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구상에 대해서만큼은 아날로그가 최고라서 노트에다 이것저것 끄적이고 지우고를 반복하던 차... 갑자기 앞으로의 구상이나 연재에 큰 핵심이 될 것 같은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꼭 지금 배경으로 삼고 있는 도시(이 경우 프라임 시티)여야 하는가?"
이해를 돕기 위해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과거에 소설로 쓴답시고 설정놀음으로 노트 2권을 날려먹은 세계관(주로 도시)이 있었는데, 결국 버리기는 아까워서 지금까지 들고 온 것들이 있습니다. 각각 트와일라이트 시티Twilight City, 미드비치Midbeach, 로스 임페리오스Los Imperios인데 아무래도 GTA 팬픽을 쓰던 시절에 구상한 것들이라 각각 리버티 시티(뉴욕의 패러디), 바이스 시티(마이애미), 산 안드레아스(LA + 샌프란시스코 + 라스베이거스)에 해당됩니다. 아무래도 그 때 열정이 MAX를 찍었기에 지금 구상력(力)에 비하면 퀄리티가 하늘을 찌르던 것들이네요.
문제는 지금 소설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프라임 시티Prime City는 이것들 이후에 만든 것으로, 제작 의의를 따지자면 '저것들 가지고 소설을 쓰기엔 아까우니까, 연습 삼아서 가장 무난한 도시를 만들어 보자'입니다. 즉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공을 들일 필요는 없는' 세계관입니다. 헌데 지금은 해당 도시에 이것도 필요하니까 넣고, 줄거리를 이끌어 가려면 캐릭터가 필요하니까 만들고... 하는 식으로 본래 목적과 달리 너무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연재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에피소드 목록까지 말이죠.
이렇게 하나의 모순을 파악하자, 이번에는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막상 소설로든 설정으로든 이렇게 공을 들여봤자 전체 시점에서 보면 연습에 불과한데, "차라리 이럴 거면 그냥 별러둔 세계관에서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프라임 시티를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기존의 세계관에 관한 기본 설정을 잡아줘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주인공(내지 주역)을 만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프라임 시티를 사용하면 그렇게 별러둔 세계관들과 연결하는 '과정'을 부가적으로 설명해야 된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정확히는 '작업량'이죠. 기존 세계관들끼리 해도 똑같지만 적어도 4개 도시가 3개 도시로 줄어서 편하다는 장점이 있고요.
반대로 접한지 얼마 안 된 작품인 <혈계전선>처럼 엄청 큰 도시 하나(해당 작품은 '헬사렘즈 로트'라는, 막장이 된 뉴욕이 배경입니다)에서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도 문제가 없습니다. 다른 도시는 DLC처럼 다루고요. 어떻게 보면 이 쪽이 더 안정적인데, 이렇게 하더라도 지금의 프라임 시티보다는 별러둔 트와일라이트 시티로 얼른 건너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하자면 "연습용으로 쓰고 버릴 도시였는데 미련이 남아버려서 미치겠다"입니다. 저는 큰 그림을 챙기기보다 세부사항에 목을 매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이 연습용 도시도 너무 가꿔두는 바람에 버리기 힘들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거의 결론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미련인지 고민인지가 계속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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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마드리갈
2018-04-25 14:58:00
의외로 쟁점은 간단하지 않을까요? 주안점을 둘 것이 설정 그 자체인가, 창작물의 토대로서의 설정인가. 이것이 가장 분명히 해야 할 쟁점이고, 이것부터 정리해야 결론이 나게 되어 있어요.
사실 전자의 경우라면 예의 프라임 시티를 유지해야 하고, 후자의 경우라면 꼭 프라임 시티여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후자의 경우에는 두 가지의 하위 선택지가 있는데, 프라임 시티로 갈 것인가를 선택한다면 그렇게 해야 할 당위성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따로 만드신 트와일라이트 시티로의 이행이 답이 될 거예요.
Lester
2018-04-26 01:11:00
당연히 '창작물의 토대'로서 사용할 겁니다. 그리고 정말 냉정히 봤을 때, 프라임 시티로 가야 할 이유는 거의 전무합니다. 제작 초기에 '뉴올리언스를 베이스로 했다'는 점이 있으니 그 특유의 문화를 살리면 이점이 있겠지만, 생각해 보니까 "어짜피 가상의 세계관인데 꼭 현실에 맞출 필요는 없잖아?" 하더라구요. 재고하면 재고할수록, 프라임 시티를 포기해야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네요.
SiteOwner
2018-04-25 19:11:52
설정이란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 마련이고, 그러니 굳이 버려야 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런 선택지도 가능합니다. 프라임 시티는 콘월딩 프로젝트로 돌리고, 소설용 설정은 간략화하거나 트와일라이트 시티 등을 채택하되 프라임 시티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필요한 만큼 유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선택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Lester
2018-04-26 01:13:08
(콘월딩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물론 프라임 시티와 관련 설정을 완전히 날리진 않고, 인물&건물&사건 등의 '배경'만 변경할 생각입니다. 즉 "프라임 시티의..."라는 서술을 전부 "트와일라이트 시티의..."로 바꾸는 게 전부죠. 재활용인 셈입니다. 오히려 가상의 세계관이겠다, 실제 모델(위에 썼듯이, 프라임 시티의 모델은 뉴올리언스입니다만 그런 대목이 거의 없네요)에 얾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제멋대로 써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OBiN
2018-04-26 01:35:07
콘월딩(Conworlding)은 '세계 설정' 정도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Lester
2018-04-26 02:09:57
그렇군요. 하지만 어쨌든 프라임 시티에는 딱히 더 손을 댈만한 포인트가 없네요. 도시의 이미지나 테마가 약하고, '이 도시에만 있을 법한 무언가'도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