979년에 테헤란은 이라크내부에 쿠르드족과 시트족인구를 자극하고 이라크의 정부고관을 암살하여서 사담정권을 무너뜨리려고한다. 국경충돌은 1980년 4월부터 잦아지기 시작했고 이란의 선전을 통해 확대되어갔다.


그의 정권이 생존이 위협에 달하였지만 위협적인 이란의 군사적 준비태새는 혁명에 의해 일시적으로 마비된 상태였다. 사담은 그의 비열한 적을 상대로 제한전쟁을 1980 12월 22일 부터 시작하였다. 그의 목적은 이란-이라크 국경지대의 넓은 지역을 점령하는것이었지 호메이니정권을 쓰러뜨리고 이란을 점령하는것이 아니었다.  군사전문가인 예핌카르쉬는 전쟁이 약소국이였던 이라크가 그의 강력한 이웃의 지역적 균형을 깨뜨리려는 이란의 헤게모니 열망에 저항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고 말한다.


이란과 이란은 8년간 서로 싸웠고 전쟁은 양자 백만명의 사상자와 1500억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내게하였다. 이라크는 당시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 외부로 확장되는것을 억지하기를 원하는 외부-미국,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와 프랑스를 포함하여-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이란과의 전쟁의 대가는 사담이 생각한것보다 비쌌지만 호메이니가 그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지역적인 패권을 가지려던 시도도 저지하였다. 이란과의 전쟁은 결코 무모한 모험이 아닌 명백한 위협에 대한 기회적인 대응이였다.



걸프전쟁,1990-91


하지만 1990년 10월에 있었던 쿠웨이트에 대한 이라크의 침공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이란과의 전쟁이 방어적인 태도였다고 하더라도 쿠웨이트의 케이스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들 이웃에 대한 침공결정을 내린 사담의 모습이 가장 파괴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담을 신회하기에 너무 공격적이고 거칠다는것을 증명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가 가장 강력한 연합에 직면했을때 조차도 포기하지않고 "의도하지않은 자살"을 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no"다. 다시 말하지만 사담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담은 생각없는 침략자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무모하지도 않다. 



쿠웨이트침공에 대한 사담의 결정은 이라크의 지속된 취약성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이번경우에는 전쟁으로 충격받고 지속적으로 추락한 이라크의 경제였다.  이라크의 어려움은 쿠웨이트가 100억달러의 자금 빌려주는것과 이란-이라크전쟁기간동안의 채무를 경감하는것을 거절한것이 주요인이였다. 사담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비롯한 다른 걸프연안 국가들을 이란의 확장으로부터 보호한데에 대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서 불행히도 쿠웨이트가 OPEC의 쿼타이상의 원류를 과다생산하면서 국제원유가가 폭락하였고 이라크의 이익이 줄어들었다. 사담은 외교적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쿠웨이트는 부동의 자세로 일관하였다.  카르쉬를 비롯한 후세인 전기작가인 이라니 라투시는 쿠웨이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쿠웨이트인들은 최소한의 양보를 하여서 이라크가 최소한 헐벗지 않도록 해야했을 책임이 있다."


보도에 의하면 사담은 90년 6월쯤에 전쟁을 결정했다고 할려진다.하지만 쿠웨이트로 군대를 보내기전에 그는 미국에 접근하여 어떻게 반응할것인가 알아보려고 했다.  이제 유명한 이라크 지도장와 미국 대사인 에프릴 글래스피는 사담에게 "우리는 당신들처럼 아랍간에 분쟁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미 오래전에 워싱텅이 "쿠웨이트에 특별한 방어나 안보를 약속한적이 없다"고 이야기 했다. 미국은 이라크에게 청신호를 줄 의도는 없었지만 결국 효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렸다.


사담은 1990년 9월초에 쿠웨이트를 침공하였다. 이 행동은 명백히 국제법상 폭력이었고 미국은 침공에 대항하여 연합을 꾸리는것을 정당화하였다. 그러나 침공에 대한 사담의 결정은 비합리적이거나 무모하지않았다. 억지는 이 경우 실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에 억지를 시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웨이트에서 떠나서 현상유지로 돌아갈것을 요구할때 사담이 받아들이지않은것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현명한 지도자라면 때늦은 후회를 하기전에 쿠웨이트로 부터 철수하지 않았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명백해보인다. 하지만 사담에게는 거칠게 나갈수 있는 좋은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미국이 실제로 공격할지 뚜렷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서방외신들이  이라크육군이 방어를 무적일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예상은 오늘날 와서는 형편없이 보인다.


