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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83화 - 라자와 도르보(6)

시어하트어택, 2022-01-05 07:54:04

조회 수
136

“우리 4명 모두, 능력을 뺏겼다는 말이지...”
자라의 뒤에서 바리오가 심란하게 말한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지?”
“아직 태양석은 우리에게 있잖아.”
자라가 애써 담담한 얼굴을 하고 말한다.
“태양석만 잘 전달되면 우리가 할 일은 거기서 끝나는 거야. 애초에, 우리가 가진 능력들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도 아니었고. 맞지?”
“하긴 그렇기는 하지. 그 베라네라는 게 정말 보통의 물질은 아닌가 봐. 그래도 우리에게 가장 큰 베라네의 결정체가 있다는 건 그나마 좀 다행이잖아?”
비앙카가 애써 밝은 얼굴을 하고 말해 본다.
“이 태양석만 있으면, 아직 우리에게 승산은...”
하지만 비앙카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
“흥, 승산? 너희들에게 승산이라고?”
아주 끈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순간 크루들의 온몸을 덮는 것 같았던 튜브 속의 끈끈한 감촉이 더욱더 강해진다. 확 올라간 습기가, 마치 열대우림에 온 것과도 같다. 하지만 차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너희 네 명에게 모두 고마워해야겠군. 덕분에, 이렇게 태양석을 다시 되찾을 수 있게 되었어. 어차피, 우리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었지만.”
“뭐, 뭐, 뭐야!”
어느새, 태양석이 든 철제 상자는 도르보의 손에 들려 있는 게 아닌가.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자, 쫓아올 수 있으면 쫓아와 보라고. 그 전에, 차 곳곳에 습기가 차서, 갈 수나 있으려나?”
도르보는 그 말만 남긴 채, 스쿠터를 타고 다시 크루들보다 앞서 가 버린다.
“아, 아니... 차에 습기가 차 버렸다고?”
자라는 운전을 수동 모드로 전환하고 운전대와 버튼을 만져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도르보의 말대로, 차는 그 자리에 서서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도르보는 크루들과의 거리를 더욱더 벌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저게 그 탈라스에게 가게 되는 거잖아!”
“그렇게 되겠지.”
바리오는 애써 담담하게 말한다.
“그걸 손에 넣는 순간 탈라스는 우선 우리부터 노릴 거고.”
“야! 바리오! 너는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야!”
비앙카가 울상을 지으며 바리오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돌아본다.
“우리 지금 다 죽게 생겼다고! 이 상황에 그렇게 태연하게 말이 나와?”
“비앙카, 지금 그렇게 성질을 낸다고 저 녀석이 뺏어 간 태양석이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오거나 하지는 않아. 일단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뭘 해야 하는데?”
“잘 들어. 지금 여기 있는 우리는 초능력을 사용할 수 없어. 하지만 저 녀석은 아직 미켈과 가브리엘은 만나지 못했지. 빨리 알리자고. 그러면 그쪽에서 알아서 대처할 수 있을 테고, 우리 능력도 어쩌면 찾아올 수 있을 테니!”

