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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법관들 사이에서 재산비례형 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데 과연 이게 정의로울지는 생각해 볼 것이 상당히 많아요. 그래서 이번에 좀 다루어 보도록 할께요.
관련기사는 이것.
‘자산 규모에 따라 벌금 부과’… 법관 절반이 찬성, 2022년 10월 6일 조선일보 기사
재산비례형 벌금제에 대한 찬성논리를 요약하면 이렇게 되어요.
사법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자산가에서는 형벌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어요. 얼핏 보면 그럴 듯한데 과연 정말 그럴까요?
그럼 이렇게 질문을 해 볼께요.
벌금이란 법익 침해에 대해 범법자가 부담해야 하는 가격인데, 법익 침해의 가격이 법익 그 자체가 아니고 범법자에 따라 결정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러면 무자력(無資力)인 사람은 무죄가 되어야 한다든지, 빚이 더 많아서 순자산이 마이너스인 사람은 마이너스의 벌금이 부과되는, 즉 범법에 대해 국가로부터 포상을 받는 일도 정당화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모순에 노출될 수 있어요. 그리고 지적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재산가액에의 변동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재산비례형 벌금제는 이러한 논리의 확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만일 누군가가 징역 10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죠. 이 경우 인간의 기대여명에 따라 징역형을 달리 부과한다면?
어느 나라의 기대수명이 80년이고, 문제의 범죄를 저지른 국민 갑은 20세, 을은 65세라고 하죠. 그러면 기대여명은 갑이 60년, 을은 15년으로 갑이 을의 4배. 그러니 여명에 비례하여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정의로우니까 갑에게는 징역 40년을 부과하고 을에게는 징역 10년을 부과하게 되면 찬성할 수 있을까요? 재산비례형 벌금제에의 찬성은 이런 황당한 결론에의 동의를 강요하는 것이죠.
또한, 현행법에는 추징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범죄로 얻어진 이득에 대한 몰수.
즉 범죄의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하기도 한데 재산비례형 벌금제가 얼마나 설 자리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여러모로 논리가 허술해요. 이것이 정말 합리적이라면 채택하는 국가가 많을 것인데 독일, 오스트리아, 핀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그리 많지도 않고 그마저도 소득비례형 벌금제였죠. 영국이 소득비례형 벌금제를 도입했다가 결국 그만둔 역사도 있어요.
그래서, 재산비례형 벌금제는 이상적으로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실질은 이상과 거리가 있거나 오히려 그 이상을 적극적으로 해하는, 따라서 정의롭지 못한 제도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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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7 00:11:37
"돈만 내면 다냐!"하는 불만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 놓은 거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싸하고 실제로는 비판할 부분 투성이네요.
애초에 "돈만 내면 다냐!"하는 불만이 나오는 사건을 보면, 벌금형으로 처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어찌보면 판단을 잘못한 부분인 건데, 그걸 벌금형을 뜯어고쳐봐야 같은 말만 나올 거 같네요.
게다가 개인자산 기준으로 하면 어떻게든 그걸 다른 식으로 은닉하는 방법만 늘어날 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실제로는 돈이 많지만 개인자산으로 따지면 오히려 빚쟁이라서 벌금형을 적게 받는 식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거 같은데요...
마드리갈
2022-10-07 00:31:19
평등주의가 확실히 문제가 많아요. 실제로 평등을 말하는 것같으면서도 불평등을 조장하거든요.
독일,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의 재산비례형 벌금제를 쓰는 국가의 경우 그러한 평등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라서 범죄자가 살인, 강도, 강간 등의 온갖 흉악범죄를 저질러도 사형은 없고 유기징역으로 그칠 따름인데 과연 그렇게 해서 범죄가 얼마나 줄었고 사회정의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이예요. 좋은 환경의 교정시설 같은 것은 배울 필요가 있고 저는 프랑스식의 일부러 열악한 환경에는 반대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예의 3국은 엉뚱한 데에서 평등을 말하면서 범죄피해자만 억울한 부조리를 만드는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있어요.
말씀하신 문제를 해결하려면 할 수도 있긴 해요. 문제는 비용이죠. 그 막대한 행정비용을 얼마나 부담해야 할지도 문제가 되고, 경범죄의 벌금형 부과가 장기의 징역형이나 사형의 선고의 수준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게 옳은지도 의문이 들어요. 게다가 국가에 의한 정보독점이 반드시 순기능만 발휘한다는 보장도 없어요. 특히 개인정보 유출에 사실상 무대책이라서 개인정보가 공공재로 불릴 정도로 상황이 나쁜 우리나라의 실정을 생각하면...
