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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흐흐흐... 그거?”
바리오의 입에서 태양석이라는 말이 나오자 남자는 실실 웃어댄다.
“미안해서 어쩌나? 그거 지금쯤 우리 수령님한테로 가고 있을 텐데...”
“뭐, 이 자식아?”
남자를 추궁하던 요원은 순간 열이 오른 건지 남자의 얼굴을 한번 걷어차고는 옆의 다른 요원을 돌아본다.
“어때, 스타크. 이사장님은 연락을 받아?”
“아니... 안 받아.”
스타크라고 불린 요원의 얼굴색이 어둡다.
“이사장님하고 상임고문님 두 분 모두.”
“뭐... 뭐?”
“그러니까, 빨리 가죠!”
메이링이 스타크라고 불린 요원과 다른 요원을 보고 말한다. 메이링의 발은 이미 계단에 한 발 걸치고 있다.
“네, 변호사님. 일단은, 이 녀석을 어디 못 도망가게 결박해 두죠.”
그 시간, 지하 아케이드.
“후, 눈물나는 형제애로군.”
남색 정장을 입은 남자의 앞에 쓰러진 두 사람, 발레리오와 비토리오다. 비토리오는 입에서 피를 토하고 가슴을 감싸 쥐고 있지만,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닌지, 지켜보는 남자의 눈에도 비토리오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꽉 쥔 주먹을 펴지 않고서, 남자는 입을 연다.
“솔직히 조금 놀랐어. 그렇게 몸을 날려서 자기 몸으로 다 막다니. 거기에다가 내 주먹을 조금 엇맞게 해서 치명타도 피했고.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야.”
비토리오가 손을 그의 앞에 뻗고 몸을 일으키려고 하지만, 남자는 곧바로 그 손을 밟으며 한마디 한다.
“이 결정적인 때에 둘 다 내 앞에 나와 주다니. 과연 천국의 마지막 자양분이 되어 주려는 거로군. 안 그런가?”
“마음껏 그렇게 생각하라고... 아직 끝난 건 아니야...”
“어림없는 소리!”
또다시, 남자의 발길질이 날아든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남자가 원래 노렸던 비토리오의 이마팍이 아닌, 왼쪽 관자놀이 근처로 날아가고, 또다시 비토리오는 치명상을 면했다. 쓰러진 비토리오를 보며 남자는 조소한다.
“그저 우연일 뿐이지. 너희들이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어. 마침 태양석도 여기로 오고 있다는군. 당연히, 너희가 의뢰한 그 녀석들은 아니지. 기다리고 있는 건, 새 우주의 시작, 그리고 천국의 시작이다.”
남자는 쓰러져 있는 발레리오와 비토리오를 번갈아 보며, 잘 들으라는 듯 목소리까지 키워 가며 전화를 든다. 스피커 모드까지 켜고서.
“정찰대, 지금 어디까지 오고 있지?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수령님, 이제 길어봐야 3분입니다. 제 앞에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금방 갑니다!”
잔뜩 들뜬 정찰대원의 말을 듣자, 남자는 웃으려다가, 뭔가 걸렸는지 다시 묻는다.
“잠깐, ‘제 앞에’라니? 다른 대원들은 어디 갔지?”
“지금 각각 역할을 나눠서 방해꾼 녀석들을 격멸하고 있을 겁니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정찰대원의 말을 듣자, 남자는 다시 마음이 놓였는지, 조금은 차분하게, 그러나 긴장을 풀지 않고 말한다.
“그래... 좋아.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도록.”
그리고 그 시간, 호텔 로비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
“파울리 씨.”
문득 파라가 미켈을 부른다.
“네?”
“혹시 발레리오 씨가 여기 로비에 없으면 어디서 만나기로 한 건가요?”
“그래서 밑으로 내려가고 있어요. 지하 아케이드였죠.”
“조심하세요. 거기에 적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에이, 설마...”
“발레리오 씨도 어쩌면 적에게 당했을지도 몰라요.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말이죠.”
“알겠어요. 아까도 갖은 위험을 넘어서 왔으니 그런 걱정은 접어...”
계단을 딛으려는 순간, 미켈은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딛으려던 발을 한 발 떼고, 뒤로 물러선다. 초능력은 아닌데, 뭔가 불길하다. 이 예감은 마치 뱀이 똬리를 튼 것을 먼발치에서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잠깐, 잠깐...”
“왜 그래요, 파울리 씨?”
미켈이 뒤를 돌아보니 니라차가 서 있다.
