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포닉 월드는 한국 및 동아시아 주변국의 근대사가 크게 바뀌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현실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바뀌어 있고 이것이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할께요.
조선은 19세기에 들어서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되어요.
일단 연표로 보기로 해요.
- 1811년 - 홍경래의 난 발생
- 1812년 - 홍경래의 난 무력진압
- 1839년 - 기해박해로 프랑스 신부 및 천주교인 사형
- 1849년 - 프랑스가 독도를 발견하고 자국령에 편입
- 1862년 - 진주민란
- 1866년 - 제네럴 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 1871년 - 신미양요
- 1875년 - 운요호 사건
- 1876년 - 강화도조약 체결로 조선이 제물포, 부산 및 원산을 개항
- 1882년 - 임오군란
- 1884년 - 갑신정변 성공으로 입헌군주국 대한제국 출범
- 1894년 - 청일전쟁
- 1895년 - 을미사변, 단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미제사건화
현실세계와는 달리 갑신정변에 일본군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청군을 패퇴시키고 결국 갑신정변이 성공했어요.
이 사건에 의해 일본의 명치유신과 유사한 개혁이 이루어져 조선은 입헌군주정 국가인 대한제국으로서 재출범하게 되어요. 그리고 신문물이 보다 일찍 들어오게 되고 외세의 개입이라는 반발요인은 당오전 발행 등으로 야기된 악성 인플레이션을 막고 성공적인 경제정책을 이끌 수 있게 되어 상당히 완화되었어요. 게다가 갑신정변에서 패한 청이 10년 뒤 설욕을 위해서 다시 대한제국을 침략하지만, 동맹국과 동맹국 거류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일본군이 개입하게 되어요. 이렇게 해서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되어요. 이 전쟁에서도 역시 일본이 이겨서 결국 청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잃게 되고, 중국 역대 왕조의 끊임없는 한반도 간섭은 이것으로 종식되었어요. 일본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졌음은 물론이구요.
일본은 이것을 계기로 대만을 취득하여 식민지로 편입하는 동시에 양자강 남부와 서태평양 제도 경략을 위해 주력하는 한편 대한제국을 일본 전략의 요충지 및 테스트베드로 삼기 위한 정책을 펼치게 되어요. 동아시아 단일경제권 창설이라는 명목으로 한일 국제분업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일본의 이러한 전략에 힘입어 한국은 고도의 성장을 달성하게 되고 동양의 네덜란드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국제적으로 급부상하게 되지요. 특히나 일본의 승전이 해전에 있었음을 알고 해군력을 급속히 확장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으로부터 군함을 대거 발주하여 강력한 해군을 만들어요. 이러한 기조는 1895년부터 1919년까지의 24년간에 걸쳐 지속되어요.
이러한 일본의 독주를 견제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1895년 을미사변으로 친청, 친러 노선을 추종하던 명성황후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이 일본의 연승으로 이어져 이듬해인 1905년에는 일본의 완승으로 종결되는 등 모두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요. 그래서 대한제국은 외형상은 산업과 무역으로 고성장하는 국가이지만 일본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어요.
이것을 보고 자란 황태자 이척은 아버지 광무제가 친일개화파에 지나치게 휘둘려다니는 것에 우려를 금치 못했어요. 특히 그는 명성황후의 아들이다 보니 의문의 죽음을 당한 어머니가 일본의 공작으로 살해당했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일본에 대한 적의를 늘 품고 있었지만 광무제가 계속 친일개화파를 중용하고 있어서 그의 뜻은 사실상 펴지 못한 상태로 있었어요. 그러나 1919년 광무제가 타계한 후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에 즉위하여 융희제가 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어요.
융희제는 일단 친일개화파 관료들을 대거 배척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명성황후 추모식을 다시 열고, 당시 사건이 미제사건으로 끝났지만 분명 일본의 소행이고 이러한 일본의 흉계가 나라를 일본에 반쯤 매이게 만들었다고 규탄하여, 잠재적인 반일여론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데에 성공했어요.
한편 일본은 대한제국에 전혀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어요.
