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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 밤만해도 퍼붓던 비는 어디로 가고 지금은 따가운 햇살들이 연병장에 서있는 제 135 보병사단 79연대 1대대의 장병들을 괴롭히려 들었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아 진흙같은 연병장의 흙이 장병들의 전투화를 더럽혔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의 A급 전투화가 상한 것 때문에 짜증이 얼굴에 배어나왔겠지만 오늘은 모두들 전투화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심창민 사단장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사단장의 명령이다. 한 명도 죽어선 안된다. 모두들 살아서 보자!"
"사단장님께 경례!"
「필-승!」
"1중대 1소대부터 차량에 탑승한다! 실시!"
연병장 가운데에 일렬로 줄지어 있는 K-511A1(두돈반 트럭)은 차례대로 탑승할 1대대 대원들을 기다리며 육중한 엔진음을 내뿜었다.
"김 소령."
심창민 소장이 탑승을 지휘하고 있는 1대대의 대대장인 김현진 소령을 불렀다. 김 소령은 뒤로 돌아 심 소장을 바라보았다.
"잘 해주리라 믿겠네."
"필승."
김 소령은 군례로 답을 대신했다. 심 소장의 입가에서는 희미한 미소가 지어짐과 함께 그에게 군례로 답하며 대대원들을 배웅했다.
"1호차부터 출발!"
MP마크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철모를 쓴 헌병대원이 손을 흔들며 소리치자 김 소령이 타고 있는 1호차는 천천히 바퀴를 움직였다. 사단에 남아 있는 연대원들은 군례로 1대대 대원들을 배웅했다.
"국가재건단이 50명... 장난아니네."
김 소령은 자신의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파병 결정이 난 후 한달 동안 쏟아지는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라도 풀려고 줄담배를 피웠는데 파병 당일인 오늘까지도 담배를 물게 되버린 셈이다.
라이터에는 불티나라는 상표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PX에서 300원 주고 산 일회용 라이터지만 2주 넘게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가스가 떨어지지 않은걸 보니 가격에 비해 성능이 괜찮았다.
김 소령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통해 3호차에 타고 있는 행정보급관 황상민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데, 위문품 다 적재 했대?"
「예, 수송부 애들 몇명 뽑아서 어제 출타 형식으로 다 실어 날랐답니다.」
"탄약은?'
「풍산 쪽에서 직통으로 실었답니다. 수류탄은 한화쪽에서 적재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래, 수고했다."
「저기 대대장님.. 근데 정말로 작전 수행하는겁니까?」
"그럼 너랑 내가 왜 왔냐?"
「... 아닙니다. 필승.」
김 소령은 종료 버튼을 누르고 휴대전화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5개월 전, 135 보병사단 79연대 1대대로 전입 한 신임 대대장은 지나치게 젋은 나이에 소령을 달았다는 이유로 인해 부하들이 그의 말을 잘 따르지 않았다. 34살에 소령을 달기란, 적국의 A급 인사들을 4명은 죽여야 달 수 있는, 실현이 불가능한 계급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전달사항이 하부에 제대로 하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대대장은 자신의 사람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부름을 받고 온 첫 인물은 황상민 상사였다. 29살에 상사를 단 괴물과도 같은 인물로써 행정보급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면서도 병사들과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나이로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 병사들의 신임을 얻었고, 내부 선전을 통해서 부사관 모두를 대대장에게 따르게 함으로써 장교들 역시 대대장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모두들 대대장인 김현진 소령을 전적으로 신임하며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생각하면 확연히 다른 반응인 셈이다.
사실 대중들에게는 135사단이 파병안이 통과되고 난 뒤에 선정된 부대라고 알려졌지만, 남수단 평화 유지군은 구실에 불과하였다. 북이 남수단의 혼란을 틈타 남수단의 군벌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켜주고 그 보상금을 무기 개발용으로 씀과 동시에 정예병 일부를 북한 내부로 끌어들인다는 첩보가 들어 온 것이 1년 전의 일이다. 요원들을 파견하여 북의 훈련 교관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지만, 정규군 수준으로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민병대를 뚫고 암살하기란 불가능했다. 요원 7명을 잃고 난 뒤에야 국정원과 국방부, 그리고 미군과 연계하여 남수단 내에 있는 군벌들을 제거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고, 그 적임자로 김 소령이 선정된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때에 남수단 내전이 일어나자 여당 쪽 인사들을 통해 파병 결의안을 상정 후 과반의 득표를 얻어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135사단이 선정되며 오늘, 135 보병 사단 79연대 1대대는 남수단을 향한 파병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대대원들을 태운 차량들은 김포 국제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온 것이 처음인지 이곳 저곳 둘러보는 이가 꽤나 있었다. 기자들의 요청에 의해 10분간 마련된 포토타임을 마치고, 물품들의 적재가 끝날 때까지 로비에서 기다리게 된 장병들은 두세 명씩 짝을 이뤄 매점에서 군것질을 하거나, 근처에 있는 공중 전화대로 가서 부모님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드렸다.
말이 파병이지 전투를 치룰 일은 거의 없다고 김 소령이 그리 교육한 건지는 몰라도 장병들 모두가 부모님께 그렇게 말하며 행여나 다칠까봐 걱정하는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눈물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서로 내색하지 않고 수화기를 넘겨줄 뿐이다.
