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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링이 막 한숨을 내쉬려고 할 때, 요원 중 한 명이 입을 연다.
“일단 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 듯하군요. 두 길은 다 통하긴 하겠지만, 녀석이 어느 길로 가 버렸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방법도 없고, 시간도 얼마 없습니다. 저와 스타크 요원이 각각 나눠서 가죠. 변호사님은 스타크 요원과 같이 가시면 됩니다.”
요원의 말에 따라 메이링은 스타크라고 불리는 요원을 따라간다. 약 30초 정도 동안, 계단과 철제 통로, 철제 문 같은 걸 차례대로 지나고 나니, 어느 방이 나오고, 거기에 화살표가 붙여진 문이 보인다.
“이 문인 걸까요?”
메이링의 말을 듣고는 스타크 요원이 잠시 이리저리 살피더니, 잠시 후 철문을 잡는다.
“변호사님, 잠시 주위의 초능력을 없애 주시겠습니까? 혹시라도 우리가 모르는 다른 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네, 그렇게 하죠.”
메이링이 능력을 발동해 혹시 주위에 있을지 모르는 초능력을 없애는 동안, 스타크 요원이 철문을 연다. 철문이 열리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는다. 문이 다 열리자, 메이링과 스타크 요원은 그 너머로 가서 주위를 확인하는데...
“어? 여기가 아닌데?”
“왜 그래요?”
“변호사님... 여기는, 그 지하 아케이드가 아닌 것 같은데요.”
“네... 네?”
주위는 아케이드가 아닌, 웬 정원이다. 한눈에 훑어보니 쪽문 쪽에 마련된 정원으로 보인다. 그 옆에 있는 다른 문 너머로 보이는 건 1층 로비. 거기에다가 꽤 멀다. 지금으로써는.
“아... 이거 완전히 낭패인데...”
스타크 요원은 한숨을 내쉬며 착잡함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 모든 게 경각에 달린 상황인데... 이거 어쩌죠...”
“어떡하긴요? 다시 가야죠.”
메이링은 태연히 말한다.
“지금 여기서 주저앉으면 혹시나 생길 만한 가능성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네... 변호사님 말이 맞는군요.”
메이링과 스타크 요원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시간, 지하 아케이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네 녀석!”
“뭐긴 뭐겠어, 얼음이지. 그것도 빠르게 퍼져 나가는 얼음.”
현애가 조금씩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혹시나 해서 네가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얼음을 네 손에다가 옮겨 봤지. 잘 붙네, 생각 외로.”
“너 이 녀석, 제법이로군... 왜 장주원이라는 자가 네게 그렇게 관심이 있었는지 알겠어.”
그렇게 말하고서, 남자는 오른손의 주먹을 살짝 흔들어 보인다. 빠르게 퍼져 나가는 것 같았던 남자의 손 위의 얼음막이, 다시 줄어든다.
“하지만 이것이 부질없는 행동임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서, 현애에게 달려든다. 마치 괴물이 사람을 통째로 삼키듯, 현애의 온몸이 그의 그림자로 덮이려고 한다. 남자의 눈에 일순간, 현애가 있는 자리에 얼음막이 생겨난 것이 보인다. 마치 그 자리에서 얼음덩어리가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흥, 겨우 이런 수로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어이가 없다기보다는 불쌍하다고 해야겠는데. 그래봤자 압도적인 힘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의 발이 얼음덩어리를 강타한다. 직접 닿은 것은 아니지만, 남자의 온몸에서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가 얼음덩어리에 닿자마자 얼음덩어리는 그 닿은 부위로부터 쩌저적 하고 갈라지는 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완전히 부서져 ‘펑’ 하는 소리를 내며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아, 안돼...”
먼발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의 눈이 그 산산이 부숴진 얼음덩어리에서 떼지지 못하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특히 발레리오가 그렇다. 저렇게 끝나 버린 거라면, 너무나도 허무한 결말이 아닌가...
발레리오뿐만 아니라 비토리오도 마찬가지다.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기에 그쪽을 본 것이기는 하지만, 형의 망연자실한 말과 행동을 보고는 상황을 짐작한 건지, 머리를 땅에 묻고는 그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림자 안에서 살짝 상황을 지켜보던 세훈은 금방 현장에서 고개를 돌린다.
