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에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넋두리도 풀 겸하여 포럼에서 민감할 만한 주제임을 무릅쓰고 써 보겠습니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도구가 너무 많아졌죠. (도구로서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스마트폰을 제외하면) 전화, 채팅, 메신저, SNS, 화상통화...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정말 다양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수단에 따라서는 기능적인 장단점도 있지만 감성(?)적인 장단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화상통화 같은 경우엔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 즉 상술한 수단들 중에서 상대방과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 보니 아무래도 (사회 관계적인 측면에서) 일반인들끼리 사용하기는 힘들죠. 반대로 메신저나 SNS는 짧은 말들을 즉각즉각 보내기에 피드백이 빠르지만 그만큼 성의(?)가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특히 저처럼 상대방의 말을 천천히 듣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요. 한 줄 읽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도 읽어 이것도' 하고 말을 자르는 느낌이라...
그런 의미에서 저는 채팅이 가장 편합니다. 말이 끊어지는 것은 메신저나 SNS와 다를 게 없지만 손가락을 모두 사용한다는 점에서 터치보다는 확실히 할 말을 좀 더 생각할 틈이 있고 표현도 훨씬 깔끔하죠. 메신저나 SNS야 터치를 이용한 처리속도(?)와 경제성(?)상 단타, 즉 줄임말을 쓰는 게 합리적(?)이지만 채팅은 꼭 그렇지만도 않으니까요.
제가 채팅을 처음 접했던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컴퓨터실입니다. 당시 (시대적 정황은 모르겠지만) 컴퓨터실에는 윈도95와 그럭저럭 인터넷이 깔려 있었는데 그 때는 뭐가 뭔지도 몰랐어요. 포털 사이트라는 개념 자체도 모르고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니까요;;; 그래서 특별히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그냥저냥 넘겼는데,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선생님(닉네임이 지금도 기억나네요. 파뿌리)이 지인 분이랑 채팅을 하고 계신 걸 봤습니다. 워낙 제가 신기해하니까 선생님과 지인분이 '선물 던질테니까 받아라' 하면서 절 놀렸던 게 기억납니다.
그 때 제가 채팅에 대해서 강하게 인상을 받았던 건 아무래도 가정 환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집 가정사를 통틀어 보면 마지막으로 이사하고 온 집(즉 제가 독립하기 전까지 최소 약 20년을 산 집)이었습니다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그 집에서 산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내심 심란했겠죠. 게다가 부모님은 맞벌이이시고 형하고의 사이도 애매하다보니 친구가 없었고, 그래서 그 '살아 있는 누군가와 얘기한다'는 것에 감명을 깊게 받았나 봅니다. 정작 그 당시의 저는 그 지인분을 무슨 인공지능인 줄 알았지만요. 소위 어렸을 적의 '상상 속의 친구'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연습장에다 색연필로 제각각 닉네임을 부여해가며 대화 기록을 만들면서 (결과적으론 1인 다역) 역할극을 하거나, 컴퓨터를 산 이후에도 워드패드(한글이 안 깔려 있었으니까)에서 같은 짓을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스토리를 짜는 것'의 가장 큰 뿌리는 거기서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사하면서 옛날 노트도 다 가져왔으니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 있긴 할텐데, 소위 이불킥을 할 만큼 오그라들까봐 차마 펼쳐보질 못하겠네요.
뭐, 그렇습니다. 빨리 모 커뮤니티의 채팅 기능이 정상화되면 좋을텐데, 아니면 정상화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심란해하다가 과거 회상까지 짚어봤습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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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1-03-28 14:26:46
우선 이 글에 대해서 운영진으로서 확실하게 판단을 해 둘께요.
이 글은 이용규칙 금지사항 제4조를 위반하지 않아요. 즉 다른 커뮤니티의 분쟁을 유입시키는 것도 아니고 상황을 중계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개인생활의 한 영역으로서의 채팅을 화제로 쓰고 있는 것이기에 운영진의 판단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혀 두어야겠어요.
그다음에는 내용.
역시 대면활동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여러모로 장점이 있죠.
물론 단점도 없다고는 단언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으니까, 또한 본질적으로는 대면활동 대화처럼 대화의 한 수단이니까 여전히 존속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대화의 수단과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수단이라고 하겠죠.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독일을 주활동무대로 했던 루마니아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12-1996)가 만년에는 레코딩을 많이 남긴 이유가 같이 생각나고 있어요. 첼리비다케의 음악관은 음악은 그 현장에서 완결되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활동초기의 레코딩은 그다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명성에 비해서는 그의 음악을 들을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는 만년에는 생각을 바꾸었고, 비록 현장의 감동을 그대로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만년에 남겨진 수많은 레코딩을 통해 그의 활동시대와 장소를 체험할 수도 없었던 저도 그의 예술세계를 CD나 유튜브 등으로 접하며 향유하고 있기도 하죠.
Lester
2021-03-31 20:29:52
특별히 대면활동을 자주 하지 않는 저로서는 채팅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화면 너머의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파악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어서 가끔은 채팅도 거북하지만요. 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선택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SiteOwner
2021-03-28 20:41:40
존재하는 많은 의사소통수단에는 여러 장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한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연애관계라든지, 비즈니스라든지, 이런 것은 언어적인 수단 이외에도 비언어적인 수단도 같이 필요하다 보니 그런 것입니다만, 비언어적인 수단이 굳이 필요하지 않는 상황이거나 부득이한 상황에서까지 무조건적으로 채팅은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니 무가치하다는 주장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채팅 또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폴리포닉 월드의 초안도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메모노트에서 시작했던 게 기억납니다. 이것을 동생이 알게 되면서 계속 성장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형태가 되어 있습니다.
Lester
2021-03-31 20:54:10
특히나 요즘처럼 무슨 모임을 하려고 해도 애매한 상황에서는 채팅이 그나마 낫더군요. 비록 심도깊은 모임이나 사람을 접하기는 힘들지만, 채팅 특성상 어쩔 수 없겠거니 하고 넘기고 있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MAME32를 비롯한 고전게임들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게임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다 보니, 아무래도 동년배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취향을 타게 된 것도 그런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애초에 그 당시의 스타크래프트가 인기 게임이라고 해도 멀티와 밀리에 쥐약인 저로서는 무슨 짓을 해도 안 어울렸겠지만요. 특히 1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고 공장 돌리는 듯한 밀리전은 무슨 인간이 기계화되는 과정을 보는 것마냥 무서운 면도 있어서 포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