Lester
2022-10-07 09:40:34
멀리 갈 것 없이 사기범죄로 벌어들인 불법수익조차 '있지도 않고 있어도 저랑 관련 없어요'라고 우기면 환수하지도 못하는데, 저렇게 '돈으로 때워라'라고 해봤자 얼마나 거둬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네요. 한때는 저도 이런 엄중한 벌금형을 선호했는데, '가능한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이것만한 법적 구멍이 있을까 싶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한편으론 창작계에서 잠깐 논란이 됐던 사이다패스(속이 뻥 뚫림을 뜻하는 신조어 '사이다'와 부정적 인칭 '-패스'의 합성어로, 편의주의적이면서도 통쾌한 상황이나 전개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멸칭)가 사회계까지 전파돼서, 사회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이다패스까지 갈 것도 없이 이미 '떼법(떼+법, 쉽게 말해서 군중심리에 의한 법안 통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공론화가 된 적이 있고, 대통령 선거의 화두 중 하나였던 여성가족부 폐지도 의도건 실현이건 훌륭한 떼법의 예시였죠.
막상 이번에 (아마 국면전환을 목적으로) 여성가족부를 진짜로 해체인지 격하인지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욕하던 사람들이 '이걸로 만족'하고 가라앉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마드리갈
2022-10-08 16:38:32
말씀하신대로 루프홀은 정말 많아요.
사실 이런 경우도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어요. 공식적인 주소지는 허름한 비닐하우스이고 금융거래도 하지 않지만 사실은 현금을 수십억 내지는 수백억 정도 쌓아두고 타인 명의의 부동산이나 동산을 사용중인데다 그 타인도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가족이거나 밀접한 이해관계인이라서 사실상 타인이라는 의미가 없는. 그러니 재산비례형 벌금제가 추구하는 이상은 이런 데에서도 철저하게 박살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또 하나. 기본적으로 저 제도는 국가의 관할하에 있는 국민이 국가의 영역내에서 해당 범죄를 저지를 때에만 유효해요. 즉 속인주의와 속지주의의 교집합만이 규제대상. 그러니 그 하나라도 벗어나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당장 외국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의 재산규모를 알 수 없어서 벌금액의 산정조차 못한다든지, 그리고 그 외국인이 외교관처럼 면제특권을 향유하는 경우에 어떠한 해결책이 없는데다 국민이 다른 나라에서 범죄를 저질러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그 범죄가 국내법상 벌금형의 선고는커녕 아예 재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면? 여기에 대해서도 재산비례형 벌금제의 한계는 제대로 노정되어요.
좋아 보이는 것과 실제로 좋은 것은 엄연히 다르죠.
그런데 그것을 혼동하니 이런 논리적 결함에 대한 비판적 사고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하고, 그런 비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말씀하신 사이다패스니 떼법이니 하는 현상도 수반되고 하는 거겠죠.
그런데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서는 다른 점이 많아요. 이것은 별도의 코멘트로 분할할께요.
마드리갈
2022-10-08 17:09:42
여성가족부에 대해서는 전 이렇게 보고 있어요.
첫째, 해당 부서의 폐지가 아니라 창설이 떼법의 결과이다.
둘째, 만기친람의 행태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것은 전혀 없었다.
셋째, 젠더갈등의 심화를 조장하기만 했다.
넷째, 국면전환용이 아니라 이미 공약된 사안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레스터님과 의견을 달리한다는 게 저의 요지예요.
그러면 하나씩 보도록 할께요.
첫째 쟁점은 창설 당시의 상황을 볼 필요가 있어요.
여성가족부(당시 여성부)는 김대중 정부 당시 통칭 여성계 인사들을 공직에 들이면서 만들어진 부처이긴 한데, 문제의 그 "여성계 인사" 들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라기보다는 페미니즘에 경도된 인사들이었죠. 게다가 당시의 시대상에서 여성부 설립은 깊은 논의 없이 정파를 가리지 않고 요구된 사항이었죠.
둘째 쟁점.
그렇게 만들어진 그 부처가 일은 잘 했느냐 하면...
주지의 사실이 꽤 많죠. 대표적으로 여성복지정책은 반복되는 모녀가정의 비참한 죽음 반복 등이 반증하고 있는데다 셧다운제 등의 각종 문화탄압 강행 등의 추태는 아주 많고 많아요. 게다가 2020년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급거 이후 그의 성범죄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는 전혀 제동을 걸지도 않았죠. 그렇게 잘하는 만기친람이 그럴 때만큼은 작동하지 않는. 급조된 부처라고 하더라도 그 효용이 입증되면 존속하는 게 맞지만, 스스로 존속가치를 증명하지도 못했어요. 이런 여성부가 필요할까요?