일본의 동아시아전략이 성공하여 일본은 스스로를 동양의 대영제국으로 생각하고 대한제국을 동양의 네덜란드로 만드는 데에도 성공했어요. 게다가 그리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로는 군국주의화 경향이 두드러진데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승전한 터라 상당한 자만심을 갖게 되었어요. 특히 한때의 추종의 대상이었던 독일에 승리하여 독일령 남양군도와 중국 청도 등의 구 독일령을 편입하게 된 터라 그 자만심은 극을 달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신생국 소련에 대하여, 적백내전에서의 백군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은 1918년부터 시베리아에 출병하게 되어요. 그런데 이 시베리아 출병이 실패로 끝났어요. 대량의 전사자를 내고 막대한 전비가 낭비된 채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으니까요. 결국 시베리아 출병은 1922년에 종료되었어요. 그래서 일본은 이로 인해 국내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되고 대한제국 문제에는 전혀 신경쓰지 못해요.
이에 앞서 1912년 타이쇼 시대가 개막하면서, 일본 개화파 주역이던 쵸슈 및 사츠마 출신 파벌들이 대규모로 실각하게 되어요. 게다가 명치유신으로 피차별부락이 혁파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차별문제가 심각했는데 이것을 해결한다는 것이 기존의 혼슈, 시코쿠 내에 있는 피차별부락을 완전히 폐촌한 후에 부락민들을 집단으로 큐슈로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사업을 벌인 것이 더 큰 문제를 키웠어요. 그래서 큐슈 지방에서는 타이쇼 시대에 이른 변동을, 일본 근대화의 주역들을 역적으로 몰고 큐슈 전체를 부락민 수용소로 만들고 큐슈인을 2등국민화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도쿄의 중앙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기까지 해요. 심지어는 1877년 사이고 타카모리 주도의 서남전쟁과 같은 무장투쟁을 해야 하지 않는가에 대한 여론까지 나도는 등 심각한 기류가 흐르지만 대외전쟁에 몰두하는 일본 중앙정부는 그것에 신경쓰지 않다가 1922년 시베리아출병 종료후에 비로소 큐슈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해요. 그러나 이것도 당시 경찰관들의 자질문제로 경찰들이 법률과 절차를 지키기보다는 부락민이니까 그냥 적당하게 죄를 뒤집어씌워서 고문을 하고 자백을 받아내면 된다는 식의 수사가 이어져 사법정의는 크게 훼손되고 말아요.
이러한 일본의 혼란상을 보고받은 융희제는, 지금이야말로 다시 친일개화파의 재기를 막을 기회라고 생각하여 재한일본인의 재산을 형성경로에 상관없이 무조건 적산으로 간주하여 동결하고, 재산이 몰수된 일본인을 일본으로 추방하는 등의 강경책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것을 전국적으로 "몇백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군자의 복수를 이룰 때가 왔다. 이제, 임진왜란의 설욕을 할 때이다!!" 라고 홍보하며 반일여론을 대폭 끌어 올려요. 일본이 반발하지만 일본인 재산몰수 및 추방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어요.
그리고 1925년에 해군력을 동원하여 큐슈의 츠시마(?馬), 카라츠(唐津), 코쿠라(小倉)의 세 지역을 침공하게 되어요. 큐슈가 일본 중앙정부에 반감을 많이 품었으니 이 큐슈를 한국의 속주로 삼으면 일본에는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어요. 이게 한일전쟁의 시작이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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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대왕고래
2013-06-11 18:07:26
한 두개의 사건의 변경으로 인해서 양상이 매우 크게 변한 것이군요... 근현대사가 현실과 완벽히 달라져버렸어요.
HNRY
2013-06-11 18:33:48
그야말로 나비효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설정이로군요.
마드리갈
2013-06-11 18:26:48
말씀하신대로 갑신정변의 성공으로 인해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대한제국이 일찍 성립하여 근대화가 더욱 빨라지고, 식민통치도 경험하지 않는 주권국가로 존속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친일개화파 위주로 의사결정권자들이 구성되었고 일본의 동아시아 통합경제권에 일찍 편입되는 취약점도 노정하게 되었구요.
게다가 일본사도 꽤 많이 달라졌어요.
쵸슈 및 사츠마 출신들이 권좌에서 밀려나가고, 특히 큐슈가 부락민들의 공식유배지로 전락하는 형태로 부락민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안일한 사고방식 및 경찰인력들의 자질문제가 지방이 중앙정부를 혐오하고 반란까지 꿈꾸는 상태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