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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인 간혹 동생과 지리지식 테스트를 하며 놀고 있습니다의 코멘트에 언급한 사항을 이제야 글로 써 봅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인 1988년.

당시 국민학교에서는 영어 자체를 가르치지 않아서 영어를 할 수 있는 국민학생은 조기교육을 받거나 해외생활경험이 없는 이상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는 존재였고, 저는 당시 독학으로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는데다 주한미군의 영어방송인 AFKN을 잘 시청하던 터라 영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읽고 쓰고 들을 수는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해 어느날의 시험이 발단이었습니다.

그 시험은 학교 자체에서 만든 건 아니고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학력진단평가였고 그래서 각 학교의 학생성적은 모두 교육청으로 보고됩니다. 당시 그 시험 중 사회과목의 문제 중 답이 유네스코(UNESCO)인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시험문제의 답을 UNESCO라고 썼습니다. 이게 그렇게 소동이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나중에 담임교사가 저를 불렀습니다. 왜 답안을 영어로 썼냐고.

제 대답은 그거였습니다. 아는 대로 써서 그렇게 썼고 답이 반드시 한글로 쓰여야 된다고 명시된 것도 아니라서 그랬다고 하니까 담임교사가 불같이 화를 냅니다. 국민학교 과정에는 영어를 안 가르치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국민학생이 있으면 그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진다고 말이지요. 혹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선배들이나 교사가 대리시험을 쳤다는 의혹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저를 죄인취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안은 교육청에까지 보고되어 결국 담임교사와 함께 교육청에 불려가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고 그 답안지의 필적이 제 필적임도 마찬가지로 증명대상이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쓴 답안은 정답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어차피 "유네스코" 라는 표기는 한국어에서만 통용되고 사실상의 세계공용어인 영어 표기가 "UNESCO" 이다 보니 정답이 아닐 이유도 없는데다 학생들의 점수 하나하나가 아쉬웠으니 그 답안을 쓴 저는 부정행위자 의혹을 받고 그 답안은 정답으로 인정받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해프닝에서 상처를 입은 저는 그래도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담임교사의 도시락에 농약이라도 뿌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저희집은 풍비박산날 것이고, 저의 억울한 사정은 결국 "저놈이 범죄자니까 동정할 가치도 없네" 하는 식으로 부정당하기 마련이겠지요. 그래서 눈물을 삼키면서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 중학생이 된 1991년과 1992년.

여러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쓴 저는 보기 드문 수재로 인정받으면서 교육청에서 칭송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참석한 인사들 중에는 1988년 당시 저를 핍박하던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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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대왕고래

2022-07-18 23:17:03

한국어를 영어로 썼다고 오답처리... 사실은 영어를 몰라서 그랬던 건가 싶을 정도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네요.

인터넷에 덧셈문제 답을 8이 아닌 8.0으로 썼다가 소숫점은 가르친 적 없기에 오답처리했다는 글이 유머자료로 올라온 적 있었죠. 당연히 말도 안되는 오답처리 사유를 비웃기 위한 이유로.... 그 생각이 나네요. 그냥 바보짓인데....

SiteOwner

2022-07-24 17:20:41

정확하게는, 결과적으로 제가 쓴 답이 정답처리를 받고 그렇게 얻은 점수도 감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답안을 쓴 저는 천하의 나쁜놈 취급을 받은 것이지요.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일종의 괘씸죄일 것입니다.

말씀해 주신 사례는 제 사례보다 더욱 나쁘군요. 그 경우에는 오답처리...


역시 인간을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이성적인 존재로 의제하는 게 틀린 것 같기도 합니다.

Lester

2022-07-25 01:39:24

요즘, 아니 몇년 전부터는 그 반대랍니다. 오히려 학원에서 다 배워가지고 와서 학교에서는 이미 다 아는 거라며 집중하질 않으니까 선생들도 대충 넘어간다고 하더군요. 뭐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면서 이상하게 '체벌의 정당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썩 달갑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공교육이 사교육에 밀리는 것은 분명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진학이 예전만큼 여전히 최소스펙으로서 필수인지는 모르겠는데, 청년인구가 줄어서라도 인력의 가치가 증가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째 심란하네요. 만약에 제가 이런 프리랜서가 아니라 계속 회사원이나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지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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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6 22:34:58

역시 제 경험은 과거의 그 시대의 것으로 끝났군요. 다행입니다.

사실 교육은 공정한 평가와 그에 맞는 급부의 역할에 충실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합니다. 공교육의 붕괴는 그것을 하지 않았기에 생기는 필연일 것입니다. 그것을 체벌 정당화로 바로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될 리가 없습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인구감소가 일어나고 나서부터 정부의 국민에 대한 인식이 다소 달라졌다고 합니다. 인간을 제도에 맞추기보다는 제도를 인간에 맞추는 방식으로. 또한 일본에서는 이전까지는 부정적이었고 소극적이었던 중도채용 및 전직에 대한 편견이 급거 허물어지고 반드시 기수를 정한 대규모 공채 없이도 필요한 인력을 즉전력으로 확보하는 등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청년인구 감소에 따라 인력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이지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여러 생각, 역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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