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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와 아이란이 지금 벌어지는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아채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바로 앞에 서 있다. 귀찮아하는 토니의 얼굴이, 둘에게 바로 들어온다. 토니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피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 티격태격 싸우더라도, 선배가 나서니 피하고 싶은 것이다.
“......”
“......”
둘은 이제 말은 하지 않은 채, 서로 노려보기만 한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이다.
한편, 토니는 내심 다른 기대를 품고 있다. 이렇게 윤진에게 잘 보이면 혹시 윤진이 조금 더 유화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가령 뭔가 하나 더 챙겨 준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그런 기대를 품고서 윤진 쪽을 돌아보는데,,,
“후...”
막 뭔가를 하려고 양손을 앞으로 뻗던 그 양갈래로 땋은 머리의 여학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다. 윤진은 기다렸다는 듯 일어서더니, 나디아와 아이란, 그리고 토니가 서 있는 쪽으로 온다. 어제 나디아를 대했을 때처럼, 웃음기는 얼굴에서 싹 없어졌다.
“뭐, 어찌 됐든, 상황은 끝났네. 너희 모두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알고 있어.”
“네... 네?”나디아가 놀라움과 의심이 반반 섞인 얼굴을 하고 말한다.
“저도 말인가요...?”
“그럼, 아이란만 남으라고 할 것 같았어? 어찌 됐든 너도 결국은 소란을 일으킨 거잖아, 안 그래?”
“......”
“그리고 내가 어제도 말했지? 그때 했던 말 잊지 말라고. 그런데 또 이런 행동을 한 거잖아. 거기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나디아와 아이란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있는 가운데, 토니는 둘과는 달리 조금은 여유로운 표정에다가, 어딘지 모르게 뭔가 기대감을 가득 품은 것 같기도 하다. 뭐라도 주지 않으려나? 그것도 아니면, 듣기 좋은 말 한마디 정도는 해 주지 않을까? 윤진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토니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선배님, 저는...”
“그래, 다 알지.”
윤진이 그렇게 말하자 토니는 내심 품고 있던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얼굴도 확 밝아졌다.
“감사합니...”
하지만, 기대는 거기까지다. 윤진이 바로 토니의 말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헛된 기대는 품지 마. 다시 한번 이야기해 줄게. 너도 이따가 이야기 좀 하자. 여기 나디아하고, 아이란하고 같이.”
“네...”
잠시나마 기대를 품었던 토니는 그렇게 기대를 접어 버리고는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서 아까 앉았던 자리로 돌아간다.
한편 민은 가만히 자리로 돌아가려다가, 나디아가 신경 쓰였는지, 나디아를 한번 돌아본다. 나디아는 아직도 불쾌한 얼굴을 하고서 자꾸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다. 그러다가 민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 먹구름 가득 낀 얼굴은 순식간에 구름이 걷히고, 마치 바람이 불지 않는 초원 같은 무표정이 되더니, 이내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버린다.
“왜 저래...”
그러고 나서 도로 자리에 들어가 앉으니, 아까의 그 소란이 언제 일어났냐는 듯, 만화카페 안은 다시 조용하다. 다만, 바뀐 건 나디아와 아이란의 표정. 둘 다, 바람 없는 초원 같은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민은 다시 자기 친구들을 향해 돌아앉는다.
“자, 우리가 아까 어디까지 했더라?”
“어... 글쎄...”
리카와 ZZ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윽고 뭔가 생각해 낸다.
“우리, <셀렉트 원> 이야기하고 있었지...”
“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한다.
“리카 너는 항상 뭔가 생각 안 나면 <셀렉트 원>만 이야기하더라?”
“아, 아니야! 그거 이야기하던 거 맞아.”
다른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자, 민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은 5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자, 얘들아!”
시간이 되자 윤진이 마치 알람시계라도 되는 것처럼 입을 연다.
“시간이 얼추 됐으니까, 더 있을 사람은 있어도 되고, 갈 사람은 가도 돼. 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갈 사람들은 나한테 오고!”
“네-”
그 말이 있자마자, 부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몇 명은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고, 나머지는 다들 일어서더니 두어 명은 윤진에게 가고, 나머지는 만화카페를 나선다.