“어, 마침 잘 됐다. 너 잠깐만 이리 와 봐.”
“저요?”
미켈은 말없이 니라차의 가방을 가리킨다.
“응? 제 가방은 왜요?”
미켈이 손가락을 자기 입에 가져다 대고는, 가방을 열어보라고 손짓한다. 니라차는 의아해하면서도 가방을 열고, 거기서 보이는 건 다름아닌 드론이다.
“이걸로 뭘 하시게요?”
“저기 앞까지 움직여 봐.”
미켈의 말대로 드론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금세 계단의 바로 위에 둥둥 떠 있다. 홀로그램에 비치는 화면을 보고 있던 미켈의 눈에 곧바로 뭔가가 들어온다.
계단 바로 아래, 그리고 기둥 뒤에 뭔가가 보이는 게 아닌가. 평소라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휴... 이런 데까지 숨어 있었다니.”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일단 위치를 알아냈으니 무엇이 숨어 있는지 밝혀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미켈은 다음으로 세훈에게 손짓해서 오라고 한다. 세훈이 미켈의 옆에 가까이 오자, 미켈은 다시 한번 손짓하더니, 계단과 기둥을 향해 손을 뻗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계단 한쪽과 기둥이 마치 원래부터 액체였던 것처럼 물컹거린다. 그리고 그 물컹거리는 계단과 기둥에서 보이는 건...
“이... 이잇!”
원래라면 거기에 숨어 있었을 푸른 헬멧을 쓴 남자 2명은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나자 당황했는지 몸을 웅크리면서도 총을 겨누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도 잠시뿐, 더는 뭔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새 미켈과 세훈이 푸른 헬멧을 쓴 남자 2명을 각각 움직이지 못하게 짓누르고 있다.
“파울리 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안 그래요?”
“아니지, 네가 도와준 것도 있는데...”
세훈과 미켈이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현애는 두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잘도 숨어 있었네. 숨어 있다가 우리가 지나가면 모조리 쏴 죽이거나 할 생각이었지?”
현애가 묻자 푸른 헬멧을 쓴 남자 2명은 아무 말도 없이 시선을 외면한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은데.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숨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남자의 손발이 꽁꽁 얼어 버린 얼음으로 덮인 걸 확인한 세훈이 그들에게서 떨어지며 말한다. 누르고 있던 두 손을 떼면서도 세훈은 두 남자를 향한 경계 섞인 시선을 풀지 못한다.
“파라 씨!”
“응?”
“여기 이 사람들 좀 그림자 안에 넣어 줄래요?”
“음... 그것보다는, 저기 요원들이 와 있는 것 같운데, 저 사람들한테 넘기자고.”
파라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현애와 세훈이 돌아보니, 이미 검은 정장을 입은 10명 정도 되는 요원들이 로비를 지키고 있다.
“제발, 이 녀석들 말고 더 방해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하, 하하하!”
팔과 다리가 결박된 두 남자 중 한 명이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아무렴, 방해물이 없으면 뭐 하나? 이제 몇 분 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텐데. 수령님이 말씀하셨다. 천국이 도래하면 너희 같은 녀석들은 설 자리가 없을 거라고!”
“참 말이 많네.”
요원 중 한 명이 말하던 남자의 입을 테이프로 틀어막아 버리고, 두 남자를 로비 한가운데로 끌고 간다. 마치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보라는 듯.
한편, 미켈은 계단을 내려가며 크루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어디쯤이야?]
[지금 올라가고 있어. 거의 따라잡을 것 같은데]
자라로부터의 메시지가 바로 도착하자, 미켈은 초조했는지 오타까지 내 가며 다시 메시지를 보내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간다.?
[바로 따라자브라고. 시간이 없서]
한편 그 시간, 지하 1층 아케이드로 올라가는 지하 통로.
“아니, 미켈은 여기를 보고나 말하는 건가? 빨리 가라고만 해서 가지냐고...”
메시지를 보던 자라가 투덜대고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일행의 앞에 나선다.
“에이, 모르겠다. 내가 좀 빨리 가야...”
하지만 자라의 움직임은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춘다.
자라의 눈앞에, 정장 입은 남자 2명이 권총을 겨누고 있다. 그리고 두 남자의 바로 뒤에는, 지하 1층 아케이드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그냥 가겠다고? 안 되지.”
“너희들은... 누구냐...”
“수령님의 명령이다. 접근하는 녀석들은 누구든, 죽인다.”
둘 중 한 남자가 무뚝뚝하게 말한다.