셋째 쟁점으로 가면 더더욱 여성가족부가 불필요해요.
2010년대 후반부터 대두된 젠더갈등에 대해서 여성가족부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사실상 비호하는 태도를 보였죠. 그리고 그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조작도 일삼으면서.
그리고 넷째 쟁점.
이미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공약 중에 이미 여성가족부 폐지가 있었어요.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일시적으로 여성가족부 폐지가 국정과제에서 빠지긴 했지만('여가부 폐지':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은 윤 당선인 주요 공약... 이유는?, 2022년 5월 3일 BBC 코리아 기사). 그래서 딱히 국면전환이라고 볼 근거는 전 못 찾겠네요. 레스터님께서 국면전환이라고 보신 이유에 대해서는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좋겠어요.Lester
2022-10-11 04:26:53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2022년 10월)까지 지지율이 짧은 사이에 엄청나게 하락, 그것도 취임 80일 만에 20%를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윤석열 표가 몰렸던 것도 '이대남'이라거나 말씀하신 민주당의 페미니즘 옹호 및 패착 등 젠더갈등을 이용해 표를 얻어간 맥락도 있고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당선에 도움이 됐던 공약이 빠진 게 부정평가에 한몫하자, 이것을 그대로 뒤집기 위해 여성가족부 폐지를 다시 공언한 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여성가족부 폐지로 인한 반짝 인기 상승'과 '(분야를 막론한) 떼법의 근원인 군중심리'를 엮어서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필 이 타이밍에' 윤석열 정부가 다시 여성가족부 폐지를 실제로 진행하겠다고 한 것도 지지율 하락에 대해 극약처방을 쓴 게 아닌가 하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행보보다는, 그렇게 못한다 못한다 하면서 부정평가를 해놓고서 여성가족부가 폐지됐다는 이유로 곧장 손바닥 뒤집듯이 입장을 바꿀 '신원불명의 지지세력'에 대해서 걱정하는 측면이 더 크고요. 언제부턴가 주위나 언론에서 보지 못한 단어이지만 '냄비근성'이라는 건 아직도 남아 있으니까요.
복스데이
2022-10-09 22:50:26
모든 법은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의 벌금제도 완전히 정의롭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재산비례형 벌금제는 지나치게 유연해서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기존 벌금제보다 처벌이 약해지거나 실효성이 없어지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은 도입하지 않는 것이 그 문제에 대한 가장 자명한 해결책일 듯한데, 구체적으로 법관들이 무슨 논의를 했는지는 또 궁금하네요.?
마드리갈
2022-10-10 15:46:01
역시 시대에 따라, 그리고 같은 시대라도 국가 및 문화권에 따라 법이 다른 것도 아무래도 모든 경우에 보편적으로 완벽한 법은 없죠.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여요. 단지 태생적인 모순이 완화되는 방향이 다각도로 강구된다든지 하겠죠.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칸트의 응보론도 헤겔의 국가이성도 포이어바흐의 합리성 전제도 옐리네크의 법실증주의도 모두 문제점이 있어요. 응보론의 경우 사적복수의 정당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고, 국가이성은 이성적 판단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을 국가이성이라는 의제된 개념으로 지배하는 독재체제의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고, 합리성 전제는 범죄를 맹목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보니 이미 반례가 존재하는데다 법실증주의는 법이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가진다는 논리적 약점은 물론 실제로 독재정권의 비호에 악용된 역사가 있다 보니까요. 이러한 문제점이 법 자체의 구조로 해결되기 전에 현실의 문제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더욱 크니까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마련이죠.
법관들의 구체적인 논의가 어떠했는지까지는 알 길이 없지만, 사실 벌은 정도가 약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고통스럽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죠. 이탈리아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가 말한 것처럼, 아무리 약하더라도 예외가 없는 법은 강제력을 가지고 반면에 아무리 강하더라도 예외가 있는 법은 강제력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벌금형에 해당되는 많은 범죄의 경우 고소득자보다는 저소득자가 더욱 많이 저지르는데 만일 재산비례형 벌금제를 도입한다면 다수의 저소득자에게는 과소처벌이라는 예외가 만들어지고 소수의 고소득자들에게는 과다처벌이라는 예외가 만들어지게 되어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없는 책임을 지라는 건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니죠. 그건 그냥 차별이 고급스럽게 포장되었을 뿐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