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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인 건가...”
그렇게 나지막이 말하며 뒤를 돌아본 그 미청년의 눈에, 로만 칼라 셔츠를 입고 검은 점퍼를 입은 투블럭 머리의 남자의 얼굴이 들어온다. 로만 칼라 셔츠의 남자가 검은 점퍼를 그 자리에 벗어던지자, 정장 입은 남자의 눈에 흰 로만 칼라 셔츠, 그리고 흰 바지를 입은 옷차림이 들어온다. 투블럭 머리의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정장을 입은 남자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음산하게 소리 내 웃는다.
“훗, 흐흐... 슈뢰딩거 그룹의 김수민 단장이로군. 설마 했는데 역시나.”
“네 녀석, 또 무슨 이름을 대려고? 물론 지금은 탈라스 곤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하나밖에 안 떠오르지. 그 이름도 본명은 아니야. 수천 개의 이름을 써 왔고, 지금도 몇 개씩이나 쓰는 네 녀석이지만, 본질은 숨길 수 없어.”
수민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고, 두 눈은 이글거리고 있다.
“파디샤 네 녀석! 드디어 이렇게 만났구나!”
“이쪽도 마찬가지다. 네 녀석을 내가 잊었을 줄 알고? 내가 이런 데까지 와서, 개고생을 하게 만든 데는 네 업적이 지대하지!”
파디샤라고 불린 정장 입은 남자의 두 눈 또한 이글거린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우 강력하고 불길한 기운에도 불구하고, 수민 역시 그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목에 힘을 잔뜩 주고 그 파디샤라는 남자를 노려보며 말한다.
“내 아버지와 삼촌을 어떻게 했더라?”
“훗, 흐흐흐흐흐...”
수민의 그 말을 듣자마자 남자는 낄낄대며 웃기 시작한다. 마치 수민 정도는 자신의 상대도 되지 못한다는 듯.
“네 녀석이 제 발로 여기로 걸어들어온 것으로 봐서는, 너도 죽을 날을 받아 온 겉 같군. 안 그런가?”
“이 자식이...”
그리고 그 순간, 파디샤라는 남자의 숨이 콱 조여오는 것 같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얼굴이 벌게지고, 컥컥거리는 소리가 입에서 나온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지금 이 상황은...
그의 손이, 그의 목에 쥐어져 있지 않은가!
“큭... 이 자식...!”
“수백 년 살아온 것치고는 굉장히 물러터졌군, 파디샤. 이미 시작됐다고!”
“이... 이런...”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건지, 그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자기 목을 쥐고 있는 손을 풀어내려는 시도에만 집중한다. 그냥 그 자신이 알아서 오른손을 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 왼손으로 오른손 손가락들이 부러질 각오를 하고 하나하나 힘을 주어 잡아 펴니, 풀리기는 풀린다. 목을 잡아 쥔 오른손과 그걸 펴는 왼손, 그리고 잡혔던 목과 얼굴이 온통 벌게지는 건 덤이다.
“하아... 후... 으윽...”
아무리 강력한 힘을 보유한 그라도, 자신의 손을 떼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게 자기 목을 꽉 쥐고 있었으니, 손을 완전히 떼넬 즈음에는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이 녀석, 비겁하게... 비겁하게 먼 거리에서 공격하다니...”
“나는 절대로 네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지. 내 아버지와 삼촌이 어떤 식으로 당했는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흐, 흐흐흐... 그래. 머리 좀 썼군. 네 아비나 작은 아비처럼 안 되려는 게, 눈에 보인다고. 하지만 그 수작이 과연 얼마 정도나 네 수명을 연장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여전히 숨이 잘 안 쉬어져 컥컥대면서도, 그는 수민을 향한 조소를 거두지 않는다.
“네 녀석에게 운이 지금까지는 잘 따라 줬을지 모르겠으나...”
“너, 그 말 진심이지?”
“훗...”
그 순간, 또다시, 손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온다. 또다시, 아까와 같은 공격일 터다...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하냐?”
남자는 있는 힘껏 손을 쫙 펴며, 수민의 능력을 무력화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뭐... 뭐야, 이건!”
다른 느낌이다. 와락 잡으려는 느낌보다는, 칼이나 송곳 같은 것으로 푹 찌르려는 느낌. 그것이, 그대로 그의 목을 직격한다!
푹-
“크.... 으으윽...”
