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국적이 의외인 기업들을 알아보는 세번째 기회.
이름을 들었을 때 국적을 짐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기업으로 착각하기도 쉽다든지, 마치 한국어로 지은 기업명같다든지, 잘 드러나지는 않아서 국적은 물론이고 존재 자체도 쉽게 알 수 없지만 알고 보면 위상이 엄청난 기업이 이번 편에서 거명되어요.
이전과 동일하게, 선정한 19개 기업의 이름을 로마자 알파벳 순으로 정렬했어요.
게다가, 거명하는 기업 중에는 저희집의 사정과 엮인 것도 좀 있어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ATABA
홍콩의 계산기 제조사인 ATABA 자체는 특기할 것은 없고 저 또한 이 기업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어요. 작년에야 겨우 알았고, 홍콩의 기업이라는 것을 안 것도 얼마 전의 이야기. 하지만 오빠는 이 기업을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꺼리고 있기까지 해요. 제조사 자체에는 어떠한 귀책사유도 없긴 하지만, 트라우마를 자극하다 보니...오빠는 중학생 때 경시대회 상품을 다른 학생과 바꿔치기당했고, 게다가 그렇게 받은 상품이 바로 이 기업이 제조한 계산기라서 저 브랜드를 불편하게 여겨요.
오빠가 쓴 아래의 글에 그 이야기의 전말이 소개되어 있어요.
양보와 특권에 대한 10대 시절의 교훈 (SiteOwner 작성)
BiC
각종 문구 브랜드 중에서 유럽의 대표적인 브랜드 하면 독일의 파버카스텔(FaberCastell), 슈테들러(Staedtler), 로트링(Rotring) 등을 연상하기 마련이고, 이름에서 프랑스가 느껴지는 몽블랑(Montblanc) 또한 의외로 독일의 것이라서 프랑스의 문구 브랜드에는 대체 뭐가 있는가 싶어요. 하지만 여기서 거명하는 BiC 및 아래에서 다룰 MAPED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구 브랜드. 1945년에 설립된 이 기업은 문구 이외에도 면도기, 라이터 등을 생산하기도 해서 화려하지는 않아도 주의깊게 살펴보면 의외로 이 브랜드가 자주 보여요. 저희집에도 이 브랜드의 필기구나 면도기가 있어요.
Denel
1992년에 설립된 남아프리카의 군수품 제조기업인 데넬은 1992년에 현재의 형태가 된, 상당히 개성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단아적인 기업이 되어 있어요. 대표적인 것은 데넬 체제 이전에는 캐나다의 엔지니어 제럴드 불(Gerald Bull, 1928-1990)의 협력하에 개발된 155mm 곡사포로서는 사정거리 세계최대 기록을 세운 G5 견인포 및 G6 자주포, 데넬 체제 이후에는 움콘토(Umkhonto) 단거리 대공미사일, 기관포탄을 탄약으로 사용하는 대구경 저격총 NTW-20 등이 있어요.
DIXY
딕시 하면 미국 남부를 생각하기 쉽지만 그 딕시는 Dixie이고, 여기서 소개하는 DIXY(Дикси)는 러시아의 5대 수퍼마켓 체인 중의 하나예요. 소련 해체후인 1992년 모스크바에서 창업한 이 기업은 주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스부르크 및 러시아 서부의 연방 광역행정구역에 딕시스토어, 미니마트, 메가마트, 빅토리아 등의 브랜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어요. 참고로, 러시아의 5대 수퍼마켓 체인 중 다른 곳은 X5 리테일 그룹(X5 Retail Group), 마그니트(Магнит), 독일계의 메트로그룹(Metro Group) 및 프랑스계의 오샹(Auchan).
