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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고, 이거 도대체...”
조금만 더 있으면 만화책이 온통 젖어 버릴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지온은 만화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사이, 빗방울은 더 굵어진다. 지온이 확 일어서서 그렇게 되어 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가 확 쏟아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지온의 왼쪽 어깨, 왼쪽 손, 왼쪽 다리에만 그 축축함이 전해진다. 마치 공기중에 벽이라도 생긴 것 같은, 그런 느낌.
그 순간, 지온에게 어제의 그 비구름이 문득 생각난다. 차도에는 비를 안 뿌리고 인도에만 비를 뿌려서, 지온을 흠뻑 젖게 만든, 바로 그 비구름 말이다. 지온이 막 비를 피하려고 옆으로 뛰면, 어떻게 또 그걸 알아내고 옆으로 옮겨가서 줄기차게 비를 뿌렸다. 그게 어제의 일이지만 아직도 겪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아니, 운동장은 또 왜 저래?”
지온이 앞을 보니, 운동장 좌우의 색깔이 다르다. 아니, 색깔이 다르다기보다는 지온이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왼쪽만 젖어 있고 오른쪽은 말라 있다. 그리고, 그 빗줄기는 점점 세지고 굵어진다.
“아, 이런!”
얼른 그 자리에서 지온이 피하고 나서 보니, 어느새 옆에는 비를 피하거나, 아니면 구경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그중에, 지온은 아는 얼굴을 하나 발견한다. 마치, 만화의 등장인물같이 거기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누군가다.
“어... 윤진이 형?”
그리고 그 시간, 미린고등학교 쪽문 근처의 주택가 거리. 후드 재킷을 입고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누군가가 주변을 스윽 둘러보더니, 미린고등학교 운동장을 반쪽만 덮고 있는 구름을 한번 올려다본다. 그 구름을 향해 그 야구모자를 쓴 키 작은 사람이 손을 뻗자, 미린고등학교 운동장 위에 떠 있던 구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언제 구름이 떠 있었냐는 듯, 미린고등학교 위의 하늘은 맑다.
“이제 또 어디가 재미있으려나?”
그렇게 중얼거린 그 의문의 인물은, 이윽고 미린중학교와 미린초등학교 쪽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리고 묘한 손동작을 보이자, 이윽고 구름이 하나씩 생겨난다.
“자, 서프라이즈!”
의문의 인물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난다.
“응? 야, 저기 뭐냐?”
그리고 그 시간, 미린중학교 운동장. 여학생 2명이 벤치에 앉아서 잡담하다가, 운동장 너머의 연못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걸 본다.
“뭐가... 연못 안으로 떨어지는 거잖아? 맞지?”
만화책을 보고 한참 무언가에 집중하던 아이란이 책을 덮고는 옆에 앉은 마린에게 말한다. 마린이 돌아보자, 아이란은 그거 보라는 듯 말한다.
“봐봐! 저거, 우박 맞지? 맞잖아!”
“그래, 그래. 네 말이 맞아.”
마린은 아이란이 하는 말에 무미건조하게 대답한다. 마치 똑같은 답을 하루에 수천 번씩 반복하는 로봇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그래서, 네가 좀 저 우박을 좀 어떻게 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왜? 저거 맞고 죽는 사람은커녕 물고기도 없을 텐데.”
아이란은 나름 다급한 듯한 모습이지만, 마린은 그래도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를 고수한다. 마치 뭔가를 숨기기라도 하는 듯한 태도는 덤이다. 아이란도 알고는 있다. 마린이 왜 이러는 건지 말이다. 그리고 처음에 만화부에서 만났을 때, 아이란도 본 적이 있다. 마린이 그렇게 숨기고 있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도무지 본 적은 없다. 왜 그렇게 숨기려고 애를 쓰는 건지, 아이란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야! 사람은 그렇다 치고 물고기도 안 죽는다니! 그거 말이 좀 심하지 않아?”
“너는 그게 항상 문제라니까.”
오히려, 마린은 아이란에게 핀잔을 준다.
“그렇게 급발진하는 거 말이야. 만화 볼 때도 남자 캐릭터 2명만 보면 급발진해서 관계 형성하고 그러는 거고, 남들 말하는 것도 그러다가 확대해석하는 거고...”
아이란이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괜히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가 나디아하고 싸움도 일어나고, 윤진 선배한테 안 좋은 소리도 듣고 하는 거잖아?”
“뭐, 그거야 그런데...”
아이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못에 떨어지는 우박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혹시 저 우박이 다른 곳으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불안하다.
