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남자는 다시 물로 돌아간 분수대의 물속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휘젓는다. 닿을락 말락 한다. 남자의 손에, 태양석이 든 금속제의 상자가 닿으려고 하면서도 닿지 않을 듯한 애매한 거리에 있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남자는 애타게 외친다. 이때만을 기다려 왔건만, 태양석은 좀처럼 남자의 손에 닿지 않는다. 여태껏 평정을 잘 지켜 왔다고 자신했던 그로서도, 어찌나 애가 타는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가 된다. 그래도 손이 아슬아슬하게 닿을 정도의 거리라면, 가능하다. 공간 정도야 단숨에 접어 버릴 수 있다. 물속에 있어서 감각은 조금 왜곡되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어째서인지 닿지 않는다. 또다시, 그의 손끝에 감각이 없다. 어느 순간, 또 분수대에 들어 있는 물이 꽁꽁 얼어 버린 게 아니겠는가. 그것도 단 몇 초 만에. 뒤를 돌아본다. 현애는 조금 전처럼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얼굴은 조금 벌게졌지만, 숨도 차 하는 것 같지 않고, 오로지 이쪽만을 보고 달려온다. 조금 전보다도 더 강해진 것 같은 추위가 가득 섞인 기운은 덤이다.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다시 한번 3초 정도 주위의 시공간을 휘젓는다. 현애는, 이제 아직 이쪽을 향해 달려오지도 않은 상태가 되었다. 달려오기 위해 발을 뒤로 뻗거나 한 자세가 아니라, 아예 1분쯤 전 서 있는 상태 그대로가 된 것이다. 쭉 여기를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면, 세훈도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예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 이래도 계속 올 테냐. 시간과 공간을 휘저을 수 있는 나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자꾸 거스르려고 하는 녀석들의 결말은 언제나 하나였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끔찍한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었지. 설령 용케 그 운명을 피한 것처럼 보이는 녀석들이 있더라도 결국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이건 운명이다.”
그렇게 말하고서 남자가 살짝 뒤를 돌아본다. 현애는 달려오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뭔가를 만지고 있다. 그가 보니, 무슨 버튼 같은 게 벽에 달려 있는데, 현애가 그걸 계속 꾹 누르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이상한 짓거리를...”
남자가 가만히 분수대 쪽을 보니, 조금 전에는 팔꿈치 정도 깊이까지 들어간 물의 높이가 어느새 어깨 정도 높이까지 올라왔다. 어디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봐야 알겠지만, 저 버튼을 누르면 분수대 안의 물이 점점 불어나는 것이 틀림없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답이 뻔히 나온다.
“나보고 네 수 앞은 내다보지 못한다고 했더니만, 네 녀석은 지금 완전히 거기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군. 쓸데없는 데에 다 신경을 쏟고 말이야. 이래서야 뭘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물이 차오르는 시간만 뒤로 돌려서, 분수대 안의 물을 빼는 건 간단하다. 현애가 아무리 물을 더 들어오게 한다고 해도, 물은 결국 다 빠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이라는 장애물이 없어지게 되니, 공간을 접어서 상자를 그의 바로 앞으로 가져오면 된다.
“됐다... 물이 다 빠진다.”
그의 말대로, 이제 분수대 안의 물이 원래 있던 물의 양의 1/4 정도까지 빠졌다. 이제 지금 보이는 정도라면 공간을 조금 휘저어서 그의 앞에 오게 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물이 시시각각 빠지고, 이제 거의 다 빠졌다. 어느새 보니 남은 물의 양은 처음에 있던 양의 1/10. 상자의 절반 이상이 물 밖으로 드러나 있다. 이제 분수대에 찬 물의 왜곡 없이도 손이 닿지 않는 상자를 이쪽으로 가져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제 됐다. 공간을 한번 반죽을 젓듯 휘저어서, 상자를 그의 바로 앞까지 가져온다. 됐다. 그토록 그가 갈망한, 그리고 새로운 천국을 열어 줄, 태양석이 든 상자가 바로 앞에 있다. 이제 열기만 하면 된다. 분수대 난간 바로 아래에 있는 금속제 상자를, 그가 막 열려고 허리를 굽히는데...
