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정말 여러가지로 묘합니다. 일단 기억에 남는다는 것부터가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이유로든 의미가 있음을 나타내니까요. 그렇기에 인생에서 주는 의미가 너무 커서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에서 아무 의미가 없음에도 절대 잊을 수가 없는 사람도 있죠. 어쩌다가 예전 글들을 읽어보며 그 시절을 떠올리다가 '기억 속의 얼굴'이란 소재가 생각나서 잠깐 얘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얘기 순서상 기분 좋은 이야기로 끝나야 다 읽었을 때 앙금이 없으니만큼, 역겨운 얼굴부터 언급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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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운 얼굴의 대표주자라면 역시 '과거에 나를 괴롭혔던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어쩌다보니 중학교 때 이런저런 이유로 맞고 다니거나 따돌림에 시달린 적이 있는데, 학창시절에 가장 아스트랄한 시기라서 그런지 가장 많은 얼굴들이 기억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피해자니까 더 잘 기억할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다시 끄집어내기도 싫습니다. 정말 세월이 약이라고, 지금은 가물가물해지는 게 다행일 뿐입니다. 물론 얼굴은 절대 잊을 수 없지만요. 그래도 두 명은 꼭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반대의 유형이라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일단 물리적 유형. 네, 폭행입니다. 간단히 말해 학원 끝나고 집에 가려다 심야에 폭행을 당한 건데, 버스비가 없어서 그랬다나요? 덕분에 파출소에 가서 경위서인지 뭔지도 써보고 MRI도 찍고 그랬는데 참 정신없던 이틀이었죠. 이쯤에서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으로 재회했네요? 그리고 그 인간은 저를 기억하지 못했고요. 그러면서 다른 애들이랑 같이 (다른 사유로) 절 놀리는 건 여전했고요. 뭐 그 당시 고2부터는 문과 이과로 나뉘다보니 구조상 상종할 일은 더 이상 없었지만,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가해자'란 걸 겪어봐서인지, 그때부터 제 성격이 약간 좀 변한 것 같습니다.
다음은 심리적 유형. 앞의 유형에 비하면 타격은 전혀 없어요. 하지만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더군요. 고등학교 때부터인가? 지나가는 길에 저랑 마주치면 제 이름을 이용해 이상한 랩(?)을 하며 놀리던 사람이 있던데, 무려 대학교 앞거리에서 마주쳐도 그러더군요. 뭐 저야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아서 그 사람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 행동을 반복하는 그 사람도 기묘하더군요.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일단 알아봐달라고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늘 지인들이랑 있었거든요. 그럼 역시 시비밖에 남지 않는데, 얼마나 인생이 재미가 없으면 그런 걸로 쾌락을 느끼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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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좋은 의미로 반갑고 그리운 얼굴들은 너무나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정말 의지하거나 좋은 관계로 지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몇몇은 별다른 관계 없이 얼굴만 기억할 뿐이지만 좋은 의미가 있었기에 소중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역시 대학교 이전의 학창시절에 집중되어 있더군요. 아무래도 저는 대학교 이후로는 엄청 재미없게 살았나 봅니다.
가장 반갑고 그리운 얼굴들은 역시 선생님이네요. 당시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집에 가면 (아부지 사이즈 줄여놓은 것처럼 엄격하던 형을 빼더라도)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더더욱 의존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무실을 제 집처럼 드나든 사람도 없을 거에요. 뭐 다른 애들이 보면 무슨 일만 벌어지면 선생님한테 가서 이르는 소위 '찐따'였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그래도 위에서 다뤘던 문제 같은 걸 혼자 끙끙대지 않고 선생님들께 도움을 구했던 건 잘 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혼자서 끙끙 앓다가 병나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요. 그렇기에 제가 만났던 선생님들 중엔 생명의 은인 같은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존함을 일일이 언급하고 싶지만 생략하겠습니다)
다음은 첫 짝사랑이라고 해야 하나요. 워낙 연애에 무지해서 별다른 추억은 없습니다. 그냥 반해버려서, 그 여학생이 있을 때마다 쳐다보고 관심을 가졌던 게 전부입니다. 운 좋게 같은 반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윗 문단처럼 중학교 시절은 워낙 위험천만해서 고백같은 걸 할 틈이고 생각이고 없었네요. 현실은 만화하고 너무나 달라서 소문 한 번 나면 평생의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별 일 없이 졸업과 함께 헤어졌습니다. 다시 만난 건 대학교 앞거리에서인데, 저는 기억하지만 그 사람은 당연히 절 기억하지 못하죠. 짝사랑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는데, 반쯤 장난삼아 졸업앨범에 적힌 이메일 주소로 블로그를 검색해봤더니 결혼했더군요. 신혼여행을 해외로 다녀왔고 아기도 낳았는지 육아 강좌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저에게도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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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는 곳이나 직업(?)상 사람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서 '기억에 남는 얼굴'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네요. 물론 업무관계상 BIC 같은 오프라인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한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인터넷 지인들을 사귀기는 합니다. 그러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져서인지, 예전만큼 깊은 관계를 쌓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슬프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지만요. 그렇게 감정이 무뎌지며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다는 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노래 하나 올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글은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MIKA의 Happy Ending입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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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마드리갈
2021-03-11 13:04:08
우선 운영진으로서 동영상 임베드에 대한 것을 말씀드릴께요.
