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최된 도쿄올림픽의 개막식 중계에서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MBC가 보여준 타국비하사태는 언론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죠(MBC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중계에서 보였던 것 참조). 그런데, 이게 단지 MBC의 문제에 한정되어 있기만 할까요? 그건 아니라고 봐요. 단지 MBC가 독보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을 뿐, 별로 다를 바 없는 "예비공동정범" 은 도처에 있을 것임이 보이고 있어요.
그 첫번째 근거는 언론의 논조.
선수나 지도자의 활약을 그 자체를 칭송하기보다는 꼭 잔혹한 표현을 골라쓰는 것.
이를테면 이런 것이죠. "조국에 비수를 꽂았다", "동료에 비수를 꽂았다" 같은 것들.
비수(匕首)란 칼날과 칼자루 사이의 경계가 되는 코등이가 없는 단도를 말하는 것이죠. 이것은 은폐하기 좋아서 암살용으로 잘 쓰이는 흉기인데, 꼭 이런 표현을 골라서 써야 하는 걸까요.
이런 사례가 있어요
셔틀콕 지도자 한류의 역풍…강경진 中 코치, 제자들에 비수[올림픽], 2021년 7월 31일 연합뉴스 기사
일단 기사제목 자체가 "한류의 역풍" 과 "제자들에 비수" 라는 증오표현으로 점철되어 있어요.
그리고 본문에서는, 중국의 여자 배드민턴 국가대표의 지도자로 활동중인 한국인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읽고 있다 보면 무슨 매국노같은 존재인 양 서술하는 함의가 읽히고 있어요. 이게 과연 정상적인 논조일까요? 국적이고 뭐고 떠나서 그들에게는 직장이고, 그들은 그들의 직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냈을 뿐이예요. 그리고 그 업무내용은 어디까지나 스포츠일 따름이지 그게 위법하거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종류의 것도 아니죠.
이 논리를 받아들일 경우에 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감독 어깨에 손을 ‘턱’… 라바리니, 그는 대수롭지 않아 한다, 2021년 8월 4일 조선일보 기사
우리나라의 여자배구 감독은 이탈리아인. 그러면 그는 이탈리아에서 매국노로 매도되어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 외국인 지도자를 맞이한 배구팀이 비난받거나 달성한 결과도 폄하되어야 할까요?
그리고 두번째 근거는 일단 매도하고 보자는 군중심리.
한일전 후 “반민족행위자” 비난… 고우석·양의지 댓글창 사라졌다, 2021년 8월 5일 조선일보 기사
이것을 보면서 언론만 탓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스포츠에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을 갖고 반민족행위자 운운하는 데에서 이미 답이 없어요. 게다가 증오와 폄하의 인프라가 이렇게도 잘 구축되어 있는 것이 보이죠. 이런 사람들이 정책결정권자 중에 전혀 없거나 그 부류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이상, 이렇게 매도부터 하고 보는 심리는 언제든제 제2, 제3의 MBC 사태를 만들고도 남을 거예요.
그럼 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 것일까요?
일단 3가지 논점으로 요약할 수 있겠어요.
첫째, 자신의 존재를 자신 대신 타자에게서 찾는 풍조가 팽배해 있다.
둘째, 생각없이 감정에만 호소하는 무지성 내지는 반지성적인 행동양식이 난무한다.
셋째, 정치극단주의, 진영논리 등에 물들어 있다.
이 세 논점을 종합해 보면 그런 것이죠.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 무엇을 해냈다는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그저 누군가를 찾아서 마구잡이로 두들겨 팰 수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 그러니 외국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지도자, 성적이 부진한 국가대표 선수, 언론인 등 누구라도 걸리면 그때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을 하면 되는 것이죠. 이런 행동에 지성이 있을 리도 없는데다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판단될 뿐이죠. 이런 것이 스포츠에 국한될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국내정치, 사회문화, 국제관계 등의 영역에서 난무하고 있어요. 그러니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 대선을 앞두고 특정 유력후보의 배우자를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모욕하고, 그런 반인권적인 작태에 대해서 인권의식은 선택적으로 작동할 뿐이죠.