그리고, 아이란의 그런 불안감이 조금조금씩 커질 무렵.
“어, 얘들아, 여기 있었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둘의 옆에서 들려온다. 돌아보니 하야토와 안젤로가 아이란과 마린 쪽으로 오고 있다.
“선배님?”
“여기는 왜요?”
“저기 연못에 우박 떨어지는 거 있잖아.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아?”
“그래.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잖아!”
“어... 저희가요?”
하야토와 안젤로의 말에도 마린은 여전히 그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거기에다가, 우물쭈물대며 이리저리 빙빙 돌리는 말은 덤이다.
“글쎄요... 나디아나 아이란은 거기에 적합한 능력은 아닐 테고... 제 능력도 그다지 그런 걸 할 만한 능력은 아닌데...”
“야, 마린! 자꾸 그렇게 대답할래?”
하야토는 조금 발끈했는지 말끝이 올라간다.
“네가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필요할 때는 뭐라도 해야지. 안 그래?”
“알죠...”
마린은 하야토의 말에 마치 풀이 죽은 듯하면서도 또 뭔가 숨기고 있는 듯 말한다.
“그런데, 제 능력은 저런데 쓸만한 능력은 아니라고요...”
“아니, 이런 데 쓸만한 능력이 아니면 뭔데?”
“왜... 그 선배님 동생의 능력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아니, 연못하고 구름에 전기를 흘리면 물고기 다 죽게?”
“......”
여전히, 마린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하야토와 안젤로가 좋지 않은 반응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사이, 연못에 떨어지던 우박은 서서히 줄어들더니 멈춘다.
그리고 그 시간, 미린초등학교 5학년 G반 교실. 여느 날처럼, 민은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자리에서 막 일어나서 산책이나 한바퀴 하고 오려던 참이다. 막 일어서서 교실을 나가려던 민에게, 온통 하얗게 된 창밖이 눈에 들어온다.
“어...”
보통이라면 아무리 흐리더라도, 창밖의 풍경이 보이기 마련인데, 오늘은 다르다. 완전히 뿌옇게 되어 버린 창밖은, 흡사 짙은 연막탄이라도 뿌려 놓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안개가 이렇게 짙게 낄 수는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건 분명히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다. 거기에다가, 그 희뿌연 안개는 복도에까지 밀려들어오고 있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래 가지고서는 밖에 산책도 못 나가겠잖아.”
민이 막 그렇게 불만스럽게 말하며, 막 다시 교실로 들어가려던 그때.
“어... 어?”
누군가가, 마치 안개를 뚫고 이쪽으로 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누구인지 알아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바로, 민도 잘 아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리카... 맞지?”
“보면 몰라?”
리카는 뭘 그렇게 당연할 걸 다 묻느냐는 듯, 조금은 퉁명스럽게 말한다.
“눈앞에 두고 못 알아보면 안 되지.”
“아... 못 알아본다는 게 아니고...”
왜 저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건가... 문득, 어제 <셀렉트 원> 애니메이션을 보러 일찍 간 게 생각난다. 그 뒤로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고, 자기가 본방을 봤다든가 하는 말도 없었다. 그렇다면 저 불쾌한 듯한 표정은, 설마 본방사수를 못 한 건가, 아니면 정말 자신이 의심받아서 그것 때문에 그런 건가,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뭔가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을 뿐인가... 지금으로서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민이 문득 보니...
“어, 또 누가 오잖아.”
리카의 뒤로, 또 한 명이 걸어오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안개를 가림막삼아서 숨고 있다가 정체를 드러내는 모습같이 보인다. 파마머리를 하고 품이 넓어 보이는 상의를 입은 걸 보면, 누군지 알 것 같다.
“너... 혹시, 토마냐?”
그리고 민의 예상은 맞았다. 안개 너머로 보이는 분홍색 머리를 보니 확실히 토마가 맞다.
“왜... 왜 그래?”
토마는 민의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란 듯하다.
“내가 뭘 했다고?”
“아, 아니야. 안개 속에서 네 모습이 확실히 보이길래.”
“아... 그래, 그래, 고마운데...”
토마는 어찌나 놀랐던지, 숨까지 거칠어진다. 안개가 토마의 입으로 거칠게 들어갔다 나오는 게, 민의 눈에도 확실히 보일 정도다.
“뭘 그렇게 놀라? 죄지은 거 아니잖아. 안개 뚫고 들어왔으면 고생 얼마나 했겠어?”
“아... 그... 그래...”
