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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시리즈의 바로 이전 회차는 코로나19 이전이었는데, 지금 쓰는 건 벌써 코로나19 판데믹 3년차에 작성되는 것이군요. 이렇게 한동안 쓰지 않았던 이 시리즈를 다시 이어나가는 데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의 글에서는 소련전차와 전기차의 데미지 컨트롤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육상 기동전의 주력무기인 전차만큼 그 대표적인 위상이 여러 나라에 분산된 것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전차는 영국에서 발명되었지만 전차를 본격적으로 이용한 전격전은 독일에서 고안되고 대량생산체제는 미국과 소련에서 꽃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서 활약하는 전차는 미국제와 소련제가 압도적으로 많으면서 군사 이외의 분야에서는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을 전차군단으로 묘사하는 양상이 여전히 이어지는 등 전차의 대표적인 위상은 여러 나라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감행되면서 우크라이나의 국토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전차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부분 구소련 시대에 생산되었거나 그 시대의 설계에 기반하여 소련 해체후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각각 개량된 전차들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물론 걸프전 때 이라크군이 운용하던 T-72 전차가 다국적군의 작전에 매번 터져나가서 포탑사출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도 그대로 재현되어, 러시아군의 전차는 오늘도 우크라이나의 어디에서 미국제 재블린(Javelin) 대전차미사일 등의 서방측 공여무기에 격파되면서 포탑사출의 오명을 벗을 가능성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소련전차의 약점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전후 소련전차에서는 인력의 생력화가 많이 강구되었습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가리지 않고 수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다 사단마저 전투 투입전에는 1만명 내외였던 병력규모가 전투수행 후에는 2천명을 겨우 기록한다든지 하는 등으로 끊임없이 죽어나갔는데다 냉전기 소련은 미국 및 서유럽과의 기술격차를 양적 우위로 메꾸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전수를 없애고 전차장과 포수와 운전수의 3명만으로 운용가능한 자동장전장치 탑재 전차가 개발되었습니다.
이하의 영상은 바로 그 자동장전장치의 작동원리입니다. 대체로 회전목마의 원판같이 생겼다고 해서 캐로젤 오토로더(Carousel Autoloader)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T-72 및 T-90은 포탄이 수평으로 수납되고 T-64 및 T-80은 포탄이 수직으로 수납되는 차이가 있지만, 사실 원리는 대동소이합니다. 그리고 설령 포탑이 피탄되더라도 포탄이 차체 깊은 곳에 수납되어 있어서 유폭되어 탑승자 전원이 폭사하는 위험은 낮아집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소련전차는 일단 피격되면 포탑이 사출되고 승무원은 전혀 탈출하지 못해서 그 자리에서 폭사하고 마는 비극을 번번이 낳고 마는데, 왜 그럴까요?


문제는 포탄의 수납방식 및 캐로젤 오토로더의 데미지 컨트롤 부재에 있습니다.

자동장전장치 이외에도 예비탄을 휴행하기 마련인데, 그 예비탄을 어떻게 수납하는지가 크게 문제가 됩니다.

이 모식도에서 주황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updated ammo models.jpg

이미지 출처

Gunnery guide: T-72M1


차내 공간에 되는대로 저렇게 예비탄을 쌓아뒀는데 대전차무기가 특정방향에서만 날아오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만일 예비탄을 쌓아둔 구획이 피탄되면 그 순간 저 전차는 전차였던 고철이 되고 승무원은 폭사하여 사람이었던 자취조차 남기기 힘들게 되어 버립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저렇게 예비탄을 구비한다는 말은 자동장전장치에 장전된 탄약이 떨어지면 직접 손으로 채워넣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그 사이가 막혀 있으면 사람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렇게 열려 있는 공간 바로 위가 탑승구획이라는 것.


t-72-autoloader-image03.jpg

이미지 출처

T-72 Design - Limitations


자동장전장치의 외곽, 즉 이미지 좌측 하단에 예비탄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게다가 러시아투데이(RT)의 워터마크까지 찍혀 있으니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나름대로는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을 위해서 저렇게 자동장전장치를 차체 한가운데의 깊은 공간에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운용에서는 예비탄의 수납문제가 있고 설령 그게 해결되었다고 해도 근본적인 방호수단이 부재한 이런 소련전차가 전투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게 이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련전차를 비웃기에는 전기차의 데미지 컨트롤도 낫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비극입니다.


2022년 6월 4일 부산에서 있었던 한 교통사고가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전기차 충돌 3초만에 800도, 탑승자 탈출도 못하고 숨졌다 (2022년 6월 8일 조선일보)


이 사고에서 아이오닉 5 전기차는 톨게이트의 전방 도로분리벽과 충격흡수대를 정면으로 들이받고 직후에 3초만에 불길이 번졌습니다. 그리고 탑승자 2명은 탈출하지 못하고 차내에 갇힌 채로 사망했고 진화도 7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가솔린을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도 충돌했다고 무조건 대화재나 폭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데 전기차의 경우는 이상하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그 이유는 구조를 보면 바로 추론가능합니다.


