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철도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다는 담론은 아무래도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세계 유수의 고속철도 운용국에다, 앞으로 기대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 등과의 접속, 남북교류 차원에서의 경의선 재개통 및 도라산 신설, 자체개발 고속철도차량, 반나절 생활권 등의 온갖 수식어로 차 있는 우리나라의 철도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다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어요.
게다가 이 주장은, 철도계 종사자들이 "그럼 우리는 그 잘못된 것에 인생을 버리고 있는 건가?" 하는 반발을 불러 일으킬 여지도 있어요.
하지만 오해 마세요. 철도계 종사자들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어요. 그래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데다, 타인의 직업선택 문제에 대해서 제가 왈가왈부할 권리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왜 이야기해야 하는지 이유는 분명 있으니까요. 그게 뭐냐구요? 높으신 분들의 안이한 생각에 철도시스템이 안 좋은 방향으로만 개악되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럼 어디서부터 문제를 제기해야 할지를 말해 둘께요.
저는 철도통계부터가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철도통계? 시스템의 잘못된 점을 이야기하는데 왜 통계에서 문제를 지적할까요? 논점을 잘못 잡은 게 아닐까요?
하지만 아니예요. 논점을 바로 잡은 게 맞아요.
여러분은 철도총연장, 선로거리 등의 말을 들어 보셨나요?
도로총연장이 도로의 길이를 모두 더한 것인만큼, 철도총연장은 철도의 길이를 모두 더한 것이라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어요. 이렇게 문리적으로 해석하는 게 사실 맞는 거구요. 게다가 선로거리라는 것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할 거예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이 용어 자체가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아서, 굉장히 혼란스럽게 쓰이고 있거든요.
예를 보실까요?
일단 철도총연장 자료를 찾아볼께요.
http://100.daum.net/yearbook/view.do?id=44451
"남한의 철도 총연장은 1998년에 6,683km로 1970년 5,500km에 비해 1.2배 늘었고 북한의 철도 총연장은 1998년에 5,214km로 1970년 4,043km에 비해 1.3배 늘었다." 라는 문장이 있어요.
그럼 이 자료도 볼께요.
http://www.krri.re.kr/webzine/y2009/7_8/fortrend/20090904/1_17857.html
분명 위에서는 1998년 한국 철도총연장이 6,683km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두 자료를 보니까 위의 자료에서는 1998년 기준 3,125km, 아래의 자료에서는 2010년 기준 3,390km라고 되어 있어요. 이렇게 철도총연장이 몇 km 차이가 나면 모를까, 배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분명 이렇게 출처에 따라 값이 심하게 차이난다면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해요.
선로길이를 보도록 하죠.
http://info.korail.com/2007/kra/inf/inf04000/w_inf04100.jsp
여기에선 미터 단위까지 친절하게 보여 주고 있어요.
2012년 1월 1일 기준의 선로길이를 보니까 합계 8,427,581m니까 반올림해서 8,428km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건 대략 맨 앞에서 언급된 6,638km와는 비교적 차이가 적어요. 그리고 경부고속전철이나 신분당선 등이 개통했으니까 1998년보다 2012년이 확실히 늘었다고도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서울-부산 거리가 얼마였던가요? 분명 500km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걸까요?
여기까지 보셨는데, 과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어요?
뭔가가 심하게 잘못된 것 같지 않아요?
용어의 정의 자체가 일관성이 없거나, 연구자료조차 잘못된 자료를 복사해 붙인 의혹이 든다거나 하는 문제 등이 보이지요?
그런데, 잘못된 자료는 여기에 없어요. 모두 맞는 자료예요. 즉 용어의 정의문제가 주요 쟁점이란 의미.
이제, 그럼 어떤 용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기준으로 철도시스템을 봐야할지를 하나하나 따져 봐야겠어요.
첫째 사례와 둘째 사례의 "철도총연장" 은 의미가 다르게 되어 있어요.
첫째 사례에서의 철도총연장은 철도라고 생긴 것의 길이를 모조리 더하는 의미로 쓰였어요. 이것은 레일, 침목, 밸러스트, 가선 등의 자재의 소요량 산출에 필요한 데이터로 쓸 수 있어요.
