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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키 린 시리즈 4. 자연의 섭리

마드리갈, 2022-05-11 21:33:01

조회 수
175

2010년 12월 13일의 이른 아침.
인텔리전스 월드와이드 그룹(Intelligence Worldwide Group) 본관 11층 회장 집무실에서는 당직 상황실장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코마키 린(小牧凛) 회장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 첩보에 따르면 그들이 권총이나 다른 무기류를 휴대하고 있다는 게 상당히 유력합니다만...동관 1층의 출입문의 검색장비를 정말 꺼도 괜찮겠습니까?"
린이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상황실장님, 그 점에 대해서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저와 시미즈에게 맡겨 주시면 됩니다. 첩보에 고생 많으셨어요."

상황실장이 종합상황실로 돌아가자, 수행비서 시미즈 미유(清水美悠)가 들어와서 용건을 전달했다.
"회장님. 이제 곧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러면 동관 2층 응접실로."
"그럼 이동하지요."

동관 2층의 응접실 앞에 도착한 린은 바로 옆방인 방송실에 들러서 상황을 점검하고 스탭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응접실의 내부에서 기다렸다. 린과 미유, 그리고 응접실에 배속된 2명의 직원이 문제의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고 약속시간인 오전 9시가 되었지만 그들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린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일정표를 집어들어 읽었다.

[0900-1100, 일본공산당 집행부 접견]

눈가와 입술이 살짝 일그러지는 듯한 표정을 지은 린은 그 일정표를 다시 테이블에 내려두고, 의자에 앉은 채로 잠깐 눈을 감았다.
한 직원이 울리는 인터폰을 받았다.
"회장님, 이제 일본공산당 집행부가 도착합니다."
"알겠습니다."
린은 바로 자세를 단정히 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일본공산당(日本共産党)의 집행부 인사 3명이 응접실에 들어왔다.
부위원장 하마오카 타다요시(浜岡忠義), 쿠니모토 치에(国本千恵) 및 아카기 히토시(赤城均)가 응접실 담당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와서는 테이블 맞은편의 3명에 가벼이 목례를 하고 테이블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1명씩 앉았다. 맞은편에서는 그들의 목례를 받은 3명이 앉았다. 가운데에 린이, 린의 왼쪽에는 응접실 직원이, 린의 오른쪽에는 미유가 앉았다. 다른 직원은 6명분의 차를 준비했다.
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일본공산당 부위원장 여러분, 인텔리전스 월드와이드 그룹에 잘 오셨습니다. 그럼, 이제 용건을 들어도 될지요?"

3명의 부위원장은 갑자기 말이 없다가, 가운데에 앉은 쿠니모토 치에가 불만있는 표정으로 여러 말을 내뱉고 말았다.
"쳇, 이 회사는 그렇게 부자면서 내 오는 차가 교쿠로(玉露)도 아니고 보통의 센차(煎茶)라니, 하여튼 자본가 연놈들이란..."
쿠니모토의 오른쪽에 앉은 하마오카와 왼쪽에 앉은 아카기 모두 갑자기 사색이 되어 만류하는 손짓을 했지만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카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는 부자연스럽게 떠 있는 것을 정장 상의로 간신히 가린 듯 했고 거동 또한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했다.

미유와 두 직원이 분노의 눈빛으로 그 3명의 방문객들을 응시하는 도중, 짧은 침묵을 끊고 린이 화답했다.
"교쿠로든 센차든 모두 일본의 농민이 생산한 소중한 작물입니다. 게다가, 교쿠로는 카페인이 많아서 카페인에 민감한 분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다 보니 평균적인 센차를 내오는 게 관례입니다. 게다가 교토(京都)에서는 고급요정에서도 호지차(ほうじ茶)를 내오는 일이 많아요. 호지차는 1920년대 교토에서 발명된 볶은 녹차이다 보니 지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기도 하지요. 호지차를 내 오면 손님 대접이 박하다느니 하는 것도 다 헛소리이고. 차 한모금에 교쿠로니 센차니 하시는 분이 차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으신 듯 한데, 그걸로 인민의 생산품을 비난하다니, 그게 우수마발(牛溲馬勃)보다도 못한 발언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일까요. 최소한 소나 말의 분변은 퇴비에라도 쓸 수 있습니다."