“재미있게 잘 봤네-”
지온 역시 그 대열에 낀다. 방금 전까지 <그린 마스크드 파이터>를 한 번 ‘복습’한 차였다. 그러다 보니 케인이 한층 더 멋있게 보였고, 특히 첫 번째로 봤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케인의 성격적 결함까지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러다 보니 아까의 그 소란은 어느새 다 잊고, 이제 즐겁게 집에 돌아갈 일을 생각하던 터였다.
그런데 막상 돌아가려다 보니, 윤진이 앉아 있는 모습이 좀 신경 쓰인다. 윤진의 앞에, 나디아와 아이란, 토니가 둘러앉아 있는 게 아닌가. 문득 아까의 토니와 대처하던 상황과 나디아와 아이란이 일으킨 소란까지 다 생각난다. 지온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윤진과 다른 3명이 앉아 있는 쪽으로 자꾸만 고개를 돌린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불안하다. 꼭 지온이 이 일을 촉발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그게 아니더라도 찜찜한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문득 돌아보니, 의외의 광경이 지온의 눈앞에 들어온다.
셋을 앞에 두고 뭔가를 열심히 말하는 윤진의 표정은 예상과는 달리 어딘가 온화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아까 전의 웃음기가 싹 사라진 얼굴과 어딘가 비슷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나디아와 아이란 역시 조금 전에 서로 기싸움을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차분히 윤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토니는 약간은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들어 주는 모양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서로의 선을, 넘지 말자고. 그걸 넘어 버리면...”
지온은 점점 궁금해진다. 나디아에게 윤진이 한 말은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그렇게 그 내용이 궁금해진 터에 그 광경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는데...
“뭐 해, 지온이 형?”
문득 뒤에서 민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민은 막 출입문을 나서려 하고 있다. 그제야 지온은 자신이 카페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른 부원들은 이미 카페를 나섰거나 다른 자리로 갔다.
“어... 이제 나가려고. 다른 애들은?”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아, 맞아. 나도 가야지.”
지온은 얼른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왜 서 있어?”
“아... 별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온은 자꾸 윤진과 다른 3명 쪽으로 신경이 쓰인다. 한 번 더 돌아본다. 어차피 그런다고 해서 뭐가 바뀐다든가 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20분쯤 후.
민과 유, 리카 세 명은 카페거리에서 미린역 사거리 가는 방향에 있는 한 벤치에 앉아 있다. 셋 다 게임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저 게임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사실은, 누군가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언제 온대, 너희 형은?”
“글쎄. 이제 금방 이리로 온다고 했는데...”
민의 질문에 유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그 말에 리카가 문득 앞을 보는데...
“어, 저기, 저기!”“응?”
리카가 가리키는 쪽에, 무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한 사람이 오고 있다. 상의는 그렇지만, 하의의 초록색 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미린중학교 학생이라는 것 말이다. 헤어스타일이나 차림은 평범한 남자 중학생처럼 보이기는 해도, 세 명이 딱 보면 알 수 있는 얼굴이다.
“어, 형 왔어?”
유가 손을 흔들자 그 남학생 역시 셋을 알고 있는 듯 가볍게 손을 흔든다.
“여기는 왜 다 모였어?”
“아, 그럴 일이 있어서.”
“하야토 형은 또 누구 찾아?”
하야토라고 불린 그 남학생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주변을 슬며시 둘러보다가, 민이 묻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음, 혹시 ‘마린’은 안 왔어?”
“응? 마린 누나? 금방 온다고 했는데.”
이 중학생의 이름은 류젠리츠인 하야토. 미린중학교 3학년생으로, 유의 손위 형이다.
“그런데, 지금쯤이면 형 집에 가 있을 시간 아니야?”
“아, 그렇기야 하지.”
하야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금방 입을 연다.
“뭐, 그렇기야 하지만, 그냥 적당히 둘러대고 나온 거니까, 너무 늦지만 않으면 상관 없을걸.”
“어... 진짜?”
유가 머리를 긁적이며 묻자, 하야토는 한숨을 푹 내쉰다.
“조기교육이란 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건지...”
“응? 조기교육이라니?”
“아, 아니야.”
민과 리카의 질문에 하야토는 바로 고개를 젓지만, 유는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우리 형, 요즘 노는 시간도 부쩍 줄었다고.”
“응, 정말?”
“나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다들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던 그때.
“어, 저기 온다!”