“어... 어엇?”
뭔가가 그를 향하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 그의 몸을 휘감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뭔가가 남자의 발밑에서 꿈틀대는 것 같은 느낌이, 분수대 위에 선 남자의 발을 타고 전해지고...
파앗-
한순간에 솟구쳐 버린다. 분수대로부터 뿜어나오는 강한 수압의 물에, 남자의 몸이 한순간 뒤로 밀려나 버린다.
“무슨...”
어떻게 된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수압도 이 정도로 높지 않고, 방향도 바로 위를 향하고 있었을 분수에서 이토록 강한 물을 뿜어서, 남자를 뒤로 쏘아 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 답을 찾는 데는 몇 초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그의 능력. 상자를 그의 앞으로 공간을 왜곡시켜 옮기는 과정에서, 그 주위에 있는 분수까지 함께 딸려 왔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엉덩방아를 찧는다. 현애와 막 다툼을 벌이던 장소에서 조금 벗어난, 아케이드 딱 한가운데다. 상자는 어디로 튕겨 나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아까 분수에서 물을 뿜어낼 때 그 상자도 어딘가로 날아서 사라져 버린 모양이다. 상반신을 일으키자마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그 상자를 찾으려고 하지만,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건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금속제 상자이니만큼 ‘쨍그렁’거리는 미세한 소리라도 났을 텐데, 그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런 수작을...!”
남자가 낮은 소리로 이를 갈며 말하자 뒤에서 버튼을 누르던 현애가 버튼에서 손을 떼며 말한다.
“왜 그래? 나는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는데.”
“네가 뭘 관여하지 않았다는 거냐?”
남자가 현애를 노려보며 말한다.?
“네가 버튼을 누르거나 하지 않았으면 내가 이렇게 헛수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하, 무슨 소리야. 네가 지금 혼자서 헛짓거리를 해 놓고서는 덮어씌우려는 거 아니야? 여기 물은 시간에 맞춰서 늘어나고 줄어드는 거라니까? 네가 자초한 거야!”
“흐, 흐흐흐, 그래...”
남자는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왜 그래? 태양석을 눈앞에서 놓쳐서 충격이라도 받은 거야?”
“방심하면 안 되지!”
남자가 그렇게 말한 순간, 눈앞의 공간이 세 겹 정도는 접힌 것 같이 휘어져 보이더니...
어느새 뭔가가 현애의 복부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차 하는 순간이지만 이미 늦었다. 남자에게 말하느라 정신이 팔리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피할 시간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과 공간을 마구 휘저을 수 있을 정도의 남자의 능력의 범위에서는 벗어나지 않았겠지만...
“어떠냐? 방심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한편 그 시간.
메이링과 스타크 요원은 1층 로비에서부터 계단을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조금 전에 허탕을 친 것 때문인지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신경이 곤두서 있다.
“저쪽에서 소음이 들려오는 것으로 봐서는 확실하네요.”
“어디요?”
메이링이 묻자 스타크 요원은 계단 아래쪽으로 보이는 분수대를 가리킨다.
“저쪽에 다들 있는 것 같아요. 문제의 파디샤라는 녀석도 저기 있는 것 같고요.”
“잠깐! 파디샤... 라고요?”
“네. 지금 들리는 걸로는 저쪽에 태양석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뭔가 실랑이가 벌어진 듯하군요.”
“그래요? 그러면 더욱 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마침 제 능력으로는 저 파디샤라는 자의 능력이 무엇이든 무력화시킬 수 있을 듯하고 말이죠. 안 그런가요?”
“안 됩니다. 그래서 더욱 안 됩니다!”
스타크 요원은 메이링의 말에도 단호하다.
“왜... 왜요?”
“제가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저 파디샤라는 자는 상대방이 방심한 틈을 노리는 전법을 자주 썼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사장님의 형제도 싸움에서 저 자가 고전하다가 방심한 틈을 노려서 죽였다고 했죠. 그러면 변호사님도 섣불리 저기로 갔다가는 저 자가 빈틈을 노려서 어떻게든 할 것이라는 건 쉽게 나오는 결론 아니겠습니까?”