바로 얼굴이 붉어졌지만 아무 말도 못하는 쿠니모토에 대해 하마오카가 곁눈질을 한 뒤에 말을 꺼냈다.
"조금 전의 무례에 대해서는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린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면서 하마오카에게 발언의 기회를 넘겼다.
"코마키 회장님, 타라쿠형무소(多楽刑務所)에 수감된 저희 동지들을 풀어주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하마오카의 발언, 그리고 아카기도 합세한 그 호소에 대해 린은 팔짱을 낀 채로 대답했다.
"그걸 왜 저에게 말씀하시죠? 여기는 제 회사의 응접실이지, 재판소가 아닙니다. 저는 그 죄수들에 대해 어떠한 권한도 없습니다. 그게 용건이라면 잘못 오셨으니까 조속히 돌아가 주십시오."

이번에는 아카기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왼쪽 겨드랑이 아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는 그 묘한 상태를 의식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코마키 회장님, 당신은 공적인 지위도 있잖습니까. 추밀원(枢密院) 민간위원이라는. 황실에 직언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지신 분인데 저희 당에서 이렇게 집행부 3명이 와서 호소하면 그 지위로 뭔가 해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는 추밀원이 아니고, 공적인 지위를 사사로운 이유에 이용할 수도 없습니다."
"뭐이 썅년아!! 공산당이야말로 법이고 정의고 진리다, 닥쳐라, 자본가 반동분자 새끼 주제에!!"

논파당한 뒤에 한참동안 말을 못했던 쿠니모토가 욕설을 하는 것에 모두의 시선이 쿠니모토의 입으로 집중되었다.
린은 다시금 팔짱을 끼며 한 마디씩 꺼냈다.
"반동분자 새끼라...공산주의자가 되면 하나같이 언어능력이 감퇴하는 건가 봅니다? 이틀 전에 오노데라 카즈키(小野寺和揆)에게 전달할 게 있어서 타라쿠형무소에 갔고, 교토대학 출신의 엘리트인 그도 그런 말을 쓰던데 말이죠. 그나저나, 그 석방해 달라는 동지에 오노데라 카즈키도 포함되는 게 맞습니까?"

3명 모두 답이 없었다가, 하마오카가 겨우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누구요? 적어도 오노데라 카즈키라는 동지는 없소이다."
"시미즈 씨. 준비된 것 화면에 띄우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미유가 응접실 한켠에 설치된 대형 텔레비전 화면을 켜자 화면에 2010년 12월 13일 0시 현재 일본공산당 당원목록이 나왔다.

미유가 리모컨으로 오노데라 카즈키의 이름을 검색하자 검색결과가 나왔다. 추밀원에서 벌인 코마키 린 독살미수사건의 주범으로서 현재 상태가 타라쿠형무소 복역중이라는 것도. 물론 참석중인 3명의 이름도 검색하자마자 차례차례로 떴다.


"난 그런 사람 모르오. 그가 설령 당원이라고 해도, 당원이지 동지라고는 말 안했고, 그 사건은 그놈이 독단적으로 벌인 것. 저희 당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흠, 그래요? 없다는 동지가 모르는 동지로 바뀌었고, 일본공산당은 동지가 아닌 사람도 당원으로 받아주는 정당이었군요. 게다가 모르는 사람의 행적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지?"

두번이나 논파당해 혼자 분을 못 삭이고 있는 쿠니모토에 이어, 자신의 발언 속 모순을 지적당한 하마오카도 더 이상 말을 못하고 그저 입술만 깨물 뿐이었다.


아카기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봐요, 코마키 씨, 당신 가정은 자연의 섭리를 어겼지 않습니까? 당신 부모는 에도시대 초기부터 생존해서 400년 정도나 살았는데 그런렇게 오래 산 사람이 언제 죽어도 안 이상할 것을, 당신 부모처럼 몇번이나 환력을 맞은 사람도 있지만 태어나지도 못하고 유산되거나 사산되는 사람도 있단 말이오!! 자연의 섭리를 어긴 초장수자라면 단명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닙니까?"