결국, MBC 타국비하사태의 예비공동정범은 지금도 충실히 키워지고 있어요. 어떠한 제동도 걸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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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Papillon
2021-08-05 21:39:48
반지성적인 행동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외에 "자신의 집단 사이에서 통하는 행동 양식이 대중적인 줄 안다"라는 것 또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개념 자체야 이전부터 있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더욱더 늘어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본래 문화 인류학적 의미에서 "서브컬처"는 어떤 사회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작은 사회가 누리는 문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작은 사회의 "서브컬처"는, 기존 사회와는 전혀 다른 도덕관을 따르는 경우도 있죠. 예를 들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색기 담당인 "여고생 캐릭터"를 보고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팀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플레이어끼리 대전 때 심각한 욕설이 오가는 것을 보고 경악하죠. 하지만 그 내부 집단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들 내부의 문화에서 이는 평범한 것이니까요. 과거에는 이런 작은 사회에 소속된 사람들이 외부에서 자기들의 가치관을 적용했다가 문제가 생기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이런 작은 사회의 구성원들 자신이 보기에도 자신들은 소수자였으니까요. 애초에 다른 사회와 독립되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기본적으로 현대 사회의 가치관을 따르면서, 작은 사회로 일탈하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흔해지면서 작은 사회가 커 보이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현대의 작은 사회가 된 인터넷 커뮤니티는 기존의 작은 사회들이 그렇듯 자기만의 "서브컬처"를 이루고 살아갑니다. 그중에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은 가능한 걸까?"라는 의문이 드는 곳들도 많죠. 거기에 그런 커뮤니티의 회원이 천 단위, 만 단위, 심한 경우 십만 단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 "회원" 중 진짜 회원은 소수입니다. 대부분 많아야 백을 넘지 못하죠. 하지만 비록 유령회원이라고 할지라도 회원 수 자체가 많다는 건 구성원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신들의 문화가 평범한 게 아닐까 싶은 거죠. 그리고 그런 이들은 바깥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문화대로 행동합니다.
다시 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언론에도 당연히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대중들이 보는 프로그램에도 "이것이 유쾌하다"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밈으로 투입하게 되죠. 여기서 만약 윗사람이 검수를 열심히 하면 문제가 사라집니다. 문제는 이런 방송 쪽은 "빠름"과 "신세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빨라야 하니까 검수를 대충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방송에 나갈 때까지 잡히지 않습니다. 설사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고 해도, 이를 삽입한 사람들은 "젊고 유쾌한 문화"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방송사는 이를 듣고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시킵니다.
이런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가 돼야겠지요. 언론이 "빠름"을 포기하더라도 검수를 똑바로 하든가, 아니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해 교육을 하든가. 하지만 전자는 지금 언론의 세태와 자본주의의 특성을 생각하면 힘들겠고, 후자 역시 세대 교차가 일어나기 전에는 힘들겠죠. 어려운 문제입니다.
마드리갈
2021-08-05 21:58:16
인간은 자신, 그리고 자신이 속한 소집단을 기준으로 행동하죠. 그리고 그 소집단 속의 사회화 수준에 따라 행동의 외연을 확대하는 것. 그러니 빠삐용님의 말씀처럼 자신들의 행동의 외연이 확대되더라도 결국 소집단 내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대로 행동하고 그 결과가 저렇게 되는 것도 확실히 납득되네요. 이렇게 보면 본문에 제시된 세번째의 쟁점과도 통하겠네요.
정보화사회 속에서 역설적으로 우물안 개구리가 양산되고, 문제의식조차도 느끼지 않는다만 이런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겠네요. 그리고 이론적인 해결방법만 있을 뿐 실효성을 논할 수 있는 단계로는 아예 못 가니 총체적인 난국이네요.
마드리갈
2021-09-28 12:20:05
2021년 9월 28일 업데이트
KBSN에서 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중계하던 도중에 이기호 아나운서가 안산 선수가 7점을 쏘자 "최악이다" 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었어요. 결국 이 사안에 대해서 공식사과를 했어요.
MBC에서 일으켰던 각종 논란은 MBC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계열의 방송사에서도 벌어졌고, 이렇게 예비공동정범이 있음도 입증되었어요. 적중하지 않았으면 하는 예측이었지만, 이게 현실이예요.
관련보도를 하나 소개할께요.
7점 쏜 안산에게 “최악이다”… ‘막말중계’ KBSN, 결국 사과, 2021년 9월 28일 조선비즈 기사마드리갈
2023-02-19 17:48:04
2023년 2월 19일 업데이트
중국의 정찰기구 위험이 증대되고 있는 한가운데 미국에서의 격추시도가 실패한 것에 대해 비하적인 서술이 기사에 잘 노정되었어요. 게다가 외신에서 사용된 표현을 무비판적으로 끌고 온 것에 대해 일말의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은 듯해요. 그리고 애초에 탑건이라는 개념은 미 해군의 조종사양성 프로그램과 관련있지 미 공군이 아닌데도 엉뚱하게 끌어다 쓰고 있어요.
미사일이 만능인 것도 아닌데 꼭 이렇게 비하하는 표현을 안 쓰면 어디가 잘못되거나 신변이 위험하기라도 한다는 것인지. 이게 얼마나 유익할지는 이미 대답할 필요조차 없어요.
관련보도를 하나 소개할께요.
"어이쿠" 5억원짜리 미사일 헛방…美탑건 '굴욕', 2023년 2월 15일 아시아경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