“......”
심각한 얼굴을 하고, 스타크 요원의 말에 적잖은 충격이라도 받은 건지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던 메이링의 눈에, 또 한 사람이 들어온다. 아케이드 구석을 이리저리 배회하던, 머리는 산발하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다. 저 정체불명의 남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중대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저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어, 엇...”
눈이 마주친다. 그 산발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와. 그러자마자, 그 남자는 잽싸게 몸을 돌려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간다. 마치 메이링을 봐서는 안 될 것 같이, 잽싸게.
“뭐야, 어디 가는 거지?”
메이링은 급히 계단을 내려가서 그 수염 덥수룩한 남자를 쫓아가려고 한다.
“저기, 잠시만! 잠시만요!”
메이링이 정체불명의 그 수염 덥수룩한 남자를 쫓아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스타크 요원이 메이링의 어깨를 잡고 막아선다.
“변호사님, 변호사님.”
“네...?”
“섣불리 쫓아가다가는 변호사님까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저 수염 덥수룩한 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괜히 쫓아갔다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요?”
“하긴... 그건 그렇죠...”
한편 아케이드 계단에서 막 도망친 수염이 덥수룩한 그 남자는 직원용 통로에 막 들어갔다. 주위를 한번 돌아보더니, 안도와 불안감이 한데 뒤섞인 한숨을 푹 하고 내쉰다.
“아, 큰일 날 뻔했네.”
수염 덥수룩한 남자, 조나는 또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구 들리는 소음으로 미루어 보면 꽤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듯하다.
“단장을 죽인 그 녀석인가? 느낌이 맞는 것 같은데...”
조나는 그렇게 확신하고서는, 몸을 더 벽에 밀착하고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고민하는 시간은 단 몇 초에 불과하지만, 마치 매듭이 복잡하게 엉켜 버린 것만 같은 지금 상황은 생각할수록 까마득하다. 태양석을 생각한다면 지금 바로 나서야 할 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얻기 힘든 기회라는 것을, 그는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나갔다가는, 상황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은 조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 어떡하지...”
결정은 최대한 빨리, 하지만 신중하게 해야 한다. 찰나의 시간이지만 고민하던 그에게,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사무실에서 근심에 차서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을 때, 수민이 하던 말이 있었다. 지금 이 시간, 그 말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 단장이 그랬어. 고민될 때는 일단 저지르고 보라고 했지.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시간인 것 같고...!”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2-02-09 23:04:21
파디샤의 계책, 그럴듯해 보였는데 결국 자충수였군요...
현애를 보고 방심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방심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파디샤 자신인 것은 생각치도 않는가 보네요. 더군다나 물의 힘은 절대로 얕보면 안되는데...
고민될 때는 일단 저지르고 본다...답이 되기도 하죠, 어떤 때에는. 언제나 정답은 아니겠지만...시어하트어택
2022-02-13 22:36:11
아직은 승부가 안개 속이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죠. 파디샤뿐만 아니라 주인공 일행도 방심 때문에 전세가 불리하게 되죠.
수민이 조나에게 해 줬던 말은 전작의 수민의 행적을 좀 곱씹어 보다가 '이런 말을 했겠다' 싶어서 써 봤습니다.
SiteOwner
2022-03-26 16:11:53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파디샤도, 현애도 둘 다 끝장날 뻔 했습니다. 정의는 언제나 이긴다고 말하지만 누가 어떻게 정의인지를 판별하는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살아남아야 그 뒤에 논하고 말고를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급박한 상황에는 저질러 보고 후회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이전에 급박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지만...
시어하트어택
2022-03-27 21:02:07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은 여기서도 유효합니다.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봤자, 죽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니죠.
제가 우유부단함으로 인한 피해를 많이 봤기 때문에 저질러 보는 것에 대해서 더 뼈저리게(?) 느끼는 바가 없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