문제의 아이오닉 5의 차체구조는 이렇습니다.


hyundai-ev-platform-e-gmp-01-1 Single Image Desktop.jpg

이미지 출처

Hyundai releases deep dive into IONIQ 5’s features and production


아직 배터리는 내연기관에 쓰이는 가솔린, 경유,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 등의 연료만큼 에너지밀도가 크지 않습니다. 특히 가스류의 경우 에너지밀도가 상온에서 액체인 연료보다도 낮다 보니 LPG를 연료로 쓰는 택시의 경우 트렁크 공간이 가스봄베에 점유당해 좁아진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터리는 더욱 사정이 좋지 않아서 탑승공간 바로 아래를 배터리 수납공간으로 써야 합니다.

어차피 시판되는 승용차가 방탄이나 방폭사양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이렇게 탑승공간 바로 아래에 배터리팩이 자리잡은 이런 신설계의 승용차에서 배터리팩이 발화하거나 폭발했을 경우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데미지 컨트롤 대책은 사실상 없습니다. 소련전차와는 달리 승객이 바로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구조인데, 실제로는 탈출하지 못하고 차내에서 끔찍하게 죽어가야 합니다.

게다가 언급한 사고 이외에도 전기차의 폭발사고는 흔히 보도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은 없습니다. 게다가 분쟁지역 이외에서는 거의 마주칠 일이 없는 소련전차와는 달리 이런 구조의 전기차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당장 이 동네에도 개인용 차량이든 택시 등의 영업용 차량이든 이런 형태의 전기차는 하루에도 몇 대 이상 보입니다.


가솔린을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경우 연료탱크는 대체로 뒤차축 뒤에 자리잡고 있고 자동차의 외측한계와도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폭발할만큼의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투기에 잘 적용되었던 셀프실링(Self-sealing) 기술을 이용하면 연료누출에 의한 폭발위험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연료탱크를 이중구조로 만들고 그 사이에 고무 등을 충진시켜 설령 손상되더라도 사이에 충진된 고무가 가솔린을 흡수하고 부풀어서 손상부위를 막는 이 기술은 이미 20세기 전반에 나온 옛 기술인데도 불구하고 최첨단 전기차보다 월등히 안전합니다. 물론 그 기술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앞서 말한 이유 덕분에 폭발 자체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소련전차의 데미지 컨트롤이 형편없다고 비웃기에는 전기차의 것은 더 무모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게 과연 문명의 진보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대왕고래

2022-07-28 00:02:13

전기차에 대해서는 안전문제, 불량문제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죠.

저같은 경우는 스스로 차를 끌고 나갈 일이 없다보니 그렇게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분야이지만... 그래도 사진에 있는 전기차의 구조는 좀 심각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데미지 컨트롤 대책이 없는 건 매우 위험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당연히 관련된 연구를 각 기업에서 하고 있겠지만... 아직 미래가 멀다는 느낌이 드네요.

SiteOwner

2022-07-30 14:12:53

사실 자동차의 구조에 관심없는 대부분의 일반인에게 중요한 것은 도입가격, 금융조건, 내부공간 등의 실용적인 영역입니다. 예전에 쓴 글인 정작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는 없는 자동차의 사양표에서도 이미 지적한 대로입니다. 사실 저렇게 차체 하부에 배터리를 깔아놓은 구조 또한 트렁크 공간이 좁아지면 소비자들의 반응이 우호적일 수 없다 보니 제한된 용적내에서 고심한 결과가 바로 이것인데, 정작 데미지 컨트롤까지는 생각하지도 않은데다 생각하더라도 생산성이나 중량 문제로 양산 승용차에 대해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는 난점이 있습니다.


사실 데미지 컨트롤에 대한 연구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 방법 자체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우선, 내연기관을 탑재한 기존의 자동차나 하이브리드카에서처럼 배터리가 탑승공간에서 충분히 떨어져 있는 경우라면 데미지 컨트롤은 그 자체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확보가능하지만 현재의 완전전기차의 경우는 배터리의 에너지밀도가 현재의 석유연료 수준으로 높아지지 않는 이상 선택할 수 없습니다.

배터리팩 자체를 튼튼한 외장으로 감싸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 경우에는 배터리팩의 점검이나 교체 등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데다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그 튼튼한 외장이 화재진압을 초기에 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것도 기존의 전해질식 배터리로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전고체배터리(Solid-state Battery)이긴 하지만 아직은 제한적입니다. 현재 토요타-파나소닉 진영을 필두로 여러 자동차제작사 및 전기부품제조사들이 연구를 추진하고 몇몇 제품도 양산하고 있다 보니 상황은 좋아지겠지만 그게 현재의 전기차를 모두 대체하기까지는 또 적어도 수년에서 길면 수십년은 걸리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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