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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82화 - 라자와 도르보(5)

시어하트어택, 2021-12-31 07:34:45

조회 수
141

“5분 동안이란 말이지...”
현애가 그렇게 말하고, 잠시 뒤에 있는 라자를 돌아보려는 듯하는 찰나...
“이... 이게...”
현애의 어깨에 손을 짚었던 라자의 손끝이 얼어 있는 게 아닌가.
“5분 안에 할 수 있는 건 많다고. 네 녀석을 때려눕히는 데, 5분도 쓰지 않을 거야.”
그 말이 들린 순간.
퍽-
라자의 오른쪽 뺨에 마치 칼바람이 부는 듯하더니, 꽁꽁 어는 듯한 감촉, 그리고 입안에 출혈이 일어난 듯한 매운맛!
“크윽...”
현애의 왼쪽 옆으로, 라자가 넘어진다. 곧바로 현애가 넘어진 라자를 향해 다가가려고 하지만... 라자는 몇 초 만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곧바로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다. 바깥 거리가 아닌, 뒤의 창고 쪽으로.
“뭐야, 어디로 가는 거야, 저 녀석?”
곧바로 일어나, 라자의 뒤를 쫓는다. 발의 감각은 조금씩 없어져 가고 뒤에는 좀비의 무리가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도망간 라자를 쫓아간다. 창고 쪽에 들어가 보니, 좁은 문이 하나 나오고, 거기로 계단이 하나 보인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데... 이쪽인가?”

그리고 그 시간.
“이거... 너무 많은데요...”
번화가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세훈과 미켈의 주위로, 좀비들이 더욱 모여든다. 거리 전체가 좀비들로 꽉 채워져,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거리에서 집회를 하거나 축제를 여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서 매우 짙은 죽음의 냄새가 풍겨 오는 것만 빼면.

♩♪♬♩♪♬♩♪♬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세훈이 보니 조제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다.
“여보세요?”
세훈이 초조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야, 조세훈! 너 지금 어디야? 여기도 지금 급하다고. 좀비들이 버스로 떼로 몰려오잖아!”
“거기 뭔가 철 같은 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혹시 외제니가 도와주고 있는 거야?”
“아, 맞아. 그래서 좀비들이 못 들어오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여기도 상황이 좋지 않아. 그러니까, 파울리 씨하고 너희, 너희들, 어디 갔냐고!”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는 세훈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장담은 했지만 지금 이 상황을 과연 타개할 수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 등뒤에 딱 붙어!”
미켈의 말에 따라 세훈이 미켈의 등뒤에 붙자, 미켈이 다시 입을 연다.
“잘 들어. 지금부터 내 말에 따라야 해.”
“뭐... 뭘 하려고요?”
“네가 나한테 부스터를 좀 넣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 더 잘 될 것 같아서.”
“그거야 그런데...”
세훈이 그렇게 말한 다음 순간, 세훈의 눈앞에 보인다. 세훈과 미켈을 둘러쌌던 좀비들이 흐물흐물거려서, 제대로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다.
“되... 된 것 같은데요?”
“그래. 완전히 좀비들을 죽이거나 할 수는 없어도,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할 것 같은데...”
어느새 미켈의 손에는 경찰봉이 하나 들려 있다. 세훈의 손에도 마찬가지다.
“저기... 파울리 씨. 이왕이면 총 같은 걸...”
“안돼. 그렇게 되면 시민들을 죽이는 게 돼 버리잖아?”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고요. 우리는 어쨌든 살아야 할 거 아니에요?”
세훈의 말에 조금은 놀랐는지, 미켈은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세훈을 돌아보다가, 큰 숨을 쉬고는 다시 입을 연다.
“맞아... 네 말도 맞지. 우리는 살아야 해.”
미켈은 무겁게 말한다.
“하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살아났으면 좋겠어. 이건 단지 희망 사항뿐인 거겠지...?”
“파울리 씨, 말끝을 왜 흐려요?”
세훈이 걱정스럽게 미켈을 돌아보자...
세훈도 미켈이 왜 말끝을 흐렸는지, 알 것 같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좀비떼가 둘러싸고 있다. 적게 잡아도 수천 명은 되는 듯한 좀비떼가 말이다.
“파울리 씨, 정말 살아나갈 수 있기는 할까요...?”
“그러니까 말하잖아. 내 등 뒤에 딱 붙어!”