“아, 못 보겠어요.”
“왜 그래?”
급히 얼굴을 돌리고 얼굴을 손으로 가리는 세훈을 보고 미켈이 묻는다.
“밖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그러니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세훈은 거기서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저는 차마, 그 말만은 할 수가 없다고요!”
“세훈아, 조세훈!”
그때, 파라가 부르는 소리가 세훈의 귀에 들린다.
“네... 네?”
“설마, 회피한다든가 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상황을?”
파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세훈은 애써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려 하면서도, 그게 잘 되지가 않는지 울먹이는 소리로 말한다.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그저...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을 뿐이에요.”
“알지, 무슨 심정인지.”
파라는 그림자 너머의 아케이드를 한번 슥 보고 말한다.
“나도 2년 전에 겪었던 거니까. 그리고 한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기가 죽거나 슬픔에 빠진다든가 하면, 너를 해치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세훈은 여전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걸 보던 미켈이 한마디 한다.
“좀 북받쳐오르는 건 억누르고, 주변을 보라고.”
“어떻게 이 상황에서 북받쳐 오르지 않을 수 있나요!”
세훈은 이제 눈에서 눈물이 핑핑 돌려고까지 한다. 그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한다.
“파울리 씨, 파울리 씨가 대체 아냐고요!”
“알아... 심정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그게 사람이겠냐.”
미켈은 애써 차분히 말한다.
“그런데 네가 알게모르게 저 현애라는 아이를 많이 도와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네가 한 일은 헛되지 않았고.”
“하지만... 하지만...”
세훈은 여전히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오히려 그게 터져나오기 직전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상하게도 미켈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서 말한다.
“그리고 내가 감정을 좀 억누르라고 한 건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야.”
“네... 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끝나지... 않았다니요?”
그렇게 말하며, 세훈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좀 억누르고서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본다. 느껴진다... 아직 아케이드 쪽에서 불이 꺼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감지된다...
“잠깐...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안 보이네.”
분명히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안 보인다. 도대체 어디인가... 현애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한편 그 시간, 남자는 완전히 산산조각난 얼음덩어리가 있던 자리를 고개를 기웃거리며 보다가, 거기서 등을 돌려 발레리오와 비토리오 쪽으로 향한다.
“이상하군... 분명히 거기에 있는 것을 보고 얼음덩어리를 완전히 산산조각내기까지 했는데, 여전히 이 녀석에게서 발산되는 강력한 에너지가 감지되고 있어. 혹시 잔류사념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죽은 뒤에도 초능력의 영향이 잠시나마 남아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분신술이라도 쓴 건가? 분명 그 여자는 분신술 같은 걸 쓰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남자는 발레리오와 비토리오 쪽으로 가면서도 그렇게 자꾸 되뇌인다. 신중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불안함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아서 그렇다. 사실 남자에게는 이런 경험이 한번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경계를 더 풀지 못한다.
“잠깐...”
남자의 눈앞에 보이는 비토리오도 뭔가 의아함을 느낀 건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거... 아까부터 왠지 모르게 추운 것 같은데...”
“춥다고? 너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것 아니냐?”
남자는 비토리오의 말에 바로 입을 연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덥고 추운 것도 구분을 못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된 것 아니냔 말이다.”
“파디샤, 내가 당신의 생각 하나만 끄집어서 읽어 볼까?”
“지껄여 봐라.”
갑자기 자신의 생각을 읽어 보겠다는 비토리오의 말에 남자는 제법 여유롭게 말한다.
“굉장히 자신있는 모습처럼 보여도, 그 깊은 속은 매우 불안하지. 저기 호수에 있는 황금 사원과도 같다고. 그것도 주춧돌 없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다들 그러더군. 나와 싸워 온, 그리고 내게 쓰러져 간 수많은 자들은 내가 얼마 못 가서 무너질 거라고 했지. 하지만 불가역적인 그 순간은 반드시 온다. 불안정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까지는 얼마 안 남았지.”
“과연 그럴까 한번 보자고.”
남자는 애써 위엄을 보이려 하지만, 자꾸만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것도 매우 생생하게.
