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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년도 더 전에 썼던 글인 애니적 망상의 외전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최근 영국에서 일어난 기묘한 도난사고에 대한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고 나서 안 쓸 수가 없게 되었어요.
문제의 사건은,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 경(Sir Winston Churchill, 1874-1965)의 생가에 설치된 미술품인 황금변기의 도난사건.
윈스턴 처칠의 생가인 영국 옥스포드셔(Oxfordshire) 소재 블레님 궁전(Blenheim Palace)은, 영국에서 유일하게 왕가의 궁전이 아니면서 궁전의 칭호가 붙은 시설로, 1722년에 준공된 이래로 말보로 대공(Duke of Marlbourough) 처칠 가문의 거소로 사용되어 왔고, 현재는 12대 말보로 대공인 제임스 스펜서-처칠(James Spencer-Churchill, 1955년생)이 처칠 가문의 당주로서 거주하고 있어요. 그 처칠 가문의 일원인 윈스턴 처칠 또한 이 궁전에서 태어났는데다, 1987년에 해당 궁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어요.
이 블레님 궁전에는 실제로 사용가능한 18K 금 재질의 변기가 있어요.
정확히는, 이탈리아의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년생)이 2016년에 제작한 아메리카(America)라는 이름의 황금변기. 이것은 원래 미국 뉴욕시 소재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의 화장실에 실제로 사용가능하도록 설치된 풍자작품으로, 올해 9월부터는 영국의 블레님 궁전으로 옮겨져 전시중이었어요. 물론 구겐하임 미술관과 동일하게, 하수관이 연결되어 실제로 용변에 쓸 수 있는 변기로도 작동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영국 현지에서 9월 14일에 도난당한 것. 범인은 잡혔다지만 이 변기의 행방은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일본 지지통신의 보도를 보니까 여기에서 애니적 망상이 하나 떠오르네요.
「黄金のトイレ」盗まれる=6億円相当、英宮殿で展示中 (2019년 9월 16일 지지통신 기사, 일본어)
기사제목을 번역하면, "황금변기 도둑맞다, 6억엔 상당, 영국 궁전에서 전시중" 이 되는데...
6억엔? 변기?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에 등장하는 폴포의 비자금이 생각나 버렸어요.
작중의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 파시오네의 간부인 폴포가 몰래 은닉해 둔 재산은 원작에서는 6억엔 상당. 애니에서는 시대배경인 2001년이 아직 리라화를 쓰고 있던 때라 그에 맞춰 100억 리라로 바뀌었어요. 그 은닉재산은 브루노 부챠라티가 회수하게 되고, 그것을 상부에 바쳐 부챠라티는 간부로 승진하고 폴포가 생전에 가졌던 막대한 이권도 승계받게 되어요.
저는 원작을 모르는 터라 문제의 은닉재산을 찾는 것이 엄청난 모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관장소는 의외였어요. 카프리 섬의 공중화장실 내부, 그것도 남자화장실 내부의 소변기가 설치된 벽 안.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도난사건이 참 기묘하게도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를 연상케 하다니, 역시 현실은 얕볼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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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
2019-09-18 00:32:38
등잔 밑이 어둡다 라는 속담은 딱 이럴 때를 위해 준비된 거겠죠.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도 바실리스크가 잠들어 있는 비밀의 방과 통하는 곳이 학교 내부 여자화장실(기억상 세면대였던가)인데요, 상식적으로 바실리스크 쯤 되는 괴수를 숨겨두는 곳이 여자화장실 따위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테니까 톰 마볼로 리들(=볼드모트)이 호그와트 학생이던 시절 비밀의 방에 바실리스크를 몰래 숨겨둔 이래 비밀의 방의 정체가 밝혀진건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나, 해리 일행이 호그와트에 입학해 사고를 치게 되는 해리포터 본편 시점의 이야기였죠.
마드리갈
2019-09-18 12:40:11
정말 그 속담이 정확하게 들어맞아요.
황금변기가 블레님 궁전으로 이전되어 전시가 개시된 날은 9월 12일. 그런데 그 문제의 황금변기는 이틀 뒤인 9월 14일에 감쪽같이 도둑맞고, 범인은 검거했지만 정작 그 도난품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되었죠. 게다가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에서는 거금이 남자화장실 내부의 소변기 설치벽 내부에, 그리고 해리포터에서는 괴수 바실리스크가 학교 내부 여자화장실에 숨겨져 있었어요. 현실에서는 전시된지 얼마 안된 미술품이 어이없게, 창작물에서는 의외의 장소에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고...현실이든 창작물이든 지루하게 있을 틈을 주지 않네요.
앨매리
2019-09-18 16:46:58
죠죠의 시작점인 1부의 배경이 영국이고 죠스타 가문도 영국의 귀족 가문이었다는 점, 그리고 죠죠 1부의 모티브가 된 드라큘라 역시 주인공이 영국인이라는 점과도 연결지어서 생각해보면 기묘하네요.
그나저나 황금이라고 해도 변기를 훔치다니... 역시 돈과 탐욕이 앞서면 사람은 뭐든지 감수할 수 있나 봅니다. 전 누가 준다고 해도 속이 안 좋아져서 안 받을 것 같네요.
마드리갈
2019-09-18 18:06:35
장소를 생각해 보니 더욱 기묘하게 여겨지네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 1부는 영국, 2부는 미국 및 이탈리아, 5부는 이탈리아가 배경으로 나오고, 위의 사건은 미국의 미술관에 이탈리아 예술가가 만들어 전시한 미술품을 영국에 이전 전시했다가 일어난 것이고...
황금변기를 만든 의도 중에, 비싼 음식을 먹든 싼 음식을 먹든 대변은 같다는 사실에서 과소비를 비판하는 것이 있다고 해요. 이것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돈이 된다 싶으면 무슨 짓이든 한다는 인간의 탐욕은 여전하다는 것도 드러나네요. 미술가의 의도가 이렇게 역설적으로 빛나기도 하네요.
창작물도 기묘하지만, 현실은 더욱 기묘...
마드리갈
2023-11-09 16:27:24
2023년 11월 9일 업데이트
영국의 블레님 궁전에 설치되었던 황금변기를 훔친 자들이 체포되어 기소되었어요.
범인은 마이클 존스(Michael Jones, 38세), 제임스 쉰(James Sheen, 39세), 프레드 도우(Fred Doe, 35세) 및 보라 구쿡(Bora Guccuk, 39세)의 4명의 남성으로 존스와 쉰은 강도죄로, 도우와 구쿡은 장물죄로 기소되었어요. 이렇게 범인은 잡혔지만 문제의 18K 금으로 만들어진 변기 아메리카(America)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어요.
관련보도를 하나 소개할께요.
Four men charged over Blenheim Palace gold toilet theft, 2023년 11월 7일 BBC 기사,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