린은 팔짱을 풀고 나서, 오른쪽에 앉은 미유의 무릎을 오른손으로 살짝 눌렀다. 그리고는, 아카기 쪽으로 자세를 살짝 돌리고 말을 꺼냈다.

"자연의 섭리...대체 무엇을 어떻게 자연의 섭리라고 정의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세계에는 저희 가정처럼 초장수자 가계도 있으니 이걸 자연의 섭리를 어겼다면 저희 가정이 뭔가 우주를 바꾸는 힘이라도 있는가 봅니다? 그리고, 장수한 사람이 단명한 사람의 수명을 뺏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자연의 섭리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일본공산당처럼 대규모의 폭탄테러를 저질러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도 자연의 섭리가 아니고, 올해 이제 14살인 쌍둥이 여동생들이 당신들이 자행한 테러로 4년 전에 부모를 잃게 된 것도 일반적인 가정에 흔히 있는 일도 아니니 자연의 섭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말하는 자연의 섭리가 대체 뭔지 이 자리에서 저를 설득시켜 보시면 인정하겠습니다만?"


아카기는 지지 않으려는 듯이 목소리를 이전보다 높였다.

"당신은 미모, 재력, 권력 다 갖췄잖습니까. 그런 당신이 가족까지 제대로 가지는 건 불공평한 거고, 어차피 부모는 언제 죽어도 죽는 것이고, 다 같이 사는 공동체사회에서 좀스럽게 그러지 맙시다. 그리고, 손해도 좀 보고, 그 많은 돈 어디에 싸갖고 갈 겁니까? 좋은 말 할 때 우리 일본공산당에도 내 놓으면 우리가 여당이 되었을 때 당신네 회사도 득볼 것 아닌지?"


린은 그런 아카기의 발언을 일축했다.

"같은 진영내에서도 이렇게 손발이 안 맞는 것은 참으로 골계적이군요."


아카기가 골계적이라는 단어에 몸이 요동치듯 떨면서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코마키 린, 뭐가 웃겨, 이 반동분자 매판자본가 주제에!! 해방세상이 오면 네년 모가지부터 따서 네년 창자로 그 모가지를 매달아 모스크바의 크렘린 광장에 내걸 것이다!!"


린은 표정도 어조도 전혀 바꾸지 않은 채 응수했다.

"그러시군요. 그러면 어디 그렇게 해 보시던가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적어도 6가지군요. 현존제도 무시, 같은 진영 내에서 손발 안맞는 행태, 빈곤한 어휘력, 정당교부금을 거부해 왔다는 소신을 그렇게도 간판으로 내걸면서 뒤로는 이렇게 기업체에 쳐들어와서 금품 요구, 궤변이 안 들어먹히니까 협박.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소련에 충성해도 아카기 씨, 당신은 레스뿌블리까(Республика, 공화국)의 인민이 아니라 그 레스뿌블리까가 증오하는 적국의 신민인 야뽄스끼(Японский, 일본인). 그렇게 자랑스러우시다면 이것을 공론화할 기회도 드리겠습니다."

"으음...뭣이...끄응..."


린의 응수에 할 말을 잃고 혼자 중얼거리기만 하던 아카기의 상의 사이로 무엇인가가 보였다. 왼쪽 겨드랑이 아래에 홀스터 같은 것이.

린의 시선을 느끼자 들켰다고 생각한 그는 갑자기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다가.

"타앙!!"

"끄아아아악!!"

"미유!!"


총성 같은 굉음이 나자 바로 맞은편의 미유가 도자기로 된 잔을 아카기의 이마를 향해 집어던졌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몸을 던져서, 하이힐을 신은 발로 아카기의 상체를 걷어찬 후에 그를 제압했다. 아카기의 왼쪽 다리는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오른손에는 미처 홀스터에서 다 꺼내지도 못한 권총이 있었다. 이마는 도자기 잔에 맞아 깨져 있었다.

린은 바로 호출 벨을 눌렀다.