“그런데... 이상해... 이런 느낌, 꼭 옛날과도 같군.”
한편 그 시간, 비앙카와 도레이는 VP재단의 요원과 함께 태양석을 들고 가는 정찰대원을 쫓아 지하 통로를 지나고 있다.
“계단이 많이 나오는 걸 보니까 이 길인 것 같은데.”
숨찬 목소리를 내면서도, 비앙카는 지금 이 길이 빠른 길임을 확신한다.
“후... 도레이, 너는 안 지치냐?”
“아니, 이 정도야 뭐...”
“좋겠네.”
“조금 목소리는 낮추시죠.”
“네... 네.”
요원의 말에 따라 목소리를 낮추고, 다시 움직인다. 어느새 앞에 보이는 건 양옆에 환풍구가 있고, 그 앞에 좁은 출입문이 있는 광경. 그리고 약간의 소음이 희미하게 울려나오는 환풍구다.
“확실해... 이 길인 것 같아.”
비앙카가 알겠다는 듯 말한다.
“분명 이쪽으로 가면 직원용 통로가 나오고, 아케이드가 나오겠지. 내가 아는 호텔은 십중팔구 구조가 그랬어.”
“정말이지, 비앙카? 아니면 어쩔래? 내기라도...”
“야, 도레이, 지금 내기할 정도로 여유로울 상황이냐? 지금의 도박이 실패하면 우리는 다 죽게 생겼다고. 좀 경각심을...”
“나를 쫓고 있었나 보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앞에서 들린다. 푸른 헬멧을 쓴 남자가 막 철문을 열기 직전이다. 손에 들려 있는 건, 분명히 태양석이 든 철제 상자다. 확실하다!
“이제 이 문만 열고 나가면, 수령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 즉 천국이 시작되지. 너희들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돌려 달라고 해도 듣지 않겠지.”
헬멧을 쓴 남자는 비앙카와 도레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철문을 열려고 한다. 하지만 철문은 열리지 않는다. 아무리 열려고 해도 손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헬멧을 쓴 남자가 손을 들어본다. 이상하게 남자의 손에만 땀이 차오르고 있다. 오른손뿐만 아니라 왼손도 그렇다. 철문의 손잡이는 마치 비라도 온 듯, 아니 손잡이가 땀을 흘리는 듯 미끈거린다. 도저히 손으로 잡고 열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거야. 최대한 네 녀석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
“호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좋아...”
도레이의 말에 헬멧을 쓴 남자도 지지 않겠다는 듯 말한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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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01-27 13:08:57
정확한 상황은 정말 오리무중 그 자체네요.
메이링 일행은 길을 잘못 든 것 같고, 파디샤와 현애의 싸움에서 여행자들은 현애가 희생된 게 아닌가 하고 망연자실해 하는 사람들도 있고, 파디샤 본인은 진행상황에서 과거의 잔영을 떨칠 수 없고...
아무리 힘이 센 들 마찰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쓸데없죠. 게다가 그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라면...시어하트어택
2022-02-06 20:01:09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싸움인데 싱겁게 끝나기는 좀 그렇겠죠. 과정이 아무래도 좀 힘겨워야 성취하는 맛도 있기도 하겠고...
역시 다급하면 잘 되던 것도 안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죠. 저 상황도 그렇고요.
SiteOwner
2022-03-16 22:35:34
알려진 정보와 다른 상황이 나타나면 정말 앞이 깜깜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여기에서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또 믿음직합니다. 상당히 리스크가 큰 일을 하는 메이링이라든지, 자신의 고객들을 지키겠다는 일념에 철저한 미켈이라든지, 형제의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다시 생각나면서도 그 원흉을 향해 제대로 할 말을 하는 비토리오라든지...역시 영웅의 풍모에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고난이 헛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요즘은 잘 쓰지 않게 되었지만, 정말 난감한 상황을 두고 "기름 묻은 손으로 미꾸라지 잡기" 라고도 했지요. 그것도 같이 생각납니다.
시어하트어택
2022-03-27 20:34:56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정말 오리무중이라는 게 잘 드러나죠. 하지만 주인공은 어떻게 해서든 이겨낼 것이고, 그렇기에 터널의 끝은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