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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이냐고?”
지온의 질문에, 민은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표정을 짓더니, 바로 대답한다.
“맞아. 여기 메이링 씨와는 단순한 아는 사이 이상이기는 한데...”
“단순한... 아는 사이 이상이라니?”
“아... 하하하! 오해는 말고.”
지온이 조금 뜨악한 표정을 짓자 메이링이라고 불린 그 여자가 입을 연다.
“여기 민이 누나하고 친구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근처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어? 변호사였어요?”
지온이 메이링을 한번 스윽 보더니 못 믿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알록달록한 티셔츠와 검은 핫팬츠를 입고, 여기저기 장식된 스니커즈를 신고 있으면 열이면 열 패션모델 아니면 연예인이라고 할 것이다. 지온도 그렇고, 다른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뭐... 그렇지. 그런데 만화부에 있다 보면 나한테 찾아올 일이 좀 많아질 거야.”
‘변호사’와 ‘만화부’는 연관을 짓기가 좀 힘들지만, ‘초능력’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온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요즘 부쩍 그런 일이 늘어났다고는 해도, 아직은 초능력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사고라고 하면 다들 이상하다는 반응이 먼저 나올 것이다.
“만화부하고는 그런데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호... 혹시, 사고를 많이 친다든가, 아니면 TV에 사건사고로 나온 적이 있다든가, 그런 건...”
“아! 그런 건 아니야. 미린학원 만화부는 그런 큼직한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 아니야. 안심해도 돼.”
“그런가요...”
지온은 영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떠름하게 대답한다.
“그런 곳이 아니라면 왜 저한테 오늘 몇 차례씩이나 이상한 일이 연달아서 일어난 걸까요...?”
“아, 그거?”
메이링의 입에서는 바로 답이 나온다.
“내가 볼 때는 별로 큰일도 아닌 것 같던데. 만약에 내가 나설 정도로 큰일이 벌어졌다든가 하면 곧바로 어디서 요원이 출동하든가 그랬겠지.”
“정... 말요?”
“그래. 여기 나디아한테 다시 물어봐도 돼.”
지온은 바로 나디아를 보고 묻는다.
“나디아, 지금 저 사람이 하는 말이 사실이야?”
“어... 네!”
나디아의 답은 금방 나온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듯 말이다.
“정말?”
지온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 묻자, 나디아는 더욱 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이라니까요! 제가 만화부에 있는 동안 그런 사건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어... 그래.”
지온은 떨떠름하게 말한다.
“네가 그렇다니까 그러려니 하지 뭐...”
그렇게는 말해도, 지온의 얼굴에 불안감이 잔뜩 나타나 보이는 건 숨기기가 좀 힘든 모양이다. 뭔가 잘못 먹은 것 같은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니, 메이링도 신경이 쓰인 건지 한마디 더 한다.
“그래도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언제든지 연락 줘.”
“어...? 어디로요?”
“메시지 창에 방금 떴을 거야.”
메이링의 말대로, 지온이 보니 메시지 창에 메시지 하나가 새로 와 있다. 이미지 파일이 있는데, 딱 봐도 명함이다.
“스텔라...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그래, 맞아. 그 밑에 적혀 있는 게 내 번호니까, 언제든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해.”
“네...”
지온은 아직도 떨떠름하게 말한다.
“뭐... 나를 볼 일이 없는 게 더 좋겠지만. 나는 갈 길이 멀어서 이만!”
그러고서 메이링은 손을 한번 흔들고는, 뒤를 돌아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누나 친구라니?”
지온은 메이링의 뒷모습을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보고 나서, 의아했는지 민에게 다시 물어본다.
“뭔가 좀, 이상하게 들리기는 하는데... 나만 그런 건가?”
“아, 그건 다음에 좀 천천히 말해 줄게.”
“어... 그래?”
그렇게 넘기려다가도, 지온은 또다른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조금 전에, 저 메이링이라는 변호사도 초능력 같은 걸 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러면서도 초능력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지우개로 초능력 같은 걸 전부 지워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온만 그렇게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고서 지온이 문득 시계를 보는데, 메시지 도착 알림이 하나 뜬다.
[열차 도착 : 3분 전(급행)/6분 전]
홀로그램에 나타난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지온이 급히 몸을 돌리며 말한다.
“아, 나 이제 가 봐야겠다. 내일 또 보자!”
“어... 어? 그래, 내일 또 봐!”