그의 오른손 손가락이, 그의 목 한가운데를 누르고 있다. 그것도 그의 기도를 정확히 조준해서, 다시 그의 숨을 조여 오고 있다!
“파디샤, 너는 지금 이 상황을 예상이나 했나?”
“으... 으윽...”
남자는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상황에서도, 수민을 금방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듯 노려본다. 하지만 수민은 그러건 말건, 남자를 노려보고서 말을 잇는다.
“딴에는 태양석을 편히 가져갈 수 있을 줄 알았겠지. 뒤에서 업자들끼리의 혈투를 은근히 조장하고, 뒤에 앉아서 와인이나 편하게 마시면서 힘 안 들이고 태양석을 가져간다. 이게 네 녀석의 계획이었겠지. 항상 그랬어. 내가 경험했던 네 녀석은 말이야. 모르긴 몰라도, 그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키고, 뒤에서 이익만 챙겨 가는 공작을 많이 벌였겠지. 안 그런가?”
“......”
“네 녀석이 여기서 판을 벌인 덕분에, 요 사이에 또 수많은 사람이 죽었어. 특히 요 며칠 사이에만 내가 알게 된 친구들을 또 잃었지. 특히, 키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나와 많은 것을 나누었어. 물론 경쟁 조직과의 싸움 속에서 희생된 것이지만, 나는 진작 알고 있었다. 배후에 네가 있다는 것을!”
“흐, 흐흐...”
남자는 숨쉬기 힘들어하면서도 겨우겨우 말한다.
“코, 코, 콘라트... 콘라트한테... 따져 보지, 그러냐?”
“의외인데. 네가 그렇게 회피하는 모습은.”
수민은 남자의 말을 가로막더니, 순간 생각에 빠졌는지 다른 쪽을 잠시 돌아보고 말한다.
“그래, 네 말도 맞아. 확실히,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기는 콘라트가 꽉 잡고 있었어. 다른 업자들은 손가락만 빨면서 콘라트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렸지. 그런데, 내가 전에 어느 거래처에서 받은 정보 중에 흥미로운 게 있었어. 콘라트는 바로 네 녀석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 물론 이전에도 본인의 능력으로 제법 규모있는 조직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세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네 녀석이 여기 오고 나서부터야. 즉! 콘라트 녀석도 네 녀석의 작품이었던 거지!”
남자는 숨쉬기 힘들어하면서도 수민을 향한 살의가 넘치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러건 말건 수민은 남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한다
“그 손을 빼자마자 곧바로 나를 주먹으로 배를 뚫거나 해서 공격할 생각이겠지. 하지만 그게 될 것 같나?”
“......”
“말했을 텐데. 삼촌은 네게 가까이 다가가셨다가 변을 당하셨다. 그때 있던 내 친구도 네 녀석과 가까이 있었다가 신체를 절단당했지. 거기로부터 나온 결론이다. 절대로 네게 다가가지 않을 거다!”
“훗... 후... 훗...”
남자는 얼굴로는 웃으며 뭐라고 해 보려고 하지만, 말은 아무리 입을 움직여 봐도 컥컥대는 소리만 날 뿐, 말은 나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두 발이 있고, 목을 누르는 손가락은 힘을 좀 많이 줘야 할 뿐 뗄 수 없는 건 아니다.
겨우겨우 힘을 주어서, 그의 목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목으로부터 떼는 데 성공한다. 다시 수민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 유효타를 먹여야 한다!
“하아... 하, 이 자식, 거기구나!”
그가 있는 힘을 담아, 주먹으로 한 곳을 내려친다...
쾅-
엄청난 굉음이 약 5초 정도 울리고 나자, 그의 앞에 있는 건물의 벽에 커다랗게 파인 자국이 생긴다. 거의 그의 팔의 길이 2배 정도는 움푹 들어간 깊이로,?
하지만, 거기에는 그 어느 것도 없다. 오로지 남자의 주먹으로 푹 파인 자국뿐.
“이... 이 자식! 어디로 간 거냐!”
또 다시, 그의 주먹이 다른 벽의 한쪽을 세게 내려친다. 이번에는,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벽 너머의 건물들도 보인다...
하지만, 남자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방금 벽을 내려친 그의 오른손을 보는 그의 얼굴에서는, 당황스러움이 역력히 묻어나온다.
“뭐야... 이것... 분명히 내가 휘두른 주먹은 아닌데...”
“맞아. 네가 휘둘렀지만 네가 휘두른 게 아니기도 하지.”
