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to content
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직 남아 있었던 2007년의 여름의 약봉지

SiteOwner, 2020-01-04 23:43:05

조회 수
131

집안을 청소하던 도중에 동생이 약봉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미 내용물은 2007년 여름에 다 복용되어 있고 현재의 건강의 원천이 되어 있는 터라 그 약봉지는 이미 소임을 다했습니다만, 동생이 그 약봉지를 발견한 후에 저에게 내밀었을 때 저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해 상반기의 하루하루는 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하루에 간신히 깨어 있는 몇 시간 동안에도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내일 일어날지 전혀 보장할 수도 없었습니다. 면회 시간이 끝나 동생이 돌아갈 때 동생 본인은 태연한 척했지만, 다음날 오면 밤중에 많이 울었는지 눈이 많이 부어 있는데다 충혈되어 있다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결국 그 해 상반기의 끝을 2주 남짓 남기고 퇴원하기는 했습니다만, 이전과는 다소 다른 몸 상태에 한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퇴원 이후에도 통원치료는 계속되었고, 당시의 후유증으로 대중교통 이용도 운전도 불가능했던 저의 통원을 위해 동생이 운전하는 승용차의 조수석에 의존하는 생활이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그때로부터 12년하고도 반 지난 시점.

그때의 약봉지가 집에 남아 있었던 것도 기이하지만, 단지 조제된 약을 담는 용도이고 조제일자와 저의 이름이 쓰여져 있을 뿐인 종이봉투가 지난 날들을 이렇게 떠올리게 하는 것인지...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을 이렇게 약봉지에서 느낍니다.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마키

2020-01-05 18:12:31

테즈카 오사무는 "당시에는 힘든 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아름다웠다고 생각하는 것이 추억의 본질"이라고 평했었죠.

고생했던 나날도 힘들게 살아온 순간도, 미래에 떠올려보면 그땐 그랬지라고 눈물짓는?사람의 감성이란...

SiteOwner

2020-01-06 19:55:11

그렇습니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알렉산드르 푸쉬킨 또한, 시간은 흐르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다 절실하게 알 것 같습니다. 만일 2007년의 그때 죽었더라면 이렇게 폴리포닉 월드 사이트가 세워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지난 날을 추억으로 되새길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며, 동생은 어떻게 되었을지...


그렇습니다. 이렇게 지난 날을 회고하며 눈물지을 수 있는 사람의 감성이란,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감성에 감사한다고.

Board Menu

목록

Page 97 / 295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단시간의 게시물 연속등록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SiteOwner 2024-09-06 165
공지

[사정변경] 보안서버 도입은 일단 보류합니다

SiteOwner 2024-03-28 170
공지

타 커뮤니티 언급에 대한 규제안내

SiteOwner 2024-03-05 185
공지

2023년 국내외 주요 사건을 돌아볼까요? 작성중

10
마드리갈 2023-12-30 356
공지

코로나19 관련사항 요약안내

612
마드리갈 2020-02-20 3858
공지

설문조사를 추가하는 방법 해설

2
  • file
마드리갈 2018-07-02 997
공지

각종 공지 및 가입안내사항 (2016년 10월 갱신)

2
SiteOwner 2013-08-14 5967
공지

문체, 어휘 등에 관한 권장사항

하네카와츠바사 2013-07-08 6592
공지

오류보고 접수창구

107
마드리갈 2013-02-25 12081
3974

2020년대의 첫 비 그리고 생각난 노래

6
마드리갈 2020-01-06 161
3973

운전대만 잡으면 사고가 나는 거 같아요

3
대왕고래 2020-01-05 129
3972

아직 남아 있었던 2007년의 여름의 약봉지

2
SiteOwner 2020-01-04 131
3971

재미있는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렵네요.

4
시어하트어택 2020-01-03 163
3970

쥐 관련으로 이것저것

4
마드리갈 2020-01-02 201
3969

2020년 신년인사

8
SiteOwner 2020-01-01 222
3968

2019년 송년인사

6
마드리갈 2019-12-31 244
3967

2019년 국내외 주요 사건을 돌아볼까요?

7
마드리갈 2019-12-30 268
3966

2010년대의 삶의 회고와 2020년대로의 이정표

2
SiteOwner 2019-12-29 142
3965

아시아나항공, HDC-미래에셋 컨소시엄으로

24
SiteOwner 2019-12-28 272
3964

뭔가 부조리한 두 형사사건의 결과

2
마드리갈 2019-12-27 169
3963

무료버스는 과연 대안일까

1
마드리갈 2019-12-26 135
3962

사슴으로 발생하는 철도사고와 대책

SiteOwner 2019-12-25 140
3961

뜻 밖의 크리스마스 선물

4
  • file
마키 2019-12-24 167
3960

국적이 의외인 기업들을 알아볼까요? 3

2
마드리갈 2019-12-23 196
3959

퇴사하니까 이렇게 편할 줄이야!

2
국내산라이츄 2019-12-22 150
3958

창작활동 관련 이야기.

5
시어하트어택 2019-12-21 195
3957

연말의 마지막 사치

4
  • file
마키 2019-12-20 193
3956

저는 1년을 내리 쉬었답니다.

2
비둘기 2019-12-20 141
3955

이상한 던전 게임들의 대표 특징들을 나열해봤습니다.

3
대왕고래 2019-12-19 151

Polyphonic World Forum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