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어째서인지 연재분보다 설정노트의 양이 갑절이 넘네요. 캐릭터와 에피소드 목록은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데, 그만큼 연재속도는 느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끔 연재되는 내용이 재미있느냐면 그것도 아니에요. 제딴에는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걸 골라 심혈을 기울여(???) 연재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걸 알 턱이 없으니까요. 독자의 소양이 없다고 돌려까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제 글을 읽어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도입부만 거창한 용두사미형 소설'의 전형이죠. 생각해 둔 아이디어를 다 보여주기도 전에 도입부에서 뻗어버리니,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재미가 없을 수밖에요.
포럼과 다른 곳들을 여기저기 방문하고 이것저것 주워들으면서 창작에 대해 고찰하는 방랑(?)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작가 자신을 소설에 등장시켜 작가로서의 자존감과 즐거움을 높인다'도 하나의 해답이었죠. 지금의 고민은 뭐랄까, '책임감은 끝도 없이 커지는데 책임을 지려는 노력은 줄어든다' 겠네요. 나름대로의 창작 실력이 쌓일수록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인지 망집인지 모를 생각 때문에 점점 도입부에서 뻗는 타이밍이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GTA카페에서 연재하는 것도 잘못하면 1회 쓰고 뻗을 삘입니다.
사실 현재 연재하는 소설 직전에 썼던 내용도 3회까지만 쓰고 뻗어버렸는데, 한편으로는 독자의 반응이 시원찮아서 관둔 것도 있네요. 그런데 그건 독자를 탓할 수가 없는게, 카페 특성상 독자들은 게임하는 사람들이지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5~10년 전 같았으면 게임 스크린샷 가지고 만화도 만들던 사람들이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다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제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래 주제로 돌아가서, '도입부만 거창한 용두사미형 소설'에 대해서는 이 글을 쓰면서 그럭저럭 해답을 얻었습니다. 바로 (정말 대책없긴 하지만) '대충 연재하고 대충 완결낸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답이 없는 초창기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과거 골목대장마냥 창작에 관해서 짱으로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중 제가 자주 하던 잔소리가 바로 '완성도보다는 연재에 집중해라'였습니다(물론 '연재도 연재지만 완성도를 챙겨라'라고 모순된 언행을 하기도 했지만요). 그렇게 남들한테 얘기하던 소리를 제 자신에게 대입해 보니까 "뙇!" 득도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당분간은 큼지막한 스토리라인을 짜기보다는, 옴니버스처럼 간단한 이야기 위주로 진행하는 거 위주로 써볼까 합니다. 연재하던 공간도 독자가 아예 없다시피한 그 카페를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연재해 볼 생각입니다. 포럼에는 좋은 글만 보려고 기웃거리던 감이 있는데,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써봐야겠습니다.
p.s. 솔직히 이 글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긴 했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과 장소가 학원인지라 일필휘지로 썼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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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17-10-26 17:09:38
안녕하세요, 레스터님. 오랜만에 잘 오셨어요.
창작에 대한 고민, 여러모로 해볼 가치가 있죠. 특히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창작물과 타인이 읽어서 재미를 느끼는 창작물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관점의 전환은 그 의미가 아주 중요하죠.
일단 큰 틀은 짜놓되, 이야기는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쌓아가는 게 확실히 좋죠. 그게 만드는 입장에서도 향유하는 입장에서도 진입장벽이 낮으니까요. 제가 즐겨 보는 학원물, 일상물 애니의 많은 것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부활동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서 시작하는 게 많다 보니 그런 것들을 참조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해요. 구체적인 작품으로는 나는 친구가 적다, 러브라이브 시리즈, 야마다군과 7인의 마녀, 소녀들은 황야를 향한다, 하루치카, 히나코 노트, 복면계 노이즈, 미나미카마쿠라고교 여자자전거부,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방법, 나나마루 산바츠, 아니메 가타리스 등이 있어요.
읽는 데에 막히거나 한 점은 없었으니 고민은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오히려 이렇게 쓰신 글이 진솔하고 담백해서 더욱 좋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Lester
2017-10-26 17:29:31
사실 주제가 잘못됐다기보단, 수요와 공급이 적절치 않았다...는 게 제 나름대로의 분석 결과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독자들의 대부분은 최신 게임을 즐기고 있는데 저는 고전게임의 팬픽을 쓰고 있는 셈이었거든요. 해당 카페 특성 및 흐름상 무언가 긴 글을 읽지 않는 추세가 되었다는 것도 한몫했고요. 다시 말해 창작에 대한 관심 자체가 거의 없었던 셈입니다. 그러니 이젠 무엇을 쓸지에 대한 고민보단 터 자체를 옮겨야죠. 자원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 무엇을 더 하겠어요.
예시로 들어주신 작품들은 들어본 것들이 많지만 소위 캐릭터 위주의 작품이라 그런지, 잘 따라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모 라이트노벨 연구 서적(라노벨과 비주얼 노벨에 대해 다룬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에서는 그런 작품들은 사건보다 캐릭터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캐릭터가 확고하기 때문에 어느 사건에 던져놓아도 무방하다'라고 논한 바 있습니다. 이건 곧 캐릭터가 확고하지 않으면 어설프다는 말이기에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꼴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참고하기엔 너무 무리가 아닌가 싶네요.
저하고는 극상성 관계인 미소녀 위주 작품이라는 것도 한몫하고요.SiteOwner
2017-10-29 22:27:52
진부한 비유일지도 모르지만, 인생도 창작도 마라톤같은 장기 레이스입니다.
너무 스타트가 빠르면 완주를 못 해 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늦어 버리면 목적 달성을 하기 힘들어지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기에 완급조절이나 자원배분 등은 언젠가는 최적화시켜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Lester님께서 스스로 그러한 점을 깨달으셨다는 점에서 저도 여러모로 많이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써주신 글 또한, Lester님께서 포럼을 방문하실 때 찾으시는 좋은 글에 해당됩니다.
앞으로의 창작활동을 잘 진행시키시고, 난관이 있더라도 잘 해결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오셔서 이렇게 생각을 전해 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기 위한 포럼이니까요.
Lester
2017-11-01 04:35:10
완급조절보다는 쓸데없이 세밀한 부분에 너무 손을 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실제 소설이 아닌 만화나 게임을 모델로 삼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만화는 연재가 확정되기까지 파일럿 개념으로 초반에 단편이 많고, 게임은 정식 스토리 이외에 서브스토리가 많으니까요. 그렇게 짧고 굵은 걸 중시해서인지 본편보다 서브스토리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차라리 본편을 포기하고 고르고13처럼 옴니버스로 가든가, 아니면 서브를 최대한 배제하고 본편만 쓰든가 해야 하는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