사실 기회만 된다면 지온은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싶었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 중 민과 이름이 비슷한 선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까 만화부 뒤편 사진이 걸려 있는 데에서 얼핏 봤던 것 같았다. 시간만 된다면 그걸 물어보려고 했지만, 열차 시간이 그걸 허락해 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지온은 민, 나디아와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지온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민과 나디아도 손을 흔들고는 이내 헤어진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택가에 있는 제법 큰 저택. 정원도 딸려 있고, 잘 손질된 나무들과 화초들이 심겨 있다. 건물은 주로 붉은 벽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군데군데 통유리로 되어 있는 곳도 보인다.
저택의 정문을 열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현관 앞에 선다.
“다녀왔습니다!”
다름 아닌 민이다. 그런데 제법 큰 소리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다. 다시 한번, 또박또박.
“다.녀.왔.습.니.다!”
민이 그렇게 또박또박 말했는데도,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다. 청소 로봇이 돌아다니는 소리는 들리는데,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시간에 민의 부모님은 다들 일하느라 바쁘기에 이런 풍경이 익숙하지 않은 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누나가 있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시간쯤이면 대학원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누가 있는 모습을 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민은 이런 집이 제법 익숙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집 안에 있다. 민의 눈에 바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기척이 얼핏 느껴진다. 주변의 공기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뭐야.”
그리고.
민의 예상대로다. 집 안에서 마치 민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었던 그 사람은...
“어, 들어와.”
“응?”
“아, 하하하, 뭐야, 놀랐잖아.”
얼굴을 보자마자 민이 함박웃음을 짓게 한 사람은, 민과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이는 한 청년. 키는 꽤 큰 편에다가, 갈색의 머리를 잘 빗어넘겼고, 여유롭게 발을 까딱거리기까지 한다. 옆에는 좀 두꺼운 책들이 든 가방이 놓여 있다.
“만화부 하느라고 이제 오는 거야?”
“그렇지 뭐.”
민이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자, 그 남자는 자연스럽게 지나가듯 말을 꺼낸다.
“오늘 만화부에 신입 부원 왔지?”
“어...? 어떻게 그걸 알아?”
“이거 보면 알지.”
남자는 곧바로 차고 있는 손목시계의 홀로그램을 켜서 메시지 화면 일부를 보여준다.
[윤진 : 신입 부원 왔는데, 형하고 많이 비슷하네요]
[서언 : 그 신입도 혹시 케인 좋아하는 건가]
[윤진 : 딱 보니까 그렇네요]
[서언 : 내가 아는 후배일지도]
“에이, 뭐야. 아직도 만화부 신경 써? 대학생이잖아? 그것도 2학년이고.”
“애정이 없으면 이러지도 않아.”
서언이 과장되게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하자, 민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며 말한다.
“에이, 설마 만화부장 못 해서 미련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런 거 아니야.”
잠시 앉아 있다가, 이윽고 서언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에, 오늘 할아버지하고 할머니 한번 뵈러 올까 하고 모처럼 수업 끝나고 들른 건데, 못 만나고 돌아가네.”
“왜? 조금만 더 있다가 가지그래. 좀 있으면 엄마 오는데.”
“저녁에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
“그런데 왜 벌써 가? 아직 4시 반밖에 안 됐는데.”
“그거야...”
서언은 ‘뭘 그런 걸 다 물어보냐’는 듯이 말한다.
“우리 삼촌도 곧 어디 놀러 나갈 시간이니까, 같이 가 주려는 거지.”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민은 마신 물컵을 싱크대에 놓고 서언을 따라나선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던 중, 민은 서언에게 지나가듯 묻는다.
“혹시, 반디 누나 오늘 본 적 있어?”
“아니, 내가 어떻게 가보냐. 연구실은 함부로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잖아.”
“그, 그런가.”
“대학원 연구실은 함부로 갈 수 있는 데가 아니라고.”
그러면서, 서언은 혼잣말하듯 한마디 한다.
“에... 반디 고모 본 지도 두 달은 넘었지, 아마?”
어느덧 걷다 보니, 정원도 지나고, 정문 앞에 다다른다. 두 사람이 앞에 서자마자 문이 저절로 열리고, 문밖으로 나서자마자 서언은 민과 반대쪽으로 발을 돌린다.
“또 보자고!”
“그래. 또 봐!”
그렇게 서언과도 헤어지고, 민은 잠시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한마디 한다.
“에... 나는 오늘 마땅히 갈 데도 없는데... 집에 가서 그냥 공부나 해야 하나.”