Egged
Egg가 동사로 쓰일 때에는 부추긴다는 의미, 알로 감싼다는 의미도 되지만, 이 Egged는 그 동사의 과거형이나 과거분사가 아닌 이스라엘의 버스회사로 발음도 "에게드" 가 되어요. 1933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이스라엘 최대, 세계 2위 규모의 버스회사로 이스라엘의 대중교통의 35%를 차지하고 있어요. 게다가 영업망은 이스라엘 내에서는 버스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경전철에, 국제적으로는 인접한 팔레스타인은 물론 유럽국가인 네덜란드 및 폴란드에도 전개되어 있어요. 특히 팔레스타인의 웨스트뱅크(West Bank) 지역 노선에 투입되는 버스는 모두 총탄을 막을 수 있는 장갑버스 사양으로 구비되어 있어요.
GungHo
1998년에 온세일(ONSale Co., Ltd.)로서 설립된 이 회사는 일본의 소프트뱅크 및 미국의 온세일의 조인트벤처로 탄생한 이래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플랫폼. 한국게임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일본서버를 유치하고 있는데다 일본내에서 이 기업명을 "강호(ガンホー)" 로 부르고 있다 보니 한국의 기업인가 싶지만 이 기업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기업. 참고로, 현재는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개발사 그래비티를 인수하여 자회사로 두고 있어요.
Heroichi
히로이치라는 발음에서 일본 브랜드인가 싶지만, 사실은 대만의 컴퓨터 부품회사인 HEC가 브랜드 및 사명으로 사용했고 한국의 컴퓨터기자재 유통회사인 진성코퍼레이션이 사용하는 브랜드. 한때는 HEC가 자사 생산제품에 Heroichi Electronic Co., Ltd.이라는 사명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당초 히로이치 브랜드를 사용하던 회사는 진성코퍼레이션. 그래서 결국 법정다툼까지 간 끝에 HEC는 히로이치라는 브랜드를 한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게 또 단순한 게 아닌게, HEC는 진성코퍼레이션 설립 이전에 해외에서 이미 Heroichi 브랜드를 상표등록했고...
JASO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의 명문인 JASO는 COMANSA와 더불어 세계 타워크레인 업계의 메이저기업. JA로 시작하다 보니 일본의 기업으로 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 자동차용 자동변속기 제조사인 JATCO가 있는데다 JASO는 일본자동차규격(日本自動車規格)의 영어 표현인 Japanese Automotive Standards Organization의 약자이기도 하지만 타워크레인 제작사 JASO는 스페인의 기업이고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COMANSA 또한 그러해요.
Kyoto Electronic Industries Corporation
Kyoto가 들어갔으니 일본의 교토에 입지한 전자제품 회사인가 싶은 이 회사는 놀랍게도 멕시코의 기업이며, Kyoto 또한 일본어가 아니라 일출을 뜻하는 멕시코의 토착언어 중 하나인 마야어 어휘. 이 기업은 2009년 창업 이래로 스마트폰, 태블릿,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을 제조판매하고 있어요.
참고로 일본에는 교토전자공업(京都電子工業)이라는 기업이 있고 영어명이 Kyoto Electronics Manufacturing Co., Ltd.라서 혼동되기 쉽지만, 두 기업은 국적도 업종도 전혀 다른데다 약칭 또한 멕시코의 것은 KYOTO, 일본의 것은 KEM으로 판이하게 달라요.
MAPED
위에서 언급했던 BiC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각종 문구기업 하면 이 MAPED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게다가 BiC과는 달리 MAPED는 보다 문구 쪽에 집중하고 있어요. 1947년 창업과 동시에 정한 사명은 Manufacture d'Articles de Precision Et de Dessin으로, 제도 및 데생용품 제조사를 의미하고 있어요.
저희집에서는 오빠가 제도를 할 때 이 MAPED의 프로페셔널 컴퍼스를 쓰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이 브랜드를 접해왔어요. 일반적인 제도기의 통념과 달리 상당히 사용하기 편하면서 정밀한 것이 특징이라서 저희집에서는 이 브랜드를 상당히 좋아해요.
Nassau
네덜란드의 귀족가문 오라녜-나사우 가문(House of Orange-Nassau)과도 바하마의 수도 내소와도 무관한 낫소는 한국의 스포츠용품 기업. 게다가 사명의 기원도, 외래의 것이 전혀 아니예요. 고유어 "낫다" 에서 온 말. 각종 구기종목에 사용되는 공 및 체육기자재를 주로 생산하고 있어요.