한편, 현애는 도망간 라자를 쫓아 옥상으로 올라간다. 계단의 수는 많지 않지만 1초라도 아끼려면 뛰어야 한다. 라자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길어봤자 3분 후면 좀비가 되고 마니까. 하지만 아까 본 건물의 높이는 5층 정도. 이걸 1초라도 줄여야 한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안 되겠고...
“그래...”
현애는 잠시 발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발 아래를 순식간에 빙판으로 만들고, 그 위를 지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니, 3분 정도 숨차게 올라갈 것을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미끄러지듯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옥상까지 올라가 문을 여니...
“어... 어?”
거센 바람이, 현애의 얼굴을 때린다. 옆을 돌아보니, 마침 보이는 건, 거대한 옥상 실외기다. 그리고 현애의 앞에 서 있는, 라자와, 옥상을 지키는 좀비들!
“하, 하하하! 잘 걸려들었군. 좀더 잘 흡입하라고, 일부러 여기로 왔지.”
“개자식!”
“딴에는 조금이라도 나를 빨리 상대하려고 이렇게 폭풍이 몰아치듯 여기로 올라왔겠지만, 그게 네 패착이다. 이제 1분이면 된다.”
라자의 머리가 실외기의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그리고 더욱더 빨라지는, 없어져 가는 다리의 감각. 현애의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되는 게, 라자의 눈에도 보인다.
“좋아, 이제 됐다. 너를 이렇게 보내게 되어 유감이지만, 드디어 큰 골칫거리 하나가 해결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탄생을 축하한다. 나의 길에 영원히 함께하라고!”

라자가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외치는데...
“어... 어?”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 라자. 뒤를 돌아보는데, 실외기가 새하얗게 얼어 있는 게 아닌가. 발 아래도 마찬가지다. 라자의 다리가 아주 꽁꽁 얼어서, 움직일 수 없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아까 설교 고마워. 확실히 나도 내가 정의로운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
현애의 두 다리의 감각이 거의 없어지고, 이제 손끝도 감각이 없어져 감에도, 라자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해 가고, 현애의 눈은 빛나기 시작한다.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아. 네 수단이 매우 썩어빠졌으니까, 결과도 당연히 좋지 않겠지?”
“닥쳐라. 겨우 이런 요행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을 줄로 아는데...”
“변명이나 하려고?”
다음 순간, 라자의 온몸을 말도 못할 정도의 추위가 덮는다. 그리고 그것은 실외기의 강한 바람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옥의 불길 속에서 변명해 보시지.”
“이 꼬맹이가...”
심연에서부터의 어둠을 가득 내담은 목소리지만, 라자의 말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못한다. 완전히 꽁꽁 얼어 버린 것이다. 그 와 동시에 거센 눈보라가 그녀를 덮더니, 곧이어 무수한 눈덩이가 그녀를 때리기 시작한다. 실외기에 그 눈덩이의 속도가 더욱 증폭되어, 얼음덩어리가 되어 버린 라자의 온몸을 사정없이 때리고, 마침내는 박살내 버린다. 그대로 라자였던 조각들은 공기중의 찬 기운이 되어 흩어져 버린다. 라자가 얼음조각으로 흩어져 사라지자마자...
“어... 됐네!”
두 다리의 점점 없어져 가던 감각이, 한순간에 돌아온다. 손끝도 마찬가지다. 라자의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주위를 한번 돌아본다. 불과 30초 정도까지만 해도 좀비들이 있었는데, 좀비들은 온데간데 없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기 손을 올려다보고 몸을 만져 보는 시민들이 그 자리에 있다.
“후유유...”
현애의 입에서 안도의 숨소리가 저절로 배어 나온다.