임베드 코드변환에 대해서는 정보공시 항목에 추가되어 있어요. 포럼의 메뉴바의 Front Page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대었을 때 나오는 메뉴의 5번째 항목 페이지이고,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사항 4번에 있어요.
본문의 첨부영상도 정보공시 항목의 Valid XHTML YouTube embed code generator로 코드를 고쳐서 재삽입해 두었어요. 혹시 이상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세요. 그러면 최단시간에 수정해 놓겠어요.
그럼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로 코멘트할께요.
시어하트어택
2021-03-11 22:58:55
그런 경험 저도 참 많았죠. 학교든 군대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은근히 속 뒤집어 놓는 사람도 있었죠. 반면에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래도 생각해 보면 저는 인복이 많이 없었던 듯합니다...
Lester
2021-03-12 20:03:01
분명히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기억에는 불쾌한 사람들만 남는 게 참 미스터리하기도 합니다.
마드리갈
2021-03-12 14:25:48
이상한 사람들, 드물지 않죠. 그래도 그냥 있으나마나한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이 더 많거나 그들의 영향력이 더욱 강하다 보니 세계는 그나마 기괴하지 않게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확실한 건 레스터님께서 지금의 생활을 영위하고 계시고, 그 이상한 사람들은 더 이상 악영향을 끼치지 못한 채 과거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것.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 이상한 사람들의 악의는 이미 분쇄된 것이죠.
저를 대놓고 모욕하던 자도, 이상한 소문을 내서 중상모략하던 자도 기억나네요.
게다가, 곤경에 빠졌을 때 저를 외면하고 떠나갔던 "친구", 즉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라고 할 수 없었던 예전 지인들도 생각나는데, 그들은 현재의 저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당시에도 그들이 의도하던 것, 즉 제가 파멸하거나 타락하거나 하는 상황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압도적인 대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속 제 삶은 나아지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성공을 축적해 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을 다시 마주쳤을 때 그들이 저에게 뭐라고 한다면, 제 시선은 아마 날벌레를 보는 것만큼도 못되겠죠.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실패한 길을 가면 되고, 저는 저의 성공하는 길을 가면 되는 거니까...
MIKA의 Happy Ending, 정말 좋은 노래예요.
MIKA는 정말 천재인 듯...가사의 상황은 정말 경험하고 싶지 않은 슬픔과 허무와 고독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것조차도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로 만들 수 있다니...
그런데 국내 방송광고에 저 노래가 사용된 것을 보고는 기겁했어요. 대체 가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알고도 무시한 것인지...
Lester
2021-03-12 20:38:18
그나마 과거를 돌아볼 틈이 없을 정도로 현재가 바쁜 것이 감사할 따름이네요. 과거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건강이 안 좋은 관계로 코멘트는 길게 쓰지 못하겠네요.
SiteOwner
2021-03-13 18:23:55
이전에 제 코멘트에 대해 말씀하신 것의 연장이군요([COSMOPOLITAN] #A5 - Random Encounter 참조).
그렇습니다. 저에게도 반가운 얼굴과 역겨운 얼굴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반가운 얼굴보다는 역겨운 얼굴이 더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저희집을 별볼일없는 하찮은 집안이라고 경멸했던 학교 교장이라든지, 저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따라다녔으면서 장기투병 후에 깨어나서 바로 생각나서 전화했더니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던 그 여자라든지 등등..
조속한 회복을 기원하겠습니다.
Lester
2021-03-14 01:18:36
뭐 그럴 때마다 시간이 약이라고는 합니다만 유념해야 할 게, 시간은 약은 되지만 사례는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악착같이 기억해 뒀다가 복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전과기록으로 남겨두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