그리고 그 시간, 호텔 지하의 아케이드.
어디론가 뛰어가는 메이링을 따라간 발레리오는 아케이드 한가운데에서 멈춘다. 이상하게도 엘리베이터로 가지 않고 비상계단으로 뛰어 내려가길래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메이링을 쫓아갔다. 그런데, 문득 아케이드에 서자마자, 그동안 보이던 메이링은 이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어디 있는 거야, 도대체...”
발레리오가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 본다.
“메이링 양, 어디 있나? 지금 지하에 있네. 어디쯤 있나?”
“네...? 지하요?”
전화 너머로 들리는 메이링의 목소리는 전혀 뜻밖이다. 그리고 지하 아케이드에서도 메이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발레리오 씨, 저 지금 로비 나와서 밑에 내려가는데요? 조금 아까 특실에서 엘리베이터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시던데, 왜 갑자기 거기로 가신 건가요?”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메이링의 말은 뜻밖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 그 특실에서 급히 나보다 앞서서 뛰어가지 않았나?”
“네? 무슨 소리예요, 발레리오 씨야말로. 저는 발레리오 씨가 모범을 보이길래 저도 제 방으로 가서 나갈 준비를 하고 나간 거죠!”
“뭐...? 자네 뭐라고 하는 건가? 나보다 앞서 갔는데...”
“아니에요. 저는 발레리오 씨가 나가고 나서 좀 있다가 엘리베이터로 갔죠!”
“말도 안 돼, 자네, 지금, 앞뒤가 맞지가 않잖아!”
“발레리오 씨야말로...”
“그 답을 주러 왔다.”
발레리오의 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한번에 들어도, 매우 불길한 목소리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리고 발레리오는, 이 불길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잘 알고 있다.
“여보세요? 발레리오 씨? 듣고 있어요?”
전화 너머에서는 메이링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발레리오는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앞을 똑바로 본다. 그 불길한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 호텔 정문 앞의 거리.
“듣고 있나, 정찰대?”
도르보는 호텔 정문 근처를 서성이며 정찰대에게 전화한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겠지만, 라자 님이 당했다.”
“라자 님 말씀이십니까? 도르보 님, 그게 무슨...”
“라자 님이 살아 계셨으면 지금도 시내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을 거 아닌가!”
도르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연다.
“다행히 태양석으로 추정되는 상자를 내가 확보했다. 서둘러 이쪽으로 와라. 이제 모든 게 눈앞인데, 실수해서는 안 된다. 라자 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라도!”
그러고서 도르보는 한 번 더 호텔 앞 도로를 주시한다. 사실 크루들의 차가 여기 오는 걸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여기로 오도록 내버려 둔 건, 그가 생각해 놓은 함정이 있어서다. 마침 지나가는 행인들 역시 그의 독특한 복장에 신경 쓸 뿐, 그 누구도 도르보에게 죽어라 덤벼 오지는 않는다. 아까 좀비 바이러스가 사라지자마자 시민들이 보인 반응과는 영 딴판이다.
“역시, 냄비 같다니까...”
그렇게 코웃음을 치던 도르보의 눈에, 한 여자가 호텔 쪽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뭐야, 저 여자? 호텔 쪽에서 내려오는 거라면... 설마 VP재단 관련 인물인가? 호텔 안의 정보원이 준 영상에서 본 적은 있는데...”
도르보의 시선이 간 여자는, 호텔에서부터 내려오는 메이링.
“아니, 발레리오 씨는 왜... 설마 헛것을 보신 건 아니겠지... 아니면, 이미 호텔 안에 적들이 많이 침투해 있는 건가?”
메이링은 뭐라고 투덜거리면서 경사로를 내려오고 있다.
“하여튼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니까. 조금 전부터 돌아가는 상황부터가 무슨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데...”
“확실해, 저 여자. 내가 파악한 정보가 맞다면, 발레리오의 수하라고. 그리고 분명, 뭔지는 몰라도, 초능력은 있을 거고!”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도르보는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는 메이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메이링이 도르보의 존재를 인지하기 전에 미리 메이링의 능력을 빼앗아 버리면 그만이다.
“됐다...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도르보가 가만히 메이링을 노려보다가, 손을 뻗는다. 그의 예상대로다. 메이링에게서 발산되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럼 답은 하나다. 저걸 빼앗으면 된다!
“됐다. 네 능력도, 내 손 안에!”
하지만...
“어, 뭐야?”
도르보의 생각과 달리, 메이링에게서 발산되는 에너지는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도르보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타오른다. 메이링이 도르보의 존재를 알아채고 도르보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건 덤이다!
“이봐, 누가 거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나와 줄래?”
메이링이 큰 소리로 말한다. 분명히 시선은 숨어 있는 도르보를 향하고 있다.
“물론 거기서 ‘나 여기 있소’ 하고 제 발로 걸어 나오는 건 기대하지도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지금 내 눈에 걸려들었다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메이링이 그렇게 말하자, 도르보의 머리가 잠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혹시 저 능력이 그와 같거나 비슷한 능력이라고 한다면, 빼앗는 것쯤이야 문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주변에는 정찰대가 대기하고 있다. 만약에 정 상황이 안 좋으면, 태양석을 살짝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도박이겠지만...
몇 초 고민하던 도르보가,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오며, 일부러 메이링에게 들으라는 듯 정찰대와 통화한다.
“아, 정찰대! 이제 나와라. 여기서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뭐, 정찰대? 역시, 네 녀석도 한 패였던 거냐!”
도르보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말하는 것을 듣자, 메이링은 도르보의 예상대로 나온다.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지. 그리고 네 다음 행동은 빤히 예상할 수 있고. 지금껏 아무 능력도 쓰지 않는 걸 보니, 이번에도 성공이군!”
하지만, 메이링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예상 밖이다.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뭐야, 나야말로...”
“초능력은 꼭 손에서 뭐가 나가고 해야 하는 줄 알아?”
메이링은 전혀 놀라거나 하지도 않고 오히려 도르보를 향해 큰소리를 친다. 잠깐 당황은 했지만, 도르보는 금방 다음 수를 떠올린다.
“뭐, 그렇게 나온다면 좋아. 모르면 직접 보여 줄 수밖에. 네가 이걸 보기 전에 알아서 숙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그 시간.
“야, 우리 살아 있는 거 맞지?”
현애와 세훈, 미켈이 버스에 다시 오르자, 조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뭐냐, 우리도 좀비가 되어 버리는 줄 알았어!”
조제의 말에 외제니, 니라차, 시저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버스 안의 상황은 정말 안 좋았던 듯하다.
“걱정 마. 이제 그 상황은 다 끝났으니까, 다들 방독면 벗어도 돼.”
현애의 말에 다들 방독면을 벗고, 다시 한번 안도한다.
“뭐가 어떻게 됐던 거야?”
“누가 자꾸 좀비들을 만들어 내더라고. 그 녀석하고 결판을 짓고 나니까, 이렇게 좀비들이 싹 없어졌단 말이야.”
“하, 그거 참 다행이네.”
“야, 너는 1대 1로 싸우기라도 했지!”
옆에서 듣던 세훈이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다.
“나하고 여기 파울리 씨는 수천 명의 좀비들한테 둘러싸여서 죽느냐 마냐 했다고!”
“이제 그 상황은 끝났잖아.”
미켈이 옆에서 얼굴이 막 붉어지려는 세훈을 진정시키고는, 앞에 있는 일행을 향해 말한다. 개척촌 테마거리에서만 해도 한껏 분위기를 띄워 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잔뜩 가라앉은 차분함, 그리고 서늘함만이 미켈의 주위에 감돈다.
“그리고... 여러분, 이제 호텔로 들어가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여러분께 최고의 경험과 기억을 선물해 드리고자 했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그렇게 말하며 미켈이 한번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입술을 꽉 깨문다. 현애가 살짝 돌아보니 눈시울은 이미 붉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하나는 반드시 약속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약속드립니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2-01-05 23:17:54