적재 작업을 마쳤다는 보고를 받은 김 소령은 장병들을 집합시켰다. 눈물을 보였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열중쉬어 자세로 김 소령을 바라보았다.
"뭐, 다른거 필요 없다. 가자. 가서 살아 돌아 오면 되잖아."
김 소령은 실 없는 말로 분위기를 풀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부하들을 속여야 하는 현실이 슬프기도 했지만 명령은 명령이다. 김 소령은 뒤로 돌아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에는 장병들을 주기장까지 태울 버스 10대가 줄지어 서있었다. 차례차례 탑승을 하여 버스를 타고 주기장까지 간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C-130J-30 슈퍼 허클립스 수송기 4기였다.
파병 계획 발표 당시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군측과의 연계를 강행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공군의 C-130J는 4기, 파병에 오르려면 인도 받은지 얼마 안된 신기체 전부가 동원되는 것은 무리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군이 인도 받은 C-130J는 동체 연장형인 J-130이 아니기 때문에 대규모 병력 수송에서는 J-130에 비해서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게다가 작전 시 공중 지원 사격에 대해서도 틸트로더 방식을 쓰며 공중에서 제자리 비행을 하는 수송기 V-22를 쓰기 위함이었다. 적어도 2개 소대 이상이 참가 해야하는 군벌 토벌 작전을 위해서는, 수직으로 이착륙하여 기지 내에 침투 하고 공중에서 호버링(제자리 비행)을 통해 지원 사격을 할 수 있는 대형 수송기가 필요했다.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는 UH-60을 C-130J에 싣고 가기란, 불가능했기에 현지에서 조달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 셈이다.
1중대를 태운 1호기, 2중대와 본부중대를 태운 2호기, 그리고 탄약과 화기들을 실은 3호기와 4호기의 해치가 닫히며 1호기부터 활주로를 향해 갔다. 이륙 허가가 내려지자 시끄러운 엔진음과 함께 1호기의 랜딩기어는 활주로를 빠르게 긁었고, 활주로의 끝자락에서 상공을 향해 날았다. 1호기가 김포국제공항 30km 외곽에서 속도를 줄이자, 2호기와 3호기, 그리고 4호기 까지 모두 그와 함께 비행하며 직사각형 모양의 대열을 구성했다. 기장의 이륙 성공 교신이 김포국제공항 VIP 라운지에서 들리자, 라운지에 있던 국방부 장관과 미 8군 사령관, 그리고 공군과 육군의 참모총장은 모두 박수를 치며 한미 연합의 성공적인 재도약이라고 평가하면서 축배를 들어올렸다.
1중대장 최민성 대위는 고정 시킨 침낭 안에 들어가 이동 시간 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고 있었다. 영관 진급을 위해 학사 학위를 취득해야 했는데, 논문에 쓸 참고 서적들이었다. 최 대위 말고도 다른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MP3를 통해 음악을 듣는 등, 자신들 만의 방법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책을 절반 정도 읽을 때쯤, 수송기 내부의 조명이 꺼졌다, 창문이 드물어 채광(採光)도 힘든 데 내부 조명까지 꺼지니 수송기 내부는 암흑으로 뒤덮였다.
「쿵-!」
최 대위는 갑작스럽게 몸이 떠올랐다가 내려오는 이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엉덩이를 세게 찧은 것 같아 손으로 문지르면서 주변을 확인하려 했지만 어둠은 계속 되었다. 자신의 X밴드에 넣어 둔 LED 랜턴을 키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아까 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지금 랜턴 가지고 있는 것들 다 켜!"
최 대위는 랜턴을 흔들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장병들이 랜턴을 하나 둘씩 키면서 내부를 밝혔다. 상황 파악을 위해 몸을 일으킨 최 대위는 몇 걸음 움직이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뭐야 이거.."
기체에 무슨 이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정확한 상황을 알기 위해 조종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최 대위는 최민성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군 135사단 79연대 1대대 1중대의 중대장이었다. 자신의 부하들을 지켜 내는 것은 그의 의무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요동치는 기체 안에서 기어다시피 조종실로 갔다. 문을 두어 번 정도 두드리자 조종실의 문이 열렸다. 조종실에서는 항법사 한 명과 예비 조종사가 전자 장비들을 체크하기 위해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필승, 중대장 최민성 대위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겁니까?"
다행히도 조종사들은 모두 공군 소속이었다. 아마 수송기가 현지 격납고에서 장기간 주둔함을 고려한 미 공군 측의 배려일 것이다. 1호기의 정조종사 정민철 대위는 최 대위를 바라보고는 아날로그 고도계를 가리켰다.
"지금 고도가 내려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자 장비 전체가 작동하지 않아요, 엔진은 그나마 항공유가 연소 되면서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수동으로 항로를 조정하고 있는데 편대를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정 대위는 조종간을 고쳐 잡았다. 기수라도 평행을 유지하여야 비상 착륙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김 대위는 그의 말을 듣고 고도계와 옆에서 함께 비행중인 2호기를 쳐다보았다. 2호기 역시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것인지 정조종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쿵-!」
"하나님 맙소사."
다시 한번 기체가 크게 요동쳤다. 정 대위는 앞의 모습을 보고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거대한 섬광이 그들의 앞에 서있었다. 김 대위는 강한 빛에 눈을 더 이상 뜨지 못하고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별기사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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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0-02-01 22: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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