토마는 아직도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걱정해 주니까... 후... 고마워...”
그러면서 토마는 거칠게 숨을 쉬며 교실로 들어선다. 거기에다가 콜록거리는 기침은 덤이다.
“뭐야, 얼마나 놀라면 저래? 정말 뭘 한 거 아니야?”
하지만 민은 금방 다시 고개를 젓는다. 얼핏, 토마는 천식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기침을 세게 하는 것도 꾸며내거나 한 건 아니다.
“아니지...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 돌아가서 앉는다.
“에이, 오늘은 비가 안 오나 했더니만...”
지온은 운동장의 반에만 오는 비를 바라보며 말한다. 지온의 옆에는 윤진 말고도 축구 유니폼을 입은 동급생 몇 명이 보인다.
“그러게. 이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동급생들은 공만 튀기며 불만섞인 말을 하나둘씩 내뱉는다.
“도대체, 어느 녀석이 이러는 건지, 잡히기만 해 봐.”
“하루이틀도 아니고 말이야.”
“야, 너희들 이게 누가 일부러 한 건지 어떻게 아냐?”
불만을 표시하는 동급생들 사이에서 삭발에 가까운 머리를 한 남학생 한 명이 입을 연다.
“누가 비를 내리는 게 보인 것도 아니잖아.”
“야, 베니! 그러니까 네가 눈치가 없다고 하는 거야.”
다른 동급생이 베니라고 불린 그 삭발한 남학생에게 핀잔을 준다.
“요즘 초능력자가 많이 늘어났잖아! 모르긴 몰라도, 그중에는 구름을 만드는 능력자도 있거나 하지 않겠어?”
“어... 그런가?”
베니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한다.
“그냥 비가 오길래 오나 보다 한 건데...”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눈이 오지 않잖아. 안 그래?”
그리고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지온은 윤진을 슬쩍 돌아보며 말한다.
“저, 윤진이 형.”
“왜 그래?”
“혹시 그 비를 내리거나 구름을 만드는 능력자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의심이 가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요.”
“응? 그게 누군데?”
지온의 머릿속에, 곧바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하나 있다. 비를 내리며 번개까지 치던 구름을, 순식간에 눈이 내리는 구름으로 만들어 버린...
“야, 너, 설마...”
지온의 등 뒤에서, 익숙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현애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너도 한번 내 손에 고드름이 되어 볼래?”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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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11-12 14:14:30
한번 생긴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죠. 아예 존재 자체가 용인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싫은 티를 팍팍 내는 게 지금의 아이란과 마린의 상태. 게다가 마린이 뭔가를 숨기는 태도를 노정하는 것도 역시 수상하네요. 저럴 거면 왜 부활동을 하는지, 혹시 부활동이 아니라 다른 것에 목적이 있고 부활동은 그 실체를 숨기거나 교내에 안정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목적을 위해 하는 것인가 하는 의심까지 들고 있어요.
토마의 상황도 의심스럽네요. 아무리 천식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애는 문제의 강우능력 초능력자를 특정한 것 같네요. 고드름이 되어 볼래라는 말이 그 자체의 냉기보다도 더욱 섬찟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니겠죠?
시어하트어택
2022-11-13 22:31:26
무슨 능력인지는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마린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죠. 그게 좀 지나쳐서 저렇게 선배들과 충돌도 일어나고 하는 거겠지만요.
저렇게 고드름이 되어 보라는 말은, 꼭 그 능력자를 특정해서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150cm 정도의 키는 고등학생치고는 작은 키니까요.
SiteOwner
2022-12-17 17:00:49
이걸 읽다 보니 과거 유행했던 무협 창작물에서 말한 비인부전(非人不?), 즉 인격이 제대로 되지 못한 이에게는 전해서는 안된다는 격언의 의미를 제대로 알 것 같습니다. 저렇게 타인을 괴롭히는 용도로 강우능력을 쓰다니...
그리고 사람의 심리란 일부러 감추고 있더라도 뜻하지 않은 경로로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예의 마린과 아이란의 대립도 그렇고 말이죠. 그나저나 늘 대화가 저런 식으로 오간다면 저런 인간관계는 별로 지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이어린 학생이라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그냥 웃고 넘길 수준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깊게 그리고 오래 남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2-12-18 16:59:25
저런 강한 능력을 그저 재미를 위해서 쓰는 건 아무래도 낭비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도 타인을 골탕먹이기 위한 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직 그게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 드러나게 되면 크게 혼쭐은 나 봐야 하겠죠.