Nissan Computer
일본의 닛산자동차와 전혀 관계없는 닛산컴퓨터는 이스라엘 출신의 미국인 사업가 우지 닛산(Uzi Nissan, 1951년생)이 1991년 미국에서 설립한 컴퓨터 완제품, 부품 및 주변기기 유통업체. 이 회사는 웹사이트를 열면서 nissan.com을 사용했는데, 닛산자동차의 미국법인이 소송을 건 거였어요. 월드와이드 웹 초창기 도메인사냥꾼(Cybersquatting)이 횡행하자, 닛산자동차 측이 그 닛산컴퓨터를 그렇게 여긴 것. 그래서 결국 소송이 진행되었고, 8년간의 소송 끝에 2004년에 닛산컴퓨터 측이 승소했어요. 그 결과 닛산자동차는 미국법인의 웹사이트 주소로서 nissanusa.com을 사용하고 있어요.
Philip Morris International
말보로(Marlboro) 담배가 대표적인 상품인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은 미국의 기업같지만 사실은 스위스의 기업. 시작은
1847년 영국 런던에서 창업한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 1835-1873)의 담배가게로, 이후 미국에서의
사업전개는 이 회사를 인수한 윌리엄 커티스 톰슨(William Curtis Thomson)이 1902년 미국 뉴욕에 회사를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어요.
RUAG
이름에서 최고급 커피인 인도네시아의 코피 루왁이 연상되긴 하지만, 이 RUAG은 업종도 국적도 그 연상된 것과는 전혀 다른 스위스의 항공우주 및 군장비 기업. 1998년 스위스 베른에서 창업한 이 기업에서는 각종 항공기, 로켓 및 인공위성의 부품 및 항법용 컴퓨터를 제조하는 한편, 독일 도르니에가 해산하면서 그 회사가 제조하던 Do 228 터보프롭 여객기의 생산 및 유지보수의 제권리를 취득하여 고객의 용도에 맞게 항공기를 민항용 또는 군용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각종 방어장갑 및 수류탄도 제조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일반소비자용 제품을 만들지 않다 보니 존재감은 강하지는 않아요.
Salim Group
세계최대의 라면제조사인 살림그룹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재벌인데, 이름을 들으면 한국의 기업인가 싶기도 하고, 식품회사니까 역시 살림에 밀접한 기업이라는 생각을 하기에도 충분해요. 창업자인 수도노 살림(Sudono Salim, 1916-2012)이 1972년에 이 기업을 창업하면서 자신의 성씨를 기업명으로 채택해서 살림그룹이지만요.
이 기업의 제품은 최근에는 국내의 식자재마트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TOTAL
석유업계에서 수퍼메이저(Supermajor), 빅 오일(Big Oil) 또는 7자매(Seven Sisters)로 불리는 기업 중의 하나인 토탈은 1924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종합석유화학기업. 이 기업은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인 레이몽 푸앵카레(Raymond Poincaré, 1860-1934)가 독일을 많이 경계하고 있어서 당시 친독국가였던 네덜란드와의 합작회사 설립보다는 전적으로 프랑스가 지배하는 석유회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취지를 살려 에르네스 메르시에(Ernest Mercier, 1878-1955)가 설립했어요. 창업당시의 사명은 프랑스 석유회사(Compagnie française des pétroles)를 의미하는 약어 CFP였지만, 유럽, 중동, 아프리카 및 북미에서 사용해 온 가솔린의 브랜드 Total의 높은 지명도를 반영하여 199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의 상장을 앞두고 현재의 사명으로 개명한 것이죠.