리카가 또 거리 한쪽을 가리킨다. 과연, 리카가 가리키는 대로, 양갈래 머리의 여학생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아까 나디아와 아이란의 싸움을 말리려다가 못 한, 그 여학생이다.
“너희들 왜 여기 있어?”
“어... 마린 누나... 우리는...”
민과 유가 순서대로 말한다.
“또 누구 기다리고 있어서.”
“어... 그래?”
마린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은 그렇게 말하다가, 옆을 돌아본다. 하야토가 있는 쪽이다.
“어, 하야토 오빠 왔네요?”
“그래. 다른 애들은?”
하야토는 마린을 보고도 별로 놀라거나 하지 않고 태연히 말한다.
“이제 금방 여기로 온다는데...”
“그래? 그럼 여기로 오라고 하지 말고, 바로 지하 아케이드로 오라고 하자고.”
“어, 그래도 돼요?”
“그 애들도 바로 거기로 가면 좋잖아?”
“음...”
마린은 조금은 고민이 된 건지, 잠깐 뜸을 들이다가 곧바로 대답한다.
“좋아요, 오빠! 곧장 그리로 가라고 하죠!”
그리고 하야토와 마린은 발을 돌려 미린역 사거리 쪽으로 향한다. 발걸음은 아까보다 한층 가벼워졌다.
“또 봐!”
하야토와 마린이 멀리 사라져 가자, 잠시 후 민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연다. 아직 오지 않은 일행이 막 생각난 참이다.
“언제 오지, 얘들은? 오락실 가기로 한 거 말이야.”
“금방 온다고 하는데.”
“어... 금방이 얼마나 되는데?”
“한 3분 정도.”
3분이면 그럭저럭 기다릴 만한 시간이다. 그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한다.
“야, 그런데 말이야...”
“왜?”
민과 리카가 묻자, 유가 조금은 불쾌감이 섞인 얼굴을 하며 말한다.
“뭔가 습하지 않냐?”
“응?”
“아니, 아니, 여기 왜 땀이 차는 것 같은데...”
유는 위에 입은 후드 점퍼를 벗고서는 손부채질을 한다. 그래도 땀이 차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얼굴에 조금씩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덥지도 않은데 왜 이래?”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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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09-01 21:03:40
세상에는 별별 유형의 사람들이 있죠.
분쟁이 일어나면 그것을 피하는 사람도 있고 말리려는 사람도 있고 더 조장하거나 자신의 이익추구에 연결하려는 사람도 있죠. 토니가 거론한 가장 마지막 부류인 듯한데 그의 소원은 성취되지 않았어요. 잘 된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판단시점이 이르긴 하지만...
류젠리츠인 유의 형인 하야토도 등장하네요.
중학교 3학년이 형이나 오빠로 불린다는 점에서 등장인물들이 정말 유소년층 중심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어요.
여기서도 또 습도로 장난치는 자가 있나 보네요. 같은 기온이라도 습한 게 정말 기분나쁘죠. 2010년대 후반의 일본여행 때 아주 제대로 느꼈죠. 지금 생각해 보니 어떻게 그 상황에서 즐겁게 여행했나 싶을 정도로...시어하트어택
2022-09-04 23:13:35
지난 에피소드와 해당 에피소드를 보면 알겠지만, 토니는 전형적인 우리 주변에 어디든 있을 만한, 그런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속물적인 모습을 좀 많이 보이는 것으로 묘사했죠.
저 기분나쁜 습함은 앞으로도 끈질기게 나올 테니,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SiteOwner
2022-09-25 18:53:56
윤진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군요. 부원 중 나디아와 아이란이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일으킨데다 토니는 이상한 기대를 품고 윤진에게 접근하기도 하고. 그래도 정작 그 세 부원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윤진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온화하게 보인다는 것이 그의 인품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초능력의 힘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단체의 리더로서 참 좋은 처신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지금은 다소 서늘하고 상쾌한 상태로 딱히 습하지는 않습니다만, 갑자기 눅눅해진다면 정말 싫을 것 같습니다.
누구라도 안 기분나쁠 수가 없겠지요.시어하트어택
2022-10-03 23:20:21
의외로 토니같은 심리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학창 시절에도 저런 사람들이 있었고, 직장에도 저런 사람들이 있죠. 충성심인 건지, 아니면 공명심인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윤진 같은 리더가 있는 만화부는 참 복받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