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버지와 간만에 시원한 맥주 한잔을 걸치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집 소유권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날까지만이라도 가지고 계시라고 권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나온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진행되던 도중 아버지가 좀 취기가 도셨는지 "네가 죄책감을 가질지도 몰라서 이야길 안한 거지만 이제 해도 될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해본다" 라고 운을 띄우시면서 하신 이야기는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단순히 파킨슨 병에 걸렸다고만 알고 있었고 그것이 불치병이다 라는 것만 인식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상태는 그 이상으로 심각했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알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파킨슨 병 중에서 가장 심각하고도 희귀한 다계통 위축증을 앓고 계셨으며 저와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간호하고 돌보던 그 시기엔 그것을 회복시키거나 병세를 늦출 약이 없었던 것입니다. 의사들도 이게 굉장히 희소한 병이라 파킨슨 병으로만 알고 있어서 해당 약과 처방 그리고 재활 프로그램을 권했지만 진전은 커녕 오히려 악화되기만 한 것이었고요.
결국 어머니는 그 어떤 약과 재활 프로그램의 효과도 못 보신 채로 3월 3일에 눈을 감으셨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로부터 6월에 다계통 위축증 약이 나왔으며 그것의 2차 임상실험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만 더 오래 버티셨다면 어머니는 건강히 회복하셨을까 하는 아쉬움과 슬픔이 밀려옵니다. 어쩌면 1년...1년만이라도 버티셨다면 어머니는 사셨을까? 하는 생각도 그 이어서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약을 비롯한 아무 회복수단도 없었던 와중에 우리는 그래도 최선을 다했구나.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어 마음의 무게를 조금 덜어버린 기분도 드는군요.
어째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의 맛이 오늘따라 더 씁쓸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입니다.
TO PROVE A POINT. Here's to C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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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마드리갈
2021-06-28 12:44:17
아...이렇게 통탄스러울수가...
사실 어제 처음 읽었을 때는 정말 주먹을 쥐고 테이블을 치면서 겨우 눈물을 참았어요.
다계층 위축증 약이 나오기 전까지 조금만 더 살아 계셨더라면...
조커님의 마음,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네요.
3월 3일에 고인이 되신 어머님을 위해, 그리고 조커님과 가족 분들을 위해 기도할께요.
조커
2021-07-05 22:47:02
적어도...그렇습니다..적어도 말이죠. 그래도...약 하나 없는동안 어머니가 1년동안이라도 최소한의 생활이나마 할 수 있도록 아들로서 모든 걸 다했던 것만큼은 후회는 없습니다. 병 자체도 굉장히 희소질환이라 대한민국에서조차 단 10000명만 존재한다는 병이라 약이 없었다는 것만큼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회한은 제가 어머니와 같은 곳에 갔을때 충분히 사죄드리려 합니다. 준비는 충분히 해놔야겠죠. 그 날이 올때까지.
Lester
2021-06-29 08:02:54
일단 텍스트로나마 진심어린 애도와 위로를 드리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직접 만나서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여건이 마땅치 않네요. 특히나 고인이 친족이라는 점에서 쉽게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만... 그래도 조커님에게 책임이 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셨을 테니까요. 다시 한 번, 애도와 위로를 표합니다.
조커
2021-07-05 22:49:24
아이러니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겨우 생활에 여유가 생겨서 못챙겼던 주변사람들을 챙길때가 제게도 온 거 같습니다. 저번처럼 언제 한번 뵙도록 하지요. 책임이라기 보단 왜 하필이면 이럴때 어머니께서...라는 마인드입니다. 돌아가신 지금은 회한을 남긴다 한들 소용없겠죠.
적어도 어머니께서 잘 이해하신 상태로 세상을 떠나셨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길 빌어야지요.?
SiteOwner
2021-06-29 21:44:13
정말 원통하실 것이라는 게 읽히다 보니 정말 가슴아픕니다.
조커님께서 충격을 받으신 것도 이해됩니다. 하지만 자책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본문의 "희귀" 는 "희소" 로 수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2017년에 쓴 제 글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조커
2021-07-05 22:51:39
말씀하신 부분은 잘 수정했습니다. 확실히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질환에 희귀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감이 있었는데 잘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제 모든것이 다 지나가버린 지금은 원통함 보단 회한과 아쉬움만 남습니다. 어차피 생자필멸...사람 가는 것에 순서없고 피할 수 없다면 상황이 닥쳐오고 그 이후에 잘 견디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남은 사람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잘 견디고 먼 훗날 먼저 간 분들께 갔을때 잘 사과할 수 있길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