미국의 공습이 이라크의 군대에 심각하게 손상을 끼치자 사담은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이던 조저 H 부시와 그의 행정부의 희망처럼 그는 쿠웨이트에서 또다른 전투를 하기보다는 병력들을 완전히 빼내는것을 원하였다. 


사담은 의심할여지가 없이 계산실수를 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역사는 잘못된 계산을 한 지도자로 가득차있다.  어떤 증거도 사담이 조심스럽게 그의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그의 힘을 그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였을때 사용하였다.그는 침공을 지지하고 반대주장을 자극하기 힘든 좋은 근거들을 가지고있었다.


그 누구도 이라크의 독재자가 쿠웨이트의 붕괴에서 살아남았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가 그의 정권에 대한 다른 위협에서 살아남은것처럼 말이다. 그는 이제 그의 집권의 네번째 10년을 맞이하고있다. 그가 진짜 "의도하지않은 자살자"라면 ,그의 생존감각이 오히려 더 잘 연마된것을 보여줄뿐이다.


역사는 사담이 억지될수있다는 최소한 두개이상의 증거를 보여준다.먼저 그가 비록 재래식으로 무장된 스커드미사일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에 발사했지만 그는 생화학무기를 연합군에게 투사하지않았다.  게다가 이라크의 고관-국무총리인 타르피쿠 아지즈와 군사정보부의 수장인 와피쿠 알-사말-라이 장군을 비롯해서-들은 부시행정부가 만들어낸 WMD사용시 치룰 대가를 경고한 애매모호하지만 위협적인 경고에 자제심을 보였다. 둘째로 1994년 이라크는 그들의 쿠웨이트 주변의 자투리 부대를 차량화시키고있었는데 UN의 특별위원회의 무기 조사관들이 이를 발견하고 UN이 이를 이슈화하며 경고하고 쿠웨이트로 미군이 증강되자 이라크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두 케이스 모두 비합리적이라고 주장되는 지도자가 억지될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머지 2페이지는 나중에-------------------------------






출처

http://mearsheimer.uchicago.edu/pdfs/A0032.pdf



지금까지 소감

후세인이 조금 불쌍해졌다.

히타기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을수 있는 원리를 가지지 못한 이념은 단순히 감정적인 구호에 그친다. 

2 댓글

마드리갈

2013-03-21 12:00:36

번역하느라 애쓰셨어요. 잘 읽었어요.

후세인의 입장에서는 쿠웨이트 침공은 일종의 강요된 단 하나의 선택지였는데, 하필 그 선택지가 미국의 개입가능성이 낮다는 전제하에서 수립된 것이었으니 패착이 컸어요. 게다가 이란을 저지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이미 군사력이며 국력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전쟁을 했다는 것도 문제이고...

그나저나 걸프전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밀렸는데도 그 뒤로 10여년 이상 살아남은 것을 보면 후세인의 정치적 수완도 참 대단해요. 보통 그 정도면 실각할 만한데. 김일성의 경우 6.25 전쟁을 일으켜 놓고, 이후 정치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박헌영 등의 정적들을 간첩혐의를 덧씌워 죽이는 식으로 연명했는데 이라크는 어떻게 했으려나요?

SiteOwner

2014-02-01 23:08:11

이것도 결과론적인 이야기일테지만, 사담 후세인을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제거해야 했다면 걸프전을 1991년에서 끝낼 게 아니라 더욱 이어가서 철저히 뿌리를 뽑았어야 했습니다. 

걸프전과 이라크전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거명될 만한 요소로는 사견으로는 "명분" 을 꼽겠습니다. 

걸프전에서는 후세인이 이스라엘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이것을 범아랍권 대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만드려고 했지만 철저히 실패했고, 또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벌인 온갖 악행이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기에 적절했기에 아랍권조차 이라크를 적대시했습니다.

반면에 이라크전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실 알카에다와 이라크는 그렇게 연결고리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사실은 적대관계입니다. 개전 당시 왜 이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까닭에 독일과 프랑스는 이 전쟁에 회의적인 시각을 유지했고, 그래서 미국과 영국 위주로 전쟁이 상당히 힘겹게 이끌어졌습니다. 


곁다리 하나. 독일의 반대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폴란드의 참전이 그야말로 삼류코미디도 못되는 황당한 결정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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