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꽤 거창하게 쓴 것 같습니다만...
최근에 타계한 백선엽(白善燁, 1920-2020) 장군에 대한 논란, 그리고 올해 상반기의 인종차별 항의시위에서 과거 인물에 대한 격하 및 기념조형물에 대한 반달리즘을 보면서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인간이 살고 있던 시대를 뛰어넘기는 매우 힘들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설령 뛰어넘었다 하더라도 그의 존명기간 도중에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 심지어는 동세대인들이 모두 역사에서 퇴장한 이후에나 재평가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것조차도 확률적으로는 매우 낮습니다. 예전에 쓴 글인 같은 멜로디의 다른 노래 2. 크루세이더의 기묘한 여행에서 언급된 중세유럽의 골리아르(Goliard)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존재만 근대 이후에 인식될 따름이지 그들이 대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는 경우가 압도적입니다. 그런 그들이 남긴 유산도 존중되는데, 명확히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특정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격하, 부정 등의 대상이 되어도 좋은 것일지 의문이 듭니다.
프랑스 혁명사를 돌아보면서 세 인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징세청부인 활동을 했던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 공화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세우고 프랑스 공화정을 여는 데에 공헌했지만 공포정치로 정치적 반대파들을 무수히 죽이다 본인도 실각후 사형당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 1756-1794), 그리고 과거 이탈리아에 속했던 변방 코르시카 섬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이자 근대 유럽사에 빼놓을 수 없지만 프랑스 제정의 개막, 러시아 원정의 실패, 백일천하 등의 유산을 남기고 유배생활로 생을 마감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가 있습니다.
세 인물에는 모두 공도 과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런 일은 없습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이 징세청부인 경력으로 부정당한다든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죽음을 내세우는 공포정치가 공화주의의 사상적 토대 확립을 이유로 정당화된다든지 하는 것은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여태 들은 적도 없으며,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주장은 정당성 문제로 도전받게 될 것입니다. 보수주의의 본산인 영국처럼 점진적인 변화를 쌓아온 국가가 아니라 적극적인 변혁을 모색하는 것이 전통인 프랑스조차도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꽤나 길어진 것 같습니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과거의 인물이 살아왔던 시대에 대해서 그 시대가 잘못되었느니 인물이 잘못되었느니를 말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결론은, 지금을 사는 우리가 그 시대를 답습하거나 되려 후퇴하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 그 과거의 인물이 살던 시대보다 더 좋은 시대를 만들고 그 과거의 인물 이상의 사람이 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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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20-07-17 22:06:21
인물에 대한 판단에서 중요한 것은 이성을 유지하는 거겠죠.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 내세우는 의견은 심하면 폭력에 불과할지도 몰라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무엇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느냐가 중요하겠죠.
SiteOwner
2020-07-18 20:07:50
그렇습니다. 이성을 유지하지 못할 때의 폭주는 이미 숱한 문제를 일으키고, 결과가 벌어지고 나서는 후회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는 최초로 유럽 전역이 전쟁의 참화에 폐허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적하며 죽어나갔지만 정작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이 전쟁은 대체 왜 무엇을 위해 한 것이며 결국 누가 이득이었는가도 알지 못한 채 지식인 사회가 허무주의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다시 더 큰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20년 뒤의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진영논리가 우선하고 당파상인 지금의 작태가 극복되지 않으면, 우리의 오늘은 미래 세대에 통째로 부정당하게 될 것이고, 그 평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