바로 뒤에서 수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자는 꽤 열이 났는지, 곧장 수민을 향해 뒤돌아 주먹을 내리치지만...
“말했지 않나? 내가 네게 가까이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으윽... 네가... 아직 내 진정한 능력을 경험해 보지 못했구나.”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꼿꼿이 선 순간, 수민의 온몸을 시커먼 에너지가 둘러싸는 듯하다. 그리고 뭔가가 수민을 바로 노리고 날아온다. 마치 공간 자체를 찢어버리고 시간도 삼켜버릴 듯한 뭔가가 말이다.
“이... 이건...”
테마 거리의 2층짜리 주택 건물. 외면은 철판을 대충 펴서 만든 듯 투박해 보인다. 그리고 안에는 개척 당시에 사용했던 물건과 사람 모형, 그리고 복장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일행은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다. 그 뒤에서는...
“아... 여보세요, 비앙카?”
미켈은 한쪽 구석에 서서 비앙카와 통화하고 있다.
“혹시 사무실에 너 혼자만 있는 거야?”
“아... 그러니까, 지금은.”
전화 너머의 비앙카의 목소리는 잔뜩 초조한 미켈과는 달리, 어딘가 밝게 들리기까지 한다.
“다들 어디 나갔고, 지금은 사무실에 혼자야.”
“그래? 다른 크루들은 언제 온다는데?”
“이제 시간 맞춰서 올 거야. 오늘 다 거기 접선 장소에 가기로 한 거잖아?”
“그래, 좋아. 내가 오라는 시간에 잘 맞춰서 와. 그리고, 그 상자 안에 있는 태양석 취급에 많이 좀 조심하고. 알겠지?”
수민은 태양석에 특히 힘을 주어 말한다.
“알고 있지.”
“그래, 그러면 예정된 시간에 부탁한다.”
전화를 끊고 나서, 미켈은 한숨을 푹 내쉰다. 단단히 부탁은 했지만, 불안감은 쉬이 떠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많은 거래를 겪어 왔고, 그 중에도 특히 큰 규모의 거래이기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 거래의 순간이 이제 점점 다가오니 두근거리고 떨린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일행이 보이고, 그 중에도 현애가 눈에 띈다.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보통 여행에서라면 최연장자나 그와 비슷한 연배를 더 많이 신경 쓰기 마련인데, 이제는 니라차의 부모님보다도 현애가 더 많이 신경 쓰인다.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미켈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운명 말이다.
미켈이 막 그렇게 심각한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파울리 씨!”
바로 그 현애가, 미켈을 부르는 게 아닌가! 미켈은 잔뜩 긴장된 듯 깊은 숨을 쉬며 돌아본다. 잔뜩 긴장된 얼굴을 하고서 현애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는데...
“옆에 건물은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빨리 가죠!”
휴... 미켈의 입에서 안도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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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12-03 14:00:45
문제의 탈라스 곤, 즉 파디샤는 이렇게 수민과 재회했네요. 하지만 반갑지 않은, 특히 수민에게는 가족과 친척을 잃은 끔찍한 일의 장본인과의 재회. 수민은 근접전을 피하고 있고 파디샤는 자신의 손에 목이 졸리면서도 조롱을 멈추지 않고...그런데 수민을 노리고 날아간 건 대체 뭘까요...?
역사의 현장에 있는가, 역사가 되는가...정말 떨리는 순간이죠. 후자는 피해야겠지만 확실한 출구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켈의 불안도 충분히 이해되어요. 아니, 그러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할 듯.시어하트어택
2021-12-05 21:34:21
벼르고 벼르던 숙적과의 만남, 저는 처음에 대면하면 말이 나오지 않을 듯합니다. 저렇게 수민처럼 냉철하게 접근해서 적을 상대한다는 게 쉽지 않은 법이죠. 일단 여기서 누가 역사가 될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합니다.
SiteOwner
2021-12-11 17:36:57
이미 오래전에 죽은 콘라트가 또다시 언급되는군요.
그의 영향력이란 정말 무섭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이 세계가 끔찍하게 여겨집니다.
오랜 원념으로 인해 저렇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겠지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못 보고 산 깊이 들어와서 어디가 나갈 길인지 모르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 산에 맹수, 산적, 복병, 덫 등이 없으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데 역습당할 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짙게 느껴집니다.시어하트어택
2021-12-12 19:50:39
복수를 할 때는 무덤을 2개 파 놓으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죠. 아무래도 수민에게 닥친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