대기중이던 회사 직원들, 회사 건너편의 신쿠리하마종합병원(新久里浜?合病院) 응급구조단 및 경찰기동대가 즉시 진입하여 상황을 수습하였다. 아카기 히토시는 자신의 다리에 쏜 권총탄에 중상을 입고, 미유가 던진 잔에 맞아 이마가 깨져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고, 하마오카 타다요시 및 쿠니모토 치에는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로 떨고 있었다.

응급처치를 받은 아카기가 미유의 감시하에 이송되고 경찰기동대원들이 입회해 있는 응접실에서 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둘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공산당의 요구를 받아들여라, 안그러면 테러하겠다, 이게 당신들이 말하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입니까?"


둘 다 말이 없었다.

린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적극적으로 반론을 안 하시는 것을 보니 사실상 인정하셨군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 사건은 그냥 분쟁이 아니라, 일본공산당이라는 현행법상의 정당의 집행부 인원이 무기를 휴대하고 기업과 기업경영자에 대한 테러를 획책한 사건이니 그냥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겠군요. 그러면 오늘 응접실에서 있었던 상황은 모두 녹화되어 있으니 이건 언론에 바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하마오카와 쿠니모토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통사정을 하였다.

"제발, 그것만은..."


린은 그런 두 사람을 무시하고, 세 단어를 꺼냈다.

"센다가야, 아카하타, 이즈."


그 두 사람은 빌다가 린이 말한 세 단어를 듣고 잠깐 멈칫하다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린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살짝 미소를 띠었다.


"그래요, 센다가야, 아카하타, 이즈. 무산자계급의 정당, 프롤레타리아 해방, 지주 및 자본가 반대 등의 반자본주의 등을 외치면서 일본공산당은 도쿄도 시부야구 센다가야(千駄ヶ谷)에 거대한 11층 빌딩을 소유하고 있고, 신문 아카하타(しんぶん赤旗)는 발행부수도 전국 상위권에 드는 충실한 수익원인데다 시즈오카현 이즈(伊豆)에는 학습회관까지 건설해서 소유하고 있는데, 공산주의자가 이렇게 자본주의자같이 행동하는 게 자연의 섭리입니까? 이참에 잘 됐군요. 그러면, 앞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십시오. 그 세 설비는 자본가인 저에게 맡겨 주시면 되겠군요."


"반동분자..."

"어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는지요?"

"코마키 린, 이렇게 우리를 엿먹이려 들었겠다...?"


반동분자 운운하던 쿠니모토에 대해 린이 다시 쏘아붙였다.

"엿먹이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애초에 부당한 요구를 하러 찾아오신 분들이 누구이며, 또 무기를 휴대하고 오신 분은 누구인지 반문만 해봐도 알 수 있는 걸 꼭 제 입으로 말씀드려야겠습니까? 그리고 쿠니모토 부위원장님, 게다가 무례하고 저열한 화법으로 상황을 엉망으로 만든 분은 또 누구인지. 경찰서에서 쿠니모토 부위원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마오카와 쿠니모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경찰기동대에 넘겨졌다.

바로 수갑이 채워진 그들이 연행되자 린은 혼자 응접실에 남았다.

바닥에는 아카기가 입은 총상에 흘린 피, 깨진 도자기 잔 등이 있었고 실내에는 여전히 피비린내와 화약냄새 등이 남아 있었다. 잠시 동안의 적막이 노크 소리에 끝났다.

"회장님, 돌아왔습니다."

"미유!!"


린은 돌아온 미유를 끌어안았다.

"회장님, 여기는 아직 회사 안입니다만..."

"아 그렇지...미유, 아니, 시미즈 씨."


미유를 안고 있었던 린은 자세도 호칭도 바로잡고 미유의 보고를 들었다.

"아카기 히토시에 대한 응급처치도 잘 끝났고, 탄환적출수술도 완료했습니다. 이제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미즈 씨가 다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예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리고, 그 아카기 히토시가 갖고 있었던 권총에 대해서도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지금 화면을 켜면, 감식자료가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린은 바로 화면을 켰다.

경찰의 감식결과, 아카기가 소지하고 있었던 것은 소련에서 생산된 TT-30 권총, 통칭 토카레프 권총이었다. 또한 그의 다리에 박혀 있었던 탄자 또한 7.62mm*25mm 토카레프. 모스크바의 크렘린 운운한 그의 발언의 배경이 환히 보였다. 게다가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을 숙지하지 못한 그가 홀스터에서 급히 총을 꺼내려다 엉겁결에 격발시켜 자신의 다리를 쏜 정황도 가늠할 수 있었다.