메이링도 발레리오도 모두 호텔을 나서긴 했지만 서로의 기억이 시간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 있네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린지...그 발레리오를 기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역시 수민을 죽인 그 파디샤라는 이름의 남자인 걸까요. 또 이렇게 숙적을 만나게 되는 거군요...


평온하고 즐거웠어야 할 여행이 이렇게...

게다가, 잘 돌아가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최고의 보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에 요즘의 상황이 겹쳐져 보이고 있어요.

시어하트어택

2022-01-09 21:53:38

일종의 환각을 뿌려 놓은 거죠. 결국 그 남자의 의도대로 된 거죠.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고, 큰 이변이 없다면 이 호텔에서 아마도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을까 합니다.

SiteOwner

2022-03-09 00:01:58

정신없군요. 코멘트를 위해 다시 읽으면서도 혼란이 또 가중됩니다. 저 상황을 실제로 겪는다면 정말 싫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현실세계의 경우라면 저런 특수능력은 적어도 입증된 바는 없다 보니 라쇼몽 효과를 감안하여 분석하면 된다지만 저 경우는 그것조차도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미켈의 약속이 그냥 약속이 아니라 무엇을 바쳐서라도 달성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시어하트어택

2022-03-13 22:46:12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저렇게 원래 갖고 있던 능력까지 빼앗긴다면 그 혼란은 더할 겁니다. 저런 상황이 현실에 일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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