그렇게 하려다가, 이왕 나왔으니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일단 생각한 곳은 RZ타워에 있는 오락실, 아니면 지하 아케이드다. 둘 중 어느 곳이든, 아니면 아주 다른 곳이라도 괜찮으니 시간 좀 보내고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얼마 정도 걸어서, 카페거리에 다다른다. 이제 여기서 오른쪽으로 틀어서 조금 걸어가면, 지하도 입구가 나올 것이고, 그리로 가면 아케이드다.
그런데...
“하, 점퍼 뒤에 뭐라도 묻은 건가.”
민의 점퍼 뒤쪽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이 스며 나오는 것만 같다. 뭔가 등 쪽이 서늘한 듯하다. 분명히, 아까 집에 잠깐 갔을 때는 등을 어디에다가 기댄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서언을 보기까지 주욱 서 있었고, 물을 마실 때도, 서언과 같이 나갈 때도 등을 기대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날씨는 땀이 날 정도까지는 아니다. 가방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벗었기에 등에 땀 같은 게 날 일도 없다.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까 겉에 입은 점퍼를 벗어서 본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 물기는커녕 먼지 하나 묻은 것도 없다.
“에이, 뭐야. 그럼 도대체 뭐지?”
등에 손을 대 본다. 아무런 습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땀방울 하나 없는 것이다. 그 주변까지 손으로 슥슥 쓸어 봐도 그렇다.
“땀도 난 것도 아닌데, 뭐가 자꾸 축축한 것 같잖아.”
그런데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등 뒤를 어떤 기운이 꽉 잡고 있는 것 같다. 땀이 나거나 뭐가 묻은 것도 아닌데, 이 축축한 기운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딱히 적대적인 건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아, 자꾸 신경 쓰이네. 뭐냐고, 이거, 도대체!”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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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22-07-30 15:19:25
역시 메이링은 스타일이 화려하군요.
변호사도 사무소나 법원 등의 직업수행 장소에서나 변호사이지 다른 영역에서는 변호사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메이링은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외모에 패셔니스타라는 별칭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하긴 패션센스는 좋은 편이 여러모로 득이 되기 마련입니다. 리갈하이 드라마에서 코미카도 켄스케의 사무실에 취직한 견습변호사인 마유즈미 마치코는 배우인 아라가키 유이의 기묘한 패션센스 덕분에 배우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덜떨어진 것같은 모습을 보여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신경쓰이는 것이 있기 마련이지요.
특히, 작중에도 나오고 실제로도 겪어 본 적 있는 이상한 기운이나 시선. 이것은 문제의 그 기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보여도 공포이고 안 보여도 공포입니다. 작년 1월에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언행을 하면서 뒤에서 접근한 적이 있어서 급히 편의점으로 피신한 경우도 있고 하다 보니(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위험할 뻔 했습니다 참조)...
특히 축축하면 굉장히 기분나쁘지요. 음습하다는 표현이 주는 그 형언못할 것은...
시어하트어택
2022-07-31 23:05:03
전작에서도 은근 중요한 조연 자리였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조금은 다른 위치에서 다른 역할을 해 주겠지만요.
과연 그것이 '축축한 것'인지 아닌지는 봐야 알겠죠. 수분과 관련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마드리갈
2022-08-04 22:14:33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화법도 충격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의 메이링도 충격적일 거예요.
아무리 자유분방한 문명권이라도 특정 직업군 하면 떠오르는 정형화된 스타일이 있을테니까요. 아마 현대의 정장을 입고 16세기로 시간여행을 한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 분명할 듯하고...
네트워크 효과라는 게 참 무섭다는 게 여러모로 느껴지고 있어요.
상권의 형성같은 것에서부터, 여기에서는 초능력자들이 한 곳에 모이고 또 그들이 사건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이렇게 형성되기는 쉽지만 그 흐름을 돌려놓기는 지극히 힘들거나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죠.
뭔가 축축하다...정말 그런 느낌 싫죠.
여성이 혼자 사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현관문에 액체를 발라놓았다든지 등등 그런 뉴스가 떠올라서 확실히 거부감이 드는...시어하트어택
2022-08-07 22:38:09
실제 정장 차림의 설정화도 몇 번 그려 본 적은 있습니다만 이번에 또 다시 새로 그리게 될 듯합니다. 아무래도 전에 그렸던 그림들은 그린 방식이 조금 다르기도 했고 말이죠.
저 축축한 건... 물기 같은 게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