Troller
기업명의 발음이 트롤러라서 꽤나 기묘하게 여겨져요. 어선 중의 하나인 트롤어선(Trawl Ship, Troller)과 관련있나 싶기도 하고, 남의 감정을 엎어버리는 행동인 트롤링을 일삼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한국 및 일본웹에서 통용되는 어휘 "트롤러" 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예의 둘과는 전혀 무관한, 브라질의 자동차 제조사예요. 사명의 유래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트롤(Troll)의 포르투갈어 변형으로, 1995년 창업 이래 라틴아메리카 및 캐나다에서 험지돌파 주행이 가능한 SUV 및 트럭을 제조판매하고 있어요.
Vitol
실체 자체는 쉽게 알 수 없지만 알고 보면 정말 엄청난 기업 중의 하나가 이 비톨.
1966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설립된 이 기업은 각종 에너지 및 소재자원을 거래하는 기업으로,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의 글로벌 500 중 8위에 랭크되어 있고 해당 업종에서는 매출액 1위를 기록하고 있어요. 하루에 취급하는 석유의 양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인데 종업원 수는 5,441명으로 꽤 소수정예이면서 매출액은 2016년 기준 1,520억 달러로, 이것은 삼성전자의 1.7% 수준의 인력규모로 68.5% 수준의 매출을 달성하는 레벨.
ZIM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해운회사인 짐은 짐을 나르기는 하지만 절대로 한국의 기업이 아닌 점에서 특기할만해요.
ZIM이란 이름은 대상선단(大商船団)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어구인 치 야미 미샤리(צי ימי מסחרי)의 약칭으로, 1945년 창업 이후로 사명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ZIM의 부분만큼은 변화없이 이어져 있어요.
이렇게 소개된 19개의 기업, 어떻게 다가오셨나요?
기업의 세계 또한 여러모로 깊고, 또한 처음에 글을 썼을 때 이것이 시리즈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벌써 3번째 시리즈가 이렇게 완성되었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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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
2019-12-24 08:07:21
일반적으론 면도기로, 그 외에는 주방기구 전문으로도 유명한 도루코(DORCO) 같은 경우도 그렇죠.
원래는 1955년 동양경금속 이라는 사명으로 창업해서 1971년부터 이후로 줄곧 부르게되는 도루코로 개명했는데, 첫 간판이던 동양경금속에서 DO, 면도기(Razor)에서 R, 회사(Company)에서 CO를 따와 DORCO. 근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감이 누가봐도 일본계 회사다보니까 초기엔 한국 회사임을 필사적으로 어필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그러죠. 거기에 사실 표기법이나 철자로나 도르코로 불리는게 올바른데도 이미 도루코라는 발음으로 각인되어 버린 탓에 이름 바꾸는건 포기한듯 하지만요(...)
아케이드 게임 "PONG"과 가정용 게임기 굴지의 명작 "아타리 2600"을 만든 게임개발사 아타리(Atari, 1972)도 도루코처럼 이름만 보면 누가봐도 일본계인데 실제 출신은 미국 기업이죠.
어원 자체는 바둑에서 단수를 뜻하는 일본어 "아타리(アタリ)"에서 따온 것이고, 초대 창업주인 놀런 부슈널이 바둑광이라서 그대로 따와 붙였다고 그러죠. 그래서 어원이 일본계가 맞기는 한데, 정작 발원지는 저 바다 건너 북미 대륙이고, 다루는 물품도 유래와는 상관없는 비디오 게임 전문이라는 희한한 케이스. 어원과는 별개로 특유의 로고는 후지산을 모델로 한 디자인이라는듯요.
마드리갈
2019-12-24 12:13:24
그렇죠. 도루코의 경우는 확실히 표기가 기묘하게 정착된 경우예요.
반면에, 일부러 철자와는 크게 다른 표기를 정착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금융기업인 푸르덴셜(Prudential) 및 대우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PRUGIO)의 경우는 "프루" 로 시작해야 할 것을 일부러 "푸르" 로 바꾸어서 푸르다는 이미지를 겹치게 만들기도 했어요.
아타리가 일본어의 아타리이고, 산 모양의 그 로고는 후지산을 형상화...
아타리의 사명 및 로고는 정말 의외네요. 새로운 것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