“한 번만 경고한다. 5초의 시간을 줄 테니 물러가라. 안 그러면, 쏜다!”
남자의 목소리가 워낙에 쩌렁쩌렁 울리는지, 비앙카와 도레이가 뒷걸음질치려고 하지만, 옆에 있는 자라와 바리오가 막아선다. 5초가 지나기까지, 남자들의 앞에서 물러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좋아, 아무도 우리의 경고를 안 따른다는 말이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곧바로 권총을 겨누고 발사하려는데...
“어? 어...”
두 남자가 별안간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벽에 등을 철썩 기대고, 몇 초 사이에 스르르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다음 순간 보니 두 남자는 곤히 잠들어 있다. 몇 초만에 일어난 상황이 믿기지 않는 건지, 메이링은 잠들어 버린 두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어떻게 된 거죠, 이건?”
“아, 저를 찾으신 거죠?”
그때 메이링의 뒤에서 들려오는 한 사람의 목소리. 메이링이 뒤를 돌아보니...
“파울리 씨... 맞죠?”
“네, 그렇습니다만.”
메이링이 아는 그 얼굴이 맞다. 하지만 메이링이 아는 게 맞는다면 미켈은 지금 가이드를 하느라 여기에는 오지 못할 텐데...
“가이드 하고 있던 것 아니었나요? 여기는 어떻게...”
“아, 그건 제 쌍둥이 형제고요.”
“뭐야, 가브리엘이었어?”
바리오를 비롯한 다른 크루들이 뒤를 돌아본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뭐기는, 그냥 너희들 뒤를 밟아서 와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어... 그래?”
다들 못 믿겠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이내 다시 앞을 돌아본다.
“시간이 없어. 지금 그 정찰대라는 녀석들을 쫓아야 한다고.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야, 자라! 그 말 할 시간에 이미 갔겠다!”
“그러니까... 나는 다쳤어... 그러니까 이렇게 말이라도 해 보려는 거지...”
허벅지가 후끈거리는지, 자라는 절뚝거리다 못해 벽에 등을 기댄다.
“아으... 생각 같아서는 나도 단숨에 쫓아가고 싶은데...”
“야, 자라, 여기 나한테 팔 끼라고.”
가브리엘이 자라의 상처를 보더니, 자세를 낮추어 자라가 팔을 끼게 한다.
“그러면 좀더 빨리 갈 수 있겠지.”
자라가 가브리엘의 목에 팔을 걸치는 동안, 가브리엘은 다른 일행보고 손짓하며 앞서 가라고 한다. 가브리엘이 자라를 부축하고 걷다 보니 허벅지 쪽이 약간 축축하다. 붕대에 맺힌 피가 어느새 가브리엘의 바지에까지 밴 것이다.
“너 정말 괜찮은 게 맞기는 하냐?”
“아... 괜찮다니까! 신경쓰지 말고...”
자라는 애써 신경 쓰지 말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누가 봐도 그 표정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초면인 메이링과 요원들까지 포함해서.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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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01-15 23:41:05
발레리오와 비토리오의 상태가 좋지는 않네요.
그래도 치명상을 면한 것은 불행중다행일까요. 진짜 문제의 그 남자는 프리모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 남은 두 형제까지 참살하려 들고, 정말 지독한...
여기서도 파울리 형제가 아주 많이 닮은 일란성쌍둥이인 점이 나오네요.
산 넘어 산이긴 한데 그래도 돌파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게 천만다행이예요.시어하트어택
2022-01-16 22:40:44
말 그대로 자신의 천국을 위한 제물로 삼겠다는 거죠. 자신을 마지막까지 대적한 자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되면 그거야말로 의미가 큰 거니까요...
SiteOwner
2022-03-11 22:21:24
가야 할 길은 멀고 상황은 급박하고 이러면 보통의 길도 가기 힘든데 복잡한 아케이드 내부라면...인천의 부평역 지하상가나 오사카의 오사카역-우메다역 에리어같은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정말 멘탈이 박살나기 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겨우 상황이 수습된 건 천만다행으로 보입니다.
쌍둥이가 활약하는 게 참 멋집니다. 이럴 때에 큰 도움이 되는군요.
시어하트어택
2022-03-13 23:03:13
멀리 갈 것도 없이 처음 와 보는 지하상가 같은 곳은 좀 많이 헤매게 되지요. 부평역은 몇 번 가 봤다 보니까 절절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런 곳에서 추격전이라든가 총격전이 벌어지면 혼란은 더하겠지요. 작중의 상황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