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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풍수(風水)에 대해서 공부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고,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의 최창조(崔昌祚) 교수가 펴낸 책을 몇 권 읽으면서 전국 각지를 여행할 때마다 지형을 보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정리한 것을 시초로 하는 것입니다. 최창조 교수에 대해서는 7년 전인 2015년에 월간조선에 나온 인터뷰를 참조해 보시면 되겠습니다(바로가기).
풍수에 대해서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사람의 삶에 얼마나 쾌적한가, 그리고 이미 주어져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없거나 극히 제한적인 환경에서 얼마나 그 환경을 잘 이용할 것인가. 그래서 배산임수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온갖 개념이 등장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조금 흥미있게 본 것 중에서 도시혈(逃屍穴)이라는 게 있습니다. 묘를 썼는데 관곽이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위치가 어긋나 있거나 할 경우 그러한 땅을 도시혈이라고 하고 매우 불길하게 여겨집니다. 사실 이 도시혈이 조상의 음덕과 후손의 길흉화복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이런 지형은 당연히 좋을 리가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도시혈은 지층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모종의 이유로 미끄러져 버리는 현상이고 이것이 단층면이라면 큰 지진의 가능성이, 그렇지 않다면 산사태의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지형이 당장 그 일대를 생활거점으로 삼는 주민들의 안전을 언제든지 위협하기 마련이니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지역 사람들이 유순하고 어느 지역 사람들이 흉폭하고 등등 하는 말로 풍수가 중요하다 하는데, 글쎄요.
유순한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도 간혹 살인사건 등이 일어나고, 몹시 평판이 나빴던 곳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난 것을 봤다 보니 그것들이 헛소리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1980년대 전반의 이야기인데, 지금은 고인이 되어 있는 친구가 살던 마을은 입구에 "범죄없는 마을" 이라고 써붙여 놓았을 정도로 매우 조용한 농촌이었습니다. 그런 말이 있었지요. 풍수가 좋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산신령 덕이라고. 그런데 수년 후에 지역주민이 벌인 강력범죄가 일어나서 뒤집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풍수가 좋아서 운운 하는 말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풍수가 고작 사람의 힘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취약했던 것인가를 떠올리면서 풍수에서 익힌 것을 되새겨보니 결국 그것이었습니다. 자연이 인간을 결정한다지만 그것은 제한적이라고. 그리고 결국 상황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고, 그렇게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결국 땅 탓을 하면서 인간의 결점을 감추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좋은 사람은 황무지를 옥토로 만듭니다.
나쁜 사람은 옥토를 황무지로 만듭니다.
그 차이는 결국 바람과 물의 흐름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가인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덴마크의 사상가 니콜라스 그룬트비(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1872)가 척박한 북유럽의 땅에 세워졌던 덴마크를 세계적인 선진국이자 아름다운 나라로 개혁하게 되었는지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신과 이웃과 땅을 사랑하라" 라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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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마키
2022-09-21 23:03:25
이것도 풍수와 관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트위터의 어느 일본인이 주택을 지을때 참고해야 할 점을 이야기하면서 "서쪽에 창을 내지 마라"고 두번이나 강조한게 인상적이었네요. 실제로 살아본 서향 창문의 집은 여름이 정말 불가마였죠(...)
SiteOwner
2022-09-24 20:35:00
말씀하신 것도 풍수에 속합니다. 그리고 매우 밀접합니다. 풍수 자체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적응의 영역이다 보니 그러한 생활경험도 풍수의 영역에 포섭됩니다.
일본의 여름, 정말 사람 잡습니다. 기온 자체가 높은데다 습도도 높다 보니 열사병으로 전국 각지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아예 실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그러니 서향 창문을 기피하는 풍조는 지극히 당연합니다. 부득이하게 내야 하는 경우에도 커튼이나 블라인드 등을 설치할 것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풍수에서 독특한 것이 북동쪽을 귀신문(鬼門, 발음 키몬)이라고 부르며 기피하는 게 있습니다. 교토고쇼(京都御所)의 경우가 특히 유명해서, 사루가츠지(猿ヶ辻)에 있는 독특하게 만들어진 모서리는 일본의 풍수 관련사항에서는 꼭 언급될 정도입니다(바로가기, 일본어).
복스데이
2022-09-24 03:06:27
저는 풍수는 자세히는 공부해본 적이 없고 의사과학의 예시로만 접해왔기 때문에 국내 학술 연구의 간판인 서울대의 지리학과에서 풍수를 연구하고 현대적으로 이론화한 분이 있다는 것이 매우 놀랍네요. 흥미로운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은 공간을 형성해가며, 반대로 공간도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많은 영향을 주겠지만, 정확히 어떤 요인이 어떤 것에 얼만큼 영향을 주는지는 간단히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SiteOwner
2022-09-24 20:46:37
풍수라는 게 상당부분 오컬트의 영역이다 보니 그렇게 서울대학교의 교수가 풍수를 집중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겠지요. 사실 제가 최창조 교수의 책을 접했을 때도 복스데이님께서 느낀 것과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의 교수 중 생각나는 교수로는 저 최창조 교수 이외에도 도시지리학 분야의 김 인 명예교수, 사회지리학 분야의 류우익 명예교수 같은 학자도 있었습니다. 그 학자들의 저서로도 공부해 본 적이 있다 보니 기억납니다. 그리고 지리학과 교수는 아니고 지리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했지만 간첩행위가 발각된 뒤 복역하다 형집행정지로 출소후 타계한 이병설 교수도 있었습니다.
Lester
2022-09-30 12:53:57
생각이 짧은 동물이라면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같은 종임에도 여러가지 형태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만, 만물의 영장답게 생각이 (쓸데없이?) 많은 인간이기에 적용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쪽 주제로 더 이야기하자면 (머리 비우고 보면 재미있는) 인간비판론까지 가게 됩니다만 대부분 뻔한 이야기이니 생략할게요.
그래도 과학이 아닌 미학으로서의 풍수는 어느 정도 들을 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배치가 '안정적'인가 하는 심리적인 문제는 꼭 물질적인 게 아니어도 사람의 생활에 다소 도움이 될 테니까요. 중국인들이 거금을 들여서 하는 실내 풍수는 또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만...
SiteOwner
2022-09-30 19:48:28
말씀하신 진화에 대해서는 저 또한 확실하게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만, 이게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등동물의 경우는 구조가 간단해서 변형이나 번식이 매우 간단한 반면에 행동가능한 범위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러니 형태를 바꾸어 적응하는 게 유리합니다. 한편 고등동물의 경우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지요. 구조가 복잡해서 변형도 번식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형태를 바꾸는 것도 개체수를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거나 아예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행동범위가 넓기도 하고 그래서 선택의 여지도 많습니다. 그것이 다른 동물의 경우는 이주라는 선택지로, 인간에게는 이주와 환경개조 중 택일하거나 둘 사이의 절충안을 택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더욱 좋은 방법입니다. 풍수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자연을 보는 일종의 세계관이면서 또한 인간의 주체적인 능력을 등한시하는 환경결정론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말씀해 주신 인간비판론도 타당합니다.
역시 뭐든지 지나쳐서는 안되겠지요. 그리고 정도의 다과(多寡)를 넘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더더욱 안될 것입니다. 생활의 편의나 미학 정도의 풍수라면 역시 참고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