"역시 어휘력도 저급, 행동력도 저급, 그러고 보니 보도자료 보낸 건?"

"아, 그거라면 지금쯤 대서특필되어 있을 겁니다. TV채널로 돌려보죠."


TV 뉴스채널을 켜자, 역시 예상대로 긴급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속보 - 인텔리전스 월드와이드 그룹 테러미수사건]

"오늘 오전에 카나가와현 요코스카시의 인텔리전스 월드와이드 그룹 본사의 동관에서 일본공산당 집행부 3명이 코마키 린 회장(38세)에게 테러를 가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친 뒤 체포되었습니다. 용의자 중 일본공산당 부위원장 아카기 히토시(41세)가 테러시도 중 자신의 다리에 권총을 오사하여 부상을 입은 이외에는 인명피해가 없습니다. 아카기 용의자는 신쿠리하마종합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은 후 회복중입니다. 인텔리전스 월드와이드 그룹 동관은 지역주민 및 근린지역 사업자들을 위하여 각 관청의 출장소도 입주해 있는 사정상 무기를 갖고 동관에 진입한 3명의 용의자에 대해 집중수사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또한 제보된 자료화면에 나오는 아카기 용의자의 발언에 소련를 배후로 전제하는 듯한 발언도 포착된 만큼 이적행위의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그러면 자료화면을 보시겠습니다."


[자료화면 - 인텔리전스 월드와이드 그룹 홍보실 제공]


자료화면에서는 아카기의 문제의 발언이 나오는 것은 물론 아카기가 권총을 꺼내려는 그 순간에 폭발음이 났고 미유가 그 순간에 잔을 던져 아카기의 이마를 직격한 후 몸을 날려 아카기를 발로 차서 제압하는 장면도 나오고 있었다.


"시미즈 씨 덕분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제 괜찮아졌으니 우리도 경찰서에서 진술해야겠죠."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는 린에 대해 미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1층의 나가세경찰서(長瀬警察署)로 발걸음을 옮겼다.





[4화 배경지식 안내]

녹차 중 교쿠로는 어린 차엽으로 만든 고급녹차로 일본내 시판가격이 100g 팩 기준으로 10,000엔을 가볍게 넘는데다 우려낼 때도 섭씨 60도(=화씨 140도)의 비교적인 낮은 온도의 온수를 사용하는 등 까다로운 점이 있는데다 카페인의 양도 상당히 많아요. 보통의 센차 및 호지차가 100g 팩 기준의 일본내 시판가격이 대체로 수백엔대이고 고급이라 불리면 1,000엔을 겨우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통의 것보다 10배는 비싸다고 보면 되어요.


폴리포닉 월드의 일본에는 황실의 자문기관으로서의 추밀원(枢密院)이 궁내부(宮内府) 산하에 소속되어 국정의 총론적인 사항이 논의되고 있고, 국정의 각론적인 것은 내각의 지휘를 받는 각 성청(省庁)이 관장하고 있어요. 코마키 린은 관료는 아니지만 각종 국책프로젝트에 관여하는 기업의 경영자이다 보니 민간위원으로 임명되어 추밀원회의에 참여하고 있어요.


암살자가 총기를 휴대하는 도중에 격발사고를 내는 경우도 간혹 있어요.

그것 중 잘 알려진 사례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 때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 저격미수사건. 일본내의 경찰서에서 훔친 권총을 갖고 잠입했지만 일본인 고위관료로 위장하여 까다로운 검문을 피할 수 있었던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 1951-1974)은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지만 실수로 자신의 다리를 쏘았고 그렇게 다리를 잘 쓸 수 없던 문세광은 연단 쪽으로 달려나가며 총을 쏘다가 객석에 앉아 있었던 세무공무원 이대산(李臺山, 1923-2020)이 그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고 이후에 청와대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했어요. 그 문세광이 쏜 총탄 중 1발이 영부인 육영수(陸英修, 1925-1974) 여사의 머리에 맞고 육 여사는 그날 타계했어요. 또한 문세광과 청와대 경호원의 교전중 당시 기념식 합창단원으로 참가했던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의 2학년생 장봉화 양이 경호원이 쏜 총탄에 절명했어요. 이후 문세광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74년 12월 20일에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최후를 마쳤어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대왕고래

2022-05-17 23:51:06

무례한 이들을 쿨하게 제압하는 모습이 좋네요.

