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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일까, 언어오염의 진짜 원인은?

마드리갈, 2022-06-26 16:01:49

조회 수
128

아직 읽은 적 없는 책에의 서평을 다룬 기사를 인용하는 것이라서 이 점에서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지만, 현재의 언어오염의 원인을 인터넷에서 찾으려고 유도되는 현상에는 분명히 반기를 들어야겠어요.

문제의 서평은 이것.

이 서평에 소개되는 서적 "인터넷 때문에(원제 Because Internet)" 에서의 요지는 기사 내의 표현으로 요약가능해요.
"언어의 변칙에 대해 중세 유럽의 수도사나 종교 재판관 같은 태도를 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언어의 특징이라는 것. 인터넷을 만나 그 속도가 빠르고 범위가 광범위해졌을 뿐이다." 라는 문장이 바로 그것.

그런데 여기에서 저자가 놓친 게 하나 있어요.
분명 언어의 변화가 인터넷을 만나 고속화 및 광범위화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는데도, 언어가 왜 변화하는지에 대해서는 억지로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어는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동의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왜 말이 없을까요. 굉장히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이 문제의 중심인데 왜 인터넷을 탓하는지. 이미 자신이 세운 논지와 제목 및 주제의식이 상충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언어가 변화하더라도 특정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어요.
예로 든 헬로(Hello) 같은 표현은 결국 타인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를 이끌어내는 수단 정도밖에 기능하지 않고, 각종 약어나 문자를 응용한 표현은 오락적인 기능을 제한적으로 수행하는 정도밖에 없어요. 그것을 넘는 것을 굳이 찾으려면 언어의 제현상을 연구할 때의 소재 정도일까요. 어차피 그것들은 준거가 되는 일반적인 언어가 있으니 그것을 전제하여 만들어진 것에 불과한데 그게 뭐가 본질적으로 다르며 새로운 언어의 창조라고 타이틀을 붙일 정도는 될까요? 그것만 생각해도 이미 결론은 나왔어요.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볼께요(이용규칙 게시판 제10조 및 추가사항에 따라 욕설이 인용되니 주의!!).
아주 멋진 스타일을 한 흑인 남성을 만났다 치죠. 그에게 찬사의 의미를 전한다고 이렇게 대화를 시작했을 때 그 흑인 남성이 발화자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간파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Hey, Nigger, what makes you fucking around here, you a happy motherfucking faggot?"
(번역 - 어이, 깜둥이, 왜 여기서 지랄이지, 행복해 디질 니미럴 호모새끼가?)

흑인사회에서 그들 자신을 "니거(Nigger)" 로 지칭하는 문화가 있고, 굉장히 호감가는 사항을 강조하는 의미로도 "퍼킹(fucking)" 을 쓰는 풍조가 있는데다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도 멋지게 보인다 싶어서 동성애 성향의 남성을 지칭하는 속어인 "패깃(faggot)" 을 쓴 예의 문장. 요즘의 트렌드는 다 반영한 것 같은데, 이런 말을 들은 흑인 남성이 발화자를 우호적으로 대할 가능성은 최대값이 0이예요. 아니,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 흑인도 남성도 아닌 사람이라도 당연히 그 발화자의 숨은 함의를 읽어낼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어요. 왜 그럴까요?
언어는 사람이 쓰는 것이거든요. 발화자와 예의 흑인 남성은 사전에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에 대해 특별히 상호간에 동의하는 사항이 없는 상태. 이런 상태에서 처음부터 속어를 갖다 쓰면 결국 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것보다 더욱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예요.

결국 이런 반례만 보더라도, 설령 정답은 없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오답은 있어요. 그것에 대해서는 왜 말이 없는지도 궁금해지네요.

포럼에서 언어의 오염을 경계해온 것도 바로 이래서예요.
옷에 앉은 먼지나 티끌은 털어내면 되고 오염물이 묻었으면 세탁하면 되는 것.
그러나 처음부터 상했거나 잘못 만들어진 실이나 원단으로 만든 옷은 입다가 쉽게 터지거나 닳거나 해서 원치 않은 상황을 만들어내는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는 문제가 생겨요. 헬로 같은 표현과 오용되는 어휘가 동격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혹여 누가 이 글을 읽어보고 이럴지도 모르겠네요.
"흑인(黒人)" 은 한자어니까 중국어 발음인 "헤이렌" 으로 읽으라느니, "최대값" 은 사이시옷을 반영하여 "최댓값" 으로 써야 한다고 할지도. 정작 이런 쓰잘데기 없는 권위주의를 자행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은 또 왜 없을지도 의문이예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Lester

2022-06-27 00:30:50

근래에 짧은 논쟁을 벌였던 NFT도 그렇고, 어째서인지 갈수록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그것이 미래다. 받아들여라." 하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치 지구종말을 앞두고 그 원인을 절대자에게서 찾는 부류의 사람들처럼 말이죠. 그것도 일반인이 그러면 뭐라고 안 하겠는데, 사회의 흐름과 대중의 인솔(다소 전체주의적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손을 놔버린 듯한 모양새가 썩 좋지는 않네요. 마치 세상이 더 망가지든 말든 상관없고 이득이나 챙겨야겠다는 속셈이 훤히 보이는 듯해서. 그런 탐욕이 없다 하더라도 '내 알 바 아님'이라는 태도도 불량한 건 마찬가지라 봅니다.


어떻게 보면 예전에 말이 많았던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같은 서적과 같은 부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 아마존 독자 서평 중에 최다 추천을 받은 게(링크) 있어서 번역해 봤습니다. (사람 생각은 거기서 거기인지 이 사람도 저처럼 종말론을 의식했네요)


Linguists seem to fall into 2 categories: Prescriptivists, who can overdo it and become grammar nazis, and Descriptivists, who just describe how people communicate, no matter how much it seems to presage the end of the world. This might have been an interesting topic for a book, though instead, it's a padded-out compilation, based on "soft" statistics, often based on hearsay evidence, on how the time one adopted internet use may alter how one writes. When the author implied that Shakespeare might have done better with emojis, I kind of lost it. One of the few books I just didn't have sufficient masochism to finish. If you're over 30 and literate, you already know most of this stuff; if you're under 30, your lips might get tired reading it.

"언어학자들이 2가지 범주에 갇힌 것 같다. 즉 규범을 남용하여 문법 나치(문법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사람들을 나치에 빗댄 멸칭)가 되는 규범주의자와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이 얼마나 세계종말을 예언하는지만을 묘사하는 기술주의자다. 흥미로워서 책에서 담기 좋은 주제이지만, 인터넷 사용 시간이 필력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낭설적인 근거에 기반한 "가벼운" 통계를 토대로 편집된 글이다. 작가가 '셰익스피어라면 이모지를 더 잘 활용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정신이 멍해졌다. 마조히즘이 부족해서 읽을 수가 없는 몇 안 되는 책들 중 하나다. 당신이 30대 이상이고 교양이 있다면 이미 알 만한 내용이고, 30대 이하라면 읽다가 지루해질 만한 글이다."

마드리갈

2022-06-27 21:25:27

너무도 쉽게 일반화하고, 너무도 쉽게 결론을 내리고...

이렇게 금방 반박당하는 것을 참으로 당당하게 책으로 낸다는 용기만큼은 참 대단해 보여요. 단, 그 용기를 가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요.


과거에 이랬으니 미래도 이럴 것이라는 정말 단순한 사고방식이 예나 지금이나 혹세무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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