한편 그 시간, 고속화도로.
한참 크루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궁지로 몰아붙이던 도르보의 눈에, 고가 아래의 좀비에서 돌아온 시민들이 보인다.
“서, 설마, 라자 님, 당한 건가...?”?
도르보의 입이 다물어지지 못한다.
“사람들이 전부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잖아!”
도르보가 잠시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크루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도르보를 노려보고서 달려들려고 한다. 하지만 자라로부터 빼앗은 고정 능력 때문에, 차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도로 위에 선 상태인 자라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바리오가 벌레들을 동원해서 도르보를 어떻게든 괴롭혀 볼 수야 있겠지만, 지금 있는 곳은 도심 한복판의 고가도로. 도르보를 괴롭히거나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벌레는 감지되지 않는다. 그나마 크루들이 기대할 수 있는 건, 도르보를 향해 점점 모여드는 사람들. 누가 보더라도 혼자서 도로에 서 있으면, 주목이 안 되기는 힘들 것이다. 어느새 도르보의 귀에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조금씩 들려온다.
“뭐야, 저 녀석인가?”
“하마터면 우리 가족도 좀비가 될 뻔했잖아!”
“확실해요. 안 그러면 왜 저렇게 의기양양하게 저러고 있는 걸까요?”
“사진 찍어, 찍어서 올려!”
놀라움과 분노에 가득 찬 시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도르보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슬슬 눈치를 본다.
“치잇...”
시민들이 그렇게 나오니, 도르보도 일단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아까의 스쿠터를 다시 타고서,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뭐야, 도망간다!”
“저 녀석 잡아!”
시민들이 스쿠터를 타고 다시 도망가는 도르보를 뒤쫓아가려고 하지만, 곧이어 투명한 벽에 막혀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마치 도르보가 가는 길은 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크루들은 어떻게든 차를 타고 도르보를 뒤쫓아갈 수 있었지만, 더 이상하다.
“야, 우리 지금 무슨 관 같은 데 빨려들어가는 느낌 안 드냐?”
한참 차를 타고 가던 중, 도레이가 말을 꺼낸다.
“과... 관? 저기 뭐... 하수도관 같은 데?”
“맞아. 무슨 튜브 같으면서도... 이물질이 여기저기 껴 있는 관 말이야!”
“야, 도레이!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불길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더 습기가 찬 것 같잖아!”
“일부러 불길하게 말하는 게 아니야. 정말 끈적끈적하고 축축해.”
“야, 도레이. 설마 저 녀석이 네 능력을 쓰는 거겠어?”
그렇게 말하는 자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설마, 능력을 빼앗아 간 게 자기만이겠는가... 일단 그렇게는 생각해 보려고 하지만.
“맞아... 나도 네가 느끼는 것같은 걸 느끼는데... 손에 있던 불이 꺼진 것 같아. 아니, 나 같은 경우는 물기가 다 말라 버렸다는 표현을 써야겠지...”
“나도 마찬가지야.”
“뭐, 너도, 비앙카?”
“바리오 너는 왜? 조금 전만 해도 벌레들 잘만 소환하고 했잖아.”
“그래서 조금 전에 나도 설마 해서 다시 발동해 보려고 했는데, 안돼.”
경악스러워하는 바리오에 이어, 자라도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다. 도르보를 뒤쫓아가던 승합차가 점점 속도가 줄어들더니, 이윽고는 멈춰 버린다!
“설마.. 그럼 아까 저 녀석은...”
“우리 네 명의 능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거 아니야!”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12-31 16:44:57

좀비화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그렇게 된 거였고 그 변화가 가역변화였군요.

결과적으로 미켈의 판단이 옳았네요. 그리고 천만다행이예요. 그나저나 그 좀비화 바이러스는 정말 고약하네요. 현실세계에 없는 게 다행이라 생각하기에는 현실세계에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온갖 변종이 있으니...


라자는 저렇게 헛되이 죽고, 도르보는 급히 도망가는데 상황이 영 이상하네요.

내부에 이물질이 끼인 관 속에 빨려들어가는 것같은 감각...

시어하트어택

2022-01-02 23:16:37

좀비 바이러스는 라자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것이었으니, 라자의 능력이 해제되면 사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겠죠. 조기에 쓰러뜨렸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졌을 겁니다.

SiteOwner

2022-03-09 00:01:39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군요. 저 상황이 일시적일지 항구적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만일 저 좀비들을 죽였더라면...그 뒤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쟁이나 범죄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오인사격같은 것이 특히 끔찍하다는 게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미켈 파울리의 판단이 옳았던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도관을 통과하는 것, 정말 싫지요. 저는 어릴 때에도 그런 놀이기구 안으로 들어가는 게 싫었는데...

저 상황을 겪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2-03-13 22:38:17

말하자면 도박이 성공한 것이죠. 해제되는 능력이 아니었으면 상상 이상의 어려움이 뒤따랐을 테니까요.


정말이지 생각해 보니 즐겁자고 여행을 와서 저게 다 무슨 꼴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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