보통은 저러면 화를 내거나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드리갈

2022-05-18 00:14:38

린이 사실은 아주 분노하고 있었죠.

2006년의 요코스카 터널 폭탄테러에서 부모님과 미유의 어머니 아야카 씨를 비롯한 회사 임직원 다수가 희생되었고 여동생들 또한 그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기에 린은 당장이라도 그 테러주모자인 일본공산당의 구성원을 몰살하고 싶을만큼 분노했고, 핵심가담자 735명이 사형의 확정판결을 받았음은 물론 또다른 수백명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받아 타라쿠형무소에 수감된 상태. 게다가 3화에 등장했던 오노데라 카즈키는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들어온 엘리트였지만 그는 일본공산당에 포섭된 자객이었던 것이죠. 이런 린이 그들을 모두 때려잡기 위해서, 분노를 참고 대담한 도박을 한 것이었어요.


사실 출입문의 검색대에서 잡았더라면 더욱 손쉽게 잡았겠죠. 하지만 총기를 휴대한 구체적인 이유도 특정할 수 없는데다 일본공산당의 추악함을 세계에 폭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총기를 지니고 온다는 유력한 정보를 파악한 뒤에 일부러 그들의 본심을 드러내게 해서 동요시키고, 또한 권총을 휴대할 때 겨드랑이 아래에 착용하는 홀스터는 은폐에는 유리하지만 권총을 꺼냈을 때 권총의 총구가 좌우로 크게 움직여서 정확한 조준이 어려운데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소련제 토카레프 권총 및 그것의 복제판에는 안전장치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 점을 숙지하지 못하고 서둘러 꺼냈다가는 운용자가 자기 몸에 총탄을 맞춰 버릴 사고위험이 높은 것이죠. 린은 그런 것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대테러전의 전문가인 수행비서 미유가 비상사태에 대처하도록 계획한 것이었어요. 일본공산당 집행부 3명은 린이 거기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기업인을 비열한 자본주의의 돼지 내지는 무력 앞에서는 쉽게 굴복하는 천박한 부자라고 단정하고 총 한 자루로 모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엉겁결에 자신들의 급한 본심을 내비쳤고 결국 그게 결국 패착으로 이어진 것이었어요.

Lester

2022-06-05 06:13:23

이전화와 마찬가지로 적들이 선제공격을 하길 기다렸다가 가차없이 '단죄'하는 게 린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할까요. 하지만 한편으론 다른 화에서도 지적했듯이 캐릭터들이 철저하게 대사만 하고 감정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약간 위화감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공산당원들 중 한 명이 '나 화났다'고 소리치지만 행동적인 묘사는 없다보니까 그냥 언성만 높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사실 이것보다는 더 당혹스러웠던 게, 린과 미유의 관계에 대해서는 3화의 짜투리 코너(설정 및 배경지식 안내)에서만 밝혀지다 보니까 '응? 왜 갑자기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거지?'하고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뭐 그래도 사건과 줄거리가 분명히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드리갈

2022-06-07 14:03:28

그렇게 느끼셨군요.

일단, 유지하는 스타일이 전지적 작가시점보다는 작가 관찰자 시점에 가깝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감정묘사는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경향이 강해요. 게다가 작중의 상황은 비즈니스의 현장이다 보니 행동 자체가 많기도 어려운데다 나중에 과격해진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갈등이 고조되고 나서부터의 상황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묘사 등이 절제되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

행동묘사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해 보고 차회에서부터 반영해 볼께요.


린과 미유의 관계는 사실 다음 이야기를 위한 복선이예요. 바로 다음 회차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후에 구체적인 관계가 드러나고, 그것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살짝 드러내 봤어요.


재미있게 읽어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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