복선철도면 기본적으로 거리의 2배가 되고, 또한 역이나 조차장 등에서 쓰는 철도의 길이도 더해져요. 반면에 둘째 사례에서는 열차가 달리는 거리를 의미해요. 이것은 철도네트워크의 보급수준, 운송거리, 요금, 필요한 전력 또는 연료의 분량 산출의 근거가 되어요.
셋째 사례를 보면, 여기에 등장하는 선로길이라는 용어가 바로 첫째 사례의 철도총연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어요. 경부고속철도 및 신분당선은 복선이고, 게다가 역, 차량기지 등의 선로 등을 감안하면, 1998년과 2010년의 차이가 납득되니까요.
그럼 용어를 재정립할께요.
철도라고 생긴 것의 전체 길이는 궤도총연장, 그리고 열차시각표에 적힌 거리는 영업거리로.
궤도총연장을 근거로 철도보급을 산출하면 규모가 적어도 2배 이상은 뻥튀기되어 철도가 충분히 보급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고, 따라서 이것이 철도시스템의 고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게다가 영업거리로 자재소요량을 산출한다면 항상 자재 및 예산의 부족에 시달릴 것도 분명하구요. 그래서 이러한 철도통계의 맹점을 먼저 인식해야겠어요.
다음 회차에서는 국가별 비교에 대해 다루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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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하네카와츠바사
2013-05-30 19:35:40
통계 수치가 틀린 건 아닌데 명확한 단어의 의미를 정하지 않고 섞어서 쓰니 제멋대로 해석이 가능한 게 되었네요. 이런 통계라면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혼선이 생기지 않을까 궁금해지네요.
마드리갈
2013-05-30 20:03:54
기본적인 용어를 통일하지 않으면 해석, 정책연구 및 반영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기 쉬워요. 게다가 상부에서의 이런 오류가, 실무 종사자들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 위험 또한 크니까 그만큼 사회후생의 감소도 나타날 수 있구요.
면적이 한국의 2.4배 정도 되는 영국의 철도영업거리가 16,321km인데 이것을 2.4로 나누면 6,800km가 되어요. 이 수치는 코레일 웹사이트에 나온 2012년 선로거리 총합인 8,428km보다 크게 적은 것이예요. 본문의 철도영업거리와 궤도총연장 개념을 혼동하게 되면, 영국에 비해서 단위 국토면적당 철도가 더욱 많다고 오해하게 되고, 따라서 철도에의 신규투자를 중단해야 한다는 잘못된 결론을 낼 수 있어요. 바로 이런 점에서 위험성이 있으니 이것을 가장 먼저 지적하게 되었어요.
처진방망이
2013-05-31 01:07:19
종합하면 우리나라의 철도는 길이통계부터 편차가 크니 이것을 다시 조사하여 통일하는 절차가 시급하다는 결론이네요.
마드리갈
2013-05-31 01:29:28
자료마다 용어의 정립 등이 각기 달라서, 분명 정보 그 자체는 사실인데 잘못 사용될 여지를 만들고 있는 현재의 관행을 타파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황당한 결론을 내서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빠지기에 딱 좋으니까요.
도로에 비해 철도에의 투자가 지극히 인색했던 것도, 혹시 이런 점도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무래도 그냥 보고만 있기에는 뭐랄까, 참 답이 없어요.
KIPPIE
2013-05-31 01:15:47
이건 그냥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네요.
Ψ. 이 시리즈에서 도시철도도 다루나요?
마드리갈
2013-05-31 01:34:47
맞게 보셨어요. 거짓말은 하지 않는 상황 그대로예요.
즉 궤도총연장을 영업거리 개념으로 바꿔치기해서 철도네트워크의 확장 필요가 없다는 식의 결론을 내려 버리면, 분명 의사결정의 절차에 중대한 착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통계자료에 준거했으니 부당하거나 위법한 결정은 아니게 되어 버려도 할 말이 없어져요. 그래서 이걸 지적하는 거였어요.
일단은 간선철도 문제를 중점으로 다룰 예정이지만, 도시철도 문제도 사안별로 다룰 예정이예요.